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
Ukrainian Party of Socialist Revolutionaries
우크라이나 농민층의 이익을 대변한 우크라이나의 정당으로, 러시아 사회혁명당과 계통을 같이했다. 1917년 4월 키이우에서 전우크라이나 정당으로 정식 출범해 우크라이나 자치와 토지 국유화를 내걸었고, 전러시아 제헌의회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득표의 절반을 얻었다. 중앙 라다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정부에 참여했으며, 1950년 망명지에서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 합쳐 우크라이나 사회당이 되었다.
상세
우크라이나어 출처에 따르면 1905~1917년 심페로폴·오데사·키이우 등지에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 서클들이 있었고, 키이우에서는 비합법 기관지 「보로트바」(1913~1915)를 냈다. 1907년 타우리다·헤르손·폴타바 등지의 대표가 모인 조직대회는 러시아 당과 별개의 당을 세우기로 하고 중앙위원회를 뽑았으나, 1905~1907년 혁명 뒤의 탄압으로 드니프로 우크라이나에서는 활동이 멈추고 갈리치아에 해외 중앙위원회가 생겼다.
2월 혁명 뒤 당은 1917년 4월 17~18일 키이우 창립대회에서 전우크라이나 정당으로 정식 출범해 임시 강령을 정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 자치, 우크라이나 제헌의회 소집, 토지 국유화를 결의했다. 지도부는 주로 학생 출신(미콜라 코발렙스키, 레우코 코발리우, 파울로 흐리스튜크 등)이었고 미하일로 흐루셰프스키가 당과 함께했다. 「토지는 인민에게 무상으로」라는 선전으로 전러시아 제헌의회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득표의 50%를 얻었고, 우크라이나 농민동맹은 당 지도부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중앙 라다 시기에 당은 볼로디미르 빈니첸코 정부에 참여했고, 1918년 1월 제4차 우니베르살 뒤에는 브세볼로트 홀루보비치를 수반으로 하는 사회혁명당 정부가 섰다. 헤트만 국가 시기에는 비합법으로 활동했으며, 1918년 5월 제4차 대회에서 소비에트 권력과 볼셰비키와의 협력을 지지한 좌파(보로트비스트)와 우파 「중앙파」로 갈라졌다. 보로트비스트는 1919년 3월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보로트비스트(공산주의자)」로 이름을 바꾸었고, 중앙파는 헤트만 정권 타도에 참여해 디렉토리 아래 여러 정부에 각료를 냈다.
1919년 말 일부 당원은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로 망명했고, 흐루셰프스키 등은 빈에 해외대표단을 세워 1920년부터 기관지 「싸워라, 이기리라」를 내며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화해를 추구했다. 1921년 초 망명 조직은 친소비에트 해외대표단, 미키타 샤포발의 프라하 그룹, 빈의 조직위원회로 갈라졌다가 1934년 프라하에서 공동 해외 중앙위원회로 다시 합쳤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망명지에서 활동을 재개해 1948년 우크라이나 국민평의회 창설에 참여했고, 1950년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사회당으로 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