Централка (Центральный флотский комитет РСДРП) · 1904–1905

젠트랄카

Tsentralka

1904년 4월 세바스토폴에서 결성된 흑해함대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중앙위원회.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 세바스토폴 시위원회 산하의 비밀 군사조직으로, 흑해함대 전역에 걸친 수병 봉기를 준비하기 위해 각 함선의 사회민주주의 서클을 통합했다. 1905년 4월 런던에서 열린 제3차 당대회 이후 전함대 봉기를 1905년 가을로 계획했으나, 6월 포툠킨호에서 선제적으로 폭발한 반란으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었다.

상세

배경과 결성

흑해함대에서 최초의 사회민주주의 서클들은 1902~1903년에 등장했으나, 초기에는 산발적이고 고립되어 있었다. 1904년 4월, 세바스토폴 시위원회 산하에 '중앙함대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여러 함대 승무원들의 사민주의 그룹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수병들은 이 조직을 '마트로스카야 젠트랄카(수병 중앙委)'라고 불렀으며, 이 이름은 1917년 2월혁명까지 존속했다.

구성과 연계

젠트랄카에는 볼셰비키 A. M. 페트로프, G. N. 바쿨렌추크, I. A. 체르니셰프 등이 참여했다. 세바스토폴, 니콜라예프, 하리코프 등지의 볼셰비키 위원회들과 연결되었고, 제네바에 있던 레닌과도 직접 연락을 유지했다. A. M. 페트로프의 누이가 볼셰비키 A. M. 스토파니의 아내로 제네바에 거주하고 있어 이 연결선이 확보되었다.

봉기 계획과 포툠킨호

1905년 4월 런던에서 열린 RSDLP 제3차 대회(볼셰비키만 참가)는 무장봉기 노선을 채택했다. 젠트랄카는 이에 따라 1905년 가을로 전함대 동시봉기를 계획했다. 봉기는 혁명조직이 가장 강력한 전함 '예카테리나 2세'가 먼저 신호탄을 쏘고, 미리 준비된 수병 돌격대가 장교들을 체포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05년 6월 14일(구력), 젠트랄카 지도부가 '혁명성에서 가장 뒤처진 함선'으로 평가했던 포툠킨호에서 썩은 고기 보르시를 계기로 반란이 선제적으로 폭발했고, 이는 젠트랄카의 계획을 완전히 뒤엎었다. 포툠킨호의 수병 지도자 바쿨렌추크는 바로 전날인 6월 13일 젠트랄카 회의에서 '지체하는 것은 혁명을 배반하는 것'이라며 조속한 봉기를 주장했고, 포툠킨호가 흑해함대 봉기를 선도하도록 설득한 상태였다.

출처

  1. Russian Wikipedia, Восстание на броненосце «Потёмкин» : formation of the Sevastopol Tsentralka in April 1904, its plan for a fleet-wide uprising in autumn 1905, and the Potemkin mutiny overtaking that plan.
  2. Great Soviet Encyclopedia / Booksite.ru, Черноморский флот : confirms the April 1904 formation of the Central Fleet Committee ('матросская централка') and its Bolshevik connections.
  3. Leninism.su / Lychev memoirs : firsthand account of the 'матросская централка' formed in 1904 under the Sevastopol city committee of the RSDLP, its members (Petrov, Vakulenchuk, Chernyshev), and its Geneva connection to Lenin.
  4. English Wikipedia, Grigory Vakulenchuk : Tsentralka as the revolutionary sailors' organisation, Vakulenchuk's June 1905 argument for uprising and his role in convincing Tsentralka leaders to let the Potemkin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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