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Moldavian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
1924년 10월 12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안에 드네스트르강 왼쪽 기슭을 영토로 세워진 자치 공화국. 루마니아에 넘어간 베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그곳에 친소비에트 정서를 퍼뜨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공식 수도는 「일시적으로 점령된 키시너우」로 정했다. 1940년 8월 2일 소련이 베사라비아를 병합해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면서 해체되었다.
상세
1924년 2월 그리고리 코톱스키와 루마니아 출신 볼셰비키 등 10명은 러시아 공산당과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각서를 보내, 드네스트르강 왼쪽 기슭에 몰도바인 50만~8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몰다비아 공화국이 베사라비아 문제를 푸는 강력한 정치·선전 수단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무인민위원 게오르기 치체린은 이것이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 주장을 오히려 강화하고 「루마니아 배외주의」를 자극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우크라이나 공산당 정치국은 3월 7일 신중론을 냈다가 4월 18일 몰도바인 수가 부풀려졌다며 자치가 부적절하다고 결론지었지만, 모스크바는 이를 무시했다.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7월 29일 자치 공화국 창설을 지시했고, 10월 12일 전우크라이나 중앙집행위원회가 이를 결정했다. 3월에 네 개 구의 자치주로 시작한 영토는 몰도바인이 2.52%에 불과한 발타 등을 더해 11개 구, 7,516제곱킬로미터가 되었다. 임시 수도는 발타였다가 1929년 티라스폴로 옮겨졌다. 1926년 인구조사에서 몰도바인은 30.1%로 우크라이나인 48.5%보다 적었다.
공화국은 빠르게 공업화되었지만 숙련 노동력이 부족해 다른 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들어왔고, 1928년 산업 노동자 1만 4,300명 가운데 몰도바인은 약 600명이었다. 1925년 기근을 겪었고, 집단화는 우크라이나보다 빨라 1931년 여름 완료되었으며 약 2천 가구가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었다. 1932~1933년 기근 때는 많은 주민이 드네스트르강을 건너 도망치려 했고, 1932년 2월 23일 올러네슈티 부근에서 40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 공화국은 몰도바인이 루마니아인과 다른 민족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키릴 문자로 쓰는 별도의 「몰도바어」 표준을 만들었고, 1932년 라틴 문자로 바꾸었다가 1938년 다시 키릴 문자로 돌아갔다. 1937년 대숙청 때 많은 지식인이 「인민의 적」,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1940년 6월 소련이 베사라비아를 점령한 뒤, 8월 2일 베사라비아 여섯 개 군과 자치 공화국 서쪽 일부를 합쳐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