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소설)
To Live (novel and film)
위화가 1993년에 낸 중국 장편소설과, 이를 옮긴 장이머우의 1994년 영화. 원제는 ‘살아 있다’는 뜻의 《活着》이다. 도박으로 집안을 말아먹은 지주 아들 쉬푸구이가 내전과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을 지나며 가족을 하나씩 잃는 이야기다. 국내 번역본 제목이 『인생』이다. 영화는 1994년 칸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중국에서는 금지되었다.
상세
소설은 무슨 이야기인가?
민요를 모으러 시골을 다니던 ‘나’가 늙은 농부 푸구이를 만나 그의 평생 이야기를 듣는다. 지주의 아들 푸구이는 놀음과 기생집으로 세월을 보내다 땅을 몽땅 잃고,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똥통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는 국민당 군대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돌아오고, 아내 자전과 함께 농민으로 산다.
그 뒤의 이야기는 죽음의 목록이다. 아들 유칭은 현장 부인의 해산에 피를 뽑다가 너무 많이 뽑혀 죽는데, 그 현장은 내전 때 함께 굴렀던 친구 춘성이다. 말을 못 하는 딸 펑샤는 착한 사위 얼시를 만나 행복해지지만 아이를 낳다 죽는다. 의사들이 비판 투쟁을 받아 병원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전은 뼈가 무르는 병으로, 얼시는 시멘트 판에 끼여, 손자 쿠건은 콩을 먹다가 목이 막혀 죽는다. 푸구이는 푸구이라는 이름을 붙인 늙은 소와 해 질 녘 사라진다.
위화는 미국 노래 「올드 블랙 조」를 듣고 깊이 감동해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고, 푸구이의 모델은 자기 할아버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푸구이에게는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저 살기 위해 산다.”
영화는 무엇을 바꾸었나?
장이머우의 영화는 소설을 크게 바꾸었다. 무대는 남쪽 농촌에서 북쪽의 작은 도시로 옮겼고, 푸구이는 그림자극을 놀리는 사람이 되었다. 소설의 1인칭 회고와 소도 사라졌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대약진의 철강 운동이다. 온 마을이 고철을 바친 날 푸구이가 졸린 아들을 학교로 업고 가는데, 아이는 담 뒤에서 잠들었다가 구장의 차가 담을 받아 깔려 죽는다. 그 구장이 춘성이다. 펑샤의 죽음에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붙었다. 굶주린 의사에게 찐빵을 일곱 개 사 주었더니 그가 배가 터질 듯해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결말은 정반대다. 소설에서는 푸구이만 살아남지만, 영화에서는 푸구이와 자전, 얼시, 손자 만터우가 살아남아 묘지에 다녀온 뒤 밥상에 둘러앉는다. 푸구이는 “앞으로 살림이 점점 좋아질 거야”라고 말한다. 소설의 손자 이름은 ‘쓴 뿌리’라는 뜻의 쿠건인데, 영화에서는 ‘찐빵’ 만터우다. 소설의 결말이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 준다면, 영화는 더 낙관적이고 열린 결말을 준다는 평이 있다.
왜 금지되었나?
중국 당국은 정책과 정치 운동을 비판적으로 그렸다며 극장 개봉을 허가하지 않았다. 장이머우가 허가 없이 칸에 낸 것도 화를 샀고, 《패왕별희》와 《푸른 연》에 이어 나온 시기도 나빴다. 그럼에도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에큐메니컬상, 거유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버트는 장이머우와 궁리가 2년 동안 합작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영화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전했고, 장이머우는 자기비판 편지를 냈다고 한다. 비디오로는 널리 돌았고 일부 극장에서도 상영되었다. 공식 금지는 2008년 말 조용히 풀렸다고 하지만 중국어 위키백과는 2020년 이후 온라인에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적는다.
반면 소설은 금서가 아니었다. 문학잡지 《수확》에 처음 실린 뒤 스무 나라 말이 넘게 옮겨지고 드라마 《푸구이》(2005)와 연극(2012)이 되었다. 국내에는 백원담 번역의 『인생』(푸른숲)으로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