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명운동
Social Revolutionary Movement
1940년 9월 카굴의 옛 지도자 외젠 들롱클과 로레알 소유주 외젠 쉬엘레르가 파리에서 세운 파시즘 계열 극우 정당. 반유대주의를 내걸고 나치 독일과의 협력에 적극 가담했으며, 1941년 10월 파리 유대교 회당 폭탄 공격에 관여했다. 1944년 2월 소규모 프랑스혁명운동(MRF)으로 대체되었다.
상세
당에는 장 필리올, 자크 코레즈 같은 옛 카굴 단원과 조르주 레드리슈 같은 우파 기업가, 장 퐁트누아처럼 다른 진영에서 온 인물이 모였다. 독일 대사 오토 아베츠가 승인한 강령은 국가사회주의 독일과 협력해 「자유주의 자본주의, 유대교, 볼셰비즘, 프리메이슨」에서 해방된 새 유럽을 세우고, 프랑스에 남는 유대인에게 가혹한 지위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본부는 파리 오스만 대로에 있었고 기관지는 《레볼뤼시옹 나시오날》이었다. 주로 파리에서 활동하며 프랑스인민당과 경쟁했다.
1941년 2월 독일 당국의 요구로 마르셀 데아의 국민인민연합(RNP)과 합쳤으나, 들롱클 일파는 당 안에서 자율을 지키며 RNP의 보안대를 이루었다. 1941년 8월 27일 라발과 데아 저격 사건 뒤 데아는 들롱클이 자신을 노린다고 보고 그 일파를 쫓아내, 합당은 10월에 깨졌다. 그 사이 1941년 7월 들롱클과 쉬엘레르는 반볼셰비키 프랑스의용군단(LVF)을 세웠다. 같은 해 10월 들롱클은 친위대 장교 한스 조머가 준 폭약으로 파리의 유대교 회당 일곱 곳에 대한 공격을 꾀했다.
들롱클이 의용군단 일에 몰두하는 사이 당은 다시 갈라졌고, 1942년 5월 14일 조르주 술레 등이 일으킨 당내 쿠데타로 들롱클은 쫓겨났다. 1942년 한때 장 퐁트누아가 당을 이끌었다. 술레 일파는 반독 쪽으로 돌아섰고, 1944년 2월 MSR은 초기 강령을 그대로 이은 소규모 프랑스혁명운동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