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0개월: 노동 — '진짜 성장'의 실체와 한계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19


이 글은 「이재명 정부 10개월: 진보 관점 중간 평가」 시리즈 2회차입니다.
1회차: 총론 — 어떤 정부인가?

슬로건과 현실 사이

이재명 정부의 노동 정책 표제어는 "노동과 함께하는 진짜 성장"이다. 고용노동부 2026년 비전으로 공식화된 이 구호는 "성장 후 분배"라는 기존 공식을 부정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출범 10개월,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가.


1. 성과 목록: 법·제도 변화의 실재

이재명 정부 노동 정책에서 실제로 진전된 항목들을 먼저 정직하게 기록한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시행. 2026년 3월 10일, 원청을 하청 노동자의 실질 사용자로 인정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발효됐다. 민주노총이 2026년을 '원청 교섭 원년'으로 선포한 이 법안은, 원청이 하청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할 경우 단체교섭 당사자가 된다는 원칙을 법제화했다. 법원이 이미 수차례 동일한 판단을 내린 사안을 국회가 뒤늦게 추인한 것이지만, 손해배상 제한 조항과 함께 법적 근거가 명시됐다는 의미는 있다.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포괄임금제 오남용 금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제화, 주 4.5일제 시범사업(예산 324억 원, 720개소), '실근로시간단축지원법' 2026년 상반기 제정 추진이 로드맵에 담겼다. 연간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명시됐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보호 추진. 144만 명에 달하는 특고·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노동자 추정제' 도입,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소득 기반 고용보험 개편(전국민 고용보험 확대)이 추진 과제로 설정됐다.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안전망에 포함하는 방향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3종 세트.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공정수당 기준 마련,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비정규직 처우개선 항목 포함. 이 대통령이 직접 "정부가 모범적 사용자가 돼야 한다"고 지시한 데서 출발한 정책들이다.

최저임금 2026년. 시급 10,320원(월 2,156,880원), 전년 대비 2.9% 인상. 17년 만에 노·사·공 합의로 결정됐다는 점에서 절차적 의미는 있다.

이 목록은 공백으로 채워진 10년의 보수 집권기와 비교하면 분명히 진전이다. 그러나 진보 관점의 중간 평가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2. 구조적 한계: 세 개의 균열선

① 최저임금 2.9% — 역대 정부 첫해 두 번째 최저

2026년 최저임금 인상률 2.9%는 이재명 정부 출범 첫해의 노동 정책을 상징하는 숫자다.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과 비교하면 — 김영삼 정부 8%, 문재인 정부 1기 16.4% — 이재명 정부 첫해는 두 번째로 낮다.

노동계의 반응은 명확했다. 민주노총은 "이재명 정부, 저임금 노동자 포기"로 규정했고, 한국노총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지만"(한국노총 입장문)이라는 문장이 실망감의 깊이를 드러낸다.

합의 자체가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구조임을 인정해야 한다. 노·사·공 합의제는 경영계와 '중립' 공익 위원의 구성상 구조적으로 하향 압력이 작동한다. '합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② 노란봉투법의 시행령 함정

노란봉투법 시행 자체는 진전이다. 그러나 시행령은 교섭 성립 요건으로 7가지 판단 요소를 나열했다: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 계약형태, 노조 조직 범위, 기존 교섭 관행, 이해관계 공통성,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당사자 의사. 이 요소들은 원청이 교섭을 법정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광범한 여지를 제공한다.

민주노총이 '원청 교섭 원년'을 선포한 2026년 상반기, 이미 복수의 원청 기업들이 법적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법 시행 → 시행령 단서 →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 교섭권 확보까지는 상당한 갭이 존재한다.

③ '유연안정성' 모델의 계급적 함의

2026년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노총 간담회에서 핵심 카드를 꺼냈다. "고용 유연성 + 두터운 사회안전망" 교환, 즉 덴마크형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이다. "지키겠다고 버티지만 점점 줄어들고 신규 고용은 다 하청 주거나 비정규직 하는데, 사회적 대타협 방향으로 잡고 가야 한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논리였다.

문제는 순서다. 덴마크 모델이 작동하는 이유는 GDP 대비 5~6%에 달하는 실업 보호 지출, 90%에 근접하는 실업급여 소득대체율,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인프라가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은 60%, 수급 기간은 최대 9개월이다. 이 상태에서 정규직 해고 유연화를 먼저 추진하는 것은 유연안정성이 아니라 단순 유연화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이렇게 평가했다: "아궁이에 불은 때는 것 같은데 바닥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KLSI) 분석도 같은 지점을 짚는다 — "노동자를 성장의 주체가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3. 이중구조: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가

이재명 정부 노동 정책의 수혜 구조를 계층별로 분해하면 패턴이 드러난다.

1층 (대기업·공공 정규직): 노동시간 단축, 정년 연장, 일부 임금체계 개편. 기존 노동조합이 기반을 가진 층이다. 여기서는 제도 개선이 실질적으로 도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2층 (중소기업·하청 노동자): 노란봉투법의 잠재적 수혜층. 그러나 시행령 함정과 법정 다툼 구조, 노조 조직률 저하로 실질적 교섭권 확보까지 갭이 크다.

3층 (플랫폼·특고·비정규직): 법 제정 → 시행령 → 행정 집행까지 최소 2~3년의 시차. '노동자 추정제'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아직 국회 계류 중이거나 추진 단계다. 이 층에서는 구조적 변화 신호가 가장 약하다.

비정규직 비율(38~40% 추산)이 구조적으로 변화할 신호는 현재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정책은 공공 영역 한정이며, 민간 부문으로의 파급 경로는 '모범 사용자 효과'라는 간접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4. 이론적 좌표: 개량주의 노동 정치의 구조적 딜레마

이재명 정부 노동 정책은 사민주의적 케인스주의의 한국판 실험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노동을 성장의 동반자로 포지셔닝하는 수사. 그러나 이 틀이 작동하는 조건 — 강력한 복지 재정, 조직 노동의 협상력, 자본에 대한 규제 역량 — 어느 것도 한국에서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 이 정부가 재벌 구조 해체 없이,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생산하는 원청-하청 원심력을 그대로 두고, 이중구조의 최상층만 제도 개선을 추진할 때, "노동과 함께하는 진짜 성장"은 조직 노동 상층의 처우 개선이라는 의미로 실질화될 위험이 있다.

1970년대 서독 사민당의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이 대기업 감사이사회 노동자 참여를 제도화했을 때, 그 효과가 비조직 노동층에 닿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 정책이 한국 비정규직 3층에 도달하는 시간표는 지금으로선 설계조차 되지 않았다.


소결: 진보 관점의 중간 점수

달라진 것: 노란봉투법 시행, 플랫폼 노동자 보호 입법 추진,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 착수. 법·제도 지형에서 윤석열 정부와의 단절은 실재한다.

달라지지 않은 것: 최저임금 2.9% 인상(역대 첫해 2위 최저), 비정규직 비율 구조 미변화, '유연안정성' 명분 아래 해고 유연화 추진, 노동자 추정제·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입법 공백. 이 정부가 노동의 구조적 지위를 바꾸는 데 얼마나 진지한지는 여기서 판단된다.

현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에게 "아궁이의 온기"는 아직 닿지 않았다.


다음 회차: 3회차 — 외교·안보: 한미동맹 현대화와 친제국주의적 재편


참고 자료

  • 박성국, 「2026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 방향」, e노동사회 통권 204호 (2026.04.07)
  • 박종식·조규준, 「2025년 노사관계 평가와 2026년 전망」, 노동리뷰 250호 (2026.01)
  • 이로운넷, 「주 4.5일제·노동시간 단축·임금격차 해소…2026년 노동정책 어떻게 달라지나」 (2026)
  • 매일노동뉴스, 「최저임금 찔끔 인상 이재명 정부, 제도개선도 후순위?」 (2025)
  • 한국노총 입장문, 「2026년 적용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