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주네 조약
Treaty of La Jaunaye
1795년 2월 17일 낭트 근처 생세바스티앵의 라자주네 저택에서 국민공회 파견의원들이 방데 지도자 샤레트·사피노와 맺은 강화. 공화국 승인과 대포 반납의 대가로 사면, 예배의 자유, 10년간의 세금·징집 면제, 재산 보장, 방데 수비대 2,000명, 배상금 1,800만 리브르를 약속했다. 스토플레는 거부했다가 5월 2일 생플로랑르비에이에서 같은 조건으로 서명했고, 샤레트는 키브롱 상륙에 맞춰 6월 24일 조약을 깼다.
상세
1794년 5월 튀로가 소환되어 지옥 종대가 끝나고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뒤 브레스트 연안군 사령관 오슈(8월)와 서부군 사령관 캉클로(10월)는 화해 정책을 지지했다. 12월 1일 멘에루아르·되세브르·방데의 의원들이 민간인 학살을 고발하고 반군과 그 지도자의 사전 사면을 권고했으며, 12월 2일 공회는 한 달 안에 무기를 내려놓는 방데인과 슈앙을 사면하는 법령을 채택했다. 생도맹그 출신으로 샤레트의 누이를 아는 가니에샹봉 부인의 주선으로 12월 23일 파견의원들의 밀사가 벨빌에서 샤레트를 만났고, 샤레트와 사피노는 드 브뤼크와 베자리를 낭트에 보냈다. 1795년 1월 11일 공식 교섭이 합의되었으나 스토플레는 1월 28일 베르니에 신부가 쓴 화해 반대 선언을 퍼뜨렸다. 2월 12일 샤레트·사피노와 장교들, 스토플레의 대리인 푸아리에 드 보베, 브르타뉴 슈앙 지도자 퓌자예의 부관 코르마탱이 라자주네에서 파견의원들을 만났고, 며칠 토론 끝에 2월 17일 합의가 이루어졌다. 조약은 공화국 쪽 대표 뤼엘·들로네·로피시알 등만 서명했고, 방데 지도자들은 비준하는 대신 전투 중지와 공화국 승인을 호소하는 선언문을 냈다. 루이 17세의 석방 문제는 미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