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ременное Приамурско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 1921–1922

프리아무르 임시정부

Provisional Priamurye Government

192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의 백군 쿠데타로 세워져 1922년 10월까지 연해주 남부를 다스린 반볼셰비키 정권. 스피리돈·니콜라이 메르쿨로프 형제가 이끌었고 일본군의 보호에 기댔으며, 소비에트 쪽은 극동공화국에 맞선 이 정권을 「검은 완충국」이라 불렀다. 1922년 여름 미하일 디테릭스가 실권을 쥐고 이름을 프리아무르 젬스키 크라이로 바꿨으나, 일본군 철수와 함께 무너졌다.

상세

1921년 5월 2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백군 반란군이 볼셰비키 바실리 안토노프가 이끌던 연해주 젬스트보 정부를 무너뜨렸다. 극동공화국을 인정하던 그 정부를 대신해 권력은 극동 비사회주의 단체 대회로 넘어갔고, 대회가 프리아무르 임시정부를 뽑았다. 쿠데타의 주력은 블라디미르 카펠 군대의 잔존 부대인 카펠레프치였고, 정권의 군대는 카펠과 아타만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옛 부대로 이루어진 백군 극동군이었다. 최고 대표 기관은 인민의회였다. 정부를 이끈 메르쿨로프 형제는 둘 다 옛 국가 두마 의원이었는데, 스피리돈은 영어 문헌에 따르면 농업부 관료 출신이었고 러시아어 문헌에 따르면 변호사였으며, 니콜라이는 상인이었다. 일본과 미국의 영사단이 정권을 지지했고, 일본은 연해주에 주둔한 병력으로 군사적 뒷받침도 했다. 같은 해 세묘노프가 프리아무르에서 권력을 잡으려 했지만 일본의 지원을 얻지 못해 물러났고, 카펠레프치와 세묘노프 쪽은 서로를 경멸했다. 쿠데타 직후부터 연해주에서는 볼셰비키를 중심으로 한 파르티잔 운동이 다시 번졌다.

정권은 점차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의 스파스크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파르티잔 운동을 누르지 못했고, 1922년 겨울과 봄 하바롭스크 일대에서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에 패하자 메르쿨로프 정부는 그해 여름 물러났다. 7월 23일 콜차크의 장군이었던 디테릭스가 정부 수반과 총사령관을 겸한 통치자가 되었다. 같은 7월 소집된 프리아무르 젬스키 소보르는 차르 타도를 회개하자고 호소하며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을 차르로 선포했고, 디테릭스는 영역을 프리아무르 젬스키 크라이로, 군대를 젬스카야 라티로 고쳐 불렀다. 젬스카야 라티는 9월 1일 공세에 나섰지만 10월에 거의 전멸했다. 일본군이 철수하는 가운데 10월 25일 인민혁명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갔고, 그 직전 사조노프가 이끈 시베리아 지역주의자들이 내건 이른바 「벽보 정부」도 아무 일을 하지 못했다. 영어 문헌은 아나톨리 페펠랴예프가 장악했던 아얀-마이스키 지역이 1923년 6월 항복한 것을 러시아 내전의 끝으로 본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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