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을 평함

PeopleMao Zedong, Nikita Khrushchev, Joseph Stalin, Deng Xiaoping TermsNine Commentaries, Revisionism, Peaceful Coexistence, Cult of Personality, Titoism, De-Stalinization EventsThe Sino-Soviet Split, The Twentieth Party Congress and the Secret Speech

1평 —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우리 사이 이견의 유래와 발전 (1963년 9월 6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7월 14일에 발표한 소련 각급 당 조직과 전체 공산당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 나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 공개서한을 발표한 데 이어 일련의 행동을 취함으로써 중소 관계를 이미 파열 직전으로 몰아넣었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을 전례 없이 심각한 단계까지 밀어붙였다.

지금 모스크바, 워싱턴, 뉴델리, 베오그라드는 서로 열렬히 결탁하고 있으며, 소련의 신문과 잡지에는 중국을 공격하는 온갖 괴상한 말들이 끊임없이 실리고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노골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저버렸고,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을 공공연히 찢어버렸으며, 중소 우호 동맹 상호 원조 조약을 노골적으로 위반했다. 또한 미 제국주의, 인도 반동 세력, 배신자 티토 집단과 한통속이 되어 사회주의 중국과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 중소 양당의 이견은 일련의 중대한 원칙적 문제들과 관련된 이견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6월 1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이미 이 이견의 본질을 체계적이고 전면적으로 논술한 바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현재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 중소 양당의 이견은 결국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의 혁명 원칙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혁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제국주의를 반대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단결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우리의 이견은 도대체 어떻게 발생했는가? 도대체 어떻게 지금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는 모두가 관심을 갖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견은 어디에서 오는가?」(1963년 2월 27일 《인민일보》 사설)라는 글에서 이미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개괄적으로 논술한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 특히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언급을 보류하고 그들에게 여지를 남겨두어, 필요할 때 진상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이견의 기원과 발전 문제에서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사건의 진상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부득이 몇 가지 사실을 들어 이 문제를 상세히 설명하려 한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자기 당원들과 인민대중에게 사실의 진상을 감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광명정대하고 실사구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부르주아 정치꾼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사실 왜곡과 시비 전도의 수법으로 오로지 이견이 생겨나고 확대된 책임을 중국공산당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상에서 정직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힘이 있다는 표현이며, 정치상에서 기만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나약하다는 표현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는 언제나 정직한 태도를 취하며 언제나 사실을 존중한다. 정치적으로 타락한 자만이 거짓말로 연명할 뿐이다.

사실이 가장 웅변적이다. 사실이 가장 훌륭한 증인이다. 그럼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견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시작되었다

속담에 “석 자 얼음은 하루 추위로 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은 물론 지금에 와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마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이 1960년 4월에 우리가 「레닌주의 만세」 등 세 편의 글을 발표함으로써 비롯된 것처럼 주장하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이것은 하늘을 찌를 듯한 거짓말이다.

사실은 도대체 어떠한가?

사실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 안의 일련의 원칙적 이견은 이미 7년도 더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은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시작되었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는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수정주의 길로 나아간 첫걸음이었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지금까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수정주의 노선은 생성, 형성, 발전 및 체계화의 과정을 겪었다. 사람들이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수정주의 노선을 인식하는 과정도 점차 깊어지는 과정을 겪어왔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다음과 같이 인정해왔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당대 국제 투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내놓은 많은 견해들은 잘못된 것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위반된다. 특히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를 구실로 스탈린을 전면 부정한 문제와 이른바 ‘의회의 길’을 통해 평화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문제는 더욱더 지극히 중대한 원칙적 오류이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스탈린에 대한 비판은 원칙적으로도 방법적으로도 모두 잘못된 것이다.

스탈린의 일생은 위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의 일생이었고,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의 일생이었다. 레닌 사후 30년 동안 스탈린은 소련 공산당과 소비에트 정부의 주요 지도자였으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공인된 지도자이자 세계 혁명의 기수였다. 스탈린은 일생 동안 몇 가지 엄중한 과오를 범했지만, 이러한 과오는 그의 위대한 공훈과 비교할 때 결국 제2의 자리에 놓일 뿐이다.

스탈린은 소련의 발전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에 위대한 공로를 세웠다. 우리가 1956년 4월에 발표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말했듯이:

“레닌이 세상을 떠난 후, 당과 국가의 주요 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운용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레닌주의의 유산을 수호하고 레닌주의의 적인 트로츠키 분자, 지노비예프 분자 및 기타 부르주아지 대리인들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민의 뜻을 표현하였으며, 걸출한 마르크스-레닌주의 투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스탈린이 소련 인민의 지지를 얻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소련공산당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소비에트 국가의 공업화와 농업 집단화에 관한 레닌의 노선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소련공산당이 이 노선을 실행함으로써 소련에서 사회주의 제도가 승리할 수 있었고, 소련이 반히틀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그리고 소련 인민의 이 모든 승리는 전 세계 노동계급과 모든 진보적 인류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탈린이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높은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다.”

스탈린의 오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흐루쇼프 동지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행한 비밀보고는 스탈린을 전면 부정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하게 만들었으며, 사회주의 제도를 추하게 만들었고, 위대한 소련공산당을 추하게 만들었으며, 위대한 소련을 추하게 만들었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마저 추하게 만들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당의 비판과 자기비판 방법을 적용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분석하고 총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적을 대하는 방식으로 스탈린을 대하여 모든 오류를 스탈린 한 사람에게 떠넘겼다.

흐루쇼프는 비밀보고에서 엄청난 거짓말을 날조하고 악독하고 선동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스탈린이 “박해광”이라느니, “가혹한 전횡”을 일삼았다느니, “대규모 박해의 길로 나아갔으며, 공포의 길로 나아갔다”느니, “국내 상황과 농업을 오직 영화를 통해서만 연구했다”느니, “지구본에 의거하여 전역을 계획했다”느니, 스탈린의 지도가 “소비에트 사회 발전 경로에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느니 하면서 공격했다. 그는 스탈린이 소련 인민을 지도하여 일체의 국내외 적들과 단호히 투쟁하여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의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공적을 전면 말살했으며, 스탈린이 소련 인민을 지도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보위하고 공고히 하며 반파시스트 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둔 공적을 전면 말살했고, 스탈린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킨 공적을 전면 말살했다.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을 전면 부정한 것은 실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고, 스탈린이 수호하고 발전시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 대회에서 흐루쇼프는 총괄보고를 통해 일련의 원칙적 문제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저버리기 시작하였다.

흐루쇼프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총괄보고에서 세계 정세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구실로 이른바 “평화적 이행”이라는 논점을 제기했다. 그는 10월 혁명의 길이 “당시의 역사적 조건 하에서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었으나, 현재 상황이 변하여 “의회의 길”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잘못된 논점은 실질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국가와 혁명에 관한 학설을 공공연히 수정하고, 10월 혁명의 길이 지니는 보편적 의의를 공공연히 부정하는 것이다.

흐루쇼프는 총괄보고에서 세계 정세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구실로, 제국주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레닌주의의 원리가 여전히 유효한지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실제로는 레닌의 학설을 왜곡하였다.

흐루쇼프는 미국 정부와 그 수뇌를 제국주의 전쟁 세력의 대표가 아니라, 전쟁 세력에 저항하는 인물로 보았다. 그는 “미국에서는 전쟁 방식으로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들이 여전히 강력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대통령과 정부에 막대한 압력을 계속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제국주의자들이 힘의 우위 정책이 파산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그들 가운데 “머리가 약간 맑아지는 조짐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와 그 수뇌가 미국 독점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을 수 있고,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을 포기할 수 있으며, 오히려 평화를 수호하는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흐루쇼프는 “우리는 평화와 각국 인민의 안전을 위한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경제 및 문화 면에서도 미국과 우호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선언했다. 바로 이러한 잘못된 관점이 후에 “소련과 미국이 협력하여 세계 문제를 해결한다”는 노선으로 발전하였다.

흐루쇼프는 상이한 사회 제도를 가진 국가들의 평화공존에 관한 레닌의 올바른 원칙을 왜곡하여, 평화공존이 소련 “대외 정책의 총노선”이라고 제기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상호부조와 협력,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각국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에 대해 제공하는 지원을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 총노선에서 배제하는 것이며, 혹은 이 모든 것을 그들의 이른바 “평화공존” 정책에 예속시키는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제기한 일련의 문제들, 특히 스탈린 문제와 이른바 “평화적 이행” 문제는 결코 소련공산당 한 당의 내부 사무 문제가 아니라, 각국 형제당들과 공동으로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사전에 형제당들의 의견을 전혀 구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결론을 내려, 기성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형제당에 강요하였으며,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를 구실로 형제당과 형제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고, 그 지도부를 전복시키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자신들의 분파주의적이고 분열주의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후 사실의 전개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서 이탈하고 이를 왜곡한 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이러한 잘못들로부터 발전해 나온 것임을 점점 더 똑똑히 보게 하였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 대해, 중국공산당은 줄곧 원칙적인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은 소련공산당 지도부 동지들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중국공산당이 과거에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를 전적으로 지지했다고 억지를 부리며, 우리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 대한 평가에서 “백팔십도 전환을 했다”고 주장하고, 우리의 입장이 “흔들렸다”거나 “위선적”이라고 말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한 손으로 하늘을 다 가리려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사실이 말하게 하자!

사실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도 동지들은 여러 차례 내부 회담에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오류를 엄숙하게 비판했다.

1956년 4월, 즉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끝난 지 두 달도 안 되어, 마오쩌둥 동지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인 미코얀 동지와, 소련 주중 대사와의 대화에서 스탈린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표명했다.

마오쩌둥 동지는 “스탈린은 공이 과보다 크다”는 점, 스탈린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점, “전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1956년 10월 23일, 마오쩌둥 동지는 소련 주중 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스탈린은 비판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비판의 방식에 대해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또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56년 11월 30일, 마오쩌둥 동지는 소련 주중 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또다시 이렇게 지적했다. 스탈린이 집권하던 시기의 근본적인 방침과 노선은 옳았으며, 적을 대하는 방법으로 자기 동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류사오치 동지가 1956년 10월 소련공산당 지도자들과 나눈 대화, 저우언라이 동지가 1956년 10월 1일 당시 중국공산당 제8차 대회에 참석한 소련공산당 대표단과 나눈 대화, 그리고 저우언라이 동지가 1957년 1월 18일 소련공산당 지도자들과 나눈 대화 모두에서 우리는 스탈린 문제에 대한 의견을 거듭 밝히며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의 잘못을 비판했다. 이 잘못은 주로 다음과 같다. 스탈린에 대해 “전혀 전면적인 분석을 하지 않았다”,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이 “자기비판이 부족하다”, “사전에 형제당과 상의하지 않았다”.

평화적 이행 문제에 관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지도 동지들은 소련공산당 동지들과의 내부 대화에서도 우리의 다른 의견을 제기했다. 1957년 11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서면으로 된 「평화적 이행 문제에 관한 의견 제요」를 제출하여, 중국공산당의 관점을 전면적이고 명확하게 밝혔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지도 동지들은 소련공산당 동지들과의 여러 차례 내부 대화에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오류에 대처하기 위해 국제 정세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전략 문제에 관해 우리의 관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어떻게 눈을 뜨고도 거짓말을 하며, 이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살할 수 있단 말인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이러한 중요한 사실들을 가리려 하고, 마오쩌둥 동지, 류사오치 동지, 덩샤오핑 동지의 공개 연설 일부를 발췌 인용하여, 중국공산당이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를 전면 긍정했던 적이 있다고 증명하려 한다. 이는 헛된 시도다.

사실은, 중국공산당은 언제, 어떤 자리에서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를 전면 긍정한 적이 없으며, 스탈린을 전면 부정하는 데 동의한 적도, ‘의회의 길’을 통해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이행한다는 관점에 동의한 적도 없다.

우리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끝난 직후인 1956년 4월 5일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관하여」를 발표했고, 그 후 1956년 12월 29일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관하여 다시 논함」을 발표했다. 이 두 편의 글은 제국주의와 반동파의 반공 헛소리를 반박하면서, 스탈린의 일생을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10월 혁명의 길이 지니는 보편적 의미를 긍정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을 총결산했다. 그리고 완곡하지만 매우 명확하게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잘못된 논점을 비판했다. 이것이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스탈린의 사진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같은 위대한 혁명 지도자들의 사진과 계속 나란히 걸어왔다. 이것 또한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물론, 당시 우리가 고려한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와 각국 반동파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오류를 이용하여, 반소·반공·반인민 활동을 미친 듯이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적과의 투쟁에서 단결하고,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배려하기 위해, 그리고 당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탈이 그 후처럼 심하게 나아가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오류에 대해 공개 비판을 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진심으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잘못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 긍정적 요소를 찾으려 노력했고, 공개 석상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지도 동지들은 공개 연설에서 여전히 정면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천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류사오치 동지가 중국공산당 제8차 대회 정치 보고에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를 전면 긍정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보고에서 류사오치 동지는 중국 혁명의 경험을 논하면서, 이른바 ‘평화적 이행’의 길이 잘못된 것이며 또한 통할 수 없는 것임을 설명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덩샤오핑 동지가 중국공산당 제8차 대표대회에서 한 당규약 개정에 관한 보고에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 관행을 전면적으로 긍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이 보고에서 덩샤오핑 동지는 당의 민주집중제 문제와 지도자와 대중의 상호 관계 문제를 상세히 논술했고, 우리당의 일관된 올바른 작풍을 설명함으로써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이른바 ‘개인숭배 반대’라는 잘못을 실제로 비판했다.

이렇게 한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마땅히 가져야 할 원칙을 견지하고 단결을 견지하는 태도가 아닌가?

어떻게 중국공산당이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 대해 취한 이러한 일관되고 올바른 입장을 두고 무엇이 ‘흔들렸다’거나 ‘위선적’이라거나 ‘백팔십도 급선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이 우리에게 이런 비난을 퍼붓는 것은, 아마도 과거 우리의 비판을 소련공산당 내 소수 지도자만이 알고 있으니 부인할 수 있고, 거짓말로 광범위한 소련공산당 당원과 소비에트 인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짓이야말로 바로 그들 자신의 위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초래한 심각한 악결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훌륭한 결과’,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고 극력 떠받들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아직 건망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잘못이 가져온 것은 그 어떤 ‘훌륭한 결과’나 ‘위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반동파 및 그 외 모든 공산주의의 적들에게 공격할 빌미를 제공했으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극히 심각한 악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제국주의와 각국 반동파는 기세등등하게 몰아치며 전 세계에서 반소·반공·반인민의 물결을 일으켰다. 미 제국주의는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스탈린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것을 보고 “전례 없이 우리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며, 흐루쇼프의 비밀 보고를 “공산당 운동의 위신과 영향력을 파괴하는 무기로 활용”하겠다고 시끄럽게 떠들었고, 이 기회를 틈타 소비에트 연방의 ‘평화 변혁’을 촉진하자고 선동했다.

당시 티토 집단은 극도로 발호했다. 그들은 이른바 ‘반스탈린주의’라는 반동 구호를 내걸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 제도를 광적으로 공격했다. 그들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유고슬라비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경향’을 위해 “상당히 많은 요인을 창출했”으며, “지금 문제는 이 노선이 승리하느냐, 아니면 스탈린주의 노선이 다시 승리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당시 궁지에 몰렸던 공산주의의 적 트로츠키 분자들도 대대적으로 기세를 올렸다. 이른바 제4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노동자와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크렘린 지도자들이 스탈린의 죄상을 스스로 인정했을 때, 그들은 … 노동자 국가의 타락에 반대하며 세계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수행한 불굴의 투쟁이 전적으로 정당했음을 목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외쳐댔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잘못은 국제 공산주의 진영 내부에 엄청난 사상적 혼란을 일으켜 수정주의 사조가 크게 범람하게 했다. 많은 나라의 공산당 내에서 한 무리의 배신자들이 제국주의와 반동파, 티토 집단과 결탁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공격했다.

이 시기에 발생한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소련-폴란드 관계 사건과 헝가리 반혁명 폭동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그 성격에 차이가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 두 사건 모두에서 일찍이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군대를 움직여 무력으로 폴란드 동지들을 제압하려 함으로써 대국배외주의의 오류를 범했다. 또한 헝가리 반혁명 세력이 부다페스트를 점거한 긴박한 결정적 순간에,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한때 투항주의 정책을 취하여 사회주의 헝가리를 반혁명 세력에게 내던져 버리려 할 정도까지 갔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러한 잘못은 모든 공산주의의 적들을 발호하게 만들었고, 여러 형제당에 심각한 곤경을,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심각한 손해를 초래했다.

이러한 정세에 직면하여, 중국공산당원들은 각국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하는 형제당들과 함께 제국주의와 반동파의 공격을 격퇴하고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수호할 것을 단호히 주장했다. 당시 우리는 헝가리 반혁명 폭동을 분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사회주의 헝가리를 저버리는 것을 단호히 반대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는 형제당과 형제국가 사이의 문제를 올바른 원칙으로 처리하고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대국배외주의의 잘못된 처사를 단호히 반대할 것을 주장했다. 동시에 우리는 극히 큰 노력으로 소련공산당의 위신을 수호했다.

당시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우리의 건의를 받아들여, 1956년 10월 30일 소비에트 정부 명의로 「소비에트 연방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 간의 우호와 협력의 기초를 발전시키고 더욱 강화하는 데 관한 선언」을 발표하여, 과거 형제국가 관계 처리에서 범한 일부 잘못을 자가비판했다. 11월 1일, 중국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소비에트 정부의 선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 것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자,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시기적절하게 교훈을 받아들여 잘못을 시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이탈하는 길로 더 미끄러져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권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의 사실이 증명하듯,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오히려 이로 인해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견지하는 중국공산당을 그들이 잘못된 노선을 추진하는 데 있어 최대의 장애물로 간주했다.

1957년 형제당 모스크바 회의

1957년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당 대표 모스크바 회의는, 제국주의와 각국 반동파가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가한 맹렬한 공격을 격퇴한 후에 열렸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을 제정하는 데 “거대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1957년 형제당 회의는 바로 여러 중대한 원칙적 문제에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잘못된 관점들을 거부하고 바로잡았다.

모스크바 회의에서 통과된 유명한 1957년 선언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경험을 총괄하고, 각국 공산당의 공동 투쟁 임무를 제시했으며, 10월 혁명의 길이 지니는 보편적 의의를 긍정하고,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공동 규범을 요약했으며, 형제당·형제국가 관계의 준칙을 규정했다. 이 회의에서 제정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 노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 원칙을 구현한 것으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제기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탈한 잘못된 관점과 대립된다. 선언이 규정한 형제당·형제국가 관계의 준칙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구현한 것으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대국배외주의와 분파주의에 대립된다.

마오쩌둥 동지가 직접 이끈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회의 기간 일련의 작업을 진행했다.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한편으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충분한 협상을 벌이며 그들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투쟁을 하여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고치도록 도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형제당 지도자들과 반복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며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동 문건을 마련하고자 힘썼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가 소련공산당 대표단과 논쟁한 것은 주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원래 제출한 선언 초안에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평화적 이행에 관한 잘못된 관점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했다. 이 초안에는 비평화적 이행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평화적 이행만 언급했을 뿐 아니라, 평화적 이행을 또 “의회에서 다수를 쟁취하고 의회를 부르주아지 독재의 도구로부터 진정한 인민 정권의 도구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제2인터내셔널 기회주의자들의 이른바 “의회의 길”로 10월 혁명의 길을 대체하고, 국가와 혁명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제출한 선언 초안 속의 잘못된 관점을 단호히 반대했다. 우리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앞뒤 두 차례 제출한 선언 초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고, 상당히 많은 원칙적이고 중대한 수정을 가한 후 우리의 수정 초안을 제출했다. 그 후 중소 양당 대표단은 우리의 수정 초안을 토대로 여러 차례 토론을 거친 뒤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이 공동 기초한 선언 초안》을 제출하여 다른 형제당 대표단의 의견을 구했다.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형제당 대표단의 공동 노력을 거쳐 회의가 최종 통과시킨 선언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문제에 있어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처음 제출한 초안과 비교해 두 가지 중대한 수정을 이루었다. 첫째,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비평화적 이행의 길도 지적하고, “레닌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치며 역사 경험도 증명하듯, 지배 계급은 자발적으로 정권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의회에서의 안정적 다수”를 획득하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의회 밖에서 광범위한 대중 투쟁을 전개하여 반동 세력의 저항을 파괴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을 준비할 것”을 강조했다.

비록 위와 같은 수정이 이루어졌으나, 우리는 선언의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 문제에 관한 서술에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다만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거듭 제기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표현과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감안하여 우리는 양보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평화적 이행 문제에 관한 의견 요강을 제출하여, 이 문제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관점을 전면적이고 명확하게 밝혔다. 이 요강은 다음과 같이 특히 지적했다.

“현재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상황에 비추어, 전략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평화적 이행의 희망을 제기하는 것은 유익하지만,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반드시 언제든지 반혁명의 습격에 맞서 반격할 준비를 해야 하며, 노동 계급이 정권을 장악하는 혁명적 비상 국면에서, 만약 부르주아지가 무력으로 인민 혁명을 진압한다면(일반적으로 이는 필연적이다), 무력으로 타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의회에서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 곧바로 낡은 국가 기구(주로 무력)의 파괴와 새로운 국가 기구(주로 무력)의 건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르주아지의 군벌 관료 국가 기구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확고한 동맹자가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혹은 믿을 수 없다.” (첨부 파일 1 참조)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형제당 대표단의 공동 노력을 거쳐, 1957년 선언은 또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제기한 제국주의, 전쟁과 평화 등의 문제에 관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았고, 일련의 원칙적 문제에서 많은 중요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보충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 제국주의는 전 세계 반동 세력의 중심이며 인민대중의 가장 흉악한 적이다; 제국주의가 세계 전쟁을 일으킨다면 멸망할 운명에 처한다;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공동 규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각국 혁명과 건설의 구체적 실천에 결합시키는 원칙; 실제 작업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운용하는 것의 중요성; 노동 계급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혁명의 시작일 뿐 종결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승패 문제는 상당히 긴 시간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부르주아지 영향의 존재는 수정주의의 국내적 근원이며, 제국주의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수정주의의 국외적 근원이다, 등.

이와 동시에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필요한 타협도 했다. 평화적 이행 문제에 관한 표현 외에,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 관한 그 한 단락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고 수정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는 이 단락의 수정을 고집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국을 고려해 양보한 이 조치가 바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국제 공산주의 운동 안에서 이견을 격화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는 구실로 이용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입이 닳도록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결의와 1957년 선언을 동일시하며,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잘못된 노선으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 노선을 대체하려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일찍이 말한 바 있거니와, 이제 다시 한 번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형제당의 독립적이고 평등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어느 누구도 어떤 형제당에게 특정 형제당 대회의 결의나 그 밖의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어느 한 당의 어느 한 차수 대회 결의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 노선이 될 수 없으며, 다른 형제당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오직 마르크스-레닌주의만이, 오직 형제당이 일치하여 합의한 문건만이 우리와 모든 형제당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공동 행동의 준칙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 수정주의의 발전

1957년 모스크바 회의 이후, 여러 나라 형제당이 일치하여 합의한 선언이 있게 되자, 우리는 본래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 선언의 노선을 따라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이러한 바람과는 반대로,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의 바람과는 반대로,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오히려 더욱 심각하게 선언의 혁명 원칙을 위반하고, 형제당·형제국가 관계의 준칙을 위반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궤도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수정주의에는 새로운 발전이 나타났다. 이로 말미암아 국제 공산주의 운동 안의 이견도 따라서 격화되었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미 제국주의가 전 세계 인민의 적이라는 1957년 선언의 공동 결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미 제국주의와의 협력, 소련·미국 양국 수뇌가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열중했다. 특히 1959년 9월 데이비드 캠프 회담 전후로, 흐루쇼프는 말 그대로 아이젠하워를 하늘로 떠받들며, 그를 가리켜 “자국 인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사람”, “또한 우리처럼 평화 보장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다. 소련공산당 동지들은 아이젠하워 본인조차 인정하지 않은 이른바 ‘데이비드 캠프 정신’을 극구 선전하면서, 이것이 무엇 “국제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1957년 선언의 혁명 노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흐루쇼프의 언론과 소련 신문잡지의 글에서 그들의 이른바 ‘평화공존’, ‘평화경쟁’, ‘평화적 이행’이라는 수정주의 노선을 마구 떠벌렸다. 제국주의의 “현명함”과 “선의의 바람”을 선전하고, 제국주의가 세계 대부분 지역을 여전히 지배하고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무기 없는, 군대 없는, 전쟁 없는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전면적·완전한 군축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발전에 아주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수 있다”고 선전하는 따위였다.

소련공산당은 또한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학설, 역사, 문학 예술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숱한 저작을 출간하고 허다한 문장을 발표하여, 일련의 중대한 원칙 문제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리를 왜곡하고 그 혁명적 정수를 거세하며, 그들의 수정주의 관점을 선전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또한 자신들의 일련의 잘못된 관점을 국제 민주 조직에 강요하여, 그 조직들의 올바른 노선을 바꾸려고 획책했다. 소련공산당 동지들이 1960년 6월 세계노동조합연맹 이사회 베이징 회의에서 취한 작법은 그 두드러진 사례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1957년 선언이 규정한 형제당·형제국가 관계의 준칙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미 제국주의에 온갖 아부를 하면서 동시에 중국을 반대하는 활동을 마음껏 벌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하는 중국공산당을 자신들의 수정주의 노선을 밀어붙이는 데 장애물로 간주했다. 그들은 자기네 내부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고, 자기네 지위가 이미 ‘안정’되었다고 자부하면서, 이제 “적에게는 화목하고 친구에게는 가혹한” 정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58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군사적으로 중국을 통제하려는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고, 이는 중국 정부의 정당하고 단호한 거절을 받았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1959년 6월, 소련 정부는 1957년 10월에 중소 쌍방이 체결한 국방 신기술에 관한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국에 원자폭탄 실물 견본과 원자폭탄 생산 기술 자료를 제공하기를 거부했다.

이어서, 흐루쇼프가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에,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측이 여러 차례 이견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9월 9일 타스 통신의 중-인도 국경 사건 성명을 발표하여 인도 반동파를 편들었다. 그리하여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중소 이견을 전 세계 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국방 신기술 협정을 파기한 것과 중-인도 국경 충돌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은, 흐루쇼프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 제국주의에 아부하고 이른바 ‘데이비드 캠프 정신’을 창조하기 위해 아이젠하워에게 바친 선물이었다.

소련공산당 지도자와 신문들은 또한 중국공산당의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에 대해 대대적으로 악독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런 공격은 거의 매번 흐루쇼프가 앞장서서 감행했다. 그는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을 “초단계”이며 “평균적 공산주의”라고 빗대어 공격했고, 중국의 인민공사는 “실제로는 반동적”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중국이 호전적이며 “모험주의”를 범했다고 빗대어 공격했다. 그는 데이비드캠프 회담에서 돌아온 후, 다름 아닌 중국에 미국의 “두 개의 중국” 계획을 권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주년 경축 국빈 만찬 자리에서 중국에 “무력으로 자본주의 제도의 안정성을 시험하지 말라”고 훈계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수정주의와 분열주의 노선은 국제 공산주의 대오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켰다. 미 제국주의는 이미 전 세계 인민의 가장 흉악한 적이 아닌 것처럼 되었고, 아이젠하워는 어떤 공산당원들에게 “평화의 사자”로 환영받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1957년 선언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호하고 1957년 선언을 지키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 속의 사상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1960년 4월 「레닌주의 만세」 등 세 편의 문장을 발표했다. 이 세 편의 문장에서 우리는 한결같이 원칙을 고수하고 단결을 지켜온 입장에서 1957년 선언의 혁명적 관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제국주의·전쟁과 평화·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기본 원리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 세 문장의 관점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선전하던 일련의 잘못된 관점과 완전히 대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국을 고려하여 우리는 여전히 소련공산당 동지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투쟁의 칼날을 제국주의자들과 유고슬라비아 수정주의자들에게 향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레닌주의 만세」 등 세 문장을 극구 왜곡하고 공격했지만, 그들의 공격이 성립됨을 입증할 만한 납득할 수 있는 논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상황에서 우리가 한창 널리 퍼져 있던 잘못된 관점과 황당무계한 발언에 침묵해야만 했는가? 우리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호하고 1957년 선언을 지켜낼 권리와 의무가 없었단 말인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기습 공격

「레닌주의 만세」 등 세 문장이 발표된 지 8일 후, 미국 U-2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하고 미국이 4개국 정상 회담을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데이비드캠프 정신”은 완전히 무너졌다. 사태의 전개는 우리 주장이 완전히 옳았음을 입증했다.

대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중소 양당과 전 세계 형제당이 이견을 해소하고 단결을 강화하여 공동으로 적에 대처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사람들의 기대와 반대로 전개되었다. 1960년 여름, 국제 공산주의 대오 내의 이견은 더욱 확대되었고, 중국공산당을 대규모로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중소 양당 간의 이데올로기적 이견을 국가 관계 영역까지 확대시켰다.

원래 1960년 6월 초,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6월 중 루마니아 노동자당 제3차 대회 기회를 이용해 부쿠레슈티에서 사회주의 각국 공산당 및 노동자당 대표 회의를 열어 미국의 4개국 정상 회담 파괴 이후의 국제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회의를 성급히 여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각국 공산당 및 노동자당 대표 회의만 여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 각국 공산당 및 노동자당 대표 회의를 열 것을 적극 제안했으며, 이 국제 회의를 잘 개최하려면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이 제안은 소련공산당의 찬성을 얻었다. 양당은 또한 이 국제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루마니아 노동자당 제3차 대회에 참석하는 형제당 대표들이 이 국제 회의의 개최 날짜와 장소에 관해 예비 의견을 교환하되,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우리 예상을 벗어나,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자기가 한 약속을 저버리고 본래 미 제국주의를 향했어야 할 투쟁의 칼날을 중국공산당으로 돌려 부쿠레슈티에서 중국공산당을 향해 일대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형제당 대표 부쿠레슈티 회담은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이 회담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무슨 “동지적 도움”이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사실 회담을 앞두고 흐루쇼프를 수장으로 하는 소련공산당 대표단은 형제당 대표들에게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6월 2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통지서를 각각 배포하거나 낭독했다. 이 통지서는 중국공산당에 대해 전면적이고 아무 근거도 없는 날조 비방과 공격을 퍼부었으며, 이것이 바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반중국 강령이다.

회담 중 흐루쇼프가 앞장서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대규모 포위 공격을 조직했다. 흐루쇼프는 발언에서 중국공산당을 “미치광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 “제국주의 독점 부르주아지의 깃발을 집어 들었다”고 함부로 날조 비방했으며, 중·인도 국경 문제에서는 “순수한 민족주의”라고, 중국공산당이 소련공산당에 “트로츠키 방식”을 취한다고 비난했다. 흐루쇼프의 지휘를 따르던 일부 형제당 대표들도 중국공산당을 “교조주의”, “좌경 모험주의”, “가짜 혁명”, “분파주의”, “유고슬라비아보다 더 나쁘다” 등등 마구 공격했다.

흐루쇼프가 이번 회담에서 감행한 반중국 운동은 많은 형제당에게도 기습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일부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 대표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런 잘못된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회담에서 알바니아 노동당 대표단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지휘봉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종파 활동을 단호히 반대하였다. 이에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알바니아 노동당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들은 그때부터 알바니아 노동당을 반대하는 활동을 갈수록 격렬하게 벌여 나갔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중국공산당에 대해 감행한 이러한 극악한 공격을 두고, 도대체 무엇을 “동지적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사전에 음모한 반중국 대공연이며, 1957년 선언이 규정한 형제당 관계의 준칙을 야만적으로 파괴한 중대 사건이며, 소련공산당 지도부를 대표로 하는 수정주의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을 향해 감행한 대규모 공세이다.

이런 정황 아래,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진지를 보위하고 선언이 규정한 형제당 관계의 준칙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침예하게 맞서 투쟁하였다. 부쿠레슈티 회담에 참석한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대국적 견지에서 회담 공보에 서명했으며, 이와 동시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1960년 6월 26일 서면 성명 하나를 발표했다.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성명에서, 부쿠레슈티 회담에서의 흐루쇼프의 작법이 국제 공산주의 운동 가운데 극히 악렬한 선례를 하나 열었다고 지적했다.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엄숙히 성명한다.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일련의 기본 원칙들에 있어 흐루쇼프 동지와 이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운명은 각국 인민의 요구와 투쟁에 달려 있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지도에 달려 있는 것이지, 결코 어떤 개인의 지휘봉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당은 오직 마르크스-레닌주의 진리만을 믿고 복종할 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위배되는 그릇된 관점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부록 2 참조)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부쿠레슈티에서 중국공산당을 굴복시키지 못한 데에 결코 승복하지 않았다. 부쿠레슈티 회담에 바로 이어,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중소 양당 사이의 사상 이견을 국가 관계 분야로까지 확대시켜, 중국에 한층 더 압력을 가했다.

7월 사이, 소련 정부는 돌연히 일방적으로 한 달 안에 중국 주재 모든 소련 전문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고, 그로 인해 수백 건의 협의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찢어 버렸다. 소련 측은 또한 중소 쌍방이 각각 출판하고 호혜적으로 발행하던 《우호》 잡지와 《소중 우호》 잡지에 대한 협의를 일방적으로 찢어 버리고, 중국 정부에 주소 대사관 소속 직원 한 명을 소환할 것을 무리하게 요구했으며, 나아가 중소 변경 분규를 도발하였다.

보건대,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손수 지휘봉을 휘두르고 한패의 타수(打手)들을 규합하여 포위 공격을 가하기만 하면, 또 정치적·경제적 거대한 압력을 가하기만 하면,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입장을 버리고 그들의 수정주의와 대국배외주의 의지에 순종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오랜 시련과 단련을 겪은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은 때려눕힐 수도, 압박해 굴복시킬 수도 없다. 포위 공격을 조직하고 압력을 가하면 우리가 굴복하리라고 망상한 자들은 그야말로 셈법을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중소 관계를 파괴한 진상에 관해서는, 우리는 다른 글에서 상세히 논술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만 이 점만을 지적하려 한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중소 관계를 말할 때, 소련 정부가 중국 주재 전체 전문가를 철수시키고 수백 건의 협의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찢어 버린 사실을 교묘하게 숨기고, 바로 소련 측의 이러한 일방적 행위가 중소 무역 축소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도리어 중국이 사상 이견을 국가 관계 분야로 확대했으며 중국이 중소 양국 무역을 축소했다고 비난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렇게도 노골적으로 소련공산당 당원과 소련 인민을 기만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1960년 형제당 회의에서의 두 노선 투쟁

1960년 하반기, 각국 공산당 및 노동자당 대표 회의의 소집을 둘러싸고, 국제 공산주의 대열 안에서 한바탕 격렬한 투쟁이 더욱 전개되었다. 이 투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수정주의의 두 노선 투쟁이었으며, 또한 원칙을 견지하고 단결을 수호할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포기하고 분열을 조성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방침의 투쟁이었다.

형제당 회의가 열리기 전, 가지가지 징후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자신의 그릇된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그릇된 노선을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강요하려 획책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국공산당은 이견의 심각성을 깊이 느꼈다. 우리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그릇된 길 위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기를 희망했다.

1960년 9월 10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6월 21일자 통지서에 대하여 회답을 보냈다. 이 회답서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사실을 늘어놓고 도리를 밝히는 태도를 취하여, 국제 정세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일련의 중대한 원칙 문제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천명하고, 우리에 대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공격을 논박하고,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관점을 비판했으며, 아울러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이견을 해결하고 단결을 달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적극적 제안을 내놓았다. (이 다섯 가지 제안은 부록 3 참조)

이어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9월경 모스크바로 가서 소련공산당 대표단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한편으로는 미 제국주의를 미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구 반중국 활동을 벌여, 양당 사이의 사상 이견을 국가 관계 분야로 확대하고 적과의 관계와 형제당·형제국가와의 관계를 잘못된 자리에다 뒤바꿔 놓았다고 지적했다.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거듭 권고하기를, 이러한 그릇된 입장을 바꾸어 형제당·형제국가 관계의 준칙으로 되돌아오고, 중소 양당 양국의 단결을 강화하며, 공동의 적에게 반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리하여 날카로운 투쟁은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이 투쟁은 먼저 스물여섯 개 형제당 대표가 참여하여 형제당 회의 문건을 준비한 기초위원회에서 펼쳐졌고, 이어 여든한 개 형제당 대표 회의에서 전례 없이 격렬한 정도에 이르렀다.

10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기초위원회에서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기초한 성명 초안을 강제로 통과시키려 획책했는데, 이 초안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일련의 그릇된 관점을 담고 있었다.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일부 형제당 대표단이 원칙을 견지하며 투쟁한 결과, 기초위원회는 격렬한 논쟁을 거쳐 소련공산당이 제출한 성명 초안에 대해 많은 중대한 원칙적 수정을 가했다. 기초위원회는 성명 초안의 절대다수 부분에서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논쟁을 계속할 뜻을 품고 성명 초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몇 가지 중대한 이견 문제에 대해 합의를 거부했으며, 더욱이 흐루쇼프가 뉴욕에서 돌아온 뒤에는 일부 문제에서 이미 달성한 합의조차 뒤집어 버렸다.

1960년 11월, 여든한 개 형제당 대표 회의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중국공산당과 다른 많은 형제당 대표단이 이견을 없애고 단결을 강화하려는 염원을 저버리고, 회의 직전에 모스크바로 모여든 형제당 대표들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중국공산당을 공격하는 6만 자가 넘는 서한을 배포하여 더욱 날카로운 논쟁을 촉발시켰다.

여든한 개 형제당 대표 회의는 바로 이처럼 극도로 비정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악랄한 처사는 회의를 파탄 직전으로 몰고 갔다.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일부 형제당 대표단이 원칙을 견지하고 투쟁을 견지하며 단결을 견지했기 때문에, 그리고 대다수 형제당 대표단이 단결을 요구하고 분열을 반대했기 때문에, 회의는 결국 합의에 이르러 적극적 성과를 거두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이 회의에서 중국공산당 대표단이 “완전히 고립될 위협이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성명에 서명했다”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사실의 진상은 무엇인가?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회의 과정에서 그리고 회의 이전에, 실제로 적지 않은 형제당 대표를 동원하여 중국공산당에 대해 집단 공격을 가했으며, 실제로 이른바 다수에 의존하여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여타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 대표들을 굴복시키려 했고, 실제로 그들에게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수정주의 노선과 관점을 강제로 받아들이도록 하려 획책했다. 그러나 스물여섯 개 형제당 기초위원회에서든 여든한 개 형제당 대표 회의에서든,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의사를 강요하는 행위는 모두 실패했다.

사실은 이러하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제출한 성명 초안에 담긴 많은 그릇된 관점이 부정되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평화공존과 평화경쟁이 사회주의 각국 대외정책의 총노선이라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논점은 부정되었다.

자본주의 총위기 새 단계의 출현이 평화공존과 평화경쟁에 말미암는다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논점은 부정되었다.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논점은 부정되었다.

사회주의 각국의 “단독 행동”을 반대한다는 것, 즉 실제로는 사회주의 각국이 자력갱생 위주로 하는 건설 방침을 반대하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논점은 부정되었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 안에서 이른바 “집단 활동”과 “파벌 활동”을 반대한다는 것, 즉 실제로는 형제당이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지휘봉에 복종하게 하고 형제당 관계에서 독립·평등의 원칙을 취소하며 다수가 소수를 강압하는 것으로써 협의를 통한 일치를 대체하려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논점은 부정되었다.

현대수정주의의 엄중한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릇된 논점은 부정되었다.

사실은 이러하다.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형제당 대표단이 제기한 많은 중요한 원칙적이고 올바른 의견이 성명에 쓰이게 되었다. 성명 중의, 제국주의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논점, 미 제국주의가 전 세계 인민의 적이라는 논점, 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광범한 통일전선을 수립한다는 논점, 민족해방운동이 세계 전쟁을 방지하는 중요한 힘이라는 논점, 신생 독립국이 민족민주혁명을 철저히 완수한다는 논점, 사회주의 국가들과 국제 노동자 운동이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한다는 논점, 미국 제국주의의 정치·경제·군사적 지배 아래 있는 일부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의 주요 타격은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겨냥함과 동시에 민족 이익을 매각하는 독점 자본과 국내 기타 반동 세력을 겨냥한다는 논점, 형제당이 협의를 통해 일치에 이른다는 원칙에 관한 논점, 수정주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영혼을 거세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논점,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동맹 지도부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배신했다는 논점 등등은 모두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일부 형제당 대표단의 의견을 흡수한 것이다.

물론, 또한 언급해야 할 것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그릇된 논점을 삭제하는 데 동의하고 형제당의 올바른 의견을 받아들인 이후에, 중국공산당 대표단과 다른 일부 형제당 대표단 또한 약간의 양보를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문제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형식 문제에 관해 우리는 모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직 소련공산당과 일부 형제당의 필요를 감안하여 우리는 성명 속에 1957년 선언의 이 두 문제에 관한 문구를 그대로 옮겨 쓰는 데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에 소련공산당 지도부에게,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 관한 표현법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번 한 번만 더 감안해 줄 수 있으며, 이후로는 결코 감안할 수 없다고 이미 알렸다.

위의 사실로부터 알 수 있듯이, 1960년 모스크바 회의의 전 과정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두 노선 투쟁으로 관통되어 있다. 이 회의에서 드러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잘못은 이전 시기에 비해 더욱 발전된 것이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제출한 성명 초안과 회의 발언에서, 그들이 형제당에 강요하려 한 잘못된 노선은 정치적으로 이른바 ‘평화공존’, ‘평화경쟁’, ‘평화적 이행’이라는 잘못된 관점을 중심 내용으로 삼고, 조직적으로는 분파주의, 분열주의라는 잘못된 정책을 실행하는 것임이 이미 뚜렷이 드러난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수정주의 노선이다. 중국공산당과 그 밖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 대표단들은 이 노선을 단호히 반대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노선을 단호히 수호하였다.

이 회의에서 투쟁의 결과,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수정주의 노선과 관점은 기본적으로 부정되었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이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회의가 채택한 성명에 구현된 혁명 원칙은 전 세계 형제당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세계 평화, 민족 해방, 인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강력한 무기이며, 각국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현대수정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이 회의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한 형제당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일련의 잘못된 관점을 엄숙하게 비판하였고, 소련공산당 지도부로 하여금 형제당들의 많은 올바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잘못에 대해 조금도 비판할 수 없고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말하면 곧 결정되는 것으로 여기던 극히 비정상적인 국면을 깨뜨렸다. 이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일이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중국공산당 대표단이 이 회의에서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스스로 얼굴을 때려 부풀리고 뚱뚱한 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회의는 또한 형제당들이 서로 연합하면서도 독립적이고 평등한 원칙, 협상을 통해 일치를 이루는 원칙을 구현하였으며,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다수로 소수를 억누르고 자신의 의견을 형제당에 강요하려 했던 잘못된 수법을 좌절시켰다. 이 회의는 또다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으로서 형제당 간의 이견을 해결할 때 원칙을 견지하고, 투쟁을 견지하며, 단결을 견지하는 것이 완전히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 수정주의의 체계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1960년 성명에 서명한 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실이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정반대로, 속임수를 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소련공산당 지도부이다.

일련의 사실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1960년 형제당 회의에서 성명 초안의 잘못된 논점을 삭제·수정하는 데 동의한 것은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으며, 그들이 형제당의 올바른 논점을 받아들인 것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형제당이 공동으로 합의한 문건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1960년 성명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그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12월 1일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를 대표하여 성명에 서명하고, 24시간이 지난 뒤 동일한 흐루쇼프가 각국 형제당 대표단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형제당의 합의를 위반하면서, 유고슬라비아가 사회주의 국가라고 마구 떠들어댔다.

81개 형제당 회의 이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갈수록 방자하게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을 파괴하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한편으로 성명이 선포한 전 세계 인민의 적인 미 제국주의를 친구로 간주하여 “미·소 협력”을 선전하고, 케네디와 함께 “신뢰와 상호 이해, 우정의 튼튼한 다리를 놓는 데 착수”할 것이라고 표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형제당과 형제국가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소련과 알바니아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1961년 10월에 열린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는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킨 새로운 절정이었다. 이는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부터 점차 발전시켜 온 수정주의를 스스로 완전한 체계로 형성한 이정표이다.

이 대회에서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알바니아 노동당에 대한 대규모의 공개 공격을 감행하였다. 흐루쇼프는 발언에서 호자 동지와 셰후 동지의 지도부를 타도할 것을 공개적으로 호소하기까지 하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렇게 한 당의 대회를 이용하여 형제당을 공개 공격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이 대회에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저지른 또 하나의 큰 일은, 스탈린 서거 8년 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지 5년 후에, 또다시 집중적으로 대대적으로 스탈린을 반대한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렇게 한 것은 결국 선언과 성명을 내팽개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반대하며, 체계적인 수정주의 노선을 밀어붙이기 위해서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수정주의는 이 대회에서 통과된 새로운 소련공산당 강령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의 노선을 “각국 공산당 대표 회의에서 찬성을 얻었고, 선언과 성명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렇게 말하면서 너무 부주의하다고 느끼지 않는가? 어떻게 1961년에 일어난 일이 1960년, 심지어 1957년 각국 공산당·노동자당 대표 회의에서 “찬성을 얻었다”거나 “반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그런 터무니없는 자화자찬은 우선 제쳐놓더라도, 먼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에서 통과된 소련공산당 강령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물건인가 하는 점이다.

소련공산당 강령과 흐루쇼프의 보고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연구해보면,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내놓은 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리와 선언 및 성명의 혁명 원칙을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철두철미한 수정주의 강령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강령은 많은 중대한 원칙 문제에서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을 위반한다. 1960년 형제당 회의에서 부정되었던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많은 오류 관점이, 또다시 소련공산당 강령에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어, 평화공존을 대외정책의 총원칙으로 내세우고, 평화적 이행의 가능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며, 사회주의 국가가 자력갱생을 위주로 하는 건설 방침을 ‘단독 행동’이라고 비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강령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래 집행해온 오류 노선을 더욱 체계화한 것으로, 그 주요 내용은 이른바 ‘평화공존’, ‘평화경쟁’, ‘평화적 이행’이다.

이 강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학설, 프롤레타리아 정당에 관한 학설을 난폭하게 수정하고, 소련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미 필요 없어졌다고 선언하며, 소련공산당의 프롤레타리아 전위대라는 성격이 이미 바뀌었다고 선언하면서, ‘전인민국가’와 ‘전인민의 당’이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이 강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투쟁 학설을 휴머니즘으로 대체하고, 부르주아지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로 공산주의 이상을 대체한다.

이 강령은 여전히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 고통받는 세계 인구 3분의 2의 인민이 혁명을 수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강령이며, 이미 사회주의 길에 올라선 세계 인구 3분의 1의 인민이 혁명을 철저히 수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강령이며, 자본주의를 보존하고 회복시키려는 수정주의 강령이다.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의 오류를 단호히 반대한다. 초청을 받아 이번 대회에 참석한 중국공산당 대표단 단장 저우언라이 동지는 축사에서 우리 당의 입장을 표명하였으며, 그 후 흐루쇼프 및 다른 소련공산당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도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오류를 솔직하게 비판하였다.

중국공산당 대표단과의 회담에서 흐루쇼프는 중국공산당 대표단의 비판과 권고를 완전히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공산당 내의 반당 분자들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표시했다. 흐루쇼프는 조금도 숨김없이 다음과 같은 뜻을 밝혔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그들이 “스탈린과 다른 길”, 즉 수정주의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는 형제당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는 “당시 중국공산당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 우리는 좋아졌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흐루쇼프의 이러한 말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미 수정주의와 분열주의의 길을 따라 걸어가기로 결심했음을 나타낸다. 중국공산당이 아무리 여러 번 동지적으로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조금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반대하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는 역류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 이후 중소 양당 관계 개선과 형제당, 형제국가의 단결 강화를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였다”고 사람들이 믿도록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이것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도대체 어떠한가?

사실상,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 이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스스로 제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완전히 이탈한 체계적인 수정주의 노선을 추진하기 위해 더욱 제멋대로 형제당, 형제국가 관계의 규범을 파괴하고 대국배외주의, 분파주의, 분열주의 정책을 실행했다. 이로 인해 중소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형제당, 형제국가의 단결은 엄중한 손상을 입었다.

다음은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 이래,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중소 단결과 형제당, 형제국가의 단결을 파괴한 주요 사실들이다.

첫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자신의 오류 노선을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강요하려고 획책했으며, 자신의 수정주의 강령으로 선언과 성명을 대체하려고 획책했다. 그들은 자신의 오류 노선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최근 몇 년간의 전면적인 레닌주의 방침”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수정주의 강령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공산당 선언”이라 하며, “공산당과 노동자당 및 사회주의 우호 공동체 여러 나라 인민”의 “공동 강령”이라고 말한다.

어느 한 형제당이든, 소련공산당의 오류 노선과 강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리와 선언 및 성명의 혁명 원칙을 견지하기만 하면,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그 당을 적으로 간주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대하고, 공격하고, 해치고, 그 지도부를 전복시키려 한다.

둘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형제당, 형제국가 관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을 감행하여, 사회주의 국가인 알바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셋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중국에 계속 압력을 가하면서 중국공산당을 악독하게 공격하였다. 1962년 2월 22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이른바 “특수한 입장”을 취하고, 형제당들의 공동 방침과 다른 노선을 실행한다고 비난하였으며, 우리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알바니아 노동당을 지지하는 것까지 하나의 죄목으로 삼았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또한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입장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려 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이 줄곧 견지해온, 선언과 성명의 혁명 원칙에 완전히 부합하는 노선을 포기하게 하고,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오류 노선을 받아들이며, 그들이 형제당·형제국가 관계의 준칙을 파괴한 기성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하여, 이를 중소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삼으려 하였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이 시기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 1962년 10월 흐루쇼프가 주소련 중국대사에게 단결을 바란다는 등의 말을 한 일 등을 마구 떠벌렸으나, 실은 모두 이 비열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넷째,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뉴질랜드 등 형제당들이 각국 형제당 대표회의를 소집하자고 제안한 것을 거부하였고, 또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1962년 4월 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형제당 회의 준비를 위해 제출한 다섯 가지 적극적 제안도 거부하였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62년 5월 30일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회신에서, 심지어 알바니아 동지들이 반드시 자기 입장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소련-알바니아 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이자 형제당 회의 소집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삼았다.

다섯째, 1962년 4월에서 5월 사이에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신장(新疆)에 주재하는 자국의 기관과 인원을 통해 이리(伊犁) 지역에서 대규모 전복 활동을 벌였고, 수만 명의 중국 국민을 유인하고 협박하여 소련 국경 안으로 도주하게 하였다. 중국 정부가 여러 차례 항의하고 교섭을 벌인 뒤에도, 소련 정부는 “소비에트 법치 감각”, “인도주의”를 구실로 이들 중국 국민의 송환을 거부하였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 관계에서 전례가 없는, 경악스러운 사건이다.

여섯째, 1962년 8월경 소련 정부는 중국에 대해, 소련이 미국과 핵 확산 방지에 관한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공식 통보해 왔다. 이는 소련과 미국이 공모하여 핵무기를 독점함으로써, 중국이 미국의 핵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를 박탈하려는 시도였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거듭 항의하였다.

일곱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미 제국주의와 정치적 거래를 하는 데 점점 더 몰두하여, 오로지 케네디와 반동적인 동맹을 맺으려 하였고,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도 아끼지 않았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카리브 해 위기에서 미 제국주의의 핵 공갈에 굴복하고, 쿠바의 주권을 침해하는 “국제 사찰”을 미국 정부가 제안한 대로 받아들여 투항주의적 오류를 범한 것이 그 두드러진 사례이다.

여덟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인도 반동파와 결탁하는 데 점점 더 몰두하여, 오로지 네루와 반동적인 동맹을 맺어 사회주의 중국을 반대하려 하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그들의 신문·잡지는 공개적으로 인도 반동파 편에 서서 중인 국경 충돌에서의 중국의 정의로운 입장을 비난하고 네루 정부를 변호하였다. 소련의 대인도 경제 원조는, 3분의 2가 인도 반동파가 중인 국경 충돌을 도발한 이후에 인도에 제공된 것이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1962년 가을 중인 국경에서 대규모 무력 충돌이 발생한 이후에도 인도 반동파에게 군사 원조를 제공하기까지 하였다.

아홉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집단과 결탁하는 데 점점 더 몰두하여, 오로지 반역자 티토와 반동적인 동맹을 맺어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을 반대하려 하였다.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 이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1960년 성명을 공공연히 찢어버리고 티토 집단을 위해 사건을 뒤집었다.

열째, 1962년 11월부터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국제적 범위에서 중국공산당과 그 밖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을 더욱 맹렬하게 반대하며,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는 새로운 역류를 일으켰다. 흐루쇼프는 연거푸 연설을 발표했고, 소련 신문·잡지는 수백 편에 달하는 글을 쉴 새 없이 실으면서 일련의 문제들에서 중국공산당을 공격하였다.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의 지휘 아래,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독일민주공화국 등 다섯 개 형제당의 대회는 반중국 대공연의 무대로 변해버렸고, 40여 개의 형제당들이 결의, 성명, 글을 발표하여 중국공산당과 그 밖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을 공격하였다.

위에 열거한 이러한 사실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철의 사실들은 그들이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 이후에 기울였다는 “새로운 노력”이 중소 관계를 개선하고 형제당과 형제국가의 단결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미 제국주의, 인도 반동파, 그리고 반역자 티토 집단과 더한층 결탁하여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더욱 분열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 속에서 중국공산당은 일부 형제당의 공격에 대해 공개적으로 답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1962년 12월 15일부터 1963년 3월 8일까지 일곱 편의 답변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들에서 우리는 여전히 여지를 남겨 두어,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명 비판을 하지는 않았다.

비록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과오로 인해 중소 관계가 이미 심각하게 악화된 지경에 이르렀지만,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대표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중소 양당 회담을 열기로 동의하였고, 또한 회담에서 체계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하여, 6월 1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회신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 총노선에 관한 제안을 제출하였다.

그 후의 사실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견을 해소하고 단결을 강화하는 데 조금도 진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소 양당 회담을 그들이 중소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으로 이용하였음을 보여 주었다.

중소 양당 회담을 앞두고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결의를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공개적으로 중국공산당을 지명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주소 중국 대사관 직원과 연구생을 무리하게 추방했다.

중소 양당 회담 기간 중, 7월 14일, 즉 미·영·소 3국 회담을 앞두고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서둘러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각급 당조직과 전 당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여 중국공산당을 마구 공격했다. 이는 또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환심을 사며 바친 “귀중한” 선물이었다.

그 직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공공연히 소련 인민의 이익을, 중국 인민을 포함한 사회주의 진영 각국 인민의 이익을, 전 세계 평화 애호 인민의 이익을 팔아넘기고, 미·영 양국과 모스크바에서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에 서명했다. 소련-인도 간의 빈번한 접촉, 흐루쇼프의 유고슬라비아 “휴가”, 소련 신문·잡지에서의 광적인 반중국 운동 전개…… 일련의 사건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국주의, 각국 반동파, 배신자 티토 집단과 연합하여 사회주의 형제국가를 반대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을 반대한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소련공산당 지도부 수정주의 및 분열주의 노선의 대폭로이다.

현재 제국주의, 각국 반동파, 수정주의자들의 “반중국 합창”이 매우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다. 흐루쇼프가 이끄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대오를 분열시키는 운동은 나날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

7년간의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이상에서 상세히 이견의 기원과 이견의 발전을 돌아보았다. 그 목적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에 의해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아 우리 당원과 우리 인민, 나아가 전 세계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와 혁명 인민으로 하여금 진상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7년간의 사실은 충분히 증명한다. 중소 양당 사이에, 국제 공산주의 운동 속에서 이견이 생겨난 것은 전적으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의 혁명적 원칙으로부터 이탈하여 국제 공산주의 운동 속에서 수정주의적이고 분열주의적인 노선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수정주의, 분열주의의 길을 따라 점점 더 멀리 나아간 과정이 곧 이견이 발전하고 격화된 과정이다.

7년간의 사실은 충분히 증명한다. 현재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견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것과 수정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것의 이견이다. 이것은 혁명 노선을 견지하는 것과 혁명하지 않고 혁명을 반대하는 노선을 견지하는 것의 이견이다. 이것은 제국주의 반대 노선을 견지하는 것과 제국주의에 투항하는 노선을 견지하는 것의 이견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견지하는 것과 대국배외주의, 분파주의 및 분열주의를 견지하는 것의 이견이다.

7년간의 사실은 충분히 증명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걸어온 길은 제국주의와 연합하여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미국과 연합하여 중국을 반대하고, 각국 반동파와 연합하여 세계 인민을 반대하고, 배신자 티토 집단과 연합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을 반대하는 길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 잘못된 노선은 이미 국제적으로 수정주의 사조를 범람하게 하였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전례 없는 심각한 분열 위험에 직면하게 하였으며, 각국 인민의 세계 평화, 민족 해방, 인민 민주, 사회주의 쟁취 사업을 엄중히 훼손하였다.

7년간의 사실은 또한 충분히 증명한다. 중국공산당은 사태의 악화를 막고, 원칙을 견지하며, 이견을 해소하고, 단결을 강화하여, 공동으로 적에 대처하기 위해 일련의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는 매우 극도로 자제했으며 인의(仁義)를 극진히 다했다.

중국공산당은 예로부터 중소 양당, 양국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중국공산당은 위대한 레닌이 창건한 소련공산당에 대해 줄곧 존중해 왔다. 우리는 위대한 소련공산당과 위대한 소련 인민에 대해 깊은 프롤레타리아적 감정을 품어왔다. 소련공산당과 소련 인민이 거둔 성취에 대해 우리는 항상 기뻐했으며,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해치는 잘못에 대해서는 항상 괴로워했다.

중국공산당원들이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잘못을 발견한 것은 오늘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때부터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수정주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우려하며 주시해 왔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여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당은 몇십 차례나 반복하여 고려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를 따라가서 모든 것을 그들의 의견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고려해 보았다. 물론 그렇게 하면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기뻐할 것이지만, 우리 자신이 수정주의자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잘못에 침묵할 수 있을지도 고려했다.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잘못이 우연적이거나 개별적이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 전체의 이익을 해치는 일련의 원칙적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그러한 잘못에 대해, 국제 공산주의 운동 대오의 일원으로서 어찌 무관심하고 침묵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수호할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또한 우리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잘못을 비판하면 그들의 보복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불가피하게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 심각한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도 고려했다. 그러나 공산당원이 보복적 타격이 두려워서 진리를 고수하지 못하는 민족 이기주의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공산당원이 원칙을 거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또한 소련공산당이 레닌이 창건한 당이고 첫 사회주의 국가의 당이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전 세계 인민들 사이에서 높은 위신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그러므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그들을 비판할 때 특히 신중했고, 특히 인내심을 가지고 임했으며,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해 중소 양당 지도자의 내부 회담 범위로 국한시켰고,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해 이견이 내부 토론을 통해 해결될 수 있도록 하면서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책임 동지들이 수십 차례의 내부 회담에서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행한 동지적 비판과 권고는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돌아오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수정주의와 분열주의의 길로 갈수록 더 멀리 나아갔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우리의 호의적인 권고에 보답하기는커녕 우리에게 일련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압력을 가했으며, 우리에게 갈수록 난폭한 공격을 퍼부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에게는 한 가지 나쁜 버릇이 있다. 누가 그들을 비판하면, 그에게 함부로 모자를 씌우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들은 반소를 한다!” 틀렸다. 친구들이여, ‘반소’라는 모자는 우리 머리에 씌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당신들의 오류를 비판하는 것은 바로 위대한 소련공산당과 위대한 소련을 지키기 위해서이며, 바로 소련공산당과 소련의 위신이 당신들에 의해 엉망으로 짓밟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말해, 진정으로 반소를 하고, 소련공산당과 소련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소련공산당과 소련에 먹칠을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가 스탈린을 전면 부정한 때부터 당신들은 끊임없이, 셀 수 없이 이런 나쁜 짓을 해왔다. 당신들은 볼가 강의 물을 모두 동원해도 당신들이 소련공산당과 소련에 가져온 치욕을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들은 지도권을 다툰다!” 틀렸다. 친구들이여, 당신들의 이런 비방은 정말로 너무 서투르다. 당신들의 말대로라면 마치 누군가 당신들과 이른바 ‘지도권’을 다투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이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이른바 ‘지도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바로 그 ‘지도권’이 당신들 손에 있다고 큰소리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선언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들이 이렇게 상전 당 행세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주아주 나쁜 버릇이다. 이것은 완전히 불법적이다.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은 각국 공산당은 독립적이고 평등하다고 분명히 규정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형제당 사이에는 본래 지도당과 피지도당의 관계가 존재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상전 당과 아들 당의 관계가 존재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여태껏 어느 한 당이 다른 형제당을 지휘하는 것을 반대해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른 형제당을 지휘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러니 지도권을 다툰다는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 국제 공산주의 운동 앞에 놓인 것은 이 당 혹은 저 당이 지도하는 문제가 아니라, 끝내 수정주의의 지휘봉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선언과 성명의 혁명 원칙을 견지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 노선을 견지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우리가 소련공산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형제당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자신들의 수정주의 및 분열주의 노선을 형제당에 강요하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선언과 성명이 규정한 형제당의 독립적·평등적 지위일 뿐이며, 오로지 각국 형제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초 위에서 단결하는 것일 뿐이다.

현재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대논쟁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일수로 도발하고 확대시킨 것이며,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미 우리에게 대규모 공격을 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갖가지 모함을 퍼부었으며, 이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공개적으로 배반하고, 선언과 성명을 공개적으로 찢어버렸다면, 그들은 우리가 답변하지 않고, 유언비어를 반박하지 않으며, 선언과 성명을 수호하지 않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호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논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반드시 시비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중국공산당원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장래에도 원칙을 견지하고 단결을 견지할 것이다. 우리가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논쟁을 벌일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깨닫기를 바라는 바이다. 당신들이 혁명도 원하지 않고, 전 세계 혁명 인민도 원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단결도 원하지 않은 채 오로지 미 제국주의, 각국 반동파 및 배반자 티토 집단과 협력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극도로 위험한 길이다.

중소 양국 인민의 이익, 사회주의 진영의 이익,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익, 전 세계 인민의 이익은 모두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당이 단결하여 공동의 적을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오류를 시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궤도로 돌아오며,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의 궤도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지금 중요한 시기에 처해 있다. 현재의 논쟁은 프롤레타리아트 세계 혁명의 전도와 인류의 운명에 관계된다. 역사는 증명할 것이다. 이 대논쟁을 거쳐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할 것이며,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와 전 세계 인민의 혁명 사업은 더욱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