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붉은 깃발
Three Red Banners
1958년 마오쩌둥이 내세운 사회주의 건설 총노선, 대약진, 인민공사를 함께 이르는 말. 총노선은 「온 힘을 다해, 높은 곳을 향해, 많이·빨리·좋게·절약하며 사회주의를 건설하자」였다. 대약진기에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 1959년 루산 회의에서 펑더화이의 비판이 「세 깃발」에 대한 도전으로 몰렸고, 1962년 7천인 대회의 자기비판 뒤에도 마오는 깃발 자체는 손대지 못하게 했다.
상세
총노선의 표어 「많이·빨리·좋게·절약하며(多快好省)」는 마오가 1955년부터 쓴 말로, 1956년 저우언라이·천윈의 「반모진」을 비판하는 무기가 되었다. 1958년 5월 제8차 당대회 제2차 회의가 이를 사회주의 건설 총노선으로 채택했고, 같은 해 대약진과 8월 베이다이허 회의의 인민공사 결의가 더해져 「세 개의 붉은 깃발」이 되었다. 세 깃발은 1958년의 광열을 불러일으킨 이념적 틀로 꼽힌다. 총노선이 요구한 「온 힘을 다하라」는 압력 속에서 누구도 수확 보고에 「찬물을 끼얹지」 못했고, 농민이 곡식을 감춘다는 음모론이 징수를 정당화했다.
1959년 루산에서 마오는 펑더화이·장원톈의 비판을 세 깃발을 흔들어 전당의 약진 의지를 꺾으려는 시도로 보았다. 1962년 7천인 대회에서 류사오치가 「3할은 천재, 7할은 인재」라 하고 마오가 자기비판을 한 뒤 세 깃발의 지도적 지위는 낮아졌고 「조정·공고·충실·제고」의 여덟 자 방침이 앞섰다. 그러나 마오는 지난 4년의 노선은 옳았고 성과가 주된 것이라고 했고, 1962년 9월 10중전회에서 계급투쟁을 다시 내세웠다. 세 깃발에 대한 태도는 문화대혁명에서 류사오치·덩샤오핑을 공격하는 기준의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