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акт о нейтралитете между СССР и Японией / 日ソ中立条約 · 1941~1945

소련-일본 중립조약

Soviet-Japanese Neutrality Pact

1941년 4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일본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와 소련 외상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서명한 5년 기한의 중립 조약. 한쪽이 제3국의 공격을 받으면 다른 쪽은 그 분쟁 내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요지이고, 부속 선언에서 소련은 만주국의, 일본은 몽골인민공화국의 영토 보전을 존중하기로 했다. 할힌골에서의 패배로 북진론이 무너진 일본과 서쪽 국경을 걱정하던 소련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였다. 두 달 뒤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일본은 조약을 지켜 참전하지 않았고, 스탈린은 극동의 사단들을 모스크바 방어로 돌릴 수 있었다. 소련은 1945년 4월 5일 조약 파기를 통보하고 8월 9일 대일전에 들어갔다.

상세

배경: 두 제국의 국경이 맞닿다

1930년대 중반, 만주국 건국과 일본의 중국 침공으로 소련과 일본 제국은 실제로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소련은 독일과의 충돌에 대비해 동쪽 국경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일본은 중국 전선에 묶인 채 미국과의 관계가 빠르게 악화되면서 "만주국 북쪽 국경을 지킬 안전판"을 원했다. 그해 5월 할힌골에서 관동군이 붉은 군대에 참패한 경험은 일본 육군 내 북진론을 사실상 붕괴시켰고, 협상은 그 위에서 진행되었다. 1941년 4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조약이 서명된다. 몰로토프가 소련을, 일본은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와 주소 대사 다테카와 요시쓰구가 대표했다.

1941년 4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조약이 체결되었으나, 문서상으로는 1941년 4월 13일에 체결된 소련-일본 중립조약은 5년 후인 1946년과 그 이후를 예정한 조약이었다. 전문은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와 일본 천황 폐하"가 "양국 간의 평화와 우호 관계를 강화하려는 열망"에 따라 중립 조약을 맺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양측 대표로 소련 인민위원회 의장 겸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일본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 주소 특명전권대사 다테카와 요시쓰구 중장을 임명한다.

조약의 내용

제1조는 양 체약국이 상호 평화·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상대방의 영토 보전과 불가침을 상호 존중할 것을 규정한다. 제2조는 핵심이다. 한쪽이 제3국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적대 행위의 대상이 되면 다른 쪽은 분쟁이 계속되는 동안 중립을 지킨다. 제3조는 조약이 비준일부터 발효되어 5년간 유효하며, 어느 쪽도 만료 1년 전에 파기 통보를 하지 않으면 다음 5년간 자동 연장된다고 정했다. 제4조는 가능한 한 빨리 비준하고 비준서를 도쿄에서 교환한다고 규정했다.

같은 날 별도의 선언도 서명되었는데, 소련은 만주국의 영토 보전과 불가침을 존중할 것을, 일본은 몽골인민공화국의 영토 보전과 불가침을 존중할 것을 약속했다.

1941년: 독소전쟁 속의 조약

조약 체결은 중일전쟁에서 국민당 정부에 대한 소련의 원조를 중단시켰다. 두 달 뒤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일본은 삼국동맹의 당사자였음에도 조약을 유지하고 남방으로 확장하는 길을 택했다. 일본 육군과 해군 지도부는 독소전 개전 이틀 후 "당분간 독소전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 할힌골의 기억과 중립조약이 그 결정의 근거가 되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소련이 극동의 병력을 서쪽으로 돌릴 수 있게 했고, 일본은 진주만으로 향했다. 두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대부분 기간 동안 상대방의 동맹국과 싸우면서도 서로와는 전쟁하지 않았다.

1945년: 파기와 대일 참전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은 독일 항복 2~3개월 후 대일 참전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하고, 대가로 아시아에서의 소련 영토 요구에 대한 미·영의 승인을 확보했다. 1945년 4월 5일 소련은 일본 정부에 조약 파기를 통보했다. 통보문은 "조약 제3조에 따라, 5년 유효 기간이 끝나기 1년 전에 파기할 권리를 규정한 조항에 의거하여" 파기를 알린다고 밝혔다. 조약은 1946년 4월 13일까지 유효했으나, 소련의 통보는 즉시 무효화를 바라는 뉘앙스를 담았다. 사토 나오타케 주소 대사가 추궁하자 몰로토프는 1946년 4월까지는 조약이 유효하다고 답했다. 독일이 1945년 5월 8~9일 항복하면서 소련의 대일 개전 3개월 시한이 시작되었고, 8월 9일 소련군이 만주로 진격했으며 대일 선전포고는 그로부터 약 6시간 후에 뒤따랐다. 만주에서의 소련군의 급속한 진격으로 만주국, 몽강(내몽골), 한반도 북부가 소련군 점령지가 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Boris Slavinsky, The Japanese-Soviet Neutrality Pact: A Diplomatic History 1941–1945 (Routledge, 2003)
  2. Stuart D. Goldman, Nomonhan, 1939: The Red Army's Victory That Shaped World War II (Naval Institute Press, 2012)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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