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othèse répressive · 1976

억압 가설

Repressive Hypothesis

미셸 푸코가 1976년 『성의 역사』 제1권 『앎의 의지』에서 이름 붙이고 의심한 통념. 17세기 이후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사회의 등장과 함께 성과 성에 관한 말이 억눌려 왔고 20세기에 와서야 부분적으로 풀려났다는 생각이다. 푸코는 성 억압이 역사적 사실인지, 권력이 본질적으로 억압으로 작동하는지, 억압을 비판하는 담론도 같은 체계에 속하지 않는지를 물으며, 근대에 일어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성에 관한 담론의 폭발이었다고 주장했다.

상세

푸코는 『앎의 의지』 제1부 「우리 다른 빅토리아인들」에서 억압 가설을 소개한다. 제목은 스티븐 마커스의 책 『다른 빅토리아인들』에서 따왔다. 20세기 후반 서구에 널리 퍼진 이 믿음에 따르면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성과 성에 관한 공개적 논의는 사회적으로 억압되었고, 그것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사회가 일어난 결과였다. 성이 그토록 억압된 것은 성이 강도 높은 노동의 요구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므로, 성에 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일부러 금기를 넘는 듯한 겉모습을 띤다. 푸코는 왜 근대 서구인이 이 가설을 믿는지 묻는다. 과거의 성을 억압된 것으로 그리면, 과거의 도덕 체계를 거부하면 미래의 성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의 근거가 생긴다는 것이다.

푸코는 억압 가설에 세 가지 의심을 던진다. 첫째는 역사의 물음으로 성은 정말 억압되었는가, 둘째는 역사이론의 물음으로 권력은 억압적인가, 셋째는 역사정치의 물음으로 성 억압에 대한 비판은 그 자체가 성 체계의 일부가 아닌가이다. 그는 이 의심들이 억압 가설이 틀렸음을 보이기보다 그것을 17세기 이후 근대 사회의 성 담론이라는 일반 경제 안에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푸코가 억압이 없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억압이 권력·지식 장치의 한 구성 부분일 뿐이라고 보았다.

제2부 「억압 가설」에서 푸코는 17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성에 관한 말이 오히려 「진정한 담론의 폭발」을 겪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말할 수 있는지를 정한 「허가된 어휘」를 통해서였다. 그 뿌리는 신자들에게 죄스러운 행위뿐 아니라 욕망까지 고백하라고 한 반종교개혁의 가톨릭교회에 있었다. 18세기 초에는 성에 관해 말하라는 정치적·경제적·기술적 부추김이 생겼고, 정부는 자신이 다루는 것이 신민이나 인민이 아니라 「인구」라는 것을 깨닫고 출생률과 사망률, 결혼, 피임을 다루게 되었다. 성은 그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 되었다. 18~19세기에는 부부의 성생활 대신 아동, 정신질환자, 범죄자, 동성애자의 성이 주목받았고, 예전에는 남색이라는 죄에 빠진 개인이던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새로운 「종」으로 분류되었다.

제4부 「섹슈얼리티의 장치」에서 푸코는 법을 모델로 삼지 않는 권력 분석을 요구하며 「법 없이 성을, 왕 없이 권력을」 생각해야 한다고 썼다. 권력은 국가나 정부가 위에서 행사하는 지배가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영역에 내재하는 힘 관계들의 다양성이다. 권력은 소유되기보다 행사되고, 경제적·과학적·성적 관계에 내재하며, 금지만 하는 상부구조가 아니라 직접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그는 혼인, 친족, 재산 상속을 다스리는 「결연 장치」 위에 몸과 쾌락을 다루는 「섹슈얼리티 장치」가 겹쳐졌다고 보고, 그 장치를 여성 몸의 히스테리화, 아동 성의 교육화, 생식 행위의 사회화, 도착적 쾌락의 정신의학화라는 네 전략으로 정리했다.

억압 가설의 경제주의는 「시기 구분」 절에서 정면으로 다뤄진다. 푸코에 따르면 섹슈얼리티 장치를 먼저 적용한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부르주아지 자신이었다. 그것은 자본 축적기에 노동자의 성을 통제하려던 금욕이 아니라, 건강·위생·혈통으로 자기 계급의 몸을 만들려는 부르주아지의 자기 긍정이었다.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이 장치를 피했다. 억압 이론은 오히려 이 장치가 널리 퍼진 결과로 생겼고, 정신분석을 거쳐 성 억압을 지배와 착취의 메커니즘에 묶으면서 성 억압, 정치적 지배, 경제적 착취에서 함께 해방되는 길을 제시했다. 푸코는 여기서 빌헬름 라이히를 표적으로 분명히 짚는다. 라이히의 실제 효과가 어떠했든 그는 섹슈얼리티 장치 안에 있으며, 성 해방이 정치 혁명과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성 해방도 그 장치 안의 전술적 이동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쪽에서 보면 푸코의 표적은 라이히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저작에 영향받은 당시 좌파의 성 억압 분석이었다.

책은 성 장치에 맞서는 반격의 거점이 「성-욕망」이 아니라 「몸과 쾌락」이어야 한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결론은 비판도 받았다. 한 마르크스주의 평자는 푸코의 권력 분석에는 근본적 변화를 이룰 역사의 주체가 없어서 저항이 어떤 형태를 띨지에 대해 이 정도밖에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주디스 버틀러는 푸코가 섹슈얼리티의 역사화를 젠더화된 주체와 몸에까지 넓히지 않은 채 몸과 쾌락을 권력에 맞설 저항의 근거로 「순진하게」 내세운다고 비판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protevi.com
  3. marxistleftreview.org
  4. fr.wikipedia.org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