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사드 학살
Novi Sad raid
1942년 1월 헝가리군과 헌병대가 병합된 바치카에서 파르티잔 소탕을 구실로 벌인 학살. 1월 6일 추루그에서 시작해 20~23일 노비사드(우이비데크)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연구에 따라 약 3300~4100명, 대부분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이 죽었다.
상세
참모총장 솜버테이이 페렌츠가 징벌 작전을 명령했고, 바르도시 정부는 독일에 점령지 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노비사드에서 페케테헐미체이드네르 페렌츠의 부대는 혹한 속에 주민을 도나우강 강변으로 끌고 가 쏘고 시신을 얼음 구멍에 던졌다. 노비사드 시 행정장관 데아크 라슬로가 부다페스트에 알린 뒤에야 학살이 멈췄다.
의원 버이치질린스키 엔드레가 의회에서 이를 고발했고, 칼러이 정부는 1943년 12월 책임자들을 군사재판에 넘겼으나 유죄 판결을 받은 장교들은 1944년 1월 독일로 달아났다. 헝가리어로는 「추운 날들」이라고도 불리며, 2013년 헝가리 대통령이 세르비아에 공식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