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абочая оппозиция · 1919–1922

노동자 반대파

Workers' Opposition

1919년 말~1920년 초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 내에서 결성된 파벌로, 국민경제의 관리 권한을 당과 국가가 아니라 노동조합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르 실랴프니코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세르게이 메드베데프 등이 이끌었으며, 레닌은 이들을 '신디칼리즘적 일탈'로 규정했다. 1921년 제10차 당대회에서 파벌 금지 결의로 타격을 입고, 1922년 제11차 당대회에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상세

문제 설정

노동자 반대파는 1919년 말과 1920년 초에 형성되었다. 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노동자 국가에서 생산의 관리를 누가 담당하는가였다. 내전기에 기업 관리가 일인 관리제로 전환되고 옛 기술 간부가 복귀하며 노동조합이 생산 관리에서 배제되는 흐름이 진행되자, 이 조류는 국민경제의 관리를 노동조합에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지도적 인물은 금속노조 출신의 실랴프니코프와 콜론타이, 메드베데프였다. 이들의 근거는 당 강령 자체였다. 1919년 당 강령이 노동조합을 생산 관리의 담당자로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반대파는 자신들의 요구를 강령의 이행으로 제시했다.

논쟁

레닌은 이 요구를 생디칼리슴적 편향으로 규정했다. 그의 논거는 노동계급이 내전과 기아로 분산되고 계급 구성이 변한 상태에서 노동조합이 국민경제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고, 노동조합의 역할을 대중 조직과 학교로 규정했다. 트로츠키는 반대 방향에서 노동조합의 국가 기구화를 주장했으므로, 이 논쟁은 세 입장이 대립하는 구조였다.

콜론타이가 1921년 제10차 당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노동자 반대파」는 논쟁의 성격을 관료화 문제로 확장했다. 그는 당 기구가 노동계급의 창의성을 신뢰하지 않고 행정적 지시로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문제의 근원을 계급 구성이 아니라 통치 방식에서 찾았다.

패배와 이후

제10차 당대회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레닌의 결의를 채택하고, 동시에 분파 금지 결의를 통과시켰다. 후자가 결정적이었다. 강령적 견해를 가진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금지되면서 반대파는 활동 근거를 잃었고, 1922년 제11차 당대회에서 반대파의 항의 문서가 조사 대상이 되어 조직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후 성원들의 경로는 갈렸다. 콜론타이는 외교직으로 이동해 활동을 이어갔고, 실랴프니코프와 메드베데프는 1930년대에 반복적으로 체포되어 실랴프니코프는 1937년 처형되었다. 노동자 반대파가 제기한 문제, 즉 생산 관리에서 노동자 자신의 역할이라는 문제는 이후 자주관리 논쟁과 1980년대 소련 개혁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되돌아왔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Full article: formation in late 1919–early 1920, leaders Shlyapnikov/Medvedev/Kollontai/Lutovinov, platform of transferring economic management to trade unions, Lenin's characterization as 'syndicalist deviation,' defeat at 10th Congress faction ban and 11th Congress dissolution.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language confirmation of key 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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