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оциалистическое первоначальное накопление · 1920년대 (네프 논쟁)

사회주의적 원시축적

Primitive Socialist Accumulation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가 1920년대 신경제정책 논쟁에서 정식화한 경제 개념으로, 저발전된 농업국이 공업화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가 농민 부문의 잉여를 체계적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의 원시축적'을 사회주의 이행기에 대응시킨 것으로, 국가 주도로 농업과 공업 간 가격차(가위차)를 통해 자원을 공업에 집중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며, 좌익반대파의 핵심 경제 강령이 되었다. 부하린은 이를 '농민에 대한 착취'라 비판하며 우파 반대파의 입장을 대표했고, 이후 스탈린의 강제 집단화는 이 이론과 방법론적으로 전혀 다른 경로를 걸었다.

상세

이론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새로운 경제학」(1926)에서 과도기 경제를 두 법칙의 대립으로 파악했다. 하나는 사적 부문을 지배하는 가치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부문이 자기를 확대하기 위해 관철해야 하는 사회주의적 원시축적의 법칙이었다. 두 법칙은 공존할 수 없으며, 국가 부문이 사적 부문에서 자원을 이전하는 정도가 공업화의 속도를 결정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전의 수단은 폭력적 수취가 아니라 가격 정책이었다. 국가가 공업 생산물의 판매 가격과 농산물 수매 가격의 격차, 즉 가위를 조절해 부등가교환을 통해 잉여를 흡수한다는 구상이었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원시축적으로 서술한 과정을 사회주의 국가가 자기 부문을 위해 수행한다는 유추가 이름의 근거였다.

논쟁

부하린은 이 구상을 농민 착취로 규정하고 반박했다. 국가가 부등가교환으로 잉여를 흡수하면 농민은 시장에 대한 판매를 줄이고 자가 소비로 후퇴하며, 그 결과 공업이 팔 시장과 살 곡물을 동시에 잃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노농 동맹의 유지를 우선 조건으로 두고 균형 성장을 주장했다.

이 논쟁은 1920년대 후반 당내 노선 대립의 경제학적 표현이었다.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정식화는 좌익반대파의 경제 강령이 되었고, 부하린의 반론은 우익반대파의 근거가 되었다.

스탈린 노선과의 차이

1929년 이후 스탈린이 실행한 것은 이 이론이 상정한 경로가 아니었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시장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가격을 통한 이전을 구상했으나, 실제로 채택된 방식은 집단화를 통해 생산 단위 자체를 국가에 종속시키고 의무 수매로 곡물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규모는 이론이 전제한 범위를 넘었고 그 사회적 대가도 달랐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자신은 좌익반대파 활동으로 여러 차례 제거되었고 1937년 처형되었다. 그의 문제 설정은 이후 저개발국 공업화 논쟁에서 다시 다루어졌으며, 농업 잉여의 이전과 부문 간 교역 조건을 다룬 20세기 중반 개발경제학의 논의와 자주 비교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full article on the concept, its origins with Preobrazhensky, its role in the Left Opposition platform, and the distinction from Stalin's forced industrialization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on Preobrazhensky's 'New Economics' confirming socialist accumulation as the book's core thesis and its framing as an economic law comparable to the law of value
  3. 위키백과 (영문) confirms Preobrazhensky's main theoretical contribution as primitive socialist accum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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