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인민대표위원회
Finnish People’s Delegation
핀란드 내전 때 적색 진영의 혁명 정부(1918년 1월 28일~4월 25일). 사회민주당 좌파 인사들로 구성되고 쿨레르보 만네르가 의장을 맡아, 스빈후부드의 상원과 의회를 밀어내고 헬싱키와 남부 핀란드에서 스스로 법령을 냈다. 그 국가는 흔히 적색 핀란드라 불리며, 「핀란드 사회주의 노동자 공화국」이라는 이름은 3월 1일 소비에트 러시아와 맺은 조약에만 나온다.
상세
무장 혁명은 노동자 질서수비대 지도부와 1월 23일 사회민주당 당위원회에서 떨어져 나온 「핀란드 노동자 집행위원회」(의장 에로 하팔라이넨)가 결정했다. 1월 26~27일 밤 상원 의원과 의원 33명 등을 체포하라는 명령은 공개 포고가 먼저 퍼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인민대표위원회는 28일 세워져 그날 아침 시작된 봉기를 이끌었고, 명단은 하팔라이넨의 제안을 바탕으로 했다. 전 의회 의장 만네르가 의장, 전 상원 경제부 부의장 오스카리 토코이가 식량 위원을 맡았고, 영어 출처의 각료 명단에는 에드바르드 귈링(재정), 오토 빌레 쿠시넨(교육) 등이 있다. 위원회는 첫날 수도의 부르주아 신문을 모두 폐간했고(다른 도시는 며칠 뒤), 2월 2일 적위대를 국가가 유지하도록 정했으나 실제로는 거의 통제하지 못했다. 헬싱키에서 89차례, 비푸리에서 열 차례 가까이 회의를 열어 45개 법령을 냈는데, 1871년 파리 코뮌과 볼셰비키의 입법, 무엇보다 핀란드 노동운동의 이전 강령을 본보기로 삼았다. 2월 23일 주로 쿠시넨이 만든 헌법 초안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없었고, 스위스·미국 헌법과 프랑스 혁명의 영향 아래 국민투표를 폭넓게 쓰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그렸지만 끝내 채택되지 못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인민대표위원회를 핀란드의 합법 정부로 인정한 유일한 국가였다. 귈링이 주도한 협상 끝에 3월 1일 두 정부는 조약을 맺었는데, 국호에 「사회주의 노동자 공화국」을 넣자고 한 것은 레닌이었고 인민대표위원회는 뒤에 이를 받아들인 대표들을 탓했다. 적색 다수의 목표는 중립적인 독립 핀란드였고, 조약으로 페차모를 얻었으나 동카렐리야 문제는 열린 채 남았다. 영어 출처는 조약이 브레스트 강화 협상 중인 볼셰비키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고 본다. 탐페레를 잃은 뒤 4월 6일 정부와 적위대 참모부는 비푸리로 옮겼고, 4월 10일 만네르가 독재 권한과 함께 총사령관직을 넘겨받았다. 위원 대부분은 4월 25일 페트로그라드로 달아났다. 패전 뒤 온건 사회주의자들은 공화국 체제에 합류했고, 극좌파는 1918년 8월 모스크바에서 핀란드 공산당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