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абилитация репрессированных народов · 1956–1991

강제이주 민족의 명예회복

The Rehabilitation of the Deported Peoples

민족 강제이주으로 고향에서 쫓겨난 민족들의 혐의를 취소하고 자치와 귀환을 되돌린 조치들이다. 1956년 제20차 당대회비밀연설이 강제이주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1957년 체첸·잉구시·카라차이·발카르·칼미크의 자치공화국이 복원되고 귀환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크림 타타르, 메스헤티야 튀르크, 볼가 독일인은 혐의만 취소되고 귀환과 자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미해결 상태는 1989년 최고회의 선언과 1991년 러시아 「탄압받은 민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까지 이어졌고, 소련 말기 민족 운동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상세

왜 어떤 민족만 돌아갔나

1957년의 복원은 모든 강제이주 민족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돌아간 다섯 민족은 캅카스와 볼가의 산악·초원 지대 주민이었고, 그들이 살던 땅에는 대체로 새 주민이 대규모로 들어오지 않았거나 재조정이 가능했다.

돌아가지 못한 세 집단의 사정은 달랐다. 크림에는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이주민이 들어와 있었고, 1954년 크림은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이관된 상태였다. 메스헤티야 튀르크의 고향은 터키와 맞닿은 국경 지대였다. 볼가 독일인의 자치공화국 영역은 인접 주에 흡수된 뒤였다. 즉 판단 기준은 피해의 크기가 아니라 되돌리는 데 드는 행정적·정치적 비용이었다.

이어진 요구

크림 타타르 운동은 1960년대부터 청원과 서명 운동으로 조직되었고, 1967년 9월 5일 최고회의 상무회 명령이 반역 혐의를 취소했으나 귀환은 여전히 막았다. 대규모 귀환은 1989년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볼가 독일인은 1964년 혐의 취소, 1972년 이동 제한 해제를 얻었지만 자치공화국은 끝내 복원되지 않았고, 1980년대 후반 이후 상당수가 독일로 이주했다.

법적 정리

1989년 11월 14일 최고회의는 강제이주를 불법이자 범죄로 규정하는 선언을 채택했고, 1991년 4월 26일 러시아 공화국은 「탄압받은 민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영토 회복을 포함한 원상회복 원칙을 명시했다. 그러나 영토 조항의 실행은 곧바로 새 분쟁을 낳았다. 잉구시와 북오세티야 사이 프리고로드니 구역을 둘러싼 1992년 충돌이 그 예다.

이 사례는 명예회복이 문서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사람을 옮기는 데 며칠이 걸린 조치를 되돌리는 데는 수십 년이 들었고, 일부는 소련이 사라진 뒤에도 정리되지 않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восстановление автономий в 1957 г., указ от 5 сентября 1967 г. по крымским татарам, указы 1964 и 1972 гг. по немцам.
  2. 위키백과 (러시아어) закон от 26 апреля 1991 г., принцип территориальной реабилитации и его последствия.
  3. 위키백과 (영문) which peoples were and were not allowed to return after 19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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