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토름-333 작전
Operation Storm-333
1979년 12월 27일 소련 KGB와 GRU 특수부대가 카불의 타지베크 궁전을 습격해 아프가니스탄 지도자 하피줄라 아민을 제거한 군사 작전. KGB 알파 그룹(그롬)과 제니트, GRU 제154특수목적분견대(이슬람 대대), 제345근위공수연대 등 약 650명이 투입되어 40여 분 만에 궁전을 장악했으며, 아민과 경호 병력 약 200명이 사망했다. 바브라크 카르말을 대체 정권 수반으로 세우기 위한 특수 작전 바이칼-79의 핵심 구성 요소였으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개전 신호탄이었다.
상세
배경
1979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NHDPA) 내부의 파르참-할크 분열 속에서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가 하피줄라 아민에 의해 축출되었고, 타라키는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아민 정권 아래에서 이슬람주의자와 타라키 지지파에 대한 탄압이 확대되고 군 내부의 불만이 커지자, 소련 지도부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악화와 반소 세력의 집권을 우려했다. 1979년 9~12월 아민은 소련에 일곱 차례 군사 원조를 요청했고, 이 요청들은 작전 구상에 이용되었다. 12월 12일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아민 제거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A에 관한 사항'이라는 제목으로 단 한 부만 손으로 기록했다. 소련군은 이동과 공수 양면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왔고, 망명 중이던 파르참 세력이 이 작업에 동원되었다.
준비와 전력
1979년 여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편성된 '제니트' 부대가 카불에 들어왔고, 12월 23일에는 KGB 특수부대 'A'에서 차출된 '그롬' 부대원 25명이 도착했다. 아프가니스탄 측의 군사 원조 요청을 명분으로, 중앙아시아 출신 병사로 구성된 GRU 제154특수목적분견대, 이른바 '무슬림 대대'가 아민 궁전 경비 강화를 명목으로 배치되었다. 작전 계획은 GRU 대령 바실리 콜레스니크가 세웠고, KGB 제1총국 'S'국장 유리 드로조프가 특수조의 협조를 맡았으며, 실제 병력은 KGB의 '그롬' 24명, '제니트' 30명, '무슬림 대대' 520명, 제345근위공수연대 제9낙하산강습중대 100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아민 궁전은 아프가니스탄 민족여단 3개 보병대대와 1개 전차대대의 경비를 받았고, 지하에 매설된 전차 3대와 100mm 대공포 12문 등으로 무장한 약 2,500명 규모의 병력이 방어에 나섰다. 계획은 구두로만 하달되었고, 작전 실패 시 '무슬림 대대' 지휘관의 만취 소행으로 전가하겠다는 경고까지 전달되었다. 소련군과 KGB 요원은 계급장 없는 아프가니스탄 군복에 흰 팔찌를 두르고 '야샤'와 '미샤'를 식별 암호로 사용했다.
슈토름-333 작전
1979년 12월 25일 소련군의 대규모 파병이 시작되었고, 12월 27일 오후 제103근위공수사단이 카불 비행장을 장악해 아프가니스탄 항공기와 방공포대를 무력화시켰으며, 카불의 주요 정부 기관과 군부대도 봉쇄되었다. 같은 날 점심, KGB가 사전 투입한 요원이 아민의 식사에 독을 넣어 그와 수행원들이 쓰러졌으나, 사정을 모르는 소련 의사들과 아프가니스탄 의료진의 조치로 아민은 의식을 되찾았다. 궁전 경비는 경계를 강화했지만 작전에 참여하는 KGB 요원과 '무슬림 대대' 지휘부는 이를 알지 못했다.
공격은 저녁 7시 무렵(참가자 진술에 따라 대략 18시 20분에서 19시 30분 사이) 시작되었다. 먼저 카불의 전화 통신을 끊은 폭발에 이어 제1전투조가 궁전 인근의 전차를 제압하려 했고, 교전이 벌어지면서 기습이 상실되자 콜레스니크는 계획을 앞당겨 공격을 명령했다. 제3전투조는 3대의 장갑차로, 제2전투조는 '그롬'과 함께 보병전투차량으로 진격했지만 강한 사격을 받아 다수의 차량이 파괴되고 KGB 대원들이 사상되었다. 대원들은 중앙 현관, 창문, 측면 출입구, 무기로 뚫은 벽 구멍 등으로 궁전에 진입해 보초병들과 시가전을 벌였고, 약 40분 만에 궁전을 장악했다.
아민의 죽음
아민은 공격 중에도 소련이 자신을 도울 것이라 믿었고, 참모진과의 연락이 끊긴 뒤에야 상황을 깨달았다. 그는 '그롬' 대원들에게 붙잡혔으나 12월 27일 점심의 독극물 중독과 관련된 치료가 중단되어 경련과 반혼수 상태에 있었다. 아민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목격자에 의해 확정된 바 없으며, 카불 라디오는 그가 혁명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다고 발표했고, 2009년에는 수류탄 파편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정황이 제시되었다. 일부 자료는 작전 참가자들과 함께 있던 아프가니스탄 측 인사가 그를 사살했다고 전한다. 아프가니스탄 내무부, 정보기관 KAM, 총참모부 등 주요 정부 건물들도 작전 중 장악되었다.
사상자와 결과
소련 측은 KGB 특수부대 장교 5명, '무슬림 대대' 병사 7명, 공수부대원 2명이 죽었고, KGB 부대장 그리고리 보야리노프 대령도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 측은 아민과 그의 두 아들, 약 200명의 경비병과 군인 등이 죽었고, 1,7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궁전에서 아민을 치료하던 소련군 의사 빅토르 쿠즈네첸코프 대령은 아군의 오사로 사망했다.
작전의 목표는 바브라크 카르말을 아민의 후임으로 앉히는 것이었고, 12월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밤 카르말이 바그람에서 카불로 와 라디오를 통해 인민에게 연설했다. 작전 자체는 군사적으로 성공적이었으나, 국가 원수 암살이라는 사실은 서방에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증거로 해석되었다. 알파 그룹 참전자들은 이 작전을 부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 하나로 평가한다. 아민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혐의는 널리 신빙성을 잃었으며, 소련 문서고는 그 이야기가 KGB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80년 4월 작전에 참여한 KGB 요원 약 400명과 '무슬림 대대' 장병 180명이 훈장과 메달을 받았고, 보야리노프, 카르푸힌, 코즐로프, 콜레스니크에게는 소련 영웅 칭호가 수여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Wikipedia RU, Штурм дворца Амина: operation codenamed Шторм-333, involved KGB groups Grom and Zenit, GRU Muslim Battalion, and 345th Airborne Regiment; ~40-minute assault; about 200 Afghan guards killed.
- Wikipedia EN, Operation Storm-333: military raid on Tajbeg Palace 27 Dec 1979, killed Hafizullah Amin, part of larger Operation Baikal-79, marked start of Soviet-Afghan War.
- RFE/RL, Frud Bezhan, Poisonings, Assassination, And A Coup: The Secret Soviet Invasion Of Afghanistan (27 Dec 2019): detailed eyewitness accounts of the assault, the poisoning attempt on Amin earlier that day, and the coordinated seizure of Kabul.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