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열차
Armoured train
철판으로 장갑을 두르고 대포·기관총을 실은 차량을 기관차에 묶은 무장 열차.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철도를 따라 화력을 빠르게 옮기는 수단으로 쓰였고, 선로가 끊기면 꼼짝 못 하는 약점이 있었다. 가장 집중적으로 쓰인 곳은 러시아 내전으로, 붉은 군대와 백군,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모두 장갑열차를 앞세워 철도선을 다투었다.
상세
무장 열차는 미국 남북전쟁, 보불전쟁, 보어 전쟁에서 이미 쓰였다. 1899년 11월 15일 남아프리카에서 종군기자 윈스턴 처칠이 탄 영국 장갑열차가 보어군의 매복에 걸려 탈선했고, 처칠은 포로가 되었다. 그는 뒤에 장갑열차만큼 위압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지만 실은 다리나 배수로 하나만 끊으면 오도 가도 못 하는 가장 무력한 물건이라고 회고했다. 러시아는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에서 경·중장갑열차를 함께 운용했다. 러시아 내전에서는 뚜렷한 전선이 없고 철도가 병력·탄약·곡물을 옮기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장갑열차가 크게 늘었다. 1919년까지는 객차와 화차에 모래주머니와 철판을 대어 하루 만에 꾸민 「대용」 장갑열차가 흔했고, 해군 기술자들이 푸틸로프·이조라 공장에서 함포를 얹어 만든 본격적인 열차도 있었다. 승무원은 수병이 많아 열차 안의 생활과 근무를 군함처럼 꾸렸다.
공화국 혁명군사평의회는 1918년 12월 18일 명령으로 승무원 136명에 장갑 기관차 한 대와 장갑 차량 두 대를 둔 편제를 정했고, 1919년 1월 4일 장갑열차를 각 군의 장갑부대장 아래에 두었으며, 1920년 8월 5일 돌격용 「A」형과 화력 지원용 「B」·「V」형으로 나누는 지침을 냈다.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1920년 10월 1일 붉은 군대에는 장갑열차와 장갑 소형열차가 103편 있었고, 내전이 끝날 무렵 중앙장갑부대평의회(첸트로브론) 아래의 정식 장갑열차는 122편이었다. 백군은 시기에 따라 최대 79편을 썼고,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오를리크」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군의 열차도 이름을 남겼다. 트로츠키는 『나의 생애』에서 자신의 사령부 열차가 “여러 면에서 바퀴 달린 사령부보다 장갑열차에 더 가까웠다”고 썼고, 그 승무원 일부가 “레닌의 이름을 딴 모범 장갑열차”로 옮겨 갔다고 적었다. 내전 뒤 장갑열차는 에스토니아·폴란드·리투아니아 독립전쟁, 중국 군벌 전쟁, 2차 세계대전의 폴란드·소련·독일군에서 쓰였고, 러시아는 체첸 전쟁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개조 장갑열차를 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