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을 평함
PeopleMao Zedong, Nikita Khrushchev, Joseph Stalin, Deng Xiaoping TermsNine Commentaries, Revisionism, Peaceful Coexistence, Cult of Personality, Titoism, De-Stalinization EventsThe Sino-Soviet Split, The Twentieth Party Congress and the Secret Speech
6평 —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 평화공존 정책 (1963년 12월 12일)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래, 평화공존 문제는 흐루쇼프 등 동지들이 가장 많이 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입버릇처럼 자신들이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에 충실하며 그것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그들은 세계 각국 인민이 오랜 혁명 투쟁을 거쳐 쟁취한 일련의 승리를 모두 자신들의 ‘평화공존’ 공로장에 올려놓는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제국주의, 특히 미 제국주의가 평화공존에 찬성한다고 마구 선전하며, 중국공산당과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평화공존을 반대한다고 마구 비방한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심지어 중국이 제국주의와 “전쟁 발발 경쟁을 벌이자”고 주장한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저버리고,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저버리며, 전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사업을 저버린 수많은 언행을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공존’이라는 이 몇 글자가 과연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배반한 데 대한 일종의 호신부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없다, 될 수 없다, 절대로 될 수 없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평화공존 정책이 놓여 있다.
하나는 레닌과 스탈린의 평화공존 정책이며,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원을 포함한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평화공존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반레닌주의적 평화공존 정책이며, 이것이 바로 흐루쇼프 등이 주장하는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이다.
이제 우리는 레닌과 스탈린의 평화공존 정책이 어떠한 정책이며, 흐루쇼프 등의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은 또 어떤 물건인지 살펴보겠다.
레닌과 스탈린의 평화공존 정책
사회주의 국가가 상이한 사회 제도를 가진 나라들에 대해 평화공존 정책을 실시한다는 사상은 레닌이 제기한 것이다. 이 올바른 정책은 레닌과 스탈린의 지도 아래 소련공산당과 소련 정부가 장기간 실시한 정책이다.
10월 혁명 이전에는 세계에 사회주의 국가가 전혀 없었으므로,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평화공존 문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이 1915년과 1916년에 제국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근거하여 레닌은 다음과 같이 예견하였다. “사회주의는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승리할 수 없다. 그것은 우선 하나의 또는 몇 개의 나라에서 승리할 것이며, 그 나머지 나라는 일정한 시기에 여전히 부르주아적 국가이거나 부르주아 이전 시기의 국가로 남을 것이다.”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 강령」, 《레닌전집》 제23권, 제75쪽.) 이는 곧 한 시기 동안 세계에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 및 전(前)자본주의 국가와 동시에 병존하는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제도의 본질은 사회주의 국가가 오직 평화적 대외 정책만을 실시할 수 있음을 결정한다. 레닌은 “오직 노동계급만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 말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평화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레닌: 「현재 정치 정세에 관한 결의 초안」, 《레닌전집》 제25권, 제309쪽.) 레닌의 이러한 관점이 평화공존 정책의 사상적 기초라고 말할 수 있다.
10월 혁명 승리 후, 레닌은 소비에트 국가의 평화적 대외 정책을 전 세계에 여러 차례 선언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은 오직 갓 태어난 사회주의 공화국을 요람에서 질식시키려고만 하였다. 그들은 소비에트 국가에 무력 간섭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레닌이 지적한 것과 같이, “무장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을 방어하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레닌이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제8차 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의 총결 보고」, 《레닌전집》 제29권, 제128쪽.)
1920년이 되어서야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은 제국주의의 무력 간섭을 물리쳤다. 소비에트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 일정한 상대적 균세가 형성되었다. 몇 년간의 실제적 접전을 거쳐 소비에트 국가는 발판을 굳혔다. 소비에트 국가는 전쟁에서 평화적 건설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레닌은 평화공존 정책 사상을 제기하였다. 사실상, 바로 이때부터 제국주의도 소비에트 국가와의 ‘공존’을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레닌이 생존할 때, 이러한 균세는 언제나 극히 불안정하였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심각한 자본주의 포위 속에 처해 있었다. 레닌은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 때문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 국면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는 담보할 수 없다고 여러 번 지적하였다.
당시의 역사적 조건에서 레닌은 상이한 사회 제도 국가 간 평화공존 정책의 상세한 내용을 규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레닌은 이미 첫 번째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위해 올바른 대외 정책을 제정하였고, 평화공존 정책의 기본 사상도 제기하였다.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에 관한 기본 사상은 무엇인가?
첫째, 레닌은 사회주의 국가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의 의사에 반한다고 지적하였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가 평화적 대외 정책을 견지하며 실시하지만, 제국주의는 좀처럼 사회주의 국가와 평화공존하려 하지 않으며, 항상 모든 가능성을 이용하고 모든 기회를 붙잡아 사회주의 국가를 반대하고 나아가 소멸시키려 한다.
레닌은 이렇게 말하였다. “국제 제국주의의 객관적 지위로 보나 그것이 체현하는 저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리익으로 보나, 그것은 소비에트 공화국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한다.” (레닌이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제7차 대회에서 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보고」, 《레닌전집》 제27권, 제80쪽.)
레닌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소비에트 공화국과 제국주의 국가가 장기적으로 병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결말은 이것이 승리하느냐 저것이 승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결말이 아직 오지 않은 동안 소비에트 공화국과 부르주아 국가들 사이의 가장 무시무시한 충돌은 불가피하다.”(레닌이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제8차 대표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총결 보고」, 《레닌전집》 제29권, 제128쪽 내지 제129쪽.)
때문에 레닌은 사회주의 국가가 제국주의에 대해 항상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노동자와 농민이 명심해야 할 교훈은 바로 항상 경계하고, 우리가 공공연하게 극도의 증오심을 표현하는 사람들, 계급, 정부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어떠한 침략이라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레닌이 전러시아 소비에트 제9차 대표대회에서 한 보고: 「공화국의 대내 및 대외 정책에 관하여」, 《레닌전집》 제33권, 제121쪽.)
둘째, 레닌은 소비에트 국가가 제국주의 국가와 평화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소비에트 국가가 올바른 정책을 취하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피압박 민족의 지지에 의지하며, 제국주의의 모순을 이용하여, 제국주의 국가들과 반복적으로 겨룬 결과이다.
레닌은 1919년 11월에 이렇게 말했다. “적을 아프게 때리면 그가 와서 강화를 청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우리는 유럽 제국주의자 나리들에게 평화에 동의한다고 한 번 이상 말했지만, 그들은 러시아를 노예로 만들려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환상이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레닌: 「전러시아 당 농촌사업 제1차 회의에서의 연설」, 《레닌전집》 제30권, 제123쪽 내지 제124쪽.)
레닌은 1921년에 지적했다. “각 제국주의 강국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해 이를 갈며 증오하고 소비에트 러시아를 공격하려고 획책했지만, 그들은 이 생각을 포기했다. 자본주의 세계의 분열과 붕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단결은 갈수록 약화되는 반면, 10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온갖 압박을 받는 식민지 각국 인민들의 저항은 해가 갈수록, 달이 갈수록, 심지어 주가 갈수록 더욱 격렬해졌기 때문이다.”(레닌: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제10차 전국대표회의 폐회사」, 《레닌전집》 제32권, 제427쪽.)
셋째, 레닌은 평화공존 정책을 실행할 때 자본주의 세계의 서로 다른 유형의 국가들에 대해 서로 다른 방침을 취했다.
레닌은 제국주의에게 모욕과 압박을 받는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특히 중시했다. 그는 “일체의 제국주의 압박을 받는 민족의 근본 이익은 일치한다”, “제국주의의 세계 정책은 곧 모든 피압박 민족의 접근, 연맹과 우호를 촉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에트 국가의 평화 정책은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이 그 주변의 갈수록 많은 이웃 나라들과의 연계를 날로 긴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레닌이 전러시아 소비에트 제8차 대표대회에서 한 「인민위원회 사업에 관한 보고」, 《레닌전집》 제31권, 제445쪽 내지 제446쪽.)
레닌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제시한 주요 임무는, 착취자를 타승하고 동요하는 자들을 쟁취하는 것이며, 이는 세계적 임무이다. 많은 부르주아 국가들이 바로 동요하고 있는데, 부르주아 국가로서 그들은 우리를 증오하지만, 피압박 국가로서 그들은 차라리 우리와 평화를 이루려고 한다.”(레닌: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사업에 관하여」, 《레닌전집》 제30권, 제292쪽.)
제국주의 국가, 예컨대 미국에 대해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평화를 유지하는 기초는, “미국 자본가들이 우리를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쪽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다른 어떤 나라의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자본가 쪽의 제국주의야말로 장애이다.”(레닌: 「미국 《뉴욕 이브닝 저널》 기자에게 답함」, 《레닌전집》 제30권, 제333쪽 내지 제334쪽.)
넷째, 레닌이 제시한 평화공존 정책은, 정권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서로 다른 사회제도의 국가 관계를 처리하는 방면의 정책이다. 그는 평화공존 정책을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전부 내용으로 삼은 적이 전혀 없다. 레닌은 거듭 명확하게,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고 지적했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전 세계 노동자가 자본주의 제도를 타도하는 간고한 투쟁을 벌이는 것을 도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긍지라고 생각한다.”(레닌: 「코민테른 제4차 세계대표대회와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붉은 군대 대표 소비에트에 보냄」, 《레닌전집》 제33권, 제375쪽 내지 제376쪽.)
레닌은 10월 혁명 후에 발표한 평화 법령에서, 모든 교전국에 영토 할양 없는 배상 없는 평화를 즉각 실현할 것을 제의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국가의 각성한 노동자들에게 “다방면으로 비할 데 없이 단호하고 과감한 행동으로, 우리가 평화 사업과 착취당하는 근로 대중을 모든 노예 상태와 모든 착취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업을 성과 있게 끝까지 수행하도록 도울 것”을 호소했다.(레닌이 전러시아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 제2차 대표대회에서 한 「평화 문제에 관한 보고」, 《레닌전집》 제26권, 제229쪽.)
레닌이 러시아공산당 제7차 대표대회를 위해 기초한 당 강령 초안에서, “선진 국가들의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모든 국가 특히 식민지와 종속국의 민주 운동과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는 것은 당의 국제 정책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레닌전집》 제27권, 제144쪽.)
다섯째, 레닌은 언제나 피압박 계급과 압박 계급, 피압박 민족과 압박 민족은 평화공존할 수 없다고 보았다.
레닌은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기본 임무에 관한 테제 초안」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가장 계몽적이고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지조차도 이제는 생산수단 사유제의 파멸을 구하기 위해 그 어떤 기만과 범죄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수백만 노동자와 농민을 도살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 레닌의 결론은 이렇다. “자본가들이 다수의 피착취자의 의사에 평화적 방식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다거나, 평화적·개량주의적 길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은 모두 극단적 속물의 어리석은 짓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공공연한 기만이며 자본주의 고용 노예제에 대한 미화이고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레닌전집》 제31권, 제163쪽.)
레닌은 제국주의의 이른바 민족 평등의 허위성을 거듭 폭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연맹과 협상국의 전후 모든 정책은 선진국 프롤레타리아트와 식민지·종속국 모든 근로대중의 혁명 투쟁을 도처에서 강화시켰으며,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 각 민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고 일률적으로 평등할 수 있다는 속물적 민족 환상의 파산을 앞당겼고, 그로써 더욱 분명하고 더욱 예리하게 이 진리를 드러냈다.” (레닌: 「민족 및 식민지 문제 테제 초안」, 《레닌전집》 제31권, 제126쪽.)
이상이 바로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에 관한 기본 사상이다.
스탈린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견지했다. 스탈린은 소련 지도자로 재임한 30년 동안 줄곧 이러한 평화공존 정책을 실시했다. 오직 제국주의와 반동파가 소련에 침략 전쟁을 일으키거나 무력 도발을 감행했을 때만, 소련은 부득이하게 조국 전쟁과 자위 반격을 수행해야 했다.
스탈린은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나라와 자본주의 국가들의 관계의 기초는 두 개의 대립된 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각 자본주의 국가들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임무이다.” (스탈린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제15차 대회에서 행한 「중앙위원회의 정치 보고」, 《스탈린전집》 제10권, 제246쪽.)
스탈린은 또 이렇게 지적했다. “쌍방이 협력할 의사를 가지고 맡은 의무를 이행하기로 결심하며, 평등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자본주의 제도와 공산주의 제도의 평화공존은 완전히 가능하다.” (스탈린: 「미국 신문계 일부 편집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답변하여」, 《프라우다》 1952년 4월 2일.)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스탈린은 제국주의에 아부하여 각국 인민의 혁명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그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대외 정책이 존재하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혁명 정책을 집행하여 각국 프롤레타리아와 피압박 민중을 소련 노동계급의 주위에 단결시킬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국제 자본이 우리의 전진을 백방으로 방해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혁명 정책을 포기하고 국제 자본에 일련의 원칙적 양보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국제 자본은 대체로 우리를 ‘도와서’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를 ‘선량한’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변질시키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스탈린은 예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우리가 원칙적으로 타국 노동계급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면서, 우리가 이런 양보를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 우리는 아마도 이런 양보를 할 수 있을까?”
스탈린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우리는 이런 부류의 그 어떤 양보도 할 수 없으며, 자신을 배신할 수 없다.” (스탈린: 「중앙위원회 및 중앙통제위원회 4월 합동 전원회의 사업에 관하여」, 《스탈린전집》 제11권, 제47~48쪽.)
스탈린의 이 말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대한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참으로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대외 정책이 있으며, 또한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평화공존 정책이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정책을 잘 식별하고, 레닌과 스탈린의 정책을 견지하며, 스탈린이 신랄하게 규탄한 저 배반과 투항, 혁명을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선량한”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변질시키는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는 것은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의 중요한 임무이다.
중국공산당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견지한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은 중국공산당이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리며, 중국공산당이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반대한다고 비방한다.
사실이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사실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시종일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집행하여 중대한 성취를 거두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계급 역량 대비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했다. 사회주의가 일련의 국가에서 승리하여 사회주의 진영이 형성되었다. 민족해방운동은 전례 없이 발전하여 새롭게 정치적 독립을 획득한 일련의 민족주의 국가들이 출현했다. 제국주의 진영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고, 제국주의 각국 간의 모순도 날로 첨예화되었다. 이러한 정세는 사회주의 국가가 다른 사회 제도를 가진 국가와 평화공존 정책을 실행하는 데 더욱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이 새로운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는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앞둔 시기에 마오쩌둥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 세계에 성명한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제국주의 제도와 중국인민에 반대하는 그들의 음모 계획뿐이다. 어떤 외국 정부라도 중국 반동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더 이상 중국 반동파와 결탁하거나 원조하지 않으며, 인민의 중국에 대해 허위가 아닌 진정한 우호적 태도를 취한다면, 우리는 평등, 호혜, 영토 주권 상호 존중의 원칙에 기초하여 외교 관계 수립 문제를 협상할 용의가 있다. 중국인민은 세계 각국 인민과 우호 협력하며, 국제 통상 사업을 회복·발전시켜 생산 발전과 경제 번영을 도모하기를 원한다.”(마오쩌둥: 「신정치협상회의 준비회의에서 한 연설」, 《마오쩌둥 선집》 제4권, 제1470쪽.)
마오쩌둥 동지가 제시한 이 방침에 따라, 우리는 1949년 9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통과된 공동 강령에서, 그리고 이후 1954년 9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서 평화 외교 정책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중국 정부는 1954년에 유명한 평화공존 5개 원칙을 제창하였다. 그것은 상호 영토 완정과 주권 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 호혜, 평화공존이다. 1955년 반둥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함께 5개 원칙의 기초 위에서 공동으로 10개 원칙을 제정하였다.
1956년, 마오쩌둥 동지는 우리나라의 국제 사무 실천 경험을 총화하여 우리나라 대외 정책의 총방침을 다음과 같이 한층 더 천명하였다.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사회주의 진영 내 여러 형제국가와의 우호 협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와 평화적으로 공존하기를 원하는 모든 국가와 상호 영토 주권 존중 및 평등 호혜의 기초 위에서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도록 쟁취해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민족 독립 해방 운동, 그리고 세계 모든 국가의 평화 운동과 정의로운 투쟁에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마오쩌둥: 「중국공산당 제8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사」.)
1957년에 마오쩌둥 동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소련과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주의 국가와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기본 방침이며, 기본적인 이익이 있는 곳이다.”
“그다음으로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 및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와 인민이다. 우리는 그들과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서는, 우리 또한 그곳 인민과 단결해야 하며, 그러한 나라들과 평화공존하고, 약간의 장사도 하며, 발생 가능한 전쟁을 저지하도록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그들에 대해 어떤 비현실적인 환상도 품어서는 안 된다.”(마오쩌둥: 「인민 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
14년 동안 우리는 국제 사무에서 유형이 다른 국가에 대해, 그리고 같은 유형 국가의 서로 다른 상황에 대해 차별 대우하는 방침을 취해 왔다.
첫째,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를 구별한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상호 원조 원칙을 견지한다. 우리는 사회주의 진영 각국의 단결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우리 대외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삼는다.
둘째, 우리는 새로 정치적 독립을 얻은 민족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를 구별한다.
민족주의 국가의 사회 정치 제도는 사회주의 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제국주의와 깊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제국주의 반대, 민족 독립 수호, 세계 평화 수호 등 방면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공통된 이익을 가진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가 민족주의 국가와 평화공존 및 우호 협력 관계를 수립하는 데에는 광범위하고 현실적인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계의 수립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역량의 단결을 강화하고, 각국 인민의 제국주의 반대 공동 투쟁을 촉진하는 데 중대하고 적극적인 의의를 가진다.
우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과의 평화공존 및 우호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방침을 한결같이 견지해 왔다. 동시에, 인도와 같이 5개 원칙을 위반하고 파괴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필요하고도 적절한 투쟁을 진행하였다.
셋째, 우리는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를 구별한다. 또한 서로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차별 대우한다.
국제 계급 역량 대비가 점점 더 사회주의에 유리해지고, 제국주의 역량이 날로 약화하며 그들 상호 간의 모순이 날로 첨예화하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국가는 자체 역량의 장대, 각국 인민 혁명 역량의 발전, 민족주의 국가와의 단결,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의 투쟁에 의거하고, 제국주의 내부의 모순을 이용함으로써, 이 제국주의 국가든 저 제국주의 국가든 어느 정도의 평화공존 관계에 동의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상이한 사회 제도를 가진 국가와 평화공존을 견지하는 동시에, 우리는 흔들림 없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의무를 이행한다. 우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민족해방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서유럽, 북미, 대양주 각국의 노동자 운동을 적극 지지하며,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제국주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각국 인민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 진영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를 핵심으로, 단결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단결하여 미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를 반대하는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건립하는 것이다.
십여 년 이래, 중국 정부는 평화공존 5원칙에 따라 이미 많은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수립하고, 경제·문화 왕래를 발전시켜 왔다. 중국은 예멘, 미얀마, 네팔, 아프가니스탄, 기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가나 등 나라들과 잇달아 우호 조약, 평화 우호 조약 또는 우호 협력 및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또한 미얀마, 네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나라와 역사적으로 남겨진 국경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였다.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견지하여 이룩한 일련의 중대한 성과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중국이 평화공존을 반대한다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저의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까놓고 말해, 그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배반하고 제국주의와 결탁한 추악한 정체를 감추려는 데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진정으로 위반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그들의 평화공존을 여지없이 미화한다. 그들이 평화공존 문제에 관해 내세우는 주요 관점들은 무엇인가?
(1)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이 당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고 원칙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평화공존이 “현시대의 지고무상한 절대 명령”이며 “시대의 무조건적 요구”①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한 “평화공존은 사회가 직면한 가장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고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길”②이며, 평화공존 원칙이 마땅히 “당대 사회생활 전체의 기본 법칙”③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제국주의가 이제는 이미 평화공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평화공존의 장애가 더 이상 아니라고 여긴다. 그들은 “적지 않은 서방 국가들의 정부와 국가 지도자들이 현재 평화와 평화공존을 주장하고 있다”④, “평화공존의 필요성을 점점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⑤고 말한다. 그들은 특히 미국 대통령이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국가들 간의 평화공존의 합리성과 현실성을 인정했다”⑥고 선전한다.
(3)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제국주의 국가, 특히 미국과 “전면적 협력”을 실행할 것을 주장한다. 그들은 소련과 미국 두 나라가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일치된 행동과 노력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다”⑦, “평화를 공고히 하고 모든 나라의 진정한 국제 협력을 건설하기 위해 손잡고 나아갈 수 있다”⑧고 말한다.
(4)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이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 각국의 대외 정책 총노선”⑨이라고 여긴다.
(5)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또한 “평화공존 원칙이 소련공산당과 다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들의 대외 정책 총노선을 결정하고 있다”⑩며, 이것이 현재의 “공산주의의 전략적 기초”이며, 전 세계 공산당원들은 모두 “평화공존을 위한 투쟁을 자기 정책의 총원칙으로 삼아야 한다”⑪고 말한다.
(6)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을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전제로 간주한다. 그들은 각국 인민이 이룩한 일련의 승리가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나라들의 평화공존 조건 하에서 쟁취되었다”⑫고 생각한다. 그들은 “바로 상이한 사회제도 국가들의 평화공존 상황에서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했고, 알제리 인민이 민족 독립을 쟁취했으며, 40여 개 나라가 민족 독립을 이루었고, 각 형제당이 성장·장대해졌으며,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영향이 증대되었다”⑬고 말한다.
(7)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이 “국제 혁명 노동자 운동이 그 기본적 계급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⑭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평화공존 상황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경제 경쟁에서 거둘 승리가 “모든 자본주의 관계에 대한 파괴적인 타격을 의미할 것”⑮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에트 인민이 공산주의의 행복을 누리게 될 때, 세계에서는 또 수억 명의 사람들이 ‘우리는 공산주의를 찬성한다!’라고 말할 것이다.”⑯ 그때에는 자본가들조차 “공산당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보라,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러한 관점들이 도대체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과 무슨 공통점이 있느냐?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가 상이한 사회제도 국가들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취하는 정책인데, 흐루쇼프는 평화공존을 당대 사회생활의 최고 원칙이라고 말한다.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은 정권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정책의 한 측면인데, 흐루쇼프는 평화공존을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총노선으로 확대 해석하고, 나아가 전 세계 모든 공산당의 총노선으로까지 확대한다.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은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에 반대하는 것인데, 흐루쇼프의 ‘평화공존’은 제국주의의 필요에 부응하여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을 조장한다.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은 국제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출발하는데, 흐루쇼프의 ‘평화공존’은 국제적 범위에서 계급투쟁을 계급 협력으로 대체한다.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사회주의 국가는 평화공존 정책을 실행하는 동시에 모든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단호히 지지해야 한다. 그런데 흐루쇼프의 ‘평화공존’은 평화주의로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대체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저버린다.
흐루쇼프는 평화공존 정책을 계급 항복 정책으로 변질시켰다. 그는 평화공존의 명의를 이용하여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의 혁명 원칙을 저버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영혼을 거세하였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형편없이 왜곡하고 알아볼 수 없이 찬개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배반이다!
세 가지 원칙적 이견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우리, 그리고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및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사이의 평화공존 문제에 관한 이견은, 사회주의 국가가 평화공존 정책을 실시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도대체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어떻게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적 이견이다. 이 이견들은 주로 아래 세 가지 문제에 집중된다.
첫째 문제: 평화공존을 관철하기 위해,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 반동파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가? 평화공존을 실현하면,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사라질 수 있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는 일관되게,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 간에 평화공존을 실시하는 데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평화공존의 장애는 언제나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 반동파로부터 비롯되어 왔다.
평화공존 5원칙은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을 겨냥하여 제시된 것이다. 평화공존 5원칙에 따르면, 국제 관계에서 다른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침해하는 것,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 다른 나라의 이익과 평등한 지위를 훼손하는 것,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고 노예화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본성이다.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제국주의는 평화공존 5원칙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가능하기만 하면, 제국주의는 언제나 사회주의 국가를 파괴하고 나아가 소멸시키려 하며, 언제나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고 노예화하려 한다.
역사가 보여주는 바는, 오로지 여러 가지 불리한 객관적 원인 때문에 제국주의가 감히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전쟁을 모험하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정전하고 어느 정도의 평화공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또한 제국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사이에는 시종일관 첨예하고 복잡한 투쟁이 존재하며, 때로는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과 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래로, 열전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냉전을 지속해 왔으며, 제국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는 사실상 냉전 공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제국주의 국가는 적극적으로 군비 확장과 전쟁 준비를 하는 한편, 정치·경제·이데올로기 등 여러 면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반대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썼으며, 심지어 군사적 도발과 전쟁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제국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냉전을 수행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이러한 냉전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은 국제적 범위의 계급투쟁이 표현되는 방식이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침략 계획과 전쟁 계획을 추진하며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운동을 진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국가는 세계 각국 인민과 함께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과 전쟁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제국주의와 침예하게 대립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때로는 긴장되고 때로는 완화되면서 불가피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이러한 철의 사실을 도외시한 채, 한결같이 제국주의가 이미 평화공존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선전하며, 사회주의 국가와 전 세계 인민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평화공존 정책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흐루쇼프가 보기에,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 반동파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군사적 위협과 무장 공격을 가하거나, 혹은 사회주의 국가의 주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굴욕적인 요구를 제시할 때조차도, 사회주의 국가는 오로지 물러서고 또 물러서며, 타협하고 또 타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논리에 따라, 흐루쇼프는 자신이 카리브해 위기에서 걸음마다 물러서고 원칙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미 제국주의의 굴욕적인 요구를 고분고분 받아들인 것을 “평화공존의 승리”라고 부른다.
바로 이러한 논리에 따라, 흐루쇼프는 중국이 중-인도 국경 문제에서 올바른 원칙을 견지한 것과, 중국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도 반동파의 무장 공격에 대해 자위 반격을 단행한 것을 “평화공존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흐루쇼프 역시 때때로 두 가지 다른 사회 제도 간의 투쟁에 대해 말하지만, 그는 이 투쟁을 어떻게 간주하는가?
흐루쇼프는 “두 제도 사이의 피할 수 없는 투쟁이 오직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투쟁으로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⑰고 말한다.
여기에서 정치 투쟁은 사라져 버렸다!
흐루쇼프는 또한 “레닌의, 상이한 사회경제 구조와 정치 구조를 가진 국가들의 평화공존 원칙은 전쟁이 없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휴전 상태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이 국가들 사이에 우호적인 경제적·정치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전제로 하며, 다양한 형태의 평화적 국제 협력을 구축하고 발전시킬 것을 규정한다”⑱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투쟁도 사라져 버렸다!
흐루쇼프는 마술사처럼 이리저리 변하며 큰일을 작은 일로, 작은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사회주의 제도와 자본주의 제도의 근본적 대립을 말살하고,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의 근본적 모순을 말살하며, 국제적 범위의 계급투쟁을 말살하여, 두 제도와 두 진영 간의 평화공존을 “전면 협력”으로 바꾸어 버렸다.
둘째 문제: 평화공존이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총노선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총노선은 반드시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구현해야 하며, 반드시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이다.
레닌은 “선진국의 혁명가들 및 모든 피압박 민족과 동맹을 맺고, 모든 제국주의자들에 반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외 정책이다”(레닌: 「러시아 혁명의 대외 정책」, 《레닌 전집》 제25권, 제72쪽)라고 말했다. 레닌이 제시한 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은 마땅히 사회주의 국가 대외 정책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 진영이 형성된 이후, 모든 사회주의 국가의 대외정책은 세 가지 측면의 관계를 처리해야 한다. 즉,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국가들과의 관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과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기에, 사회주의 국가 대외정책의 총노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 아래에서 사회주의 진영 각국 간의 우호·상호원조·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 5개항 원칙에 기초하여 사회제도가 다른 국가들과의 평화공존을 추구하고 제국주의의 침략정책과 전쟁정책을 반대하는 것, 그리고 모든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투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내용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국가의 대외정책 총노선을 평화공존으로 일방적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단지 평화공존 관계란 말인가?
물론 사회주의 국가 간에도 서로 5개항 원칙을 준수해야 하며, 형제국가의 영토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형제국가의 독립 주권을 침해하거나, 형제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형제국가 내에서 전복 활동을 벌이거나, 형제국가 간 관계에서 평등과 상호이익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들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1957년 선언은 “이러한 원칙들은 매우 중요하지만, 아직 사회주의 국가 상호관계의 전체 본질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형제적 상호원조는 그들 상호관계의 분리할 수 없는 구성 부분이다. 이러한 상호원조는 사회주의 국제주의 원칙을 강력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평화공존을 대외정책의 총노선으로 삼는 것은, 실제로는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상호원조·협력 관계를 취소하고, 사회주의 형제국가들을 자본주의 국가처럼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사회주의 진영을 취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국가의 대외정책 총노선을 평화공존으로 일방적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피압박 인민 및 피압박 민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정권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와 아직 해방되지 못한 계급 형제들, 그리고 모든 피압박 인민 및 피압박 민족 사이의 관계가 상호 지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단지 평화공존 관계란 말인가?
10월 혁명 이후 레닌은 거듭 지적하기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한 사회주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추진하는 근거지라고 말했다. 스탈린도 이렇게 말하였다. “한 나라에서 승리한 혁명은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되며, 세계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가속화하기 위한 원동력이자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세계 혁명의 진일보한 발전을 위한 강력한 기지이다.” (스탈린: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략」, 《스탈린 전집》 제6권, 344쪽, 347쪽.)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의 대외정책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와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국가들과의 관계만을 처리해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와 피압박 인민 및 피압박 민족 간의 관계도 반드시 올바르게 처리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는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지지하는 것을 자신의 국제주의적 의무로서, 대외정책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레닌 및 스탈린과 반대로, 흐루쇼프는 평화공존을 사회주의 국가 대외정책의 총노선으로 삼았고, 이는 대외정책에서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지지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적 임무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평화공존 정책에 대한 이른바 ‘창조적 발전’이 아니라, ‘평화공존’을 구실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저버리는 행위다.
세 번째 문제: 사회주의 국가의 평화공존 정책은 전 세계 모든 공산당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각국 인민의 혁명을 대체할 수 있는가?
우리는 평화공존이란 서로 다른 사회제도를 가진 국가들 간의 관계, 즉 독립된 주권 국가들 간의 관계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혁명에서 승리한 이후에야 평화공존 정책을 실시할 가능성과 필요성을 갖게 된다. 모든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에게 그들의 임무는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의 통치를 전복하고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지, 제국주의 및 그 앞잡이들과 평화공존을 실현해야 하거나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평화공존을 피압박 계급과 압박 계급, 피압박 민족과 압박 민족의 관계로까지 확대 해석하거나, 사회주의 국가의 평화공존 정책을 자본주의 세계 각국 공산당과 혁명 인민의 정책으로 확대 적용하거나, 혹은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이 사회주의 국가의 평화공존 정책에 복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일관되게 생각하기를,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제국주의의 침략정책과 전쟁정책을 폭로하며,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인민과 국가를 단결시키는 데 유리하고, 이를 통해 각국 인민의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에도 유리하다고 본다. 동시에 각국 인민의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혁명 투쟁은 침략 세력, 전쟁 세력, 반동 세력을 직접 타격하고 약화시켜 세계 평화 사업과 인류 진보 사업에 유리하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가 서로 다른 사회제도를 가진 국가들과의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은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가 사회제도가 다른 나라들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과 각국 인민의 혁명은 결국 종류가 다른 두 가지 문제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6월 1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답신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회제도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 평화공존을 실시하는 것은 하나의 일이다. 평화공존은 공존하는 나라들의 사회제도에 털끝 하나조차 건드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또 전혀 불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각국의 계급투쟁, 민족해방투쟁,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또 다른 하나의 일이다. 이 투쟁들은 모두 사회제도를 바꾸기 위한 격렬하고도 생사를 건 혁명투쟁이다. 평화공존은 결코 각국 인민의 혁명투쟁을 대신할 수 없다. 어느 한 나라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오직 본국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계급사회에서 평화공존을 “사회가 직면한 가장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훌륭하고 유일하게 가능한 길”이라 간주하고, 평화공존을 “전체 현대 사회생활의 기본 법칙”으로 간주하는 이것은 계급투쟁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회평화주의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명백한 배반이다.
이미 1946년에 마오쩌둥 동지는 이 두 가지 종류가 다른 문제를 구별하고서 다음과 같이 명확히 지적한 바 있다. 즉, 소련이 미국, 영국, 프랑스와 몇몇 문제에서 달성한 타협은 “자본주의 세계 각국 인민에게 그에 따라 국내에서의 타협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국 인민은 여전히 다른 정황에 따라 다른 투쟁을 진행할 것이다.”(마오쩌둥: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한 몇 가지 평가」, 《마오쩌둥 선집》 제4권, 제1181쪽.)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올바른 방침이다. 바로 마오쩌둥 동지의 이 올바른 방침의 지도 아래, 중국 인민은 의연하고 단호하게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여 중국 혁명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방침과 상반되게,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미 정권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제도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처리하는 정책을 전 세계 모든 공산당의 총노선과 한데 뒤섞어, 전자로써 후자를 대체하려 하고, 각국 공산당과 혁명 인민이 일률적으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은 혁명하지 않으면서 남도 혁명하지 말라고 하고, 자신은 제국주의를 반대하지 않으면서 남도 제국주의를 반대하지 말라고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과 흐루쇼프의 최근 일부 연설들은 이를 부인하려고 힘쓰고 있다. 그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평화공존을 피압박계급과 압박계급, 피압박민족과 압박민족의 관계에까지 확대 적용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비방”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심지어 시치미를 떼며 평화공존이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자본과 진행하는 계급투쟁과 민족해방운동에는 적용될 수 없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뺌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묻는다. 평화공존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 대외정책의 한 방면일 뿐인데, 어째서 당신들은 최근까지도 평화공존 정책이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체 시기의 전략 노선”⑲이라고 말하는가? 당신들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당과 피압박민족의 공산당이 평화공존을 자신의 총노선으로 삼기를 요구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당신들 자신의 ‘평화공존’ 정책으로 각국 공산당의 혁명 노선을 대체하고, 평화공존 정책을 피압박계급과 압박계급, 피압박민족과 압박민족의 관계에 제멋대로 확대 적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또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묻는다. 각국 인민 혁명의 승리는 오직 주로 그들 자신의 투쟁에 의지할 수 있을 뿐인데, 어떻게 이 승리들을 평화공존을 전제로 한 것이라거나 혹은 평화공존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들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각국 인민의 혁명투쟁을 당신들의 이른바 평화공존 정책에 예속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또한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묻는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성취와 경제 경쟁에서 거둔 승리가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에게 본보기와 고무의 작용을 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각국 인민의 혁명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공존, 평화경쟁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사회주의 승리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과 평화경쟁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자본주의 관계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고, 전 세계에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실현할 수 있다고 떠들어댄다. 이것은 실제로는 일체의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이 근본적으로 투쟁할 필요도, 일어나 혁명할 필요도, 제국주의·식민주의와 그 앞잡이들의 반동 통치를 전복할 필요도 없이,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소련의 생산 수준과 생활 수준이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를 능가할 때 온 천하의 모든 피압박·피착취 노예들이 압박자·착취자와 함께 공산주의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른바 ‘평화공존’으로 각국 인민의 혁명투쟁을 대체하려 하고, 각국 인민의 혁명투쟁을 취소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위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사람들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와 소련공산당 지도부 사이의 이견은 중대한 원칙적 이견이다. 이 이견의 실질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평화공존 정책은 레닌주의적인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에 기초한 것이고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사업에 유리하며 전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투쟁의 이익에 부합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은 반 레닌주의적인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포기한 것이고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사업에 해로우며 전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 혁명투쟁의 이익에 위배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평화공존’ 총노선은 미 제국주의의 필요에 부응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평화공존’ 총노선은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과 각국 혁명 인민의 단호한 거부를 받았으나, 제국주의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서방 독점 부르주아지의 대변인들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에 대한 찬탄을 조금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흐루쇼프를 “모스크바에 있는 서방의 가장 좋은 친구”⑳로 보며, “소련 총리 니키타 흐루쇼프는 마치 미국의 정치가처럼 행동한다”㉑고 말한다. 그들은 “자유 세계에 있어 흐루쇼프 동지는 러시아인으로서 가장 훌륭한 총리로 간주된다. 그는 진정으로 평화공존을 믿고 있다”㉒고 한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소련과 미국 관계를 개선할 이러한 가능성은 미국 국무부 일각에서, 미국이 일정한 한도 내에서 흐루쇼프의 임무를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느끼게 한다”㉓고 밝히고 있다.
제국주의는 줄곧 사회주의 국가의 평화공존 정책을 적대시하며, “공존이라는 단어는 끔찍하면서도 혐오스럽다”, “이 일시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공존 관념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㉔고 외쳐 왔다. 그런데 왜 그들은 지금 흐루쇼프의 ‘평화공존’ 총노선에 이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가? 그것은 제국주의가 이미 흐루쇼프의 ‘평화공존’ 총노선이 제국주의에 유리하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미 제국주의는 각국 인민의 혁명을 소멸하고 사회주의 진영을 소멸하며 전 세계를 홀로 지배한다는 전략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예로부터 전쟁과 평화라는 양수(兩手) 전략을 써 왔다. 국제 정세의 발전이 자신에게 갈수록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미 제국주의는 군비 확장과 전쟁 준비를 계속하는 동시에 평화 음모를 더욱 많이 사용할 필요가 있다.
덜레스는 일찍이 1958년에, 미국이 전력을 다해 “평화적 수단으로 승리를 거두는” “고상한 전략”㉕을 집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케네디는 집권 후 덜레스의 이 ‘평화 전략’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평화공존’을 크게 떠들었다. 그는 “우리는 수소폭탄보다 훨씬 더 나은 무기가 필요하다. … 이 더 나은 무기야말로 평화적 협력이다”㉖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 제국주의가 정말로 평화공존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거나,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말을 빌리자면 “평화공존의 현명함과 현실성”을 인정했다는 뜻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조금만 진지하게 분석해 본다면, 미 제국주의가 말하는 ‘평화공존’의 진정한 함의와 목적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진정한 함의와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미 제국주의는 이른바 ‘평화공존’으로 소련과 사회주의 각국의 수족을 묶어 자본주의 세계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을 지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획책한다.
덜레스는 “소련 정부의 경우, 만약 그것이 국제 공산주의의 규정된 방향에서 벗어나 주로 러시아 국가와 인민의 복지를 추구한다면 ‘냉전’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국제 공산주의가 전 세계에서의 목표를 포기한다면 … ‘냉전’ 역시 끝날 수 있다”㉗고 말했다.
케네디는 “만약 소련과 미국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면, 소련은 ‘전 세계를 공산주의화하려는’ 계획을 포기해야 하며”,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돌보고, 오직 자국 인민들이 평화로운 조건 속에서 좋은 삶을 살도록 하는 데만 신경 써야 한다”㉘고 말했다.
러스크는 더욱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는 “공산당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세계 혁명 목표를 포기하기 전에는, 보장된 항구적 평화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또한 일부 징후가 소련 지도자들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지고 있는 의무와 그들에게 부과된 부담 및 위험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소련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가 전 세계에서 승리하리라는 환상을 접어두고 거기서 계속 나아가라”㉙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말들의 뜻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미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의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벌이는 혁명 투쟁을 모두 사회주의 국가가 “전 세계 공산주의화”를 추진한 결과라고 매도한다. 그들은 소련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미국과 평화공존하기를 원하는가? 좋다! 조건은 당신들이 자본주의 세계의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절대 지지해서는 안 되며, 이 나라 인민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 제국주의의 속셈대로라면, 그들은 마음 놓고 자본주의 세계 각국의 혁명 운동을 진압하여 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인민을 모두 미 제국주의의 노예와 지배 아래 둘 수 있게 된다.
둘째, 미 제국주의는 이른바 ‘평화공존’의 명의로 소련과 사회주의 각국에 ‘평화적 변질’ 정책을 추진하여 자본주의 제도의 복벽을 실현하려고 획책한다.
덜레스는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변환을 의미한다”㉚, “수세에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자유는 침투할 수 있는 적극적 힘이 되어야 한다”㉛, “우리는 소비에트 세계 내부의 진화를 장려하기를 희망한다”㉜고 말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평화적 수단”을 사용하여 “독재와 폭정의 속박 아래 있는 인민들이 마침내 자유로운 투표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㉝ 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디는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하여”, “‘소비에트 제국’과 여러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자유를 가져다주고 아울러 세계 평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㉞이라고 말했다. 케네디는 또한 동유럽 사회주의 각국에 대해 “자유를 인내심 있게 장려하고 폭정을 신중하게 억압하는 정책을 봉행할 것”임을 선언하여, 이들 국가의 인민들에게 이른바 “자유 선택”㉟을 제공하려 했다.
이 말들 역시 매우 분명하다. 미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제도를 ‘독재’와 ‘폭정’이라고 비방하고, 자본주의 복벽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소련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들은 미국과 평화공존하기를 원하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의 현상 유지를 승인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며, 반대로 사회주의 국가는 반드시 자본주의 제도를 회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세계 인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민이 사회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미 제국주의는 결코 달가워하지 않으며, 항상 모든 사회주의 국가를 소멸시키려는 망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 제국주의가 말하는 이른바 ‘평화공존’의 함의는 이러하다.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어 통치받는 모든 인민은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미 해방된 모든 인민은 반드시 다시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어 통치받아야 하고, 전 세계가 모두 미국의 이른바 ‘자유 세계의 대가족’ 속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평화공존’ 총노선이 바로 미 제국주의의 구미에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을 구실 삼아 미 제국주의의 환심을 사기에 힘쓰며, 미 제국주의의 대표적 인물들이 ‘평화를 관심한다’고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이는 미 제국주의의 평화 기만 정책이 필요로 하는 바에 정확히 부합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을 구실 삼아 평화공존을 피압박 계급과 압박 계급, 피압박 민족과 압박 민족의 관계 속으로까지 확장하여 혁명을 반대하고 혁명을 취소하니, 이는 미 제국주의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자본주의 세계 각국 인민의 혁명을 지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요구에 정확히 부합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평화공존’을 구실 삼아 국제적 범위에서 계급투쟁 대신 계급 협조를 내세우고,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전면 협력’을 고취하여 제국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에 침투할 수 있는 편의의 문을 크게 열어 준다. 이는 미 제국주의의 ‘평화적 진화’ 정책이 요구하는 바에 정확히 부합한다.
제국주의는 예로부터 가장 훌륭한 반면교사였다. 여기서 우리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덜레스가 했던 두 마디 말을 아래에 옮겨 적어도 무방할 것이다.
덜레스는 말했다. “소련 내부에 보다 큰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징후가 있다.” “만약 이 세력이 소련 내부에서 계속 발전하고 그 기세가 날로 커진다면, 우리는 그때 가서, 내가 일찍이 말했듯이, 10년 혹은 한 세대의 기간 안에 우리 정책의 위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도 생길 것이다. 이 목표는 바로 러시아 인민의 염원을 반영할 수 있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약탈적 야망을 포기했으며, 문명 국가의 원칙과 유엔 헌장에 구현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는 그러한 러시아가 출현하는 것이다.”㊱
덜레스는 또한 말했다. “장기적인 전망은—솔직히 말해, 장기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소련 통치자들의 현재 정책이 변화하여 그들의 민족주의적 성분이 증가하고 국제주의적 성분은 감소하게 되리라는 점이다.”㊲
보아하니, 덜레스의 망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배반한 자들에게 붙어, 그들로 하여금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에 완전히 매혹되어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미 제국주의의 희망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해 볼 마음조차 전혀 품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소련-미국 협력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평화공존’ 총노선의 혼백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수년간 입만 열면 ‘평화공존’이고 입을 다물면 ‘평화공존’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중국 및 기타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을 대하는 태도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평화공존 5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평화공존이 자신들 대외 정책의 총노선이라고 끊임없이 선전하는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과 전 세계 모든 공산당으로 하여금 그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꿈에도 잊지 못한 소련-미국 협력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소련-미국 협력이 세계를 주재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평화공존’ 총노선의 혼백이다.
그들의 기묘한 논리를 보라.
“현대의 가장 위대한 두 강국인 소련과 미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멀찍이 뒤에 남겨 두고 있다.”㊳
“이 두 나라 각각은 수많은 국가를 이끌고 있다. 소련은 세계 사회주의 체제를,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이끌고 있다.”㊴
소련과 미국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이다. 만약 우리가 평화를 위해 연합한다면, 그때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어떤 미치광이가 전쟁을 도발하려 한다 해도, 우리가 손가락으로 한 번 으름장을 놓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를 조용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㊵.
“소련 정부 수반 N. S. 흐루쇼프와 미국 대통령 J. 케네디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㊶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묻는다. 미 제국주의는 세계 인민의 가장 흉악한 적이며 침략과 전쟁의 주요 세력이라는 점이 1957년 선언과 1960년 성명에 똑똑하게 쓰여 있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세계 평화의 주요 적과 ‘연합하여’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묻는다. 세계 100여 개 국가, 30여 억 인구가 모두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권리가 없으며, 반드시 얌전하게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거인’, 두 ‘가장 위대한 강국’의 휘둘림을 들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그대들의 이러한 망령되고 터무니없는 궤변은 완전무결한 대국배외주의이며, 완전무결한 강권정치가 아닌가?
우리는 소련공산당 지도부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들은 정말로 소련과 미국 두 나라가 합의만 하면, 두 “거물”이 합의만 하면 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고, 모든 국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은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은 결코 없었으며, 20세기 60년대에는 더욱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현재 세계에는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 간의 모순, 자본주의 국가 내부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간의 모순, 피압박 민족과 제국주의 간의 모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모순, 제국주의 독점 자본 그룹들 간의 모순 등 복잡하게 얽힌 모순들이 존재한다. 소련과 미국이 합의를 한다고 해서 이러한 모순들이 사라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눈에는 오직 미국만이 들어 보인다. 소·미 협력을 추구하기 위해,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소련 인민의 진정한 동맹자들을 기꺼이 저버리고, 오늘날까지 제국주의·자본주의 제도 아래 있는 계급 형제들과 모든 피압박 인민, 피압박 민족을 기꺼이 저버린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진영을 극력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온갖 유언비어와 중상모략으로 중국공산당을 공격하고, 중국에 정치적·경제적 압력을 가한다. 사회주의 알바니아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군다. 그들은 미 제국주의와 한패가 되어 혁명의 쿠바에 압력을 가하여, 쿠바가 자국의 주권과 존엄을 희생하도록 요구한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을 극력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 개량주의의 선교사 노릇을 하면서, 각국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정당들의 혁명 투지를 와해시킨다. 그들은 제국주의의 필요에 맞추어 민족해방운동을 파괴하고, 갈수록 노골적으로 미국 신식민주의의 변호사로 나서고 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소·미 협력을 추구하기 위해 이처럼 엄청난 힘을 쏟고, 이토록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도대체 미 제국주의로부터 무엇을 얻어냈는가?
1959년 이래, 흐루쇼프는 소련과 미국의 정상 회담에 넋을 잃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으며, 얼마나 많은 환상을 퍼뜨렸는지 모른다. 그는 아이젠하워가 “위대한 정책을 아는” “거물”이라고 열렬히 찬양했으며㊷, 케네디가 “이 두 강대국의 정부가 지고 있는 중대한 책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열렬히 찬양했다㊸.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른바 “데이비드 캠프 정신”을 크게 떠들었고, 빈 회담이 “역사적 의의를 지닌 사건”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소련 언론들은 소·미 두 나라 정상이 함께 앉으면 인류 역사가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서며, 이 두 “거물”이 악수하는 순간 국제 관계에 “신기원”이 열린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는 소련공산당 지도부를 어떻게 대했는가? 데이비드 캠프 회담이 있은 지 한 달여 후, 아이젠하워는 “나는 어떠한 데이비드 캠프 정신도 알지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데이비드 캠프 회담이 있은 지 일곱 달여 후, 아이젠하워는 U-2 고등 정찰기를 소련 영내로 침범시켜 4개국 정부 수뇌 회의를 파탄시켰다. 빈 회담 직후, 케네디는 소련이 각국 인민의 혁명 투쟁을 지원해서는 안 되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반드시 자본주의 제도를 회복해야 한다는, 소련과 미국의 20년 평화를 위한 방자한 조건을 공공연히 제시했다. 빈 회담이 있은 지 1년여 뒤, 케네디는 쿠바에 대해 해적 같은 군사 봉쇄를 명령하여 카리브해 위기를 조성했다.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땅 밑바닥까지 뒤져 보아도, 아무리 찾아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때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데이비드 캠프 정신”, “인류 역사의 전환점”, “국제 관계의 신기원” 등등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3국 부분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된 후,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이른바 “모스크바 정신”을 또다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들은 “단김에 쇠를 두드려야 한다”고 말하며, 소·미가 더 나아간 합의를 달성할 “유리한 조건이 모두 마련되었으니”, “서서히 하자”거나 “조바심내지 말자”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떠들었다㊹.
“모스크바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최근에 발생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한번 보기로 하자.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소·미 협력”의 분위기를 더욱 조성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소·미 수교 30주년 기념 집회를 열었고, 동시에 문화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하여 기념 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소련공산당 지도부의 이러한 “열정”에 대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주소련 미국 대사관의 전 직원들은 모스크바의 기념회 참석을 거부했으며, 미국 국무부는 특별 각서를 발표하여 미국 대중들에게 소련 문화 대표단을 배척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들을 “가장 위험하고 수상한 인물들”이라고 비난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소·미 협력”을 무엇이니 어쩌니 떠들고 있을 때, 미국은 첩자 바홍을 소련에 보내 활동하게 했다. 소련 정부가 이 첩자를 체포한 것은 원래 아주 정당한 조치였다. 그런데 케네디가 “미·소 간의 밀 거래는 양국 간의 합리적인 분위기에 달려 있다”, “이 분위기가 바홍의 체포로 크게 훼손되었다”고 고함을 지르자, 소련 정부는 “바홍의 운명에 대한 미국 고위 관리들의 관심”을 이유로 삼아, 재판조차 하지 않고, “증거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고 서둘러 “반소 첩자 활동을 했다”고 발표했던 바로 그 미국 첩자를 급히 석방해 버렸다.
이 모든 것들이, 설마 이것이 “모스크바 정신”이란 말인가? 만약 이것이 바로 “모스크바 정신”이라고 불린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무나 비참한 일이다.
모스크바,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수도의 빛나는 이름이며, 위대한 10월 혁명 이래로 전 세계 수백만 인민이 우러러보는 그 빛나는 이름이, 오늘날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미 제국주의와 야합하는 추잡한 행위를 가리는 데 이용되어 기치 못할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요컨대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미 제국주의에게 “우의”와 “신임”을 구걸하느라 미 제국주의에게 얼마나 많은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얼마나 많은 인정에 호소했는지 모르며, 형제국가와 형제당에게는 얼마나 버럭 화를 내고 얼마나 압력을 가했는지 모르며, 각국 혁명 인민에게는 얼마나 많은 술책을 부리고 얼마나 기만을 일삼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꽃은 떨어지려 해도 냇물은 무심하듯, 그들이 미 제국주의로부터 얻은 것은 굴욕, 굴욕, 그리고 또 굴욕뿐이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에게 드리는 몇 마디 권고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은 레닌과 스탈린의 지도 아래, 제국주의의 무장 간섭에 맞서 싸운 엄혹한 나날에도, 위대한 조국전쟁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언제 한 번 어려움 앞에서 고개를 숙였으며, 언제 한 번 적 앞에 무릎을 꿇었는가? 오늘날 세계는 그야말로 대호의 혁명 정세이며, 사회주의가 이처럼 강대했던 적이 없고, 제국주의가 이처럼 곤경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레닌이 창건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미 제국주의에게 이 지경까지 능멸당하고, 사회주의 진영의 명예가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이 꼴로 짓밟히다니, 우리와 전 세계 모든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전 세계 모든 혁명 인민이 어찌 대단한 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진심으로 소련공산당 지도부에게 몇 마디 권고하고자 한다.
미국은 가장 흉악한 제국주의 국가이며, 미 제국주의의 전략 목표는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망상이다. 미 제국주의는 각국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투쟁을 미친 듯이 진압하고 있으며, 동유럽을 다시 이른바 “자유세계의 대가족”으로 되돌려놓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다. 그대들은 도대체 어떻게 미 제국주의의 세계 정복 침략 계획에 따를 때, 가장 무거운 타격이 남에게만 떨어지고 소련의 머리에는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이고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대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두 사회제도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국가가 무슨 “전면적 협력”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미국은 다른 제국주의 대국들 사이에서조차 서로 속이고 암투를 벌이며, 미국은 그들을 반드시 자기 발아래 짓밟고서야 끝내려 하는데, 그대들은 도대체 어떻게 제국주의 미국이 사회주의 소련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소련공산당 지도부 동지들! 냉정하게 생각해보라. 하루아침에 세상에 광풍폭우가 몰아친다면, 설마 미 제국주의가 믿을 만한 존재인가? 아니다. 미 제국주의는 믿을 수 없으며, 그 어떤 제국주의와 반동파도 믿을 수 없다. 소련이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동맹자는 오직 사회주의 진영의 형제국가들, 마르크스-레닌주의 형제당들, 그리고 각국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뿐이다.
인류 역사 발전의 법칙은 그 누구의 의지로도 바꿀 수 없다. 사회주의 진영의 존재와 발전, 전 세계 피압박 인민과 피압박 민족의 혁명 운동의 발전은 그 누구도 소멸시킬 수 없고, 가로막을 수 없다. 그 누구든 사회주의 진영 각국 인민을 배반하고, 전 세계 인민을 배반하며, 미 제국주의와 동업자처럼 손잡고 세계를 주재하려는 망상을 꾸민다면, 결코 끝이 좋지 않을 것이다.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극히 잘못되었고 극히 위험한 일이다.
벼랑 끝에서 말을 고삐 잡아채도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그대들의 이른바 “평화공존” 총노선을 버리고, 레닌의 평화공존 정책의 길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길로 되돌아올 때이다.
주석
(1) 소비에트 《프라우다》 1962년 11월 18일, 포노마료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승리의 기치」.
(2) 《평화와 사회주의 문제》 잡지 1962년 제1기, 루먄체프: 「우리의 공동 사상 무기」.
(3) 흐루쇼프의 1960년 9월 23일 유엔 총회 연설.
(4) 흐루쇼프의 1960년 2월 21일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가자마다 대학 연설.
(5) 흐루쇼프의 1960년 1월 14일 소련 최고소비에트 회의 보고.
(6) 소비에트 《이즈베스티야》 1961년 12월 4일 편집부 문장.
(7) 흐루쇼프, 브레즈네프의 1961년 12월 30일 케네디 앞 축전.
(8) 흐루쇼프의 1960년 9월 23일 유엔 총회 연설.
(9) 흐루쇼프의 1961년 7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소 대사관 리셉션 연설.
(10) 《평화와 사회주의 문제》 잡지 1962년 제12기, 포노마료프: 「혁명 운동의 몇 가지 문제」.
(11) 소비에트 《공산당원》 잡지 1962년 제2기, 제89페이지.
(12) 소비에트 《프라우다》 1961년 2월 8일, 포노마료프: 「자본주의 총위기의 새로운 단계」.
(13)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1963년 3월 30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서한.
(14) 1963년 7월 1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소련 각급 당 조직과 전체 공산당원에게 보낸 공개서한.
(15) 《평화와 사회주의 문제》 잡지 1962년 제12기, 포노마료프: 「혁명 운동의 몇 가지 문제」.
(16)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가 통과시킨 「소련공산당 강령」.
(17) 흐루쇼프의 1960년 1월 14일 소련 최고소비에트 회의 보고.
(18) 흐루쇼프가 오스트리아 교수 한스 티링의 질문에 답변함, 소비에트 《프라우다》 1962년 1월 3일.
(19) 소비에트 《프라우다》 1963년 12월 6일 편집부 문장: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단결 일치를 쟁취하자」.
(20) 미국 《타임》 주간지 문장: 「우리는 니키타에게 얼마나 친절해야 할까?」, 1962년 3월 9일.
(21) 미국 국무차관 해리먼의 1963년 8월 18일 텔레비전 담화.
(22) 영국 《시여조》 주간 기사: 「케네디가 흐루쇼프를 돕다」, 1963년 4월 18~24일.
(23) AFP 통신 1963년 7월 14일 워싱턴 전보. 미국 정부 관료들의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서한에 대한 논평을 종합.
(24) 미국 전 국무차관 딜런의 1960년 4월 20일 미국 외교 정책에 관한 연설.
(25) 덜레스, 1958년 12월 4일 캘리포니아주 상공회의소 연설.
(26) 케네디, 1963년 9월 20일 유엔 총회 연설.
(27) 덜레스, 1959년 1월 28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발언.
(28) 케네디, 1961년 11월 25일 소련 《이즈베스티야》 주필 아주베이와의 대화.
(29) 라스크, 1963년 9월 10일 미국 재향군인회 전국대회 연설.
(30) 덜레스, 1959년 1월 31일 뉴욕주 변호사 협회 시상 연회 연설.
(31) 덜레스, 1958년 12월 4일 캘리포니아주 상공회의소 연설.
(32) 덜레스, 1959년 2월 8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증언.
(33) 아이젠하워, 1960년 9월 30일 시카고 재미 폴란드인 대회 연설.
(34) 케네디: 《평화 전략》 제199쪽.
(35) 케네디, 1960년 10월 1일 재미 폴란드인 대회 연설.
(36) 덜레스, 1956년 5월 15일 기자회견 담화.
(37) 덜레스, 1958년 10월 28일 기자회견 담화.
(38) 니. 니. 야코블레프 저 《30년래 ……》(소련이 소·미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한 소책자).
(39) 니. 니. 야코블레프 저 《30년래 ……》(소련이 소·미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한 소책자).
(40) 흐루쇼프, 1961년 9월 5일 미국 기자 술즈버거와의 대화.
(41) 그로미코, 1962년 12월 13일 소련 최고소비에트 회의 연설.
(42) 흐루쇼프, 1959년 9월 17일 뉴욕 시장 주최 조찬 간담회 연설.
(43) 흐루쇼프, 1961년 6월 15일 라디오·텔레비전 연설.
(44) 소련 《이즈베스티야》 1963년 8월 21일자 논평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