Женотдел · 1919–1930

제노트델

Zhenotdel

1919년 9월 창설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산하 여성부로, 이네사 아르만트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주도했다. 문맹 퇴치, 탁아소·공동식당·세탁소 설치, 여성 노동권 보호, 중앙아시아 무슬림 여성의 후줌(탈베일) 운동 등을 전개하며 수십만 명의 여성 대표(델레가트카)를 조직했고, 1920년 세계 최초로 낙태 합법화를 관철시켰다. 1930년 1월 5일 스탈린에 의해 '여성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명분으로 해산되었으며, 바로 그 시기 산업화로 공장에 밀려든 여성 노동자들은 더 이상 독자적인 여성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상세

창설과 목적

제노트델(Женотдел)은 '여성 대상 사업부'(Отдел по работе среди женщин)의 약칭으로, 1919년 9월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산하에 정식 부서로 출범했다. 그 전신은 1918년 11월 이네사 아르만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콘코르디야 사모일로바가 주도한 여성 노동자·농민 대회였다. 창설 목적은 '여성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경제 건설과 국가 관리에 참여시키며, 결혼·모성 제도의 변혁과 생활 조건의 변화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주요 활동

제노트델은 여성 대표(델레가트카) 제도를 통해 공장·정부 기관·집단농장에서 선출된 수만 명의 여성들을 2~3개월간 순환 훈련시켰다. 대표 수는 1922년 9만 5천 명에서 1926~1927년 62만 명으로 성장했다. 기관지 『라보트니차』(여성 노동자)와 이론지 『콤무니스트카』(여성 공산주의자)를 포함해 1930년 기준 총 18종, 67만 부의 정기 간행물을 발행했다. 법적 성과로는 1920년 11월 세계 최초의 낙태 합법화, 결혼·이혼 평등법, 동일 임금 원칙, 출산 휴가 제도 등을 관철시켰다.

중앙아시아와 후줌

중앙아시아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는 여성 클럽을 거점으로 문맹 퇴치·직업 교육·법률 상담을 제공했다. 1926년부터는 후줌(진격)이라 불린 탈베일 운동을 본격화하여, 우즈베키스탄과 아제르바이잔에서 대규모 공개 집회를 열고 여성들이 파란자(전신 베일)를 벗도록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남성들의 맹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1928년 한 해에만 중앙아시아에서 약 203명의 여성 활동가가 살해되었다고 보고되었다.

해산과 유산

네프(신경제정책) 시기 대량 실업과 사회 지출 삭감으로 제노트델은 약화되었고, 당내에서는 '페미니즘적 일탈'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30년 1월 5일 중앙위원회는 제노트델을 해산하고 그 기능을 선동·대중운동부 산하 여성 분과로 흡수했다. 스탈린은 '여성 문제가 사회주의 체제下에서 이미 해결되었다'고 선언했으나, 이후 1936년 낙태 금지와 이혼 제한, 동성애 재범죄화 등으로 혁명적 여성 해방 정책은 대부분 폐기되었다.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full article on Zhenotdel structure, leaders, activities, dissolution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establishment, leaders, Hujum campaign, delegate system, dissolution date of 5 January 1930
  3. johnriddell.com John Riddell (Anne McShane): formation, tensions with Party, NEP's impact, Stalin's closure claiming 'woman question solved', reversal of gains in the 1930s
  4. retrospectjournal.com Edie Christian, Retrospect Journal: Wendy Goldman's characterisation of dissolution as 'jettisoning revolutionary vision of women's liberation'; bab'i bunty and final restruct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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