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구 (중국)
Special economic zones of China
외국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토지·노동·외환에 특례를 준 지역. 1979년 광둥의 시중쉰이 「선행일보」를 요청하고 덩샤오핑이 「특구」라는 이름을 붙여 1980년 선전·주하이·산터우·샤먼에 설치되었고 1988년 하이난이 더해졌다. 홍콩 자본의 가공무역으로 출발한 선전은 어촌에서 대도시로 성장해 개혁의 상징이 되었으며, 1984년 14개 연해 개방도시와 1990년 상하이 푸둥으로 확산되었다. 특구는 계획 밖에서 시장을 실험하는 「창구」였고 보수파는 이를 조계의 재현으로 비판했다.
상세
특구 구상은 홍콩으로의 대량 탈출이라는 광둥의 위기에서 나왔다. 1978년 부임한 시중쉰은 탈출의 원인을 소득 격차에서 찾았고, 1979년 4월 중앙공작회의에서 광둥에 대외 경제활동의 자율권을 요구했다. 덩샤오핑은 「옌안 시절의 산간닝 변구도 특구였다」며 지지했고 7월 중앙은 광둥·푸젠에 「특수 정책과 유연한 조치」를 승인했다.
선전은 1980년 8월 정식 출범했다. 홍콩과의 접경, 3래1보(원자재·견본·부품 위탁가공과 보상무역), 토지 사용권의 유상 양도, 계약제 노동 등이 중국 최초로 시험되었고 1984년 덩샤오핑의 첫 남순은 「선전의 경험은 옳다」고 확인했다. 1985년 밀수 스캔들과 「이념적 오염」 비판이 있었으나 정책은 유지되었다.
1992년 덩의 두 번째 남순은 1989년 이후 위축된 개혁을 재가동하는 무대로 선전을 택했다. 특구는 이후 자유무역시험구와 슝안 신구 등으로 이어졌으며, 개발도상국 다수가 중국식 특구를 모방했다. 노동조건·토지 수용·호구제 차별은 특구 성공의 그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