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구의 분쇄
Smashing the State Machine
노동계급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국가기구를 그대로 넘겨받아 제 목적에 쓸 수 없고 관료·군사 기구를 깨뜨려 새로운 형태로 대체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명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마지막 장에서 처음 내비치고 1871년 『프랑스 내전』에서 파리 코뮌의 경험으로 정식화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72년 『공산당 선언』 독일어판 서문에 이를 선언에 대한 정정으로 넣었다. 레닌은 1917년 『국가와 혁명』에서 이를 혁명에서 국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업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교훈으로 되살렸다.
상세
1871년 4월 12일 코뮌이 한창일 때 마르크스는 쿠겔만에게 이렇게 썼다. 『브뤼메르 18일』 마지막 장을 보면 프랑스 혁명의 다음 시도는 이제까지처럼 관료·군사 기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뜨리는 것(zerbrechen)이 될 것이며, 이것이 대륙에서 모든 진정한 인민 혁명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는데, 파리의 영웅적인 당 동지들이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내전』 3장은 「노동계급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국가기구를 그대로 장악해 제 목적에 쓸 수는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상비군, 경찰, 관료, 성직자, 사법부라는 기관을 거느린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절대왕정에서 생겨나 제1제정에서 완성되었고, 근대 공업이 계급 대립을 키울수록 노동에 대한 자본의 국민적 권력, 계급 전제의 기관이 되어 갔다고 분석했다. 코뮌은 상비군을 무장한 인민으로 바꾸고, 경찰과 판사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책임을 지며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일꾼으로 만들고, 공무를 노동자 임금으로 수행하게 했다. 그는 코뮌을 근대 국가권력을 부수는 새로운 역사적 창조물로 보았다.
1872년 6월 24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 독일어판 서문에서, 선언의 강령은 몇 가지 점에서 낡았으며 특히 코뮌이 「노동계급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국가기구를 그대로 장악해 제 목적에 쓸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썼다. 엥겔스는 1891년 『프랑스 내전』 서문에서 코뮌이 처음부터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으면 낡은 국가 기계로는 꾸려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고 하고,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기계일 뿐이며 이전 국가권력의 이런 분쇄와 새롭고 참으로 민주적인 국가로의 대체가 『내전』 3절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 3장에서 이 명제가 기회주의자들에게 왜곡되었다고 지적했다. 흔한 해석은 마르크스가 권력 장악과 대비되는 점진적 발전을 강조했다는 것이지만 실제는 정반대로, 노동계급은 기성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것을 부수고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결론을 대륙에 한정한 것은 1871년 영국에 군벌과 관료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데, 1917년에는 영국과 미국도 관료·군사 기관의 수렁에 빠졌으므로 그 제한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레닌은 보았다. 관료제를 단번에 모두 없애는 것은 유토피아지만 낡은 관료 기계를 단번에 깨뜨리고 모든 관료제를 차차 없앨 새 기계를 곧바로 짓기 시작하는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며, 코뮌은 부르주아 국가 기계를 깨뜨리려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첫 시도이자 깨진 국가 기계를 대체할 「마침내 발견된」 정치 형태라는 것이다. 그는 국가 기계의 분쇄라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프루동, 바쿠닌과 같은 편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마르크스의 국가권력 파괴를 프루동의 연방주의와 혼동하는 것은 괴물 같은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