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즈민, 『1934년 일기』
인물세르게이 키로프, 막심 고리키,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아돌프 히틀러, 니콜라이 구밀료프, 미하일 쿠즈민
8월
8월 1일 (수요일)
세 차례의 소나기와 천둥을 동반한 근사한 날씨. 늙은이와 늙은 여자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와서 나와 술타노바가 젊은이들처럼 보인다. 철로 너머로 산책하러 갔다. 저녁에 O. N.이 와서 유르.가 아주 아프다고, 배가 아프다고, 아카데미아 출판사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아마도 기흘로 넘어가는 일 때문에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먀 출판사는 오늘 이미 문을 닫았고, 마린스키 극장의 세료자는 보아하니 그만두지 않았다. 유르.의 소식에 조금 상심했다. 그래서 잠도 잘 못 잤다. 그리고 그가 몹시 보고 싶었다.
의사의 플루트. 이곳 의사는 플루트를 분다. 그것은 그를 단번에 쿠프린의 분위기에서 괴테의 시대로 옮겨 놓는다, 특히 사건이 데츠코예 셀로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체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친화력』의 정신이 여기 감돌고, 철학적 농경술과 곧은 운하와 댐의 추상적 심리학도 그렇다. 오늘 의사가 현관 앞 라일락 아래 마당 벤치에서 간호사와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위대한 코프타」, 「클라비고」, 심지어 『카트. 무어』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어떤 수학적 비밀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월 2일 (목요일)
밤비 후의 아름다운 날씨. 연못이 그렇게 불어나서 통나무와 새끼오리들이 길 바로 옆까지 떠다닌다. 조금만 더 했으면 정원의 오솔길까지 잠겼을 것이다. 모든 시내가 아주 불어나서 어떤 곳은 지나갈 수도 없다. 차를 마신 후 산책했다. 새 구성원들이 그래도 예전보다 낫다, 유대 놈들이 그리 많지 않다. 갑자기 저녁 식사 후에 지보토바가 제에스트와 함께 나타났다. 그녀와 크로케장 옆에 앉았다. 사랑하는 유르.가 O. N.과 함께 온다. 아카데미아 출판사, 스미르노프 등과의 여러 실패. 아팠고, 지금도 다 나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을 조금 배웅했다. 이미 늦게 돌아왔다. 저녁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작은 별. 여러 날 구름 장막이 찢어지지 못했다. 마침내 저녁 무렵 그것이 그렇게 고르게 걷혀서 잿빛의 은회색 자작나무들 사이에 길고도 꽤 넓은, 고른 연보랏빛 분홍 띠가 평원 위에 생겼다. 그토록 기다렸고, 그토록 바랐다, 이 연기 어린 지평선 위에 단 하나의 별이 타오르기를.
8월 3일 (금요일)
유로치카가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지쳐서 와서 아주 조금만 산책했다. 저녁 식사 후 다시 그들을 기다렸다, 코추로프 부부에게 가려고.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을 깨웠고, 작은 발코니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옮겨 갔고, 그가 창문을 닫고, 심지어 커튼까지 내리고, 모든 램프를 켜고 자기 로망스와 슈베르트 소나타를 연주했다. 유르.조차 마음에 들어 했다. 나쁘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달이 분홍빛으로 비쳤고, 우리가 돌아올 때 내내 번개가 쳤다. 우리 쪽에서는 이미 모두 방으로 흩어졌지만 집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내가 눕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8월 4일 (일요일)
우리 사람들이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풀렸다. 꽤 즐거웠다. 그런데 유르.는 7일까지 떠나 있고 O. N.도 마찬가지다. 나는 금세 심심해졌다. 말란치코프와 구지닌은 떠나는 피아니스트에게 줄 꽃을 사러 가면서 우리를 배웅했다. 광장으로 예브게니야 알렉세예브나가 남편과 사진기를 가지고 지나갔다. 우리가 우리 사람들을 배웅하고 위탁 판매점 옆을 지나갈 때 그들을 다시 따라잡았다. 흐리스티나 닐스브나를 위한 서랍장을 보고 있다. 촛대와 사모바르가 놓여 있다. 시페로비치의 아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녀는 떠나고, 나타샤는 데려가고, a meur는 거의 나한테로 옮기려는 모양이다. 그래 주면 참 고맙겠군. 우리 마당에는 매자나무 덤불이 있다. 왠지 몹시 허전하고 심심하다. 안드르. 알.은 조랑말과 이륜 수레를 사서 내게 보여 주었다. 곧바로 파블롭스크로 소금을 사러 보냈다. 조금 산책했다. 피아니스트는 마치 몬테네그로의 파티라도 되는 양 떠났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그녀를 배웅했고, 남자들이 짐을 날랐으며, 빨간 머리 리가 여자는 꽃다발을 들고 손을 흔들었고, 시내에서 택시를 보냈다. 저녁에는 어느 혁명 원로 여성의 강연이 있었는데, 정원은 완전히 텅 비었다. 소피아로 가는 길은 ― 무언가 지루한 막다른 길이다. 여기엔 대체로 막다른 길이 많다. 몹시 지루하다. 그런데 7일까지는 너무 길고, 그다음엔 겨우 나흘뿐이다. 일찍 자자. 아침이 저녁보다 지혜롭다.
사라토프의 집들(끝). 다음 집은 같은 아니치콥스카야 거리의 라리오노프의 집이었다. 여기는 모든 것이 덜 호화롭고 오히려 더 방종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더 잘 기억한다. 정자가 있던 정원도 기억하는데, 한번은 조용한 미치광이가 그 정자에 기어 들어가 동쪽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여름에 우리가 차를 마시던 발코니도 기억한다. 내 형은 그곳에서 남겨 둔 먹을거리를 물어 가던 고양이들을 목매달았다. 며칠씩 연달아 여러 마리를 매다는 날도 있었다. 여기에는 이모가 사촌 형제들, 역시 라리오노프가인 미탸와 코스탸와 함께 우리 집에 머물렀다. 여기서 독일 여자의 딸인 계집아이가 내게 바지를 입히고는 울타리에 걸터앉아 이웃 실업학교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신부를 골라요.” “누구 중에서?” “나 중에서요.” 여기서 독일인 사내아이가 미탸와 전쟁 놀이를 하며 “우라”를 외쳤고, ‘r’ 발음을 못 하는 내 형은 “울라”를 외쳤다. 여기에는 쿠즈네츠크에서 온 티호노브나와 그녀의 아들인 재단사 파벨이 살았다. 모든 하녀들이 그렇듯 “안누시카”라는 이름의 하녀가 파벨과 결혼하고 싶어서 티호노브나에게 다리미를 집어던졌다. 우리가 이사할 때 유모는 분주하게 일하다가 일사병으로 죽었고, 바로 그날 밤 우리는 도둑을 맞았다. 나는 페슈카에서 일어난 어떤 폭동을 기억하는데, 우리에게까지 “아르하로프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역시 안누시카라는 병사의 아내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간질이 생겼다. 우리는 협탁으로 막고 숨었다. 여기로 안나 누나의 반쯤 미친 남편을 데려왔는데, 카잔의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매우 쾌활했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지만 나는 죽을 만큼 겁에 질렸다. 우리 창문 앞에는 가톨릭 신학교가 있었고, 수단을 입은 소년들이 라프타 놀이를 하며 정원과 마당을 뛰어다녔다. 나는 왠지 그들이 여럿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는 유모도 보모도 없다는 것이 부러웠다. 아마도 그들은 저마다 집을 꿈꿀 것이고, 그들이 그리는 집은 집에서 사는 나에게 집이 그려지는 것보다 훨씬 나을 터였다. 나는 그것이 부러웠다. 나는 집에 대한 꿈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기숙 학교에 보내지기를 바라는 엉뚱한 소망을 품었다. 첫째로는 실제로 외롭지 않기 위해서였고, 다음으로는 집을 더 달콤하게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나는 오래도록 심하게 앓았다. 어머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누나는 인조 트리와 스위스 마을 모형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물론 전통적인 페테르부르크 선물로 훈제 흰송어를 가져왔다. 모스크바에서라면 추옙스키 빵을 가져오는 것과 같았다. 이모가 조카와 함께 왔을 때 누나에게는 친구인 가브릴로바 자매가 찾아왔는데, 언니는 그때 이미 [바]루예프와 결혼해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도 않고 그다지 유연하지도 않았지만 음색이 뛰어났다. 사촌 미탸는 음악가였다. 다시 말해 무엇이든 외워서 거침없이 쉬지 않고 연주할 수 있었다. 율리야 가브릴로바도 콘트랄토였다. 누나는 언제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지만, 음정이 지독하게 어긋났기 때문에 노래는 허락되지 않았다. 웬일인지 아래층 집을 수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잠그지 않은 피아노가 남아 있었다. 바로 거기서 일행은 좋아하는 오페라들을 연주했는데, 그것은 「파우스트」, 「적의 힘」, 「악마」, 「탄호이저」였다. 나는 이 연습 자리에 홀린 듯이 빠짐없이 함께했다. 나는 집주인의 둘째 딸 마루샤 라리오노바와 놀았다. 기이한 가족이었다. 재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평범한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왔을 것이다. 아버지는 술로 망가진 귀족 출신 음악가였다. 그는 작곡가로서 로맨스와 춤곡을 몇 편 썼고, 내내(20년쯤) 오페라 「시골 아가씨」를 쓰고 있었다. 그 오페라를 모두에게, 심지어 여덟 살인 나에게까지 연주해 주었다. 그는 외국어와 문학을 알았고 재능이 있었지만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쓸모없어서 술을 마시는지, 술을 마셔서 쓸모없는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 그의 음악은 아마추어적이었다. 리신이나 파스할로프(그들은 심지어 서로 아는 사이였던 것 같다)의 음악처럼, 천재적 규모로 말하면 무소륵스키의 음악처럼. 그는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길렀고, 코안경은 늘 흘러내렸으며 바지도 흘러내렸다. 어딘가 루나차르스키를 미리 보여 주는 듯했지만, 재능과 우아함은 더 컸다. 그에게는 리자, 마루샤, 올랴라는 세 딸이 있었다. 리자는 소시민적인 어린 소녀로, 이미 살림을 맡았고 이미 기가 꺾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를 끔찍이 아꼈고 가르쳤으며 거의 범하려 하기까지 했다. 이 근친상간의 암시에는 뱌치. 이브.와 베라의 경우처럼 신학교적이고 술주정뱅이 같으며 허무주의적인 기운이 있다. 그런 “안티고네”들이다. 마루샤는 그저 계집아이였다. 그리고 올랴는 뚱뚱한 계집아이들이 다 그렇듯 부루퉁하고 심술궂고 자기만족에 빠진 토막이었다. 우리는 늘 그녀를 때리고 놀려댔다. 이반 페트로비치는 하녀 페도루시카와 살았는데, 그녀에게는 경관인 남편 필리프 예르밀리치가 있었다. 그들 셋은 함께 술을 퍼마셨고 리자에게도 억지로 마시게 했다. 그들은 나리를 보살피고, 지키고, 등쳐 먹고, 먹여 살리고, 두들겨 패기도 했다. 그들은 어찌 된 셈인지 한데 뒤엉켜 잤다. 마당 안에 있던 그들의 작은 집은 깨끗하고 밝고 매우 쾌활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순전히 리자가 애쓴 덕이었다. 때로 리자는 동생들을 데리고 우리 집 부엌으로 피신했다. 그 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달아나 도브로티니라는 어처구니없는 성으로 오페레타 극단에 들어갔다. 어머니와 나는 페테르부르크에 온 뒤 「Madame Archiduc」(「한 시간의 칼리프」)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제대로 노래했고 품위 있고 수수하게 처신했지만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그녀는 travestie로 어느 장교 역을 맡았다. 아래층에는 티흐메네바 자매가 장교인 오빠와 함께 살았다. 그들은 서른 살쯤이었기 때문에 노처녀로 여겨졌다. 그들의 얼굴은 장화 목처럼 아주 거무스름했고 이목구비는 조지아인 같았다. 그중 하나는 「나를 꾸짖지 마오, 어머니」, 「다정한 나이팅게일이 달콤하게 노래했네」를 불렀다. 극장에서 「17세기 러시아 혼례」를 상연할 때 그녀는 신부 역으로 초빙되었다. 지방의 귀부인들과 아가씨들은 기분이 상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이 신부에게 제법 난 콧수염이 분칠 아래로 보일지였다. 프리유츠카야 거리와 아르먄스카야 거리 모퉁이의 스미르노프가 집으로 이사한 뒤로 나의 기억은 매우 일관된 성격을 띤다. 그래서 그것들을 집에 결부시킬 필요가 없고, 저마다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그 집은 라리오노프가 집보다 컸을지도 모르지만 더 나빴다. 정원이 없었고, 나는 옷장들 뒤 밝은 현관방에서 지냈다. 마당은 아주 작았지만 그래도 볼가강이 보였고, 정문 쪽으로는 현관방이 거의 셋이나 있었다. 집주인 여자는 미클루호-마클라이의 친척이었고, 그는 그녀를 찾아오곤 했다. 나는 이 여행가의 파푸아인 같은 머리채에 깜짝 놀랐다. 사라토프에서 나는 미클루호-마클라이, 모르도프체프, 로빈스키, 사라사테, 데지레 아르토를 살아 있는 모습으로 보았다.
음악의 요소. 내게 부족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음악도 여기에 없기는 하지만) 음악의 요소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8월 5일 (일요일)
몸 상태는 그저 그렇다. 날씨가 훌륭하다. 보긴스키와 스테파노프가 현관 옆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앉고 싶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스투케이를 기다려 소풍을 가려는 참이었다. 나 자신은 소피아 병영 쪽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그 뒤로는 나가지 않고 종일 앉아 있었다. 아침에 클레베르를 만났다. 그들은 내일 그의 연출 작품을 보러 파블롭스크로 간다, 어제는 마리야 클레베르의 이름날이었다. 저녁에 미하일로프네 집에 가려 했는데, 다시 이리로 돌아오는 쿠지미나가 나를 붙잡았고, 그다음에는 O. N.이 온다. 유르.는 별로 받지 못한 것 같지만 집에 쓸 냄비를 하나 샀다. 그녀와 함께 나섰는데, 우리 앞에 보긴스키와 술타노바가 어른거렸다, 그들은 유리 니콜라예비치에게 가는 길이었다. 미하일로프네 집에는 스테파노프 형제 중 누군가가 와 있어서 그들은 산책하러 나갔다. O. N.에게 들러 앉아 있다가, 그다음에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무슨 트림이 났다.
8월 6일 (월요일)
훌륭하고 안정된 날씨. 아침에 보긴스키와 함께 면도하러 갔다, 그다음에는 원예점에 가서 티란에게 줄 꽃을 샀다. 그 뒤에 O. N.이 들렀다. 어제 알렉스. 알렉스와 미하일로프 부부가 그녀에게 왔었고, 오늘 오라고 한다. 차를 마신 뒤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과학아카데미 사서 베르네르를 알게 되었다. 갑자기 레프 리보.가 왔다. 햇볕에 그을렸고 아주 좋아 보였는데, 티란조차 웬 “귀여운 소년”이 나를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그 뒤에 O. N.도, 드미트리 세르게예비치도 들렀다. 바인시테인네가 우리와 함께 갔다. 그들 집에서는 평원이 환상적으로, 훌륭하게 내려다보인다. 앉아서 포도주를 마셨고, 사랑스러운 유르.가 왔다. 나는 그를 매우 사랑한다. 흐리스티나 닐솝나도 있었다. 저녁에는 벌써 더 어둡다. 우리 집 마당은 창문과 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밝혀져 있다. 우리가 걸어갈 때 그 집에서는 밝은 흰색과 초록색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8월 7일 (화요일)
아침에 글을 쓰다 지쳐 산책하러 나갔다. 소피아 일대를 걸었다 — 완전히 다른 도시다. 기분이 매우 좋다. 차를 마신 뒤 유르.가 왔다. 산책하러 나가서 카메론 갤러리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남은 것은 가지고 나왔다.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 예브게니야 니콜라예브나가 왔고, 어찌어찌 그녀와 시간을 보냈다.
8월 8일 (수요일)
멋진 날씨. 다시 나갔는데 별로 잘되지 않았다. 공원은 벗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돌아와 보니 우리 사람들은 정원에 있고, 나를 찾지도 않는다. 저녁에도 어찌어찌 나를 찾지 못했다. 티란은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다. 아주 잘생긴 운전수가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보긴스키 하나만 와 있었다. 크슈샤는 시내에 있다. 코추로프네 집에는 클레베르가 앉아 있었다. 매우 즐겁고 아름다웠다. 어떤 남쪽 도시, 타간로크 따위에 있는 듯이 돌아왔다. 내일은 파블롭스크에 가려는데, 돈이 넉넉하기만 하면 좋겠다.
8월 9일 (목요일)
우리 사람들이 점심 전에 나를 데리러 들렀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으려 했다. 먼저 땡볕 때문에 무슨 언쟁이 일었다. 그 뒤 우리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 유르.는 자고 있었고, O. N.도 그랬다. 기차를 오래 기다렸다. 팔라다가 일그러진 얼굴로 비극적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차가운 포도주를 멋지게 마셨다. 어딘가에 레즈니코프가 어른거렸다. 파빌리온으로는 다시 아폴론 쪽의 무슨 후미진 데를 지나 걸어갔다. 그러나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어쩐지 지치고 심심해졌다. 유르.를 오래 기다렸다. 심지어 도로를 거닐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연주를 청했고 나는 응했는데, 마침 우리 사람들이 오는 것이었다. 유르.가 투덜대기 시작하고 O. N.에게 다시 한 번 들르라고 일렀으나,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었고, 그 뒤 갑자기 알. 알.이 왔다. 희고 날씬했다. 내일 산책하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내 방에 앉아 있었는데 — 안드르. 알.이 등을 고쳐 주어서, 밤에 내 방은 완전한 일루미네이션이 되었다.
8월 10일 (금요일)
근사한 날이었다. 보긴스키가 떠났다. 리가에서 온 여자는 정원을 거닐며 신경과 심장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 알.과 흐리스티나가 왔다. 탸를레보와 파블롭스크 길을 걸었고, 15년을, 소모프를, 그다음 22년을 떠올렸다. 아주 다정하게, 그리고 어쩐지 좋게. 이미 아침에 안드. 알렉스.가 나에게 파블롭스크 II 너머로 이륜마차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는데, 그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곳들과 point de vue가 있다. 나는 새로운 곳을 보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것은 꿈속 같다. 그리고 특히 말이 끄는 마차로 다니는 것(어쩌면 자동차로도). 저녁에는 레비틴이 와서 이탈리아 엽서들을 끌고 왔고, 그다음 올가 셈.이 왔다. 그녀는 어쩐지 의지할 데 없이 앉아 있다가 밤이 다 되어 공원에 가려고 버스를 찾으러 갔다. 나는 그녀가 가엾어지기까지 했다. 저녁에는 연주했다.
8월 11일 (토요일)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아침에 단골 이발사에게서 면도했다. 말란치코프가 「송어」를 읽으러 들렀는데 — 그때 유르.가 도착했고, 조금 뒤에 돌아오려고 베테랑들에게서 나와 우리 사람들에게로 갔다. 또 한 번 불안이 있었다. 올레크와 결합했고, 편안히 잤다. 이틀만 남았다.
8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체르노프와 파블롭스크 길을 걸었고, 그는 시[판독 불가], 런던과 파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티란이 남편과 함께 왔다. 14일에 오라고 한다. 갑자기 천둥과 비. 그렇다, 유르.가 왔을 때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어쩐지 놓쳤고, 그다음 O. N.이 우리를 찾았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유르.를 데리러 갔고, 포도주를 마시고 의사에게 갔다. 사진들은 별로였고, 끔찍한 몸속이었다. 아주 좋은 「나는 믿나이다」 성화뿐이었다. 저녁 내내 런던에서 온 제냐 만델시탐이 이곳을 맴돌았는데, 과장되게 소비에트적인 몸가짐에 큰 목소리, 눈부시게 화려한 드레스였다.
8월 13일 (월요일)
자, 떠난다. 안드르. 알.이 남으라고 제안하지만, 그래도 떠나야 한다. 유르.조차 그다지 만류하지 않는다. 술타노바에게 들렀다. 반쯤 어두운 방에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으면서도 곧바로 고리키, 벨리의 어머니, 류브. 드미. 블로크 등에 관해 험담을 시작했다. 유르.가 책을 가지러 들렀고, O. N.도 들렀다. 그다음 저녁에 떠났다. 크로힌은 아주 다정하게 작별했다. 아무 때나 오라고 했다. 체르노프가 우리를 배웅했다. 떠났고 꽤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하자 나는 책상 위의 종이에 곰팡이가 피었다며 비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유르.는 — 히스테리를 섞어 가며 모든 것을 볼셰비키 탓으로 돌리기. 작은 등을 켜 두고 조용하고 편안히 잤지만, 아주 후텁지근했다. 이것이 도시에서의 첫날이다.
8월 14일 (화요일)
유르.는 결국 티란에게 가려는 나를 말렸고, 어쨌든 나는 하루 종일 후텁지근한 집에 앉아 있었다. 황홀하게 책과 악보를 정리했다. 레비틴과 스토리친이 전화했고, 이반 플라토노비치의 심부름꾼이 왔다. 독촉들. 유르.는 하루 종일 책과 씨름했고, 어머니는 협동조합에 다녀왔고, 나는 자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기도 했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불쾌했던 것은 아무 이유 없이 티란을 속이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무슨 이유에서든, 내가 그들에게 오기를 아주 원했다. 라들로프 부부는 물론 아직 없다. 저녁에는 렘브란트풍으로 마당의 노천에서 주택협동조합 회의가 열렸다.
위를 보기. 낮에 나무 아래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나무들이 유난히 높고 유난히 푸르게 보인다. 깊이에 대한 큰 인상을 받는다. 하늘은 쉴 새 없이 모양과 크기를 바꾸며 움직이는 틈새로 겨우 보인다. 새들은 당신이 꼼짝도 하지 않으니 당신이 있는 줄도 모르고, 태연히 가지를 타고 위로 뛰어오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문득 시선에 드러나며 같은 음악적 악구를 지저귄다. 날아다닐 때 나는 날갯짓 소리와 퍼덕임의 세기가 그 크기를 말해 준다. 새들은 거의 언제나 아주 깔끔하다, 참새조차도. 풀을 먹인 옷을 입은 멋 부린 깔끔쟁이도 이들과 견줄 만한 이는 드물다. 더러운 물에 신이 나서 몸을 담그며 그때마다 점점 더 더러워지고 우스워지는 새끼오리를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뭍의 새들은 아주 깨끗하고, 얼마나 알록달록하게, 얼마나 즐겁고 꼼꼼하게, 칠해졌다기보다는 전체적인 회색 바탕 위에 살짝 물들여져 있는지(무지한 관찰자에게는 모두 참새이거나 까마귀일 뿐이다).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분홍색, 빨간색. 유럽의 숲에는 깃털 달린 주민이 아주 적다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하다. 게다가 새들은 짧은 기간만 노래한다. 이미 8월에는 5월 같은 지저귐이 없고, 제비만이 소리 지르지 않고는 날아다니지 못한다. 시베리아에서는 꽃에 향기가 없듯 새들도 전혀 노래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일까. 참으로 기이하고 죽은 듯한 특징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것이 아시아 전부는 아니다(페르시아, 인도, 중국).
8월 15일 (수요일)
유로치카는 꽤 일찍 떠났다. 나는 면도하러 나갔다. 스토리친이 와서는 늘 그렇듯 나를 속상하게 했다. 저녁 무렵 어머니는 성당에 가셨고, 나는 좀 심심해져서 야놉스키네 집에 갔다. 올가 세묘노브나는 다림질을 하면서 끝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예브게니야 바실리예브나는 파이 잔치에서 돌아와 이름 축일 잔치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8월 16일 (목요일)
스토리친과 치체린이 전화했다. 내일로 코지민과 스테파노프를 불렀다. 오늘은 레비틴과 베르네르의 딸을 기다렸다.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다. 베르네르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고 리하초프가 나타났다. 그래도 나는 그가 반가웠다. 꼬마와 함께 차를 마셨다. 그 아이는 깃을 풀어헤친 흰 셔츠를 입고 뛰어들어와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저리 날뛰고 물장구를 쳤다. 유르.는 늦게 왔다. 그러나 그 처녀는 더 늦게 왔다. 여기에 벤이 궤짝처럼 밀고 들어왔다. 그래도 아주 즐거웠다. 브레먀 출판사에서도 사람들이 왔고 프룸킨도 왔다. 내일은 스미르노프가 올 것이다. 기분이 좋다.
8월 17일 (금요일)
멋진 날씨. 유르.를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 보내고 나는 브레먀 출판사로 갔다. 유르.를 만났다. 그는 꽤 많이 받았다. 넥타이를 샀다. 브레먀 출판사에서는 기운을 내며 일을 척척 정리하고 있다. 스미르노프는 오지 않았다. 벤을 불렀다. 모두 좋았다. 내 일기를 읽었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는 회고록 제3권에서 벨리가 나에게 오물을 끼얹고 있으니 무언가 할 수 없겠느냐고 나에게 미리 알려 주려 했다. 벤의 말에 따르면 그가 전에 자기 선언문에서 말했던 것과 똑같고, 더도 덜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그다지 맑지 않은 내 지평 위로 무슨 먹구름 같은 것들이 몰려들고 있다. 내일은 어쩌면 미하일로프가 여름 정원에서 우리 사진을 찍을 것이다.
8월 18일 (토요일)
날씨가 좋고 바람이 분다. 옛날처럼 유르.와 여름 정원에서 만났다. 그곳은 깨끗하고, 꽃이 심겨 있고, 새 벤치가 놓여 있고, 물은 깨끗하고, 하늘은 맑고, 먼지는 없다. 그다음 미하일로프가 카메라를 들고 왔고, 그다음 알. 알.이 왔고, 그다음 거닐며 온 시민을 유혹하듯 사진을 찍었다. 그다음 부모님, 흐리스티나와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우리를 찾아냈고, 그들과도 함께 거닐었는데, 마치 여름이고 진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침에 그들은 카티시를 만났고, 정원에서 기사들은 그녀에게로 갔으며, 어른들은 네바강으로 산책하러 갔다, 어제 안나 안드레예브나가 예브게니 세르게예비치를 배웅하고 집을 나누러 왔었다.- 소모프가 방금 그녀에게 옷본이 든 편지를 보냈다. 대체로 삶은 흘러간다. 대체로 무언가 유럽적인, 독일적인 소일거리였는데, 전시회에 들르거나 맥주를 마시는 것만 빠졌다. 집에서 잠을 잤다. 그다음 스미르노프. 휴양권을 둘러싼 우여곡절과 “Acad”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로즈니는 아직 얼마 안 된다. 라들로프는 아직 공식적으로 극장에서 나가지 않았다. 비가 왔다. 모두 좋다.
8월 24일 (금요일)
19일에 완전히 예기치 않게 발작이 왔다. 유르.가 데츠코예에서 제때 돌아온 것이 다행이다. 그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러나 나는 분명히 의식이 없었는데, 내 자신의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만은 내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구급차가 어떻게 왔는지도, 내게 어떻게 주사를 놓았는지도 듣지 못했고, 유르.가 베개를 들고 돌아왔을 때에야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내 옷을 벗겼다. 알고 보니 의사는 아무 희망도 없다, 이건 임종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한다. 불쌍한 유르.: 내가 집에서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약국을 뛰어다니며 베개를 구하다니. 나는 집에서 자력으로 누워 있다. 유르.는 잠깐씩 나가고, 데츠코예에도 다녀왔다. 레베와 레비틴이 꽃을 들고 왔다. 유르.가 결국 내게는 촛대를, 자기에게는 시계를 샀다. 누워 있는 것이 물론 병원보다는 어쩐지 더 즐겁지만,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다. 조금 공부하고, 『빌헬름 마이스터』를 황홀하게 읽는다. 어떻게든 다 따라잡겠지.
8월 25~27일 (토요일·일요일·월요일)
누군가 나를 찾아왔고, 누군가 전화를 했다. 유르.는 식이요법, 무엇보다 굶기는 것으로 나를 조금 괴롭히지만, 요 며칠은 그도 누그러졌다. 온갖 방문객을 두고, 심지어 무언가 즐거운 일에 대한 온갖 생각을 두고도 야단을 친다. 오늘 처음으로 면도하러 나갔다. 해가 비치는 즐거운 비. 스미르노프를 집으로 데려왔다. 집은 치워져 있고, 비질이 되어 있다. 전부 유르.다. 어머니가 무슨 못 먹을 것들을 끌고 왔다. 『빌헬름 마이스터』를 아주 잘 읽고 있다. 저녁에 유르.는 더 큰 화를 막으려고 내게 포도주까지 먹였다. 저녁을 잘 먹었다. 제비들은 벌써 떠났다.
탑(계속). 소모프의 초상화 작업 때 탑에 처음 간 그 순간부터 뱌치. 이브.와의 내 우정 문제는 결정되었다. 그의 문헌학적 열광도, 그의 창작도, 그의 괴테주의도, 언제나 빛나는 그의 사변적 구성도, 심지어 그의 변덕, 쉽게 토라지는 성미, 분노의 폭발까지도, 그 안에는 꾸며낸 것이 적지 않았지만, 모두 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의 성격에는 발몬트와 공통된 점이 가장 많았고, 발몬트에게도 그와 공통된 점이 가장 많았다. 그들은 둘 중 누가 청록빛이고 누가 저녁빛인지를 오래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었고, 술에 취하기를 좋아했으며, 수염과 머리카락이 무성한데도 여성스럽게 느끼고 여성스럽게 처신하기를, 때로는 “대담한” 자로서 자기 옷도, 남의 옷도 찢어버리기를, 대체로 추태를 부리기를 좋아했다. 브류소프에게서는 이 모든 것이 더 투박하게 나왔고, 실제로도 그는 그런 일탈을 꺼렸다. 벨리는 예로부터 꾀병쟁이, 중상문 작가, 성불능의 히스테리였고, 블로크는 대체로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으며, 솔로구프는 빙그레 웃으며 속물적인 가학 세션에 그쳤다(그것도 나중에, 이미 나스탸 체보타렙스카야가 있었고, 그들이 수데이킨 부부 및 예브레이노프와 친하게 지내던 때였다).
우리(즉 소모프, 누벨, 그리고 나, 때로는 박스트)는 “탑”에 아주 자주 갔지만, 나머지 우리 연대기 속에 이바노프 부부는 아주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너무 거추장스럽고, 거창하고, 굼떴을 것이며, 타브리다 정원으로의 우리 일탈 같은 것은 흔히 그들에게 아무 흥미도 없었을 것이다. 이바노프 부부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슨 조합인가를 꾸며 보기는 했지만(L. 드미.는 마르가리타 사바시니코바와, 뱌치. 이브.는 고로데츠키와),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일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구의 발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줄곧 부부 쌍방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 제삼자를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노비예바의 억누를 수 없는 질투와, 모든 여자 방문객에 대한(아마 잠재적으로는 모든 남자 방문객에 대해서까지도, 어쨌든 이 경우 성별은 거의 아무 의미도 없었고, 강의식 웅변의 전반적인 에로틱한 분위기가 있었다. 젤린스키에게서는 이것이 좀 더 국한되어 있었다) 뱌치. 이브. 쪽의 고칠 수 없는 교수식 구애 때문에, 물론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뱌치. 이브.에게는 여자 방문객이 무수히 많았다. 리드. 드미.와 그녀의 부추김을 받은 하인들, 심지어 수위 파벨까지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몰아내려 했음에도, 그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뱌치. 이브.는 애초에 두 시간 미만으로는 이야기를 할 줄 몰랐고, 한 사람씩 따로 맞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실에는 늘 깊은 밤까지 치과 의사 앞처럼 대기 줄이 있었다. 내 생각에 대화는 흔히 비슷비슷했을 테니 한 대화를 스무 명과 한꺼번에 나눌 수도 있었겠지만, tete a tete가 필수 조건이었다. 여학생이 강의가 언제 시작되는지 알아보러 와도, 뱌치. 이브.는 단둘이서 세 시간씩 이야기했다. 여학생들, 신지학도들, 정신병자들이 드나들었다. 마지막 부류는 아주 적었지만, 씨앗을 받으러 위대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브릴리안트 부인 같은 이들이 있었다. 그녀는 천재에게서 태양의 아들을 얻고 싶어 했다. 방문 전에 그녀는 거의 남편과 함께라 할 정도로, 해당 인물이 충분히 천재이며 품위 있는 사람인지 오래 따졌다(이것도 어째서인지 조건에 들어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안드레예프, 브류소프, 예브그. 바스. 아니치코프를 헛되이 찾아다니다가 뱌치. 이브.에게까지 이르렀으나, 여기서 리드. 드미.가 옆방에서 이 기이한 방문객의 소망을 듣고 그녀에게 등유 램프를 던졌다. 서재 전체에서 사흘 동안 등유 냄새가 났다. 때로는 꽤 운동선수 같은 체격의 그 부인의 남편(아마 치과 의사)도, 충분히 대담하지 못한 천재들에게 압력을 가하려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번에도 누구에게서 우리 모임에 더 큰 조직성을 부여하자는 생각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피즈”라는 이름의 오락을 위한 비밀 결사를 세웠다. 이 결사는 아주 짧게 존재했음에도, 우리 모임에 적지 않은 영향과 결과를 남겼다.
8월 28일 (화요일)
나가지 않았다. 날씨는 좋다. 몸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어쩐지 그다지. 오후 낮잠을 자는 동안 어떤 외국인이 찾아왔다. 다섯 시에 오겠다고 했다. 그가 누구일까, 아니 누구에게서 온 사람일까, 무언가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알고 보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브노 출신의 어떤 벤 야노비치 슈트라센(부르크)으로, 페테르부르크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 년 전 취리히에서 뱌치. 이브.를 보았다 — 그것이 그가 나타난 이유의 전부였다. 도무지 불가사의한 방문이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 벤이 왔다. 이 사람은 자기가 베르네르를 전송한 일을 예카테리나 콘스탄티노브나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줄곧 부산을 떨고 있었다. 내가 건강한 줄 알고 엄청나게 들뜬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나는 끝내 나가지 않았다. 카플룬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만 어머니가 곧바로 기어 들어와서는 시베리아에서 온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날씨와 지형과 강과 법률이 마땅히 그러해야 할 모습이 아니라고 여기는 식으로 대화에 끼었다. 이것은 자기 의견이라는 것과 비슷하다.
새로운 장소. 온갖 칩거 성향과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 장소를, 새로운 장소라기보다는 새로운 전망, point de vue를 무척 좋아한다. 말을 타고 가는 것, 혹은 지금처럼 매분 멈출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은 내게 존재의 주요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걷는 것은 더욱 좋다. 내 생각에 독일 학생들, 견습공들 등의 이러한 여행은 — 자유롭고, 우호적이며, 목적 없이 활동적이고, 공기처럼 창조적이며, 자연과 삶과 사람과 예술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 길이라는 의미에서 하늘의 발명이다. 도시, 마을, 강, 초원, 산, 새벽,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의 하룻밤 — 어제의 것은 이미 어두운 과거로 물러났다. 그렇게 석 달이 거대한 삶처럼, 『Orbis pictus』처럼. 그렇게 온 나라를 걸어서 누비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르침이고, 이것이야말로 배움이다.
집. 집에 앉아 있는 것은 아낙네들의 일이다. 해바라기와 노란 다알리아가 무성한 어느 다차 곁을 지나다가, (분명 비어 있는) 온 집안에 울리도록 처녀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심심하고도 매력적이고, 군침이 돌고, 아무도 필요 없다. 아이는 그 곁에 앉아 있는 것이 즐겁고, 모든 것이 흥미롭게 보인다. 실을 꿰는 것도, 바늘을 풍만한 가슴에 꽂는 것도, 파리를 쫓는 것도, 발판 위에서 발을 옮기는 것도, 딸꾹질을 하는 것도 — 모두 신비로운 의미와 흥미로 가득하다. 남자에게서는 이렇게 되지 않는다. 집안일은 유모와 보모의 왕국이다. 나는 다락방 창문에서 고양이를 보았다. 몸을 씻고, 파리를 잡고, 지붕장이를 바라보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이 — 얼마나 군침이 돌고, 얼마나 멋진지. 그리고 고양이에게는 아무도 필요 없고, 혼자라서 기쁘다. 남자는 집에 혼자 있으면 시들어 버리지만, 여자는 자기가 주인이자 여왕임을 느낀다. “사내는 개와 함께 마당에, 계집은 고양이와 함께 집에.” 집을 지키는 것은 계집아이들과 할멈들이지, 남자들이 아니다. 사내아이는 도망칠 것이고, 할아버지는 또 술집으로 터덜터덜 갈 것이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시들어 갈 것이다. 비록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는 자립적이고 여자는 언제나 집단적이며, 집단을 통해 두드러진다. 여자는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여자 친구들 없이는 못 한다.
8월 29일 (수요일)
잿빛. 유르.가 데츠코예로 갔다. 몸은 아주 괜찮다. 심지어 나가지도 않았다. 유르.는 일찍 돌아왔는데, 어쩐지 언짢아 있었다. 자기와 O. N.의 물건을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다. 바스마노프, 레비틴, 말란치코프가 전화했다.
8월 30일 (목요일)
호다세비치가 전화했고, 그녀와 약속을 정했다. 저녁에 그곳에 있었다. 바소프와 본다렌코가 왔다. 나디나가 잠깐 들렀다. 호메로스에 대해서는 내게 암울했다. 모두가 대회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고, 서구에 대해서는 정부의 안경을 통해, 고리키, 톨스토이, 마르샤크, 말리 극장에 대해서. 나는 어디에서도 전혀 관계가 없다. 세료자의 자리 마련은 이미 어딘지 터무니없다. 아침에 면도를 했다. 레비틴과 모솔로프가 왔다. 모두 내게서 아주 멀다.
조직된 삶. 내가 유럽에서 러시아로 돌아올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거리의 대중이 지닌 무절제함, 방종, 축 처진 입술과 배였다. 삶 자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이 그럭저럭 제 발로 서 있고, 남에게도 흥미롭고 자기에게도 존중할 만하고 혐오스럽지 않으려면, 그것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자르고 저기서는 더하고, 모든 것을 따져 목적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어떤 예시, 견본, 이상을 단번에 영영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흔히 역할을 해야 하고, “일을 하고 있다”, 창조하고 있다, “성공하고 있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야, 그것을 자기 의식에 심을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자기도 믿고 남들도 믿게 된다. 가볍고 즐겁고 행복한 삶은 고통 없는 자연 흐름이 아니라 힘든 금욕적 자기 제한과 자기 상상, 거의 눈속임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삶이 능동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다. 다만 두렵다, 그렇다면 삶에서 삶이라 불리는 것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삶이 생산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그러나 체질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런 무능은 그들의 성격의 긍정적 속성이어야, 그렇게 여겨져야 마땅하겠지만,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로부터 감염되고 활력을 얻고 삶에 대한 식욕을 얻기란 더 어렵다. 그들은 작용하지 않는다. 영향을 끼치려면 조직된 삶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데주다 콘스탄티노브나가, 말하자면, 안나 드미트.보다 남들에게 더 군침 도는 삶을 산다.
파블롭스크의 저녁들. 유르.는 거의 날마다 우리에게 왔지만 일찍 떠났다. 우리 정원까지 음악이 날아왔다. 물론 홀에서가 아니라 광장 쪽에서. 나는 오래 걸으며 들었다. 발렌티나 세르그.와 올레크는 역 안을 뛰어다니며 모험을 찾았고, 나중에 그것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내게는 그것이 하찮고 기형적으로 보였다. 마치 아가슈카 사조노프의 향연 같았지만, 호화로운 설정을 가진 소설가라면 거기서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삶”이란 “러시아 영혼”, “현대성”, 벼룩 같은 것으로, 잡기 어렵다. 그것이 의식적인 사기극이 아니라면 말이다.
8월 31일 (금요일)
밖에 나가지 않고 많이 잤다. 악보를 정리했다. 날씨는 잿빛이다. 저녁에 레비틴이 꽃을 들고 왔다. 알뜰하게나마 아주 좋게 함께 앉아 있었다. 유르.는 돔브롭스키네 집으로 달려갔다.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어제 호다세비치를 방문한 뒤의 “쓸모없어진 처지”라는 느낌이 내게서 가시지 않는다.
이발소. 이탈리아는 내게 무엇보다도 뮤지컬 코미디 극장(아직 네프스키 거리에 있을 때)의 리허설에서, 햇살 좋은 봄날일 때(비록 이탈리아와 달리 그곳에서는 아무도 노래할 줄 모르지만), 또는 이발소에서 떠오른다. 호화로운 곳에서도, 초라한 곳에서도. 거기에는 무위와 험담과 오데코롱과, 골도니의 희극에서 나온 듯한 어떤 단골들이 있다. 언제나 대단히 생기 있게 작용한다. 특히 예전에는 그랬다. 이제는 여자 이발사들을 들이고 남자 홀에서 여자 머리를 깎게 되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무미건조한 체육성과 연애의 외설적인 측면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적으로 의식적인 태도라는 인상이 이발소에서 유희를 빼앗고 그곳에 어떤 암울한 헛소리를 부여한다.
8월 31일 (토요일 [금요일])
유르.는 데츠코예로 떠났다. 몇 가지는 잊어야 한다. 날씨는 잿빛이다.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베로나의 두 신사』 건으로 데르자빈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페트로프를 불러 함께 앉아 있자고 했다. 그 뒤에는 넬디헨이 제 발로, 그것도 꽤나 때아니게, 자기 시름과 자기 희곡을 들고 밀고 들어왔다. 그렇지, 낮에 내가 자고 있을 때 환영처럼 리도치카 스테파노프나, 프로코피 스테파노비치의 누이가 찾아왔었다. 숙청당한 그녀의 아들이 여기서 체육 강습을 받고 있는데, 그녀는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내가 아는 데가 없겠느냐고, 참 별난 사람이다! 자기 해군 아들 사진까지 내게 보여주었다. 조카딸들에 관한 슬픈 소식: 리다의 남편이 죽었고, 볼로댜 톰벨리니는 유배되었다. 그녀는 얼굴이 오히려 덜 비뚤어지고 덜 거무죽죽해졌다.
다리. 햇빛에 잠긴 빈터들이 있는, 길이 뚫린 숲에서, 이 엘리시움의 들판에서 우리가 큰길로 나왔을 때, 눈앞에 어떤 우크라이나 풍경이 펼쳐졌다. 먼지 자욱한 철교로 오르는 엄청나게 넓고 먼지 자욱한 진입로, 다리 아래에는 선술집 같은 가게들과 유대인 오두막들. 넓고 먼지 자욱한 큰길에는 널찍하고 칠이 벗겨진 저택들이나 완전히 풍화되어 버린 다차풍 fantaisies. 정원들은 묘지 같고, 빈민굴 같으며, 먼지 자욱하면서도 눅눅하다. 선로의 어귀는 골짜기 같고, 멀리 들판이, 더 멀리에는 환영처럼 요새, 보루, 탑, 누각이 있고, 모두 흰색에 붉은색이다. “코미사롭카”와 군사 도시. 표도롭스키 고로도크와 꼭 맞아떨어진다. 두 가지 장난감: 병정놀이와 신부·부제 놀이. 그러나 으스스하고, 정답지 않고, 아늑하지 않은 놀이들이다. 이 도시는 — 소피야의 일부다 — 소피야도 어딘가 꾸며낸 장소다. 내 생각에 그곳에는 병영과 폐지된 관청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으며, 석조 건물들이 있는데도 모든 것이 일부러 만든 가짜다. 차르스코예 셀로와는 전혀 다르다. 아니면 어떤 헤르쿨라네움, 잠자는 미녀의 도시 같기도 하다. 그러나 깨어나도 그곳에는 북과 위병소와 관리들뿐이다. 거기에 학교들까지 들여놓으면 딱이겠다. 즈브루예프나 크리비치가 살기에 걸맞은 곳이다. 그것도 그들이 미쳐 버린다면 말이다.
9월
9월 1일 (일요일 [토요일])
데르자빈이 왔다. 통통하고 상냥하며 공손한 사람으로, 『베로나의 두 신사』 건 때문이었다. 곧 『말괄량이 길들이기』 건으로도 나를 찾아올 것이다.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서는 받을 것을 다 주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장작과 자잘한 선물 살 돈은 된다. 유르.와 함께 걸었다. 봅카가 스트라빈스키와 내 「알렉산드리아의 노래」를 들고 왔다. 저녁에는 집에 있었다. 체렘샤노바라는 아가씨도 전화를 걸어왔다. 앞으로 공연이 많이 잡혀 있지만, 그중에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집시 여자. 데츠코예 근처에는 집시가 많다. 그들은 곱게, 그리고 꽤 깨끗하게 차려입었다. 다른 “현대의 찌푸린 얼굴들” 가운데 하나로, 이들로 콜호스를 만들었다는데, 그들은 추혼 말을 쓴다고 한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어떤 화가가 집시 여자 하나를 어느 원반 던지는 사람 조각 밑에 앉혀 놓고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대단히 의젓하게 앉아 있었고, 둘레에는 구경꾼들이 서 있었다. 화가는 아마 지나치게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을 것이고, 게다가 그에게는 순진하지만 어딘가 관습적인, 구식이지만 진짜인 예술가 기질의 기운이 있었으며, 이 장면에는 푸시킨풍마저 있었다.
탑(계속). “하피즈”라는 이름은 당시 페르시아-아랍 것에 매료되어 있었던 듯한 뱌치. 이브.가 붙인 것이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늘 선술집과 현학, 그리고 늙은 괴테가 연상된다. 이브.의 은밀한 생각은 지노비예바의 정념들로부터 숨 돌릴 구멍으로서 Herrenabend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리드. 드미.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술집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유일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술 따르는 시종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누가 그 역할을 할 것인가? 나와 누벨은 냉소적으로, 그럭저럭 반반한 신분 낮은 젊은이들을 그냥 고용하고 그들에게 무엇이 요구될지 미리 설명해 두자고 제안했다. 리드. 드미.에게는, 술 따르는 시종을 고용할 때 그녀의 이익도 고려하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제안은 뱌치. 이브.를 공포에 빠뜨렸다—오해와 거북함, 심지어 그런 술 따르는 시종들의 밀고까지 두려워한 것이다. 물론 그가 옳았지만, 이 모험에 대한 나의 흥미는 하피즈의 저녁들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식어 버렸다. 고로데츠키와 아우슬렌데르 같은 술 따르는 시종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준비 과정으로, 소모프가 헝겊과 천 더미로 우리에게 의상을 만들어 주던 때였다. 모두가 가장무도회에서처럼 서로 “너”라고 불렀고, 모두에게 이름이 있었다. 뱌치. 이브.—히페리온 또는 엘 루미, L. 드미.—디오티마, 소모프—알라딘, 박스트—아펠레스, 누벨—페트로니우스, 나—안티노오스, 베르댜예프—솔로몬, 그리고 아우슬렌데르—가니메데스, 그리고 고로데츠키(렐?)—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읽고(뱌치. 이브.와 고로데츠키가 특별히 지었다), 누벨이 무언가를 연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게 다였다. 리드. 드미.가 박스트를 향해 씩씩거렸고, 뱌치. 이브.가 킥킥거리며 수시로 코안경을 떨어뜨리면서 고로데츠키에게 서투르게 들이댔다는 것을 빼면, 평소의 술자리 저녁들에 비해 특별한 방탕은 없었다. 게다가 첫 저녁들부터 무슨 다툼이 시작되어, 뱌치.와 박스트는 충분히 장엄하지 않다고, 나와 누벨은 무척 지루하다고 여겼다. 새 얼굴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고, 모든 것이 때 이르게 시들어 버렸다. 그 사이 발레치카(누벨)가 파리로 가서 메레시콥스키 부부에게 발설해 버렸고, 아우슬렌데르는 아예 「가니메데스의 수기」라는 단편을 써서 모든 것을 아무런 에두름 없이 그려 냈다. 그리하여 두 주요 경쟁자인 메레시콥스키와 브류소프의 손에 약점이 될 문서들이 쥐어졌다. 우리는 하피즈식으로 누벨과 아우슬렌데르를 배신자로 심판했으나, “하피즈”는 문을 닫았다. 모임은 모두 일고여덟 번, 들쭉날쭉한 간격으로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그 영향은 짐작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컸고, 우리 모임의 경계를 훨씬 넘어 퍼졌다.
9월 3일 (수요일 [월요일])
따뜻하고 멋진 날씨였으나 나는 집에 앉아 있었다, 식욕은 있었으나 집에 앉아 있었다. 많이 잤지만 많이 일하기도 했다. 불가코프가 『길들이기』 건으로 전화했고, 알. 알. 시페트는 스타니슬랍스키를 위해 『헛소동』을 요구한다. 셰익스피어 곳간 같은 꼴이다: 안. 드미.에게는 비극, 내게는 희극, 그녀가 꿈꾸던 대로다. 레비틴이 꽃을 들고 왔고, 이어서 코르순. 저녁 무렵 젠야 크르시자놉스키가 코트에 대한 불평을 안고 왔다. 유르.의 작은 일기를 읽었다. 더 가정적이 되었다고 보았다. 이 부분에서는 본래의 일기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은 공기가 느낌상 유난히 따뜻하다.
바르샤바. 18세기 말과 나폴레옹 시대에 바르샤바는 적어도 연극과 음악 분야에서 어떤 중심적이고 기이한 삶을 살았다. 호프만의 전기로 보아. 그리고 역시 기이한 도시들인 크라쿠프와 프라하와 이어진다. 물론 내 상상 속에서. 조금 음울하고, 손님들과 괴짜들이 있고, 도처에 음악이 있는,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 같은.
마지막 발작. 말란치코프가 떠났을 때, 나는 겨우 그를 배웅하고 숨을 돌리려 창가에 앉았다. 발작이 가까웠지만, 아마도 불가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데츠코예에서 연주회 뒤에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 유르.가 돌아왔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잠시 누웠다. 갑자기 몸이 홱 치솟았다. “정말 너무 괴로워!”, 처음 몇 번 때처럼. 곧 잦아들었다. 앞방에서 대화 소리.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떴다. 밝은 방이 더 길게, 침대도 더 길게 보이고, 발치의 어머님은 겨우 보인다. 어머님은 계속 끙끙대며 내 다리를 뜨거운 물병 위로 굽힌다. 나는 계속 그르렁거린다. 이따금 안누시카가 나타난다. 유르.는 없다. 그가 어디 가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없기 때문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울리는 듯이 녹아내리며 따로, 고립되어 있다. 베개를 든 사랑스러운 얼굴이 나타나, 마치 빈대에 페르시아 가루를 뿌리듯 내게 산소를 뿌리기 시작했고, 그다음 나는 숨을 쉬었다. 포트와인을 주었다. 의사도 권했다. 무슨 의사? 코지민? 아니다, 와 있던 그 의사. 그런데 의사가 왔었나? 그렇다면 나는 6월 발작 때처럼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났다, 잠자리를 펴고, 내 옷을 벗겼다. 나는 곧바로 말한다. “유르., 저기 오른쪽 서랍에 양말이 있어요, 내 것과 당신 것을 샀으니 골라요, 그리고 거기 종이도 있어요.” 나는 생각한다, 그 불쌍한 사람에게 양말이고 종이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리라고, 의사가 그에게 아무 희망도 없다, 이것은 임종의 단말마라고 말했으니까. 그렇다, 밤에 나는 아직 변소까지 걸어 다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앓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대체로 누워 지내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9월 4일 (화요일)
유르.는 외출했다. 좀 답답했지만 나는 현명하게 집에 앉아 있었다. 옐친에게 전화했지만 — 아무것도 모르고, 코스챠에게는 — 연결되지 않았고, 유르.는 늦지 않게 와서, 알. 알.이 O. N.에게 우리 사진을 보여 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고, 그는 나를 몰아세웠고, 또다시 소식들이 이어졌다. O. N.이 내 병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녀가 무슨 의사라도 되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든 누가 관심이나 있겠나.
9월 5일 (수요일)
오늘 유르.는 어쩐지 나더러 나가라고 스스로 권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아카데미아”와 시위원회에 갔다. 나는 면도를 하고 산책을 나갔고, 마지못해 음악 고서점에 들렀다 — 갑자기 그곳에서 로시니의 미사를 발견했다. 그리고 파리조티의 아리아집 한 권도 —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마치 내가 책상을 정리하다가 이미 십오 년쯤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몹시 필요한 물건을 찾은 것 같았다. 체르노프가 찾아왔고, 음악가들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연주해 볼 수 있을 파가니니가 있다. 그것은 멋진 일이다. 저녁에 마당에서 멍청이들이 떠들어대는데, 마치 우리 집이 무슨 그라나다라도 된 듯하다.
9월 10일 (월요일)
세상에, 세상에, 또 중단이다, 또 같은 이유로, 또 사랑하는 유르.에게 고통이다, 발작 중에 우연히 불려온 의사들의 절망적인 예후. 또 모두들 안색이 훌륭하다고 한다. 이번에는 나는 훨씬 더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하다. 오늘 투신스키가 와서, 위험은 오직 내부에서 오는 것이며 객관적 자료는 위험을 시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 마실 때 슈야니노바가 부항을 놓으러 왔다, 역시 친척처럼. 그러나 저녁에 유르.가 밤에 데츠코예로 가려 하자 나는 또 보채기 시작했다. 그는 오래 결심하지 못했다. 그에게서 그토록 적은 (오, 얼마나 적은!) 가련한 즐거움마저 빼앗는 것이 무척 안쓰러웠다. 여러 사람이 왔으나 레비틴 말고는 나에게 들이지 않았다. 내일은 일어나서 일을 할 수 있다. 내 꿈은 환영처럼, 어떤 때는 천국 같고 어떤 때는 악몽이다. 아주 선명하고 짧고 두서없는, 하시시 같은 꿈이다. 투신스키는 자기 소견을 모두 유르.에게 말했다. 내게는 그저 전반적인 “산화”에 관해서만 말했는데, 어쩐지 나를 북돋아 주지 못했고, 마치 교감이 온전히 유지되지 않은 듯했다. 게다가 몇 밤째 빈대가 물어뜯는다. 그것들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9월 11일 (화요일)
처음으로 일어났다. 조금 공부하고, 파리처럼 아주 조금 놀았다. 모든 게 흥미롭다. [하루] 종일 그럭저럭 지냈다. 저녁 무렵에야 조금 풀이 죽었고, 게다가 기침까지 나기 시작했는데, 더구나 유르.를 기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러 소식이 있지만 아주 적다. 탸를레보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창문을 칠하는 동안 그곳에 다녀올까. 투신스키가 저녁에 말했다. “그를 책상에 앉히세요, 일하게 하세요.” 유르.는 밤에 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우상 같음. 코르순은 놀랍도록 잘생긴 사람이다. 정말로 페트로프가 말하듯 “레닌그라드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 중 하나”이며,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전혀 연애를 위한 사람이 아니다. 연애에는 변덕, 잔혹함, 얼간이짓, 비열함, 희생, 기쁨, 비극과 화해가 따르고, 그중 한 사람, 때로는 둘 다, 구제 불능의 쓰레기이자 배신자여야 한다. 더글러스 경에게서도, Manon Lescaut에게서도 뭔가가 있어야 한다. 레프 리보.는 내가 유독 그런 사람들만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지드도 그렇다. 지드에게서는 『위폐범들』의 가장 훌륭한 주인공이 여행 가방을 훔쳤다. 물론 그런 시간 보내기는 코르순에게 맞지 않다. 그를 찬미하고 흠모할 수는 있다. 그는 우상처럼, 아니 더 정확히는 연애 송가를 붙여 두는 받침대처럼 우상 같다. 또 세 번째, 사랑의 동료애, 공동체, 조화, 공동 창작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트리스탄」 같은 일종의 서사시이지 연애가 아니다. 후자에는 언제나 어떤 시시한 것들이 있다. 팔라디즘이든 구밀료피즘이든.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은 헛소리이고,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마흔다섯 번째도 있다. 다만 코르순에 관해서는 맞다.
9월 13일 (목요일)
회복 중인 내 삶에 도취되어 지낸다. 페인트공이 가구를 뒤집어 놓아 온 질서를 흐트러뜨리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피했다. 오늘은 유르.도 전과 같은 자리에서 잤다. “Academia”에서 「소음」에 관해 편지를 보내왔다. 코스탸가 왔다. 배를 타고 다니는 이야기를 조금 지루하게 했다. 일기 같은 성격의 조각들이 이 구성물 안에서 우세하고 그것에 걸맞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구성물은 점점 유기적 식물이 아니라 형식적 형식으로 변해 간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게다가 데츠코예에서는 지치지 않은 내 주의를 사로잡은 현상과 그림이 더 많았다. 유르.는 어디에도 전혀 나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그가 O. N.에게만 갔었다는 것이다.
앎. 나는 사람을 대할 때, 혹은 윗사람처럼 대하며 공손히 그 말에 따르고 믿으며 조심하거나, 혹은 손아래 친척처럼 대하며 다소 꾸짖고 위압하고 보살핀다. 나는 여기에서 연장자임이나 우정이나 친족 관계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모든 앎은 내게 윗사람됨으로 여겨진다. 곧 내가 갖지 못한 앎, 혹은 내가 지닌 것보다 더 많은 앎이다. 아마도 내게 그것이 흥미로운 분야에서 그럴 것이다. 가령 잘 아는 기술자는 내게 윗사람처럼 보이지 않겠지만, 농학자, 엔지니어, 정원사라면 그렇다. 아니면 부끄럽게도 돈과 지위도 그렇다. 부유한 사람도 내게 윗사람처럼 보이고, 은행장도 그렇다. 천재, 아름다움, 우아함, 웅변은 그런 노예화하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고, 머리를 어지럽히고, 사로잡지만, 그것은 동등한 것이다. 나는 그들을 윗사람으로도 아랫사람으로도, 사람으로도 대하지 않는 이들이 있고, 내가 사랑에 빠졌던 이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다시 말하지만, 다른 것이다. 또 혼합도 있다. 나는 다만 나이가 내 개념에서는 앎과 부로 대체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아름다움, 천재, 지성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9월 14일 (금요일)
유르.는 데츠코예에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따뜻하고 화창한 날들이다. 나는 데르자빈에게 전화했다 — 모두 무사하다, 라들로프에게는 — 극장에 남아 있을지 자기도 모른다고, 들르고 싶어 했다. 스테파노프는 — 내일, 페트로프는 — 오늘. 자기 발로 페탸 가가린이 들렀고 충실한 샤드린도 왔다,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충실한 사람이다. 저녁에는 페트로프도 왔고, 유르.가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다. 나는 공부를 잘했고, 일도 정돈되어 가는 듯하다. 다만 신이 건강을 주시기를.
탁자 위의 유리. 되는대로 핀으로 꽂아 둔 탓에 청소하는 동안 밀려나는 종이를 눌러 두려고, 유르.가 내 탁자 위에 유리를 놓았다. 매끄럽기가 더할 수 없이 매끄럽고, 깨끗하고, 닦을 수도 있고, 밝고, 유리 밑의 푸르스름한 종이 때문에 이 유리에 비치는 창문 너머에 언제나 푸른 하늘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매우 즐겁고 희망을 준다. 다만 그 위에 온갖 먼지 앉은 잡동사니를 올려둘 수는 없다.
매우 위험하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매우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어쩌면 내일 당장 다른 글을 쓸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것을 말해야 한다. 문제는 다름 아닌 믿음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평생 무신론자나 무관심한 자로 지내다가 일이 닥치면(곧 죽음이 닥치면) 믿음을 얻었다는 흔한 일화들. 그것은 감동적이고 편리하다. 나의 경우는 정확히 그 반대다. 평생 나는 믿는 사람이었는데, 일이 노년과 죽음에 이르자 그 믿음을 잃었다. 말라붙고 닫혀 버렸다. 마치 믿음이 실제의 죽음에서 나를 구해 주지 않는다는 데 화가 난 것처럼. 신에 대한 믿음을 나는 잃[지 않]았지만, 그것은 매우 불명확하고 형체가 없으며, 기적과 기도의 힘에 대한 믿음을 나는 잃지 않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아직 탐구되지 않은 힘에 대한 믿음에 더 가깝고, 기독교 신화와 성인과 의례에 대한 믿음을 나는 잃지 않았지만, 마치 그들에게서 멀리, 낯설고 지루한 먼 도시로 떠나온 것 같다. 거기에 친구와 가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을 보지 못한다. 그 도시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영혼의 개인적 불멸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 문제에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나의 모든 관계는 일본 판화의 검은 구멍에 대한 관계다. 둔하고 검고 절망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오직 나 자신에 관해서만 그렇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그 불멸을 믿으며, 심지어 그것을 그 자리에 머무는, 묘지의, 시신의 것으로 상상하기까지 한다. 나는 내게 가까운 이들이 죽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유령이나 흡혈귀 등의 모습으로 나와 교류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아니다. 왜? 지금조차 내 불신에 대한 의심이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나는 (웃지 마시라) 만약 해 질 녘의 구름을 바라보면서, 내가 매우 신뢰하고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영혼은 불멸하다고 내게 말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당장 믿어 버릴 것임을 안다. 혹은 합창단이 모차르트의 음악에 맞추어 불멸에 관한 프리메이슨의 가사를 노래한다면. 다만 훈계는 없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울고, 울고, 울고, 울 것이다, 완전히 기진맥진할 때까지, 완전히 쏟아낼 때까지 눈물이 성교할 때의 정액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어쩌면 일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합창단과 프리메이슨의 가사와 저녁 구름이 있는 정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믿을 만한 그런 사람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눈물은, 그것은 있을 것이다.
9월 15일 (토요일)
잿빛이지만 좋다. 아주 잘 공부했다. 기분이 좋았다. 보긴스키가 전화했고, 내일 오고 싶어 했다. 저녁에는 스테파노프가 와서 사진들을 가져왔다. 여름 정원은 어디서나 잘 나왔고, 몇몇 사진에서는 우리도 사교계 사람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유르.는 작은 사진에서 매우 잘 나왔는데, 경쾌하고 우아하게 나왔다. 젊은이는 알. 톨스토이, bel canto, 플라토노프에 대한 고풍스러운 편애를 다소 과시했지만, 그래도 매우 즐거웠다. 로자노프와 레비틴에게서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다. 그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슈베르트. 슈베르트, 숲의, 낭만적인, 노래의 슈베르트는 내게 아주 고풍스럽고 투박하게 보인다. 이를테면 베버보다 훨씬 더 고풍스럽다(그의 신성한 오페라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고풍의 기미가 있는 소나타나 로망스를 말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리스트에게는 낡아 버린 것이 많고, 어쩌면 바그너에게도, 후기 베르디에게도, 코르사코프에게도, 라벨에게도, 중기 비제에게도 그렇고, 베를리오즈는 아예 낡은 채로 태어났는데, 로시니와 들리브는 오늘의 매력처럼 빛난다, 드뷔시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슈베르트는 내게 끔찍하게 지방적인 독일 작곡가, 어딘가 티롤 사람 같고, 거의 스메타나나 모뉴슈코 같은 존재로 보이는데, 그런데도 이류 가운데서는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중 하나다.
9월 16일 (일요일)
유르.의 생일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데츠코예로 떠났다. 집에서는 파이를 구웠지만 기분이 다소 시큼했다. “Academia”가 19일까지는 돈을 주지 않을 것이고(19일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포노마리코프가 꿈틀대기 시작했고, 라들로프가 「돈 후안」을 카플란에게 난도질당하도록 내줄 것이고, 유르.가 내일 내가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 나가도록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안의 어떤 산소 비축분이 바닥났다. 올가 세묘노브나가 유르.에게 멜론을 보냈다. 저녁에는 보긴스키가 왔는데, 점잖게 무슨 기술자 같은 헛소리를 늘어놓았고, 그래도 어딘가 포크롭스키 집안의 먼 친척 같아 보였다.
모차르트의 정원들. 가장 무성하고, 호화롭고, 향기롭고, 뜨겁고, 이슬 맺히고, 어두운 것 — 그것은 「피가로」에 있다. 온 공기가,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노래하는 백작과 수잔나의 이중창에서, 수잔나의 마법 같은 아리아 「Deh, vieni non tardar」에서. 이 아리아는 모차르트적 표현력뿐 아니라 세계적 표현력의 진주인데, 어떤 바보들은 때때로 이것을 바셋호른이 붙은 다소 고풍스러운 백작부인의 아리아로 바꿔 놓는다. 「Cosi fan titte」의 정원들은 오렌지 향이 나긴 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여서 「피가로」와 견줄 수 없다. 이 오페라 전체가 그렇듯이 말이다. 이 오페라는 전문가들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숭배자인 내게는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잘것없고 아주 이류로 보인다. 하기야 지극히 어려운 심리적 상황이고,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피가로」 말인데.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픈 인물 중 하나가 백작부인이며(『빌헬름 마이스터』의 나탈리 같은), 이 사람이 「세비야의 이발사」의 바로 그 로지나라고 생각하면. 백작이 그녀를 로지나라고 부를 때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두 작품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농담하고, 사랑에 빠지고, 즐거워하고, 백작도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는데, 백작부인은 편두통을 앓으며 앉아 있고, 이따금 시동과 어린애 같은 장난을 허락하며(“늙은이와 어린것”), 그녀가 벌써 서른여덟쯤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물넷이나 스물다섯쯤이다. 요술에는 어떤 기한이 있지만, 모두에게 같은 나이에 오는 것은 아니다. 베레사예프의 푸시킨 동시대인들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그들 대부분이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죽었다는 데 주목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언제나 20년대와 30년대로 기억된다. 그럼 그 뒤에는? 아니면 그것은 푸시킨의 반사광에서, 그의 서간시와 언급에서 오는 것일까. 그가 언급하기를 그치자 — 그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푸시킨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70년대의 그들의 삶도 그들의 젊음만큼이나 우리에게 흥미로웠을 것이다.
9월 17~18일 (월요일·화요일)
아침에는 뭔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 훌륭하게 넘어갔다. 면도하러 나가기까지 했다. 유르.가 없을 때 예냐 크르시자놉스키가 왔고, 그다음에 스토리친이 왔다. 콧물 때문에 창문을 닫고 앉아 있다. 아마 내일 유르.는 자고 올 작정으로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