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риказ № 1 · 1917년

명령 제1호

Order No. 1

1917년 3월 1일(구력)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발한 최초의 공식 명령으로, 모든 부대에 병사위원회를 선출하고 정치적 행동은 소비에트와 그 위원회에 복종하도록 규정했다. 무기는 병사위원회의 통제 아래 두고 장교에게 넘기지 못하게 했으며, 임시정부 군사위원회의 명령은 소비에트의 결정과 모순되지 않는 경우에만 이행하도록 제한했다. 이 명령은 수도의 무장력을 사실상 소비에트에 복종시킴으로써 이중권력의 제도적 기초를 세웠고, 트로츠키가 '2월 혁명의 유일하게 값진 문서'라 부른 결정적 법령이었다.

상세

배경

2월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붕괴된 직후, 두마 임시위원회는 봉기에 가담한 병사들에게 막사로 복귀해 장교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로드쟌코가 이끄는 두마가 차르 체제와의 연속성을 갖는다고 의심했고, 장교들이 복귀하면 옛 구타와 굴욕으로 되돌아갈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병사부는 병사들의 직접 요구를 바탕으로 명령을 초안했고, 변호사이자 소비에트 집행위원이었던 니콜라이 소콜로프가 편집을 주도했다.

주요 내용

명령은 모든 중대·대대·연대·함정에 하급병 대표로 구성된 선출 위원회를 즉시 설치하고(제1조), 각 부대의 정치적 행동은 소비에트와 자체 위원회에 복종하며(제3조), 두마 군사위원회의 명령은 소비에트의 결정과 모순되지 않는 경우에만 이행하도록(제4조) 규정했다. 무기(소총·기관총·장갑차 등)는 중대 및 대대 위원회의 처분과 통제 아래 두고 장교에게는 어떤 요구에도 넘기지 못하게 했다(제5조). 복무 중에는 엄격한 군사 규율을 지키되, 비번 시에는 모든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차렷 및 강제 경례를 폐지했다(제6조). '각하', '존경하는' 같은 장교 호칭을 '장군 각하', '대령 각하' 등으로 대체하고, 병사에게 '너'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했다(제7조).

영향과 논란

이 명령은 페트로그라드 수비대에만 적용되었으나 전선으로까지 확산되었고, 48시간 만에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적용 범위를 제한하려는 2호 명령을 냈지만 실패했다. 구치코프와 장군들은 이 명령이 군대 규율을 파괴했다고 비난한 반면, 멘셰비키 스코벨레프는 장교들이 혁명 당시 부대를 버리고 도망친 상황에서 무기가 반혁명에 사용될 위험을 막기 위한 필수 조치였다고 옹호했다. 사회민주주의자 골덴베르크는 더 솔직하게 '우리는 군대와 혁명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고, 혁명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 명령이 단독으로 군대를 붕괴시켰는지는 역사학계에서 논쟁이 계속되지만, 그것이 이중권력의 실체를 무장력의 통제라는 구체적 형태로 제도화한 결정적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full article on Order No. 1: background, provisions, impact, and historiography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detailed account of the drafting, Sokolov's role, the soldiers' assembly, and military command reactions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full text of Order No. 1 in English translation (Soviet History Archive)
  4. avalon.law.yale.edu full text of Order No. 1 at the Avalon Project (Yale Law School)
  5. wsws.org World Socialist Web Site centenary analysis with Trotsky's 'single worthy document' quotation and full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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