1926년 혼인·가족·후견법전
1926 Code on Marriage, the Family and Guardianship
1926년 11월 19일 러시아 공화국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가 채택해 1927년 1월 1일 시행한 두 번째 소비에트 가족법. 등록하지 않은 사실혼에도 부양과 공동재산의 권리를 주고, 관청 신고만으로 이혼하게 했으며, 입양을 되살렸다. 신경제정책기 버림받은 여성과 부랑아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1944년 법령으로 사실혼 인정이 폐지되었다.
상세
1918년 법전은 법률가들이 바라던 목표를 상당 부분 이뤘지만 1차 세계대전과 내전이 남긴 사회 혼란 앞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1921년에만 부랑아가 700만 명에 이르렀고, 신경제정책으로 노동 동원이 끝나자 여성 실업이 치솟아 등록하지 않은 혼인 상태의 여성 수십만 명이 이혼 뒤 아무 보호를 받지 못했다. 1925년과 1926년 두 차례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새 법안이 논의되었고, 쿠르스키 법무인민위원은 1926년 『가족과 새 생활: 새 혼인·가족 법전 초안을 둘러싼 논쟁』을 펴냈다. 1926년 11월 19일 채택된 새 법전은 「사실상의 혼인 관계」라는 말을 법에 처음 들였다.
동거, 공동 살림, 제3자 앞이나 편지 등에서 드러난 부부 관계가 증명되면 등록 혼인처럼 다른 혼인을 막고, 함께 모은 재산을 공유하며, 헤어진 뒤에도 정해진 기간 부양을 받을 권리가 생겼다. 혼인 중 얻은 재산은 모두 공동재산이 되어 이혼 때 똑같이 나뉘었다. 이혼은 법원 대신 한쪽 배우자가 신분 등록 부서에 신고하는 것만으로 되었고 상대에게는 통지만 갔다. 혼인 연령은 남녀 모두 18세로 맞췄다.
1918년의 「집단 부성」, 곧 아버지를 가릴 수 없으면 여러 남자에게 부양료를 물리던 제도를 없애고 판사가 아버지를 정하게 했으며, 부양 의무를 자녀·부모·형제·조부모로 넓히는 한편 기간에 제한을 두었다. 부랑아 문제를 풀기 위해 입양을 되살렸다. 1918년보다 가족을 법적으로 다시 단단히 묶는 쪽으로 물러선 셈이지만, 법률가들에게 이는 사회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 돌봄이 아직 오지 않은 동안 여성과 아이를 지키기 위한 임시 조치였다. 스탈린 시기 1936년 법은 낙태를 금지하고 이혼을 어렵게 했으며, 1944년 7월 8일 소련 최고소비에트 간부회 법령은 사실혼의 법적 효력을 없애고 등록 혼인만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