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文化運動 · 1915.09.15–1921

신문화운동

New Culture Movement

1915년 천두슈가 《청년잡지》(뒤의 《신청년》)를 창간하면서 시작되어 1920년대 초까지 이어진 중국의 사상·문화 운동. 공자의 윤리를 전제정치의 뿌리로 공격하고 「민주와 과학」, 개인의 해방, 백화문 문학을 내세웠다. 베이징대학을 거점으로 천두슈·후스·리다자오·루쉰 등이 이끌었으며, 1919년 5·4 운동을 거치며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로 갈라졌다.

상세

배경: 신해혁명 뒤의 공화국은 위안스카이의 독재와 제정 시도, 군벌 할거로 무너졌다. 1914~1915년 장스자오가 도쿄에서 낸 《갑인》 같은 잡지는 정치를 떠받치는 문화와 가치의 문제를 묻기 시작했고, 21개조 요구와 위안의 황제 즉위 계획은 지식인들에게 제도만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남겼다. 1915년 9월 천두슈의 《청년잡지》 창간이 그 출발점이었다.

주장과 활동: 운동은 「공자 선생」 대신 「덕 선생(민주)」과 「새 선생(과학)」을 내세웠다. 후스의 「문학개량추의」(1917)와 천두슈의 문학혁명론, 루쉰의 「광인일기」(1918)가 문언 대신 백화문으로 쓰는 새 문학을 열었다. 차이위안페이가 총장이 된 베이징대학에는 천두슈·리다자오·후스와 함께 량수밍·구제강 같은 학자가 모였고, 무정부주의·듀이의 실용주의·마르크스주의 등 세계의 거의 모든 「주의」가 소개되었다. 여성 해방과 자유 혼인, 가부장제 비판도 중요한 주제였다.

분화와 평가: 1919년 5·4 운동은 운동을 정치 행동으로 이끌었고, 그해 「문제와 주의」 논쟁에서 후스의 점진 개혁론과 리다자오의 「근본적 해결」론이 갈라졌다. 마오쩌둥은 이를 5·4에서 자라난 문화 개혁 운동으로 보아 신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로 규정했다. 정통 해석은 운동을 봉건 사상과의 혁명적 단절로 보았으나, 근래에는 그 변화가 청 말 개혁 이래 몇 세대에 걸친 뿌리를 가졌다는 견해가 많다. 1920년대 중반의 반제 민족주의와 정당 정치는 운동의 다원적 탐구를 압도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