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솔리다르노시치)
Solidarność
1980년 8월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파업에서 태어난 폴란드의 독립자치노동조합. 정식 이름은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이고, 공산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중조직으로는 동구권에서 처음이었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공장간파업위원회의 21개 요구를 정부가 8월 31일 그단스크 협정으로 받아들이면서 합법화되었고, 1년 만에 조합원이 1천만 명에 이르렀다. 폴란드 통일노동자당 당원 백만 명이 함께 가입할 만큼 당과 사회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이 조직은 노동조합인 동시에 체제 문제였다. 1981년 12월 13일 계엄과 함께 불법화되어 지도부가 구금되었으나 지하 조직망으로 살아남았고, 1989년 원탁회의와 6월 4일 반자유선거를 거쳐 동구권 최초의 비공산당 주도 정부를 세웠다.
상세
기원: 1980년 8월 그단스크
연대는 1970년대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축적된 경제 위기에서 나왔다. 정부는 식료품 가격을 올리는 한편 임금은 정체시켰고, 1976년 시위와 그에 대한 탄압은 KOR·ROPCIO 같은 지하 반대망을 낳았다. 1979년 폴란드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2% 축소되었고, 1980년 대외채무는 약 180억 달러에 이르렀다. 1980년 8월 7일 그단스크 조선소가 불법 노조 활동을 이유로 안나 발렌티노비치를 정년 다섯 달을 앞두고 해고하자, 8월 14일 노동자들이 그녀의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21개 요구와 8월 협정
8월 17일 공장간창설위원회는 21개 요구를 내걸었다. 여기에는 당과 기업에서 독립한 자유 노조의 결성, 파업권 보장, 정치범 석방, 표현의 자유가 포함되었다. 경제 요구로 시작한 파업이 정치 요구로 확대된 것은 동구권에서 새로운 현상이었다. 정부는 총파업이 전국적 봉기로 번질 것을 우려해 8월 31일 그단스크 협정에 서명해 연대를 합법화했고, 1980년 9월 17일 20여 개 공장간창설위원회가 하나의 전국 조직으로 합쳐졌다. 11월 10일 공식 등록되었고, 1981년 9월 제1차 전국대회는 바웬사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자치 공화국」 강령을 채택했다. 조합원은 1981년 9월 1천만 명으로 정점에 이르러 폴란드 생산연령 인구의 3분의 1을 포괄했다. 조직은 산업별 노동조합 원칙에 따라 지역 단위로 편성되었고, 38개 지역과 2개 지구로 이루어졌다.
계엄과 탄압
1981년 12월 13일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은 계엄을 선포하고 국가구국군사평의회(WRON)를 세웠다. 연대는 불법화되고 지도부와 지역 대표들이 구금되었으며, 수천 명의 반대 활동가가 재판 없이 수감되었다. 언론과 통신에 검열이 가해졌고 통행과 야간 외출이 제한되었다. 12월 16일 카토비체 부옐크 탄광에서는 ZOMO 부대가 연대 지지 광부 파업을 진압해 9명이 숨졌다. 계엄 기간 전체 사망자는 91명으로 집계되지만 이 수치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 중이다. 계엄은 1982년 말 정지되고 1983년 7월 22일 해제되었으나, 많은 정치범은 1986년 일반 사면 때까지 풀려나지 못했다. 이 시기 소련은 폴란드에 대한 석유 공급을 64%, 가스를 47% 줄여 당국을 압박했다.
지하 활동과 국제적 조건
연대는 지하 조직망으로 살아남았다. 교황청과 미국의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았으며, CIA는 1982년부터 5년간 약 1천만 달러를 제3자를 통해 전달했고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도 30만 달러를 모았다. 레흐 바웬사는 198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다만 서방 정부의 지원은 자본주의 국가 노조와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1984~85년 영국 광부 파업에서 바웬사는 타협을 권고한 반면, 상실레지아 연대 의장 다비트 야스트솅브스키는 파업 광부를 지지했다. 한편 영국 광산노조 의장 아서 스카질은 연대를 '사회주의 국가의 전복을 바라는 반사회주의 조직'으로 비판했다.
원탁회의와 1989년
1988년의 파업 물결 뒤 정부는 협상에 나섰다. 1989년 2월 6일부터 4월 5일까지 열린 원탁회의는 6월 4일 반자유선거를 낳았다. 상원 100석 전부와 하원(세임) 161개 경합 의석이 걸린 이 선거에서 연대는 상원 99석과 하원 경합 의석 전부를 차지했고, 8월 말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를 총리로 하는 연합정부가 들어섰다. 1990년 12월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조합 의장직을 사임했다. 이 선거는 동구권 전역의 1989년 혁명에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이후
1989년 이후 연대는 전통적 노동조합에 가까워졌고 1990년대 초 정치적 영향력은 줄었다. 1996년 창설된 선거행동연대(AWS)는 1997년 총선에서 이겼으나 2001년 선거에서 패했다. 2010년 조합원은 40만 명을 넘었으며, 2020년과 2025년 폴란드 대선에서는 법과정의당(PiS) 후보를 지지했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Timothy Garton Ash, The Polish Revolution: Solidarity (Jonathan Cape, 1983)
- Andrzej Paczkowski and Malcolm Byrne (eds.), From Solidarity to Martial Law: The Polish Crisis of 1980–1981 (Central European University Press, 2007)
- Jan Kubik, The Power of Symbols Against the Symbols of Power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4)
-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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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