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공화좌파
Republican Left of Catalonia
1931년 3월 바르셀로나 산츠의 카탈루냐 좌파 대회에서 프란세스크 마시아의 카탈루냐국, 류이스 콤파니스의 카탈루냐 공화당, 「로피니오」 그룹이 합쳐 세운 카탈루냐 공화주의·민족주의 좌파 정당. 제2공화국 시기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이끌었고, 내전기에는 콤파니스의 자치정부 아래 반파시스트 연합을 유지하려 했다. 프랑코 정권에서 불법화되었다가 민주화 뒤 다시 활동했으며, 오늘날 카탈루냐 독립을 내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상세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가 무너진 뒤 카탈루냐 좌파는 마시아를 중심으로 통일 전선을 만들려 했고, 그 결과 1931년 3월 19일 카탈루냐 공화좌파가 창당되었다. 당은 4월 12일 지방선거에서 크게 이겼고, 이틀 뒤 마드리드의 공화국 선포 몇 시간 전에 마시아가 바르셀로나에서 이베리아 연방 안의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는 산세바스티안 협약과 달랐기 때문에 사흘 뒤 마드리드 정부와 협상해 마시아가 공화국 안의 자치정부(헤네랄리타트) 수반이 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1932년 자치법으로 선출된 카탈루냐 의회에서 공화좌파와 동맹은 85석 가운데 67석을 얻었고, 자치정부는 민중 계급과 소부르주아지의 생활을 개선하는 법들과 소작농을 보호하는 농작물 계약법을 추진했다.
1933년 12월 마시아가 죽자 콤파니스가 자치정부 수반이 되었다. 1934년 10월 6일 우익 CEDA의 입각에 맞서 콤파니스는 「스페인 연방공화국 안의 카탈루냐국」을 선포했지만 군대에 진압되었고, 지도자들은 투옥되었으며 자치법은 1936년 2월까지 정지되었다. 1936년 선거에서 공화좌파는 카탈루냐 인민전선(좌파 전선)의 주력이 되어 54석 가운데 41석을 차지했고, 새 정부의 사면으로 자치정부가 되살아났다.
내전 중 공화좌파는 자치정부의 주도 세력으로서 POUM과 친소 통합사회당(PSUC) 사이의 갈등 속에 연합을 유지하려 했고, 실제 힘을 쥔 CNT 민병대에게서 통제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1937년 5월 사건 뒤 공화국 정부가 카탈루냐의 치안을 넘겨받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39년 프랑코는 당을 불법화했고, 콤파니스는 1940년 몬주이크 성에서 총살되었다. 당은 망명지와 지하에서 반프랑코 저항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