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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통일당 인물 6명

조건 모두 해제

베틀렌 이슈트반

Bethlen István
헝가리 반혁명 세력 헝가리 헝가리 1874–1946 ○ 옥사

1921~1931년 총리로서 제한 선거와 국제연맹 차관으로 호르티 체제를 안정시킨 트란실바니아 귀족

트란실바니아의 오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901년 자유주의자로 의회에 들어갔다. 1919년 세게드의 반혁명 세력에 합류했고, 1921년 4월 카를 왕의 첫 복귀 시도 뒤 총리가 되었다. 통일당을 세우고 1922년 선거법으로 농촌에 공개투표를 되살려 집권당의 승리를 굳혔으며, 사회민주당과 협정을 맺고 국제연맹 가입과 차관으로 경제를 안정시켰다. 1931년 대공황 속에 물러났고, 1941년 소련과의 전쟁에 반대했다. 1945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1946년 모스크바의 감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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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자유주의자로 의회 진출
  • 1919세게드 반혁명 세력 합류
  • 1921–1931총리
  • 1921베틀렌–페이에르 협정
  • 1922통일당 창당 · 선거법 개정
  • 1924국제연맹 차관
  • 1945–1946소련에 체포, 모스크바에서 옥사

굄뵈시 줄러

Gömbös Gyula
헝가리 파시스트·나치 헝가리 헝가리 1886–1936 ○ 암

국민군 조직을 주도하고 1932~1936년 총리로서 헝가리를 이탈리아·독일 쪽으로 이끈 우익 급진파 장교

톨너주 무르거에서 마을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1919년 세게드에서 준군사 단체 MOVE를 만들고 호르티의 국민군 조직을 주도했으며, 1921년 카를 왕의 복귀를 무력으로 막는 데 앞장섰다. 1929년 베틀렌 정부의 국방장관이 되었고 1932년 총리가 되었다. 무솔리니와 손잡고 1934년 로마 의정서에 서명했으며, 히틀러를 찾아간 첫 외국 정부 수반으로서 독일과 무역 협정을 맺었다. 1936년 뮌헨에서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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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MOVE 결성, 국민군 조직
  • 1921카를 왕 복귀 저지
  • 1929국방장관
  • 1932–1936총리
  • 1934로마 의정서 서명

더라니 칼만

Darányi Kálmán
헝가리 반혁명 세력 헝가리 헝가리 1886–1939 ○ 병사

1936~1938년 총리로서 죄르 강령을 발표하고 제1차 유대인법을 의회에 낸 굄뵈시의 후임자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09년 페슈트주 공무원으로 출발했고, 혁명 뒤 죄르주·코마롬주의 주지사를 지냈다. 1927년 국회의원이 되었고 1935년 굄뵈시 내각의 농업장관이 되었다. 1936년 10월 굄뵈시의 후임 총리가 되어 베틀렌 노선의 헌정 질서 회복을 내세웠고, 1937년 국민의지당을 금지하고 살러시를 투옥했다. 1938년 3월 죄르 강령을 발표했으나, 오스트리아 병합 뒤 친독 인사를 입각시키고 극우 세력과 협상하다 5월 사임했다. 그의 정부가 낸 제1차 유대인법은 임레디 정부 아래 통과되었고, 그는 1938년 12월부터 죽을 때까지 하원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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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페슈트주 공무원
  • 1920년대죄르주·코마롬주 주지사
  • 1927국회의원
  • 1935농업장관
  • 1936–1938총리
  • 1938죄르 강령 발표
  • 1938–1939하원 의장

버이치질린스키 엔드레

Bajcsy-Zsilinszky Endre
헝가리 민족주의 헝가리 헝가리 1886–1944 ✕ 처형(교수형)

인종수호당에서 출발해 노비사드 학살을 의회에서 고발하고 반나치 봉기를 준비하다 처형된 민족 급진주의 정치인

서르버시에서 태어났다. 1923년 굄뵈시와 함께 인종수호당을 세웠으나 차츰 멀어져 1930년 민족 급진당을 만들었고, 1930년대에는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1939년 독립소농당으로 다시 의원이 되었다. 1941년 말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해 『네프서버』 성탄호에서 전쟁 이탈과 토지개혁, 보통선거를 위한 「독립전선」을 촉구했고, 1942년 1월 노비사드 학살을 앞두고 바르도시에게 경고한 뒤 의회에서 이를 「국가가 조직한 포그롬」이라 고발했다. 1944년 3월 19일 독일 점령 때 체포를 막으려 총을 쏘다 부상한 채 끌려갔고, 10월 풀려난 뒤 11월 헝가리 민족봉기 해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뽑혔으나 다시 체포되어 12월 24일 쇼프론쾨히더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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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법학 박사
  • 1914–1918경기병으로 참전
  • 1922통일당 의원 당선
  • 1923굄뵈시와 인종수호당 결성
  • 1930민족 급진당 창당
  • 1939–1944독립소농당 의원
  • 1944해방위원회 위원장, 체포되어 처형

칼러이 미클로시

Kállay Miklós
헝가리 보수주의·기독교민주주의 헝가리 헝가리 1887–1967 → 망명지에서 사망

독일의 유대인 이송 요구를 거부하며 서방 연합국과 비밀 휴전을 꾀한 전시 총리

서볼치 지방의 오랜 젠트리 가문 출신으로 주지사를 거쳐 1932~1935년 농업장관을 지냈고 베틀렌 계열의 보수파였다. 1941년 상원에서 제3차 유대인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1942년 3월 호르티의 요청으로 총리가 되어 대소련 전쟁을 이어 가면서도 독일의 유대인 이송 요구를 거부하고 서방 연합국과 휴전을 협상했다. 1943년 9월 이스탄불 앞바다에서 비밀 예비 휴전이 맺어졌으나, 1944년 3월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자 물러나 튀르키예 공사관에 숨었다. 1944년 10월 붙잡혀 다하우와 마우트하우젠에 갇혔다가 1945년 풀려났고, 1946년 망명해 뉴욕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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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1929서볼치 주 주지사
  • 1929–1931상무부 차관
  • 1932–1935농업장관
  • 1942–1944총리, 연합국과 비밀 휴전 협상
  • 1944–1945튀르키예 공사관 피신, 다하우·마우트하우젠 수감
  • 1946–1967망명, 미국 정착

헤이여시 이반

Héjjas Iván
헝가리 반혁명 세력 헝가리 헝가리 1890–1950 ○ 망명 중 병사

케치케메트 일대의 장교 부대를 이끌고 오르고바니 학살과 이자크 포그롬을 저지른 백색테러 지휘관

케치케메트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항공대의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1919년 세게드에서 호르티의 참모장에게 케치케메트 일대의 「질서 회복」을 위임받아 도나우강·티서강 사이 지역의 사실상 군정관이 되었다. 그의 부대는 사람들을 오르고바니 숲으로 끌고 가 고문하고 처형했으며 이자크에서 포그롬을 일으켰고, 희생자의 약 3분의 1이 유대인이었다. 1921년 카를 왕의 복귀를 지지하지 않은 공으로 호르티의 사면을 받았고 1927~1931년 국회의원을 지냈다. 전후 궐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50년 스페인 비고에서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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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1918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복무, 전투기 조종사
  • 1919케치케메트 일대 장교 부대 지휘
  • 1919오르고바니 학살 · 이자크 포그롬
  • 1921서헝가리 봉기
  • 1927–1931국회의원
  • 1944–1950망명, 궐석 사형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