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하노프 운동
Stakhanovite Movement
1935년 광부 스타하노프의 기록 채탄에서 시작된 노동생산성 운동. 기록 달성자에게 임금과 특권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생산 규범을 끌어올렸고, 노동계급 내부에 특권층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상세
1935년의 기록
1935년 8월 31일 밤 돈바스 첸트랄나야-이르미노 광산의 채탄부 알렉세이 스타하노프가 한 교대 동안 102톤의 석탄을 캤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규정 산출의 열네 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발표되었고, 곧 프라우다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기록의 성격은 개인 기량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타하노프는 공기 드릴로 채탄에만 전념하고, 갱목 설치와 운반은 다른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분업 편성 아래에서 작업했다. 즉 이 기록은 작업 조직 재편의 결과였으며, 운동의 공식 서술도 새로운 기술과 작업 방식의 숙달을 강조했다.
운동의 제도화
1935년 말부터 스타하노프 운동은 전 부문으로 확산되었다. 각 산업에서 기록 보유자가 지명되고, 이들에게 임금 상여와 주택, 소비재 우선 배정, 표창과 대회 참석 기회가 주어졌다. 성과급 임금 체계가 확대되어 규정 산출을 초과한 부분에 높은 누진 단가가 적용되었다.
핵심 기제는 규범의 상향이었다. 기록이 달성 가능함이 입증되면 그 부문의 표준 산출 규범이 올라가고, 이전 규범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던 다수 노동자의 실질 소득이 압박되었다. 1936년의 규범 개정이 대표적이며, 이 시점부터 운동은 생산 증대 수단이면서 동시에 임금 규율의 수단이 되었다.
갈등과 평가
현장에서는 마찰이 컸다. 기록 달성을 위한 자원 집중이 다른 작업 구역의 자재와 설비 배정을 잠식했고, 규범 상향은 동료 노동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졌으므로 스타하노프 운동가에 대한 적대가 발생했다. 관리자들 역시 계획 지표와 기록 지원 사이에서 충돌을 겪었고, 이 시기 문헌에는 기록에 대한 저항을 사보타주로 규정하는 서술이 자주 등장한다.
트로츠키는 이 운동을 노동계급 내부에 특권층을 만들어 위계를 강화하는 장치로 비판했다. 노동귀족의 형성이라는 이 비판은 이후 소련 사회 성격 논쟁의 한 논거가 되었다. 소련 측 서술은 반대로 이를 노동자의 창의성과 사회주의적 경쟁의 표현으로 제시했으며, 두 평가의 대립은 임금 격차와 노동 규율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더 큰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