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찬카
Tachanka
뒤쪽을 향해 중기관총을 얹은 무개 마차. 말 두세 필에서 네 필이 끌고 마부와 기관총 사수 두세 명이 탔다. 러시아 내전기 남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동전에서 널리 쓰였고, 네스토르 마흐노의 반란군이 대규모로 운용한 뒤 붉은 군대와 폴란드군도 받아들였다.
상세
낱말은 우크라이나어 「네티찬카」(체코의 노비이치신에서 이름을 딴 마차)나 손수레를 뜻하는 「타치카」의 애칭에서 왔다고 본다. 평범한 마차를 쉽게 군용으로 바꿀 수 있었고, 네 필이 나란히 끌면 기병을 따라잡으며 화력을 지원했다. 기관총이 뒤를 향했기 때문에 기습 뒤 물러날 때 쫓아오는 적 기병에게 제압 사격을 퍼붓기 좋았다.
마흐노군은 타찬카로 보병까지 실어 날라 하루 100킬로미터 가까이 움직였고, 1919년 9월 페레호놉카 돌파 뒤 11일 만에 600킬로미터 넘게 이동해 백군 후방을 습격했다. 러시아어 출처는 기관총을 얹은 마차가 그 전부터 있었다며 마흐노를 발명자로 보는 데 신중하고, 실제로는 기관총을 내려 진지에서 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적는다. 차파예프의 붉은 군대와 부됸니의 제1기병군도 타찬카를 썼고, 폴란드군은 공장제 「타찬카」를 1939년 독일 침공 때까지 기병 기관총 중대에 두었다. 이사크 바벨은 마흐노가 「타찬카를 자기 전략의 축으로 삼았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