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다비아 민주공화국
Moldavian Democratic Republic
1917년 12월 15일 베사라비아의 스파툴 처리이가 러시아 연방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 선포한 공화국. 1918년 2월 6일 독립을 선언했고, 4월 9일 자치를 조건으로 루마니아 왕국과 합병해 법적으로 끝났다. 의회는 스파툴 처리이, 정부는 총국장 위원회(독립 뒤 각료회의)였으며, 대통령은 이온 인쿨레츠, 총리는 판텔리몬 에르한·다니엘 추구레아누·페트루 카자쿠가 차례로 맡았다.
상세
공화국 이름을 두고 「베사라비아 공화국」 안도 나왔지만, 다수 민족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판텔리몬 에르한의 주장이 이겼다. 선언은 보통선거로 인민의회를 소집할 때까지 스파툴 처리이가 권력을 맡고, 땅을 일하는 사람에게 넘기며, 8시간 노동제와 사형 폐지, 모든 민족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12월 뽑힌 9인 총국장 위원회는 몰도바인 7명, 우크라이나인 1명, 유대인 1명으로 에르한이 의장 겸 농업, 이온 펠리반이 외무를 맡았다. 러시아어 문서에 따르면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와 소브나르콤이 새 공화국을 인정했다. 그러나 공화국은 영토를 장악하지 못했다. 무너지는 러시아군 병사들이 무정부 상태를 키웠고, 토지 문제 결정이 늦어지자 농민들은 지주 영지를 스스로 나누었으며, 명목상 의회에 속한 부대 대부분이 볼셰비키 영향 아래 들어갔다. 1918년 1월 14일에는 룸체로드의 전선부가 수도 키시너우에 들어왔다.
의회의 민족주의 세력이 군사 지원을 청하자 루마니아군이 1월 23일 국경을 넘어 며칠 만에 수도를 차지했고, 한때 의회에 충성했던 아나톨리에 포파 대위 같은 몰도바인 지휘관들도 이에 맞섰다. 루마니아군이 장악한 가운데 2월 6일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독립으로 러시아와의 연결이 끊겼다는 것이 이유였다. 총국장 위원회는 추구레아누의 각료회의로 바뀌었다. 4월 9일 스파툴 처리이는 지방 자치와 자체 입법·행정기관 유지를 조건으로 루마니아와의 합병을 결의했고, 이것으로 공화국은 법적으로 끝났다. 영어 위키백과는 그 짧은 역사를 러시아 안의 자치기, 독립기, 루마니아와의 연방기로 나눈다. 12월 비밀 회의가 모든 조건을 버린 것은 사실상 루마니아의 병합이었다고 영어 위키백과는 쓴다. 공화국의 국가는 루마니아의 「깨어나라, 루마니아인이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