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잠비크 해방전선
Mozambique Liberation Front
1962년 6월 25일 탕가니카의 다르에스살람에서 모잠비크의 세 민족주의 단체가 합쳐 결성한 해방운동이자 정당. 1964년 9월 포르투갈 식민 지배에 맞서 무장투쟁을 시작했고, 1975년 6월 독립 뒤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1977년 제3차 대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전위당 「FRELIMO당」으로 바뀌었고, 1989년 제5차 대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당 문서에서 삭제했다.
상세
FRELIMO는 1962년 6월 25일 다르에스살람에서 지역 기반의 세 민족주의 조직, 곧 모잠비크 아프리카민족연합(MANU), 모잠비크 민족민주연합(UDENAMO), 독립모잠비크 아프리카민족연합(UNAMI)이 합쳐 생겼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몬들라느가 의장, 우리아 시망구 목사가 부의장으로 뽑혔고, 1963년 다르에스살람에 본부를 두었다. 포르투갈 경찰이 식민지를 통제했기 때문에 운동은 모잠비크 안에 근거지를 둘 수 없었고,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이 이들에게 우호적이었다. 무에다 학살 등을 겪으며 평화적 운동으로는 독립할 수 없다고 본 FRELIMO는 1964년 9월 첫 공세를 시작했다.
독립전쟁 동안 FRELIMO는 소련과 중국,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지원을 받았다. 1960년대 말 북부에 「해방구」를 세워 포르투갈 대신 민정을 맡았고, 농민의 교육·의료 접근을 늘리고 협동 농업을 조직했다. 해방구 경험을 거치며 지도부는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기울었고, 서방 자본의 경제적 착취를 주적으로 보면서도 비인종주의를 표방해 백인 당원도 많았다. 1968년 7월 제2차 대회가 사회주의 목표를 승인했다. 1969년 2월 몬들라느가 암살된 뒤 시망구의 지도권이 도전받아 4월 사모라 마셸·마르셀리누 두스산투스·시망구의 3인 지도부가 들어섰고, 11월 마셸과 두스산투스가 시망구를 축출했다. 1970년 포르투갈의 「고르디우스의 매듭 작전」으로 큰 손실을 입었으나, 1970년대 초 게릴라는 약 7,000명에 이르렀다.
1974년 4월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 뒤 협상이 열려, 포르투갈어 출처에 따르면 1974년 9월 7일 루사카 협정을 거쳐 1975년 6월 25일 모잠비크가 독립했다. FRELIMO는 마셸을 대통령으로 하는 일당 국가를 세웠다. 시망구 부부 등 반대파의 처리에 대해 영어 출처는 체포되었다고, 포르투갈어 출처는 재판 없이 처형되었다고 적는다. 1977년 2월 제3차 대회에서 FRELIMO는 노동자·농민 동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전위당으로 바뀌어 「FRELIMO당」이라는 이름을 채택했고, 중앙위원회를 200명 넘게 늘렸다. 이때까지 토지, 다수 기업, 임대 주택, 은행, 의료·교육이 국유화되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문맹률은 1975년 95%에서 1978년 73%로 떨어졌다.
로디지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소수 정부가 지원한 반공 무장단체 모잠비크 민족저항(RENAMO)과의 내전은 1992년까지 이어졌다. 1986년 마셸이 비행기 사고로 죽자 조아킹 시사누가 당과 국가를 이어받아 1987년 9월 세계은행·IMF의 경제재건계획을 받아들였고, 1989년 제5차 대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계급투쟁을 당 문서에서 삭제했다. 영어 출처는 이때 민주사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삼았다고 적고, 포르투갈어 출처는 1993년부터 사회민주주의로 옮겨 갔다고 적는다. 1990년 새 헌법이 복수정당제를 도입했고, 1992년 로마 일반평화협정으로 내전이 끝났다.
FRELIMO는 1994년 첫 복수정당 선거에서 이긴 뒤 모든 선거에서 의회 과반을 차지했다. 1999년 시사누가 52.3%로 재선되고 당은 250석 중 133석을 얻었다. 2004년에는 아르만두 게부자가 약 60%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당은 160석을 얻었지만, RENAMO 등 야당은 부정선거를 주장했고 유럽연합과 카터 센터의 선거 감시단도 선거관리위원회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