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октрина Примакова · 1996년–현재

프리마코프 독트린

Primakov Doctrine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1996년 러시아 외무장관 취임과 함께 공식화한 외교 독트린으로, 미국 주도의 단극적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강대국 협의에 의한 다극 세계를 주창했다. 구소련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우위, NATO 확장 반대, 중국·인도와의 전략적 삼각 협력을 핵심 축으로 삼았으며, 이후 BRICS로 발전하는 러시아 다극 외교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1999년 프리마코프 총리가 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에 항의해 대서양 상공에서 전용기를 돌린 사건은 이 독트린의 실천적 상징으로 평가된다.

상세

개념과 등장 배경

프리마코프 독트린(러시아어: Доктрина Примакова)은 1990년대에 정식화된 러시아의 정치·외교 노선으로, 러시아의 국가안보가 강대국 지위에 의존하며 따라서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적 국제질서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P1]

이 명칭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1996년 외무장관으로 임명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에서 나왔다.[P3] 1996년 1월 취임 무렵 안드레이 코지레프 전임 장관 시기의 친서방 노선에 대한 반발이 커졌고,[P321][P324] 프리마코프는 러시아 외교를 서방으로부터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유라시아에서 미국을 견제할 전략적 3각 동맹(러시아·중국·인도) 구성을 주창했다.[P3] 그 자신은 서방과의 관계 단절이 아니라 중국, 남아시아, 중동에서 독자적 외교를 펼칠 권리를 유지하는 다벡터 노선을 주장했고, 중국·인도와의 3자협력체를 처음 제안했다.[P196]

핵심 원칙

영어 위키백과는 이 독트린의 다섯 가지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러시아는 독자적 외교를 추구하는 강력한 행위자라는 인식, 둘째 주요국 협의(concert of major powers)로 관리되는 다극 세계 추구, 셋째 구소련권에서의 우위와 유라시아 통합 추구, 넷째 NATO 확장 반대, 다섯째 중국과의 파트너십이다.[P4]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유진 루머(2019)는 이를 단극 세계의 불가수용, 미국의 일방적 힘을 견제할 다극 질서, 구소련 지역 우위와 통합 주도, NATO 확장 반대, 중국과의 파트너십이라는 원칙으로 재정리하면서, 러시아가 단독으로 미국과 경쟁하기보다 다른 주요국의 힘을 빌려 미국을 구속하고 핵심 현안마다 동의가 필요한 대체 불가능한 행위자로 자리매김하려 한다고 설명한다.[P40][P22][P23][P24][P25] 여기서 다극론의 또 다른 논거는 단극 체제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며 다극 체제가 헤게모니의 일방적·자의적 무력 사용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P40]

전개와 역사적 사례

프리마코프는 1996년 10월 《국제생활(Международная жизнь)》에 게재한 프로그램적 글에서 다극성으로의 이행을 세계 발전의 주요 추세로 규정하고, 새로운 분할선의 방지, '주도자-추종자' 사고방식의 제거, 국제경제관계의 민주화, 유엔을 다극 체제 이행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하는 유럽 안보 구축을 조건으로 제시했다.[P332][P333] 1997년 러시아와 중국 정상은 다극 세계와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고,[P346] 1998년 총리로서 뉴델리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인도·중국 3자 협력 구상을 제기했으며, 이는 훗날 브릭스로 이어졌다.[P348] 영어 위키백과도 이 기반을 러시아·인도·중국(RIC) 포맷으로 보고 궁극적으로 브릭스로 발전했다고 서술한다.[P5]

카네기는 2008년 그루지야 전쟁,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 2015년 이후 시리아 개입을 이 원칙들의 구현 사례로 들면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과 군사력 사용은 과도한 위험을 피하도록 조정되어 왔다고 평가한다.[P29] 또한 하이브리드전을 독트린을 위한 위험 관리 수단으로 규정하고, 2010년 군사독트린이 NATO 확장과 주변국 병력 배치를 지적한 점을 언급한다.[P57][P288] 다만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카네기는 러시아 국가안보 기구의 관점에서 이것이 선택의 전쟁이 아니라 필요의 전쟁이었다는 평가를 전한다.[P294]

실천적 상징과 계보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프리마코프가 총리로 재임하던 1999년 3월 24일 대서양 상공에서 전용기를 돌려 모스크바로 귀국한 일이다. 그는 워싱턴 공식 방문 중 뉴펀들랜드 인근 상공에서 앨 고어 미국 부통령으로부터 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 결정을 전해 듣고 방문을 취소하고 회항을 지시했으며, 이는 '프리마코프의 회항(разворот над Атлантикой, петля Примакова)'으로 불리게 되었다.[P214][P90] 러시아 정치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이는 다벡터 외교로의 전환, 러시아 국가성 부활의 시작, 러시아와 힘의 논리로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세계에 처음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P150]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14년 프리마코프의 85세 생일을 앞두고 이 용어를 지정학적 어휘로 끌어들였고,[P6] 그가 세운 원칙이 2000년 이후 모든 러시아 대외정책 개념의 기초를 이룬다고 밝혔다.[P355] 라브로프는 프리마코프가 다벡터성 원칙의 저자이며, 서방을 포함한 모든 국가와 평등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발전시키려 한 점을 강조했다.[P344] 국제생활에 실린 회고적 평가도 프리마코프가 이 독트린을 정식화했을 뿐 아니라 외무장관과 총리로서 실천했다고 서술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프리마코프의 외교 덕분에 러시아에 대한 존중이 국제 외교에 돌아왔다고 언급한 점을 전한다.[P302][P352]

평가와 쟁점

명칭 사용에는 시차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프리마코프가 이 노선을 추진한 것은 외무장관 취임 이후의 일이고, '프리마코프 독트린'이라는 명칭은 1997년 미국 외교정책계가 붙인 것이며,[P86][P8] 일부 연구자는 1998~1999년에 발표된 것으로 본다.[P11] 카네기의 루머도 이 명칭을 라브로프가 퍼뜨린 용어로 소개한다.[P21]

학술적 평가는 갈린다. 아리엘 코헨은 러시아와 이란의 강한 유대를 인정하면서도 이 독트린을 제로섬 게임으로 규정했다.[P8] 에마누엘 코필라슈는 프리마코프를 모스크바가 서방 공간에서 유라시아 공간으로 지리적 재정향을 단행한 설계자로 보면서 그 지정학 구상의 신유라시아주의적 영감을 지적했고, 마크 바신은 프리마코프 외에도 겐나디 주가노프와 알렉산드르 두긴 등 서로 다른 유라시아 구상들이 존재했음을 지적한다.[P10][P9] 카네기의 루머는 구현 과정에서 러시아가 위험을 신중하게 계산해 왔다고 평가하면서도 지도부 세대가 바뀌면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P29][P31] 이 밖에 카네기 문서는 이 독트린이 전제하는 러시아의 주변부에 대한 특권적 이익이 동유럽, 중앙아시아, 캅카스, 발트 지역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한다.[P288]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article on the Primakov Doctrine: origin, five key principles, and historical context
  2. carnegieendowment.org Carnegie Endowment paper (Eugene Rumer, 2019): detailed analysis of the doctrine as the actual driver of Russian foreign policy for over two decades, including its principles and implementation
  3. 위키백과 (영문)
  4. carnegieendowment.org
  5. interaffairs.ru
  6. 위키백과 (러시아어)
  7.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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