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회
Society of 10 December
1849년 상호부조회의 형식으로 세워진 프랑스의 보나파르트파 조직. 이름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에 뽑힌 1848년 12월 10일에서 왔다. 대통령의 지방 순시 귀환 때 군중을 모아 환호를 강요하고 반대자를 폭행했으며, 1850년 11월 7일 해산되었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를 파리 룸펜프롤레타리아트로 짠 보나파르트의 사병이라 불렀다.
상세
1849년 6월 13일 시위 뒤 7월 19일 법은 공공 안전을 해칠 클럽과 공개 집회를 금지했다. 12월 10일회는 상호부조회로 신고해 이 법을 피했고, 8월 20일 경찰청에 신청해 8월 29일과 9월 24일 허가를 받았으며 10월 1일 규약을 발표했다. 이름은 같은 이름의 보나파르트파 신문에서 따왔고, 그 신문의 사무실이 본부였다. 회장은 피아 장군이었지만 실제 운영은 클로디위스 갈릭스가 맡았다. 1년 뒤 회원은 6,500명이라고 했고, 분파가 떨어져 나가 「8월 15일회」를 만들었다.
1850년 국민의회의 왕당파 다수와 대통령의 대립이 커지자, 회원들은 대통령이 지방에서 돌아오는 역에 모여 행인에게 보나파르트 만세를 외치게 하고 거부하면 때렸다. 경찰은 끼어들지 않았다. 10월 말 이 분파가 의회 의장 뒤팽과 샹가르니에 장군의 암살을 꾸몄다는 경찰 끄나풀의 보고가 의회에 들어갔고, 신문이 이를 터뜨리자 내무장관 바로슈가 해산령을 만들어 대통령이 11월 7일 서명했다. 도미에는 《샤리바리》에 회원들을 몽둥이를 든 깡패로 그리고 「라타푸알 대령」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 5장에서 자선 단체를 구실로 몰락한 난봉꾼과 모험가, 부랑자, 제대 군인, 출옥한 죄수, 사기꾼, 소매치기, 넝마주이 같은 「보엠」을 비밀 분대로 묶은 것이 12월 10일회라고 썼다. 그는 이 모임을 보나파르트 고유의 당파 전투 부대로 보고, 보나파르트가 공공의 군대를 12월 10일회로 바꾸는 데 성공할 때까지 그의 사병으로 남았다고 했다. 『프랑스 내전』의 첫 번째 담화는 1870년 7월 노동자 작업복으로 꾸며 파리 거리에 풀어놓은 전쟁 열광 시위대를 「12월 10일 패거리」라 부르며, 진짜 노동자들은 평화 시위로 맞섰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