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로시스크 철수
Evacuation of Novorossiysk
1920년 3월 붉은 군대에 쫓긴 남러시아 군과 피란민이 흑해 항구 노보로시스크에서 배를 타고 크림 등지로 빠져나간 철수. 배가 모자라고 공황이 번진 가운데 3월 26~27일 약 3만 3천 명이 실려 나갔으나, 말과 대포를 버렸고 남겨진 카자크 연대 다수가 항복했다. 「노보로시스크 참사」라고도 불리며, 직후 데니킨은 물러나고 지휘권이 브란겔에게 넘어갔다.
상세
3월 11일 전선은 도시에서 40~50킬로미터까지 다가왔고, 흩어진 돈군과 쿠반군은 타만으로 가지 못해 노보로시스크로 몰려들었다. 장티푸스 때문에 외국 항구들이 배를 검역에 묶어 두었고, 영국군은 처음에 5천~6천 명만 실어 갈 수 있다고 했다. 3월 17일 예카테리노다르가 떨어졌고, 25일 붉은 군대와 파르티잔이 노보로시스크 근교 가이두크까지 들어와 백군은 장갑열차 셋을 버렸다. 철수 위원회는 쿠테포프가 이끌었고, 26일 밤 창고와 기름 탱크를 불태우는 가운데 코르닐로프·드로즈돕스키 부대와 시모어 제독의 연합국 함대 포격이 철수를 엄호했다. 붉은 군대는 27일 도시에 들어와 약 2만 2천 명을 포로로 잡았고, 남겨진 장교와 카자크 가운데 많은 이가 자살하거나 처형되었다. 브란겔은 11월 크림 철수에서 오데사와 노보로시스크의 교훈을 살려 훨씬 질서 있게 배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