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Sandinista National Liberation Front
1961년 카를로스 폰세카, 토마스 보르헤, 실비오 마요르가 등이 결성한 니카라과의 정치·군사 조직이자 정당. 이름은 1930년대 미국 점령에 맞선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에게서 따왔다. 1979년 니카라과 혁명으로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리고 1990년까지 집권하며 미국이 지원한 콘트라와 내전을 치렀고, 1990년 선거에서 패한 뒤 2006년 다니엘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다시 집권했다.
상세
FSLN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레온 대학과 니카라과 국립자치대학 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반대 조직과 청년·학생 단체에서 나왔다. 쿠바 혁명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에 고무된 카를로스 폰세카, 실비오 마요르가, 토마스 보르헤 등이 1961년 「민족해방전선」(FLN)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 창립일에 대해 스페인어 출처는 서두에서 1961년 7월 23일로 적지만, 두 출처 모두 1961년 7월 19일 테구시갈파 회의에서 창립했다는 주장에는 문서 근거가 없고 1979년 혁명 승리 뒤에 처음 알려졌다고 적는다. 「산디니스타」라는 이름은 스페인어 출처에 따르면 1962년 7월 23일 채택되었고 1963년부터 쓰였다. 1969년까지 강령 문서는 나오지 않았다.
1967년 판카산 전투에서 패한 뒤 FSLN은 농촌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쌓는 「장기 인민전쟁」(GPP) 노선을 택했다. 1974년 12월 FSLN 계열 게릴라는 마나과 교외 로스 로블레스의 파티에서 정부 고위 인사들을 인질로 잡아 200만 달러의 몸값과 성명 방송을 얻어 냈고, 이듬해 다니엘 오르테가를 비롯한 수감자 14명을 석방시켰다. 1975년 소모사 정권은 계엄을 선포했고, 폰세카는 1976년 매복 공격으로 죽었다. 1975년부터 FSLN은 GPP, 하이메 휠록의 「프롤레타리아 경향」, 다니엘·움베르토 오르테가 형제 등이 이끈 「봉기 경향」(테르세리스타)으로 갈라졌다. 테르세리스타는 비공산주의 세력과의 일시적 동맹을 주장했고, 1977년 10월 전문직·기업인·성직자들의 「12인 그룹」과 손잡았다.
1978년 1월 야당 신문 「라 프렌사」 발행인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가 암살된 뒤 폭동과 총파업이 일어났다. 같은 해 8월 에덴 파스토라가 이끈 테르세리스타 특공대가 국회를 점거해 1,000명 가까운 인질을 잡았고, 소모사는 몸값 50만 달러를 내고 보르헤 등 정치범 59명을 석방했다. 9월 봉기는 수천 명의 희생 끝에 진압되었으나 세 분파의 경계를 흐리게 했고, 1979년 3월 7일 각 분파 3명씩 9명으로 이루어진 전국지도부 아래 FSLN이 재통합했다. 6월 4일 총파업 선언, 6월 16일 코스타리카에서 5인 국가재건위원회 구성에 이어 7월 17일 소모사가 망명했고, 7월 19일 FSLN 군대가 마나과에 들어갔다. 전쟁으로 3만~5만 명이 죽고 15만 명이 망명했다.
FSLN 정부는 소모사 일가 재산 국유화, 토지개혁, 문맹 퇴치 운동, 의료 확대를 추진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문맹 퇴치 운동은 6개월 만에 50만 명을 가르쳐 문맹률을 50% 넘는 수준에서 12% 아래로 낮췄다. 1980년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와 알폰소 로벨로가 재건위원회에서 물러났고, 영어 출처에 따르면 FSLN은 1981년 3월 권력을 독점했다. 1981년 미국 중앙정보국이 소모사 시절 국가방위대 출신 등을 모아 만든 니카라과 민주군(FDN)과 파스토라의 민주혁명동맹(ARDE) 등 「콘트라」와의 내전이 시작되었고, 정부는 1982년 비상사태를 선포해 검열과 정치 집회 금지를 시행했다. 1984년 선거에서 FSLN은 주요 야당 연합이 불참한 가운데 67%를 얻어 96석 중 61석을 차지했고 오르테가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미국은 선거를 인정하지 않고 1985년 5월 전면 무역 금수를 단행했다. 영어 출처는 집단 처형과 원주민 탄압 등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 비판도 적는다.
1987년 헌법 개정과 에스키풀라스 II 협정을 거쳐 치러진 1990년 2월 25일 선거에서 오르테가는 41%를 얻어 55%를 얻은 비올레타 차모로에게 졌고, FSLN은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겼다. 야당 시절 당은 몰수 재산을 지도부가 차지한 「피냐타」 논란과 세르히오 라미레스의 산디니스타 혁신운동(MRS) 분리 등을 겪었고, 1996년과 2001년 대선에서 졌다. 2006년 오르테가가 38%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9년 산디니스타 판사가 다수인 대법원이 대통령 임기 제한을 무효로 했다. 오르테가와 FSLN은 2011, 2016, 2021년 선거에서 재선되었으나 국제 감시단은 이 선거들을 비판했다. 2018년 시위 진압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2019년 1월 30일 FSLN은 인권 침해를 이유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서 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