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당 (남아프리카)
United Party (South Africa)
1934년 12월 헤르초흐의 국민당과 스뮈츠의 남아프리카당이 합쳐 만든 남아프리카 연방의 집권 정당. 1948년까지 집권했으며 영어 사용 백인·아프리카너·유색인의 지지를 받았고, 백인 우월 유지를 내건 국민당보다 인종 문제에서 온건한 것으로 여겨졌다. 1948년 총선에서 국민당에 패한 뒤 29년간 공식 야당으로 있다가 1977년 해산했다.
상세
아프리칸스어 출처에 따르면 연합당은 대공황(1929–1933)과 금본위제 위기 속에서 J. B. M. 헤르초흐와 얀 스뮈츠의 연정으로 태어났다. 두 당은 1933년 2월 연립에 합의해 각각 6명씩 장관을 냈고, 헤르초흐가 총리, 스뮈츠가 부총리가 되었다. 1933년 5월 총선에서 연정 후보는 150석 가운데 138석을 얻었다. 1934년 12월 5일 블룸폰테인의 합동 대회가 합당을 결의해 연합남아프리카국민당, 줄여서 연합당이 출범했다. 그러나 D. F. 말란은 합당을 거부하고 「정화국민당」을 세웠고, 일부 친영파 남아프리카당원은 스탈라드의 자치령당을 만들었다.
1939년 9월 4일 제2차 세계대전 중립을 요구한 헤르초흐의 동의안이 의회에서 80 대 67로 부결되자 헤르초흐는 총리와 당수를 사임했고, 스뮈츠가 뒤를 이어 남아프리카를 연합국 편에 참전시켰다. 연합당 정부는 전시 산업·군사 동원을 이끌었다. 1948년 총선에서 연합당은 국민당보다 많은 표를 얻었으나 의석에서 65 대 70으로 뒤져, 국민당과 아프리카너당의 연합에 정권을 내주었고 말란이 총리가 되었다. 영어 출처는 국민당이 이후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했다고 적는다.
1950년 스뮈츠가 죽자 J. G. N. 스트라우스가 당수가 되었고, 1956년에는 더빌리르스 흐라프가 뒤를 이었다. 당은 유색인 유권자를 공동 선거인 명부에서 빼려는 국민당 정부와 6년에 걸친 헌법 투쟁을 벌였으나 졌고, 1960년 백인만 참여한 공화국 수립 국민투표에서 반대 운동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좌우로 여러 분파가 떨어져 나갔는데, 1959년 진보당, 1975년 해리 슈워츠의 개혁당 등이 대표적이다. 영어 출처는 연합당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는 반대했지만 백인 소수 지배의 지속은 지지했다고 평가한다.
1976년 흐라프는 새로운 광범위한 야당을 만들자는 「남아프리카를 구하자」 운동을 시작했다. 1977년 6월 28일 연합당과 민주당은 각각 해산을 결의했고, 6월 29일 신공화국당이 창당되었다. 이에 반대해 축출되거나 떠난 의원들은 남아프리카당이나 진보연방당으로 갔다. 아프리칸스어 출처는 연합당이 해산 당시에도 국민당 다음으로 많은 득표를 하던 정당이었으며, 해산으로 이득을 본 것은 국민당뿐이었다고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