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즈민, 『1934년 일기』
인물세르게이 키로프, 막심 고리키,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아돌프 히틀러, 니콜라이 구밀료프, 미하일 쿠즈민
9월 19일 (수요일)
유르.가 외박하러 떠날까 봐 두려워서 나는 반쯤 발작 같은 것을 일으켰다. 불쌍한 유르.는 몹시 당황해 벌떡 일어났고, 오한에 떨기 시작했으며, 침대에 있는 내게 차를 먹여 주고는 면도를 하기 시작하더니 저녁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한 것이었지만, 하루 종일 그가 안쓰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날은 멋지고 따뜻하고 고요했다. 여느 때처럼 보냈다. 무엇보다도 일을 많이 했다. 유르.는 아주 일찍 돌아왔다. 자상하고 다정했다. 나는 잘 잤다.
탑 (계속). 곧 뱌치. 이브.의 아이들이 M. M. 자먀트니나와 함께 도착했다. 세료자, 코스탸, 베라 시바르살론, 그리고 리도치카 이바노바. 자먀트니나는 이바노프 가족에게 자신의 사랑과 모성적 감정 전부를 쏟아부은 노처녀로, 문학에서든 삶에서든 충분히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마리야 미하일로브나는 이런 전형적인 처지에서도 일종의 고전주의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돌보고, 교정을 보고, 원고를 준비하고, 리도치카와 연습했을 뿐만 아니라, 뱌치. 이브.가 해야 할 강의 준비까지 거의 하고 있었다. 자기희생과 까다로움, 순종과 쉽게 상처받는 마음, 그리고 사소한 관심에도 느끼는 고마움 — 이 모든 것이 남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향유 든 여인의 모습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매우 진부하다. 그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녔다. 아침부터인 것은 먹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고, 늦은 밤까지인 것은 뱌치. 이브.가 저녁 여섯 시쯤에야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정 무렵에야 겨우 기운이 났다. 새벽 여섯 시에서 일곱 시쯤에 잠자리에 들었고, 내내 “마루샤”가 곁에 있기를 요구했다. 어떤 때는 원고를 찾으라고, 어떤 때는 뭔가를 받아 적으라고, 또 어떤 때는 무엇을. 그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이사이에, 눈에 띄는 아무 소파에나 웅크리고 누워 토막잠을 잤다. 뱌치.의 호출 벨 소리는 온 집안에 공황을 일으켰다. 아이들은 매우 외국 물이 들어 있었고, 초라할 정도로 외국 물이 들어 있어 러시아인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웠다. 뭔가 짧은 바지에, 뜨개질한 재킷, 모든 것이 실용적이고 절약적이었다. 하긴 그들은 제네바에서 왔다. 세르게이는 대학에 들어갔다. 드물게 못생긴 젊은이로, 얼굴에 일종의 습진이 있고, 모든 이바노프 가족의 아이들처럼 완전히 흰, 거의 백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거만하고 어리석었고, L. 드미.의 친척 편을 들었으며, 지노비예프 가족을 지향했고, 멋을 부렸으며(그것도 민간인 식으로, 군인답지 않게),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뱌치.에게 사교 모임이 없다는 것에 화를 냈고, 하녀들에게 추근대어 마리야 미하일로브나(“클루파야 메타”)를 공포에 빠뜨렸고, 뱌치.와 말다툼했는데, 뱌치.는 그에게 뱀처럼 쉿 소리를 냈고, 세르게이는 “문학의 거장들”이라고 말하려고 하면서 “아류들”이라고 말하는 따위였다. 내가 탑으로 이사했을 때, 그는 나에게서 동조를 얻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그의 이상은 즐겁게 노니는 루시노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뱌치.와 베라의 사건이 있었을 때, 세르게이는 나를 결투에 부르려고 꾀했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다. 베라는 안티고네이자 여자 대학생이었고, 꽤 아름답고 육중한 금발로 키가 그리 크지 않았으며, 사랑스러운 모양의 큰 물고기 눈을 가졌다. 모든 시바르살론 가족처럼, L. 드미.로부터 그녀는 유난히 모공이 성긴 피부를 물려받았다. 그녀의 모든 장점과 단점은 그녀가 제네바 출신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사려 깊음도, 지루함도, 느린 사고도, 무게감도. 그러나 그녀는 착하고 정직한, 좋은 처녀였다. 꽤 어리석다고 나는 말하겠다. 더 착하고, 더 순박하고, 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었던 것은 코스탸였다(그는 나중에 콘스탄티노비치 가문의 누군가를 아주 닮게 되었다). 처음에는 유년생도였고, 나중에는 콘스탄티노프스키 또는 미하일롭스키 군사학교의 사관후보생이었다. 같은 흰 머리카락, 붉은 뺨, 큰 모공, 두꺼운 입술이었지만 키가 더 크고 다른 시바르살론 가족보다 활기찼다. 리디야는 이번에는 뱌치. 이브.의 딸로,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제네바 사람이 아니었다. 여우 같은 얼굴을 한 못생긴 소녀로, 우아하고 소년처럼 날씬했으며, 솔직하고 대담했고, 갑자기 약해지고 다정해지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음악에 유난히 재능이 있었고, 내성적이고 내면적으로 어딘가 귀족적이어서, 비범한 여성으로 자랄 것을 예고했는데,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진 듯하다. 이렇게 가정 생활이 시작되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어느 여름, 리드. 드미.가 뱌치., 리드. 드미.와 베라가 살던 시골에서 성홍열로 죽었다. 그녀는 순례를 다니고 병자들을 찾아다녔고, 열에 들끓었고, 죽기를 바랐다. 그때 그녀가 처음으로, 그리고 갑자기 뱌치.가 베라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나중에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지노비예바의 추도식에서 고로데츠키가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우는 것을 기억한다. 뱌치.는 홀아비처럼 더욱 은둔했고, 안나 루돌포브나 민츨로바가 집으로 이사했으며, 이중적이고 불쾌한 비밀의 장막이 탑 위로 드리워졌다.
9월 20일 (목요일)
오늘 O. N.가 이사한다. 혼자 남았다. 조금 산책했다, 키로치나야 거리를 아주 조금. 내가 그 거리를 따라 탑으로, 그다음 유르.에게, 타브리체스키 정원으로 어떻게 걸어 다녔던가! O. N.와 처음 알게 되었을 무렵, 그들 집에 수보롭스키 거리 쪽으로 드나들던 때가 어째서인지 바로 이 키로치나야 거리와 연결되어 있다. 타냐도 없었고, 린차도 없었고, 목욕탕 일꾼들도 없었고, “아파트”가 있었다. 리나 이바노브나는 가족 안에 더 많이 있었고, 그렇게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안나 이바노브나는 더 가깝고, 더 쾌활하고, 더 시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더 다정했다. 사람이 더 많이 왔고, 시미티하도, 어떤 여자들도 왔다. 차를 마신 뒤 옐신 부부가 내게 들렀다. 나는 그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앉아 있었지만 유르.를 기다리지는 못했다. O. N.도 누이와 함께 들렀다. 잠은 그럭저럭 잤는데, 빈대가 몹시 물어댄다. 작은 채권 하나가 당첨되었다는 통지가 왔다. 어쩌면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 출납원이 어떤 요술로 받아 간 바로 그 채권일까?
9월 21일 (금요일)
함께 장난을, 아니 요즘 말로 하자면 출격을 했다. 멋진 날씨에. 심지어 면도도 하고, 심지어 표도로프네에서 맥주를 곁들여 점심도 먹었는데, 거기서 모두가 우리를 사진 찍었다. 꽤 무사히 지나갔다. 비록 운문 희곡을 든 어느 시인이 내 쪽으로 비집고 들어왔지만. O. N.가 왔었다. 브렌데르가 전화했다, 역시 「많은 소란」 건으로. 마리야 니콜라예브나는 병든 사내아이를 데리고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마치 『M-me Ger』나 공쿠르 형제의 다른 어떤 소설처럼.
9월 22일 (토요일)
이제 흐리다. 어머니가 빨래를 한다. 머리가 어지럽다, 오랫동안 이렇게 어지러운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아도 나는 아직 나 자신을 건강하다고 여길 수 없다.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브렌데르를 기다렸지만 그 대신 아키모프가 전화했다. 밤 초에 경보가 있었다. 잘 잤다.
9월 23~24일 (일요일·월요일)
몸은 괜찮다. 면도하러 나갔다. 날씨는 좀 어둡다. 사람이 많이 왔다, 그리샤, 야샤, 루간스크에서 온 시인, 스토리친, 모솔로프, 페트로프, 돔브롭스카야. 세료자와 전화로 이야기했다. 설마 내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 것일까. 라비노비치, 불가코프, 조율사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돈이 들어올 꿈을 꾸었다.
또 유대인들이다. 시피탈니코프네에서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아이가 소파에서 떨어져 빗장뼈를 부러뜨렸다고 했다. 남편이 오자 모두가 떠들고 울부짖었지만 무서운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무질서한 고함은 모두 소돔이라고 불리는가? 정말로 남자들을 쓰는 일이 소음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가? 바실리예프나 주코프가 아내를 때리고 불구로 만들 때, 그것은 언제나 암울하고 둔탁하고 무섭다. 머리가 벽에 부딪치고, 피가 흐르고, 술 취한 고함, 무의미하고 괴물 같은 광경들, 그것이 정신을 정화하는 데 아주 유익하다고들 한다. 유대인은 첫째로 좀처럼 술에 취하지 않는다. 둘째로 자기 아내를 불구로 만들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러나 히스테리컬하기는 극도에 이른다, 다만 극도까지는 아니다. 끝에서 두 번째까지, 그것이 다만 성가실 때까지이고, 그것이 거대함, 거짓, 배신, 희생, 광신적 믿음으로 다시 태어날 때, 도스토옙스키에게서처럼, 그런 것은 그들에게 드물다. 비록 이 모든 특징은 물론 아리아적이 아니라 셈족적이며(히틀러식으로 말하자면), 로마 세계에 맞선 기독교의,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반국가적이고 수치스러운 속성들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유대인의 승리였고, 공산주의가 승리한다면 두 번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수법들이 얼마나 똑같은가 — 하층 계급도, 금욕도, 자기희생도, 신의 나라에 관한 한심한 동화도.
민들레. 바로 그 시피탈니코프네에 다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영문 없이 민들레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기만 하면 발작이 일어날 뻔하고, 소리치고, 가지 않으려 하고, 닿는 것을 무서워한다.
탑 (계속). 뱌치. 이브.는 프리메이슨이었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프리메이슨은 늘 나의 관심을 끌었다. 모차르트 때문에도, 비밀 결사로서도, 그리고 군대나 폐쇄된 학교나 수도원에서처럼 여자를 향한 방향 설정 없이 삶이 구축되는 조직으로서도(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남성적 체제. 영국 클럽이나 장교회관처럼. 여자들을 도입하면(그곳에 들이면) 그런 기관에서는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그들 나름의 시정도 완전히 잃어버린다. 스포츠 중에서는 어쩌면 축구가 더 마음에 드는데, 여자들에게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나는 프리메이슨에 관심이 있었고, 한때는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 줄 사람을 구체적으로 찾아 나서기까지 했다. 내가 걸린 사람은 더없이 선량한 예브그. 바스. 아니치코프였다. 이 사람은 박식하지만 경솔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자기가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너무나 명백히 암시해서, 나는 그에게 내 소망을 곧바로 말했다. 이 대화는 랴그르의 지하 술집, 코뉴셴나야 거리와 넵스키 거리의 모퉁이에서 있었다. 그는 곧장 활기를 띠더니 말해도 되는 것이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든 내게 다 떠벌렸다. 러시아에는 롯지가 없으니 파리나 프라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나와 더 가까운 사람인 뱌치. 이브.도 프리메이슨인데 어째서 내가 그렇게 멀리 돌아서 자기에게 찾아왔는지 의아해했다. 사실 이바노프는 숨기지도 않고 해골이 새겨진 무슨 검은 반지를 끼고 다녔지만, 나는 그것이 데카당 식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 말고도 그는 인지학과 장미십자회에 더욱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장미십자회는 늘 내게 어딘가 초라한 가장무도회처럼 보였지만, 슈타이너주의는 현실이었다. 여기서 무대에 안나 루돌포브나가 등장했다. 안나 루돌포브나 민츨로바는 매우 뚱뚱한 나이 든 여자로, 젊은 시절 18세기 프랑스 소설을 읽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을 닮았는데, 다만 허옇고 익사체처럼 부어 있었으며, 때로는 눈앞에서 거품처럼 퍼져 나가기도 했다. 흔들리는 인상을 더한 것은 그녀의 극심한 근시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걷고, 집어 들고, 일어서고, 앉는 것을 매우 민첩하게 했지만, 어딘가 더듬듯이, 장님처럼, 불확실하게, 그리고 자주 목표를 빗나가며 했다. 그 민첩함이 어느 정도는 이런 무력함을 가리고 있었다.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매우 빠르고 조용하게, 자신 없이 설득력 없이 말했다. 엉뚱한 말을 했을 때면 그녀는 “네, 네, 네, 네”라고 말하고는, 방금 한 말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곧바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녀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이 연주했다. 엉뚱한 데를 짚고, 리듬도 없이, 악보에 코를 박고, 바람에 쫓기듯, 형태 없이 흐물흐물하게, 그리고 그 소나타들(특히 4번)에 무슨 신비적이고 순진한 설명을 붙였는데, 마치 O. G. 스미르노바가 자기의 날염 그림을 설명하는 식이었다. 이건 풀이고, 이건 — 태양이고, 이건 — 기슭이다. 그러나 안나 루돌포브나의 음악은 그토록 경건하게 경청되었고 그토록 연출이 갖추어져서, 어쩔 수 없이 인상을 주었다. 마루샤는 쫓겨났는데,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찻잔과 열쇠를 달그락거리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완전한 어둠이 조성되었고, 청중의 일부는 바닥에 앉았다. 게르치크 자매들은 자주 이 소나타들을 무릎을 꿇고 들었다. 때로 안나 루돌포브나는 메모를 보며 슈타이너의 무슨 강의를 읽었고, 뱌치. 이브.는 뱀처럼 솟구쳐 비판했다. 안나 루돌포브나는 내게 투시 수업을 해 주었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영원히 충격을 준 견해를 알게 되었다. 상상력은 투시의 여동생이며,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조언도 해 주었는데, 이때 극도로 고분고분했다. 겉으로 그녀를 존중해 주기만 하면, 그녀는 가장 괴물 같은 어리석음에도 맞장구칠 태세였다. 그녀는 영매였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얼마간의 협잡도 있었다. 이바노프 부부는 그녀를 이미 모스크바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 그녀는 친구가 많았고, 그녀 자신도 모스크바에 살면서 페테르부르크에는 가끔 들르기만 했으며, 그때는 리드. 드미.의 방에 묵어 마리야 미하일로브나의 빈축을 샀다. 그녀가 살기 시작한 것은 지노비예바가 죽은 뒤였다. 이때 집안 식구들의 구성이 다소 바뀌어, 주요 인물이 된 이들은 모데스트 호프만, 트로츠키, 스칼딘, 레만이었다. 나는 아래층 즈반체프네 집에 살았고, 나의 연애들 속에서, 모든 신비로운 것에 대한 나의 갈망 속에서 어딘가 뒤엉켜 있었다. 이미 말했듯이, 이바노프네 집에는 내가 사랑에 빠져 있던 나우모프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렀다. [그는] 호프만의 친구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신비주의자였는데, 그것은 발레치카, 나, 심지어 댜길레프와의 전혀 신비적이지 않은 일탈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완고함과 아만드 같은 면이 있었고, 도스토옙스키식의 기행도 있었다. 이 연애를 민츨로바가 대단히 비호했고 S. S. 포즈냐코프를 온갖 방식으로 깎아내렸다. 이 모든 것에 결국 나는 넌더리가 났고, 소모프의 조언에 따라 「이중의 막역지우」라는 중편을 썼는데, 거기서 상황을 위장하여 그려 냈을 뿐 아니라 안나 루돌포브나를 통째로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그 중편은 여름에 나왔다. 그때 나는 누이와 다투고 오쿨롭카를 떠나, 도망갔다 돌아오기를 되풀이하던 포즈냐코프와 함께 즈나멘스카야 호텔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뱌치.도 그 중편에 기분이 상해서 우리는 겨우겨우 화해했고, 나는 이제 탑 자체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민츨로바의 이야기도, 탑과 나의 우정도 빠른 걸음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민츨로바는 어느 날 사라졌다. 뱌치.는 그녀가 “떠났다”며 우리는 더는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의 권한을 넘어섰고, 뭔가를 입 밖에 내버려 “버림받았으며”, 이마트라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베라 시바르살론은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자기가 뱌체슬라프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사랑하는 것은 나라고, 그 일은 이것이 “리디야의 뜻”이라고 선언한 안나 루돌포브나 탓이라고 털어놓았다(「집 안의 망자」에 그 흔적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형식적으로 자기와 결혼하자고, 그러면 모든 것이 예전대로일 것이며, 나는 그렇지 않아도 그들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제안했다. 나는 어쩐지 그리 선뜻 응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험담과 스캔들, 시바르살론이 나에게 결투를 신청한 일 등등, 등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바노프 부부는 해외로 떠나 그곳에서 (뮌헨에서였던 것 같다)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이 태어났다. 돌아온 뒤 그들은 이미 모스크바에 정착했고, 그 후 혁명 뒤에 바쿠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먼저 마리야 미하일로브나가 죽고, 그다음에 베라가 죽었다. 그 후 뱌체슬라프는 리디야와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 파비아로 이사했다. 그들이 해외로 떠난 뒤로 나는 그들을 끝내 다시 보지 못했다. 나 자신의 삶이 어떤 막다른 골목을 향해 그렇게 휘돌고 있어서, 나는 남의 얽힌 일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로 즐거웠던 1906—7년과 파국적이고 아둔했던 1911—12년을 비교해 보면, 50년이 지난 것만 같다.
9월 29일 (토요일)
계속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게 지독히 지겹다. 게다가 어디선가 불면증이 생겼는데, 나는 평생 그런 것을 몰랐다. 이제 일기에는 온통 나에 관한 것뿐이다. 새로운 바깥일을 거의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기억해 주었다. 아카데미아 출판사와 시페트 쪽에서 보내왔다. 그 사람은 물론 동의했지만, 대번에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래도 좀 마음이 놓인다. 밤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사랑하는 유르.와 무슨 불쾌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는 너무나 들볶여 있고, 너무나 […]
로젠크로이츠파. 예브드. 아프. 나그로드스카야는 스스로를 로젠크로이츠파라고 내세우며, 파리에서 열린 그들의 대회에 갔다 왔다고, 새 메시아를 낳는 일을 하마터면 자기에게 맡길 뻔했다고 하는 등등을 말했다. 통속 소설가로서의 재능 덕에 모든 것이 제법 그럴듯하게 나왔지만, 지독히도 쓰레기 같았다. 그녀는 가슴에 전구를 달아 놓는 따위의 강력한 수단을 쓰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자기 심장이 빛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쩔 수가 없네요…” “잠깐만요, 제가 이걸 진정시킬게요, 사람들 앞에 나가기엔 민망하니까요.” 잠깐 가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서 있다가 스위치를 돌리면 심장이 더는 빛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아늑했다. 그녀는 트랜스 상태에서 받아쓰기로 자기에게 필요한 온갖 험담을 적어 냈다. 어떤 영혼에게서 왔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녀는 나에게 “환등극”을 보여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나는 그녀가 분장한 음핵의 도움으로 얇은 망사 구름 속에서 자기를 남자로 그려 내려 했던 게 아닌가 걱정된다. 그것은 민츨로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었고, 아프락신 시장에서 나온 어떤 암피테아트로프 같은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시장바닥 같은 요령이 있었다. 그녀는 라스푸틴과 죽이 잘 맞았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분야에서조차 그들은 무지하고 문맹이었다. 똑같이 얼빠지고 그다지 학식도 없는 민츨로바도 그녀에 비하면 영국 교수로 보였[을] 것이다. 로젠크로이츠파가 되기에 어울렸던 사람은 즈브루예프, 푸칠로, 특히 주바킨이었는데,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
9월 30일 (일요일)
화학 공격의 마지막 날, 나가지 않았다. 유르.가 나를 면도해 주었다. 몸 상태는 좋다. 사비노프와 바이젠베르크가 왔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와서는 단편들을 읽고, 바쿠와 데겐에 대해 말했다. 그래도 그는 어떤 유럽적인 유럽주의로 칸카로비치와 파스테르나크를 닮았다. 정말 내가 회복될 수 있을까?
탕자. 꿈을 꾸었는데, 『돈 후안』을 위한 삽화를 골라야 하고, 호가트의 「탕자」 연작을 고르는데(아마 그런 연작은 아예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돈 후안은 사실상 같은 탕자인데 끝까지 가지 않은 탕자일 뿐이라고 설명해 주는 꿈이었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탕자의 이야기에서 매음굴은 어떤 역할을 한다. 대체로 이 우화는 어딘가 영국적이어서, 바로 호가트적인 악취와 형편없는 이빨과 코담배가 묻은 코를 지녔다.
펠릭스와 아이러니.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마지막 권에 무척 우스운 표현이 있다. 소년 펠릭스는 광산 일에 빠져 여러 암석을 알아보고, 그것에 몹시 기뻐한다. 그래서 괴테는 대략 이렇게 쓴다. 펠릭스는 이것이 화강암이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돌에서 돌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만약 그가 그 돌들에 머리를 부딪쳐 깨뜨렸다면, 그는 자기 지식을 기뻐했을까? 설령 사망 소식에 암석의 종류가 언급되었다 해도, 그것은 우스꽝스럽고 현학적으로 끔찍했을 것이다. 혹은 “말이 그의 관자놀이를 (역시 어떤 과학적인 식으로) 왼쪽 뒷발로 걷어찼다.” 이것은 때에 맞지 않는 정확성, 모욕적이고 우스운 정확성이다. 기쁜 사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그것들은 정서의 그런 고양을 전제하므로 거기서는 세부를 따질 수 없다.
10월
10월 3일 (수요일)
오늘 유르.와 돈을 받으러 나갔다. 해가 비치는 멋지고 따뜻한 날씨였다. 한낮이 가까워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저녁 내내 쏟아졌고, 그래서 손님들은 생쥐처럼 흠뻑 젖어서 왔다. 코스탸가 두 번 왔는데, 저녁에는 률랴와 함께 왔고, 레프 리보비치도 왔다. 그는 우울해하며 곧 완전히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할 거라고 한다. 모든 게 아주 좋고 즐거웠다.
10월 4일 (목요일)
집에 있었다. 창밖 날씨는 좋아 보이는데, 춥고 바람이 분다고들 한다. 리하초프가 왔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반가웠다. 그다음엔 샤드린. 유르.에게는 미하일로프가 왔다. 미하일롭스키에게서 편지. 모든 것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피탈니코프네에 라디오를 들여놓았다.
사라토프의 다차. 남쪽에서 사라토프를 둘러싼 것은 언덕들, 더 정확히는 협곡들로 갈라진 고원들인데, 그곳에서는 그 협곡들을 골짜기라고 불렀다. 이 골짜기들에는 두세 집주인의 다차가 둥지처럼 모여 있었다. 길 쪽에서는 한 집주인의 집들 모두에 공통된 울타리로 막혀 있었고, 숲 쪽으로는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아 과수원이 그대로 야생 지대로 이어졌다. 큰길은 위쪽으로 나 있었고, 골짜기들 바로 옆으로는 걸어서도 마차로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웃 골짜기에 이르려면 멀리 불탄 들판을 돌아가거나 아니면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를 곧장 넘어가야 했다. 골짜기들은 서로 닮지 않았다. 더 좁은 것도, 더 반듯한 것도, 볼가강이 보이는 것도, 도시가 보이는 것도 있었고, 숲이 우거진 것도, 민둥한 것도 있었다. 물은 진흙 탁한 연못 말고는 전혀 없어서, “개울로” 3베르스타나 떨어진 어딘가로 가는 것은 하나의 원정이었다. 여러 해 내리 살던 그 골짜기는 “바라니코프”라고 불렸는데, 아마 그곳으로 가는 길이 가축 묘지를, 그러니까 죽은 가축, 곧 말이며 소, 양 따위를 내다 버리는 모래 구덩이들을 지나서 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골짜기 어귀에는 늘 모닥불을 피우던 “코틀리”라고 불리는 두 개의 고분이 있었다. 도시에서 골짜기까지의 길은 탁 트인, 불탄 목초지를 지났지만, 골짜기 안은 널찍하고 아늑했다. 어디에도 이렇게 많은 해당화와 나비가 있는 곳은 없었다. 처음에 그것들은 애벌레였고 떼를 지어 땅을 기어 다녔으며, 방 안으로 기어들어 왔고, 나무란 나무는 다 먹어 치웠다. 그것들을 무더기로 긁어모아 태웠다. 그래도 그 지역과 화단을 낙원으로 바꾸어 놓을 만큼은 충분히 남았다. 어떤 색채들이었던가, 어떤 마하온나비, 포달리리우스, 아폴론, 마르스, 애도나비, 그리고 어떤 황혼나비들,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회색에 분홍이 섞인 것, 회색에 주황이 섞인 것들! 그리고 밤나비들. 또 박쥐들. 그곳의 밤은 그을음처럼 검고 화덕처럼 뜨거웠으며, 온갖 냄새와 무수한 반딧불이가 있었다. 꽃은 거대한 꽃밭을 이루어, 물망초면 물망초, 종꽃이면 종꽃, 향기 완두와 은방울꽃이었다. 마지막 골짜기에는 심지어 나래새도 있었다. 그다음에는 어디에나 쑥, 박하, 성모풀이 있어 약국이나 영국식 속옷 서랍장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비들은 나는 이탈리아에서도 이집트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소나무는 없었다 — 복된 땅이었다, 참나무, 피나무, 단풍나무 따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숲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곧, 당장 밭인지 초원인지 모를 것이 시작되었다. 오른쪽으로는 “우베키”라는 푸른 곶이 보였다. 바라니코프 골짜기에는 다차 둥지가 세 개 있었다. 사제 소콜로프의 다차(아마 모두 세 채), 구교도 수슬로프의 다차(두 채), 의사 벨랍스키의 다차 — 다섯 채였다. 벨랍스키에게는 둑이 있는 연못 두 개가 있었는데, 물뱀과 거머리로 꽉 차 있었고 우리는 그래도 그곳에서 헤엄을 쳤다. 사제의 연못은 올챙이와 개구리 새끼의 온상일 뿐이었고, 늘 진흙으로 가득했다. 수슬로프네에는 연못이 전혀 없어서 벨랍스키네로 갔다. 개구리가 너무나 많고 또 너무나 목청이 좋아서, 그 울음소리는 내게 여름, 넓은 자유, 그리고 왠지 그리스에 대한 관념과 영원히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이집트와 이탈리아의 개구리도 또한 매우 사랑스럽다. 또 마른 개구리, 곧 두꺼비도 있고, 울음개구리도 있다. 그것들은 불탄 초원의 구덩이에 앉아 있다가, 따뜻하고 따뜻한, 라일락빛이고 황금빛이고 분홍빛이며 곰처럼 털복숭이인 비너스가 나타나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슬프게 같은 음을 낸다. 이것은 거의 바빌로니아적인 마법이다. 그리고 과수원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었으며, 드문드문 심겨 있었고, 빈터가 있었는데 — 나는 그곳에서 그것을 처음 보았다 — 영원히 그리고 복되게 — 그리고 모두 비탈과 양지에 있었다. 새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티호노프나가 도시에서 데려온 닭들조차 그곳에서는 야생이 되었다. 벚나무 숲에서 자고, 알을 낳으러는 아무래도 남의 과수원에 갔으며, 한 마리는 아예 사라졌다가 병아리 떼를 잔뜩 데리고 나타났고, 집으로 가려 하지 않았으며, 아무튼 반항했다. 고양이도 사라져 숲에 살았는데, 이듬해 여름에 나타나서, 어스름에 먹으러 와서 그르렁거리다가 다시 떠났다. 그리고 오마주인 양 티호노프나의 침대에 목 졸린 새와 두더지를 물어다 놓았고, 산 고슴도치 한 마리를 몰고 왔다. 죄수처럼 변해 있었다.
10월 5일 (수요일)
밝고 매우 기분 좋다. 방 안은 매우 따뜻하다. 면도하러 나갔다. 그다음 밤 고서상에서 드뷔시 세 곡을 찾았고, 로시니의 「미사」가 버젓이 꽂혀 있다. 메이젤만이 나를 불렀다. 「국제서적」까지 함께 걸었다. 넬디헨과 골루베프도 만났다. 차 마시러 온 사람은 O. N.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몸 상태는 그럭저럭이다. 밤에는 좀 안 좋았다.
어린 시절의 놀이. 성 테레자는 어린 시절 내내 순교자 놀이를 했고, 그다음에는 은둔자 놀이를 했다. 많은 성인들이 금욕 놀이로 시작했다. 물론 아이들은 — 원숭이이고, 보는 것을 놀이로 삼는다. 그러나 무엇이 맞고 무엇이 아닌지 어떤 선별이 있다. 그리고 또 성 테레자는 도대체 어디서 순교자들을 보았단 말인가? 물론 그들에 대해 읽었겠지. 그런데 내게는 이 뒤틀린 어린애의 송장 취미가, 소비에트 아이들이 총살 놀이와 주택협동조합 회의 놀이를 하는 것과 똑같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10월 6~7일 (목요일·금요일)
아침에 갑자기 슈크바르킨에게서 돈이 왔다. 모두들 기운을 냈다. 그런데 나는 저녁에 왠지 심심했다. 그리고 기운이 빠졌다. 스트렐니코프에게 전화했다. 그는 어딘지 계급적으로, 독신인 법률학교 출신처럼 아늑하다. 「시인의 심장」 — 진행되고 있지만, 모스크바에서 무슨 농간이 있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가 왔다. 추콥스키와 손을 잡았고, 아무튼 온갖 시시한 것을 잔뜩 실어 왔다. 안. 드미.와 세료자는 10—11일에 온다. 소모바가 우리를 불렀다, 무척 솔깃했지만 나는 가기가 겁났다, 무척 아쉽다. 페트로프가 왔고, 그에게 읽어 주었다.
프시케. 책을 뒤지다가 에르빈 로데의 『Psyche』를 꺼냈다. 목차만 읽어도 — 하느님, 무언가에 잠시 눌려 있던 부드러움과 공기 같음과 믿음의 층들이 — 솟아올랐다. 때때로 이 책은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한다. 영혼 숭배. 아킬레우스의 하얀 섬. 복된 자들의 섬, 프시케, 영혼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배웅했던 Animula, vagula, blandula. 그런데 나는 어째서 어떤 일본적인 검은 구멍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리 되지 않기를. 내가 지금 비교적 건강해서가 아니다, 병이 오면 또 모든 것을 잊어버리리라. 영혼 구원을 위한 이야기들에 쓰이는 것과 완전히 거꾸로다. 나는 지독히도 영혼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Animula, vagula, blandula,
Hospes comesque corporis,
Quae nunc abitus in loca
Palladula, rigida, nudula
Nee ut soles dabis iocos.
그렇다, 창백하고 늪 같은, 머리 큰 존재, 그러나 존재다. 그것은 무지갯빛이고, 떨리고, 가볍고, 다정하고, 불안정하다. 나는 사도 바울 대신 에르빈 로데를 읽어야 한다.
10월 9일 (화요일)
저녁에 안나 안드레예브나네에 무사히 다녀왔다. 아늑하고 좋았다, 스테파노프 부부가 있었고, 소모프의 편지가 있었다 — 그에 관해서는 따로. 손녀들이 집에서 자고 있던 알. 알.까지 전화로 불러냈다. 라브롭스키가 무언가를 지껄였고, 안나 안드레예브나는 목에 벨벳 리본을 두르고 고문관 부인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크리스마스 같고 독일 같았다. 뭔가 은박지 같았다.
10월 10일 (수요일)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 앉아 있었다. 몸 상태는 그럭저럭이다. 날씨는 더없이 훌륭하다. 수많은 곳에 전화했다. 폴랴코프가 내일 나한테 오고 싶어 했다. O. N.은 이가 아프다.
생활과 종교. 기독교와의 내적이고 끊임없는 논쟁이 그 국제성 때문에 계속되고 있다. 내 생각에 종교란 너무도 민중적이고 가정적이며 친근하고 정다운 것이라서 국제적일 수가 없다. 종교는 지역의 성격, 기후, 풍습, 머리카락 색, 무덤과 연결되어 있다. 이집트의 종교도, 그리스의 종교도, 페르시아의 종교도, 드루이드도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신을 찬양한다. 그런데 기독교라니! 만약 기독교가 본래의 성격, 곧 유대적인 관념론적 이단이라는 성격을 유지했다면 의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인터내셔널로서 기독교는 곧바로 유대적인 혐오스러운 물건이 되었고, 그러다가 기후에 따라 다시 여러 신앙 고백과 여러 기독교, 곧 로마의, 비잔티움의, 아비시니아의, 루터파의, 러시아의 기독교로 분열되었다. 기독교적 생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없다. 종교로 축성된 여러 나라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나라는 없다. 특히 초기에는. 나는 처음 서너 세기의 기독교인들이 충원되던 그 무리에게 차가운 혐오를 느낀다. 그 뒤 모든 것이 관료제로 변했고, 성 프란치스코나 성 이그나티우스 같은 성인들은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불만에 찬, 앙심을 품은 노예들, 악의에 이를 만큼 정직한 처녀들, 지루해하는 부인들, 히스테리적인 매춘부들, 레니치카 칸네기세르 같은 젊은 폭탄 테러리스트들과 차르 시해자들, 목청 큰 멍청이들, 모두가 발기불능자이자 꾀병쟁이들, 선동가와 음모가들, 위선자와 심술쟁이들이었고, 무엇보다도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월 11~12일 (목요일·금요일)
안나 드미트리예브나가 도착했다. 카메네프에게서 『돈 후안』에 관한 편지가 왔다. 다 아주 좋은 일이지만 다소 번거롭다. 유르.는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공황에 빠지지만 대체로 괜찮다. 날씨는 따뜻하고 자주 아주 좋기까지 하다. 보긴스키가 전화해서, 티란이 나를 몹시 보고 싶어 하고 오늘 손님으로 올 용의까지 있다고 한다. 오늘은 모두 필하모니아 개관식에 가 있다. 조금 부럽다. 15일로 손님들을 불렀다. 미트로힌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다음 L. 리보.와 옐신 부부가 덧붙었다. 페트로프와 야샤, 샤드린과 사비노프가 왔었다. 오늘 머리가 아팠다.
사라토프의 다차 (계속). 다차에 다가가다 보면, 오르막을 줄이기 위해 파 놓은 좁은 도랑 같은 곳으로 길이 나 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는 보행자가 수레와 마주치면 몸을 피할 데가 없었다. 깎아지른 벽은 기어오를 수 없다. 그곳엔 오랫동안 진흙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 위쪽, 거의 머리보다 높은 곳에 분홍, 흰, 그리고 내 생각엔 노란 들장미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탈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꽃무지들이 스카라베처럼 앉아 초록빛으로 반짝인다. 겨우 몇 사젠 되는 곳이다. 나는 그곳을 아주 잘 기억하며, 그곳과 함께 늘 이와는 상관없는 A. 톨스토이의 시를 떠올린다. 그 시는 크림 시이지만, 오히려 대체로 70—80년대, 허무주의자들의 아류에 해당한다.
너는 그 저녁을 기억하느냐? 바다가 어떻게 소리 냈는지,
들장미 덤불에서 나이팅게일이 노래했다.
흰 아카시아의 향기로운 가지들이
너의 모자 위에서 흔들렸다.
너는 안장 위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몸을 굽혔지,
너는 붉은 들장미를 꺾었지,
담황색 조랑말의 텁수룩한 갈기를
너는 사랑스레 그것으로 꾸몄다.
너의 옷의 말을 듣지 않는 주름들이
가지에 걸렸고, 너는 —
태평하게 웃었다, 조랑말 위에도 꽃,
손에도 모자에도 꽃이.
여기에는 승마복, 기마 행렬, 구레나룻, 체크무늬 옷이 어우러진 대단한 미식가 기질과 대단한 사치가 있다. 유르.에게 있는 1864년의 중후한 유행들, 제1인터내셔널, 도스토옙스키의 아가씨들(그런데 그의 작품에서는 늘 아가씨들이 철없이 굴고, 유부녀들은 어째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바덴바덴의 룰렛과 함께. 우리 협곡에는 기마 행렬이 없었다. 그곳은 지사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평범한 중급 관리들의 다차였다. 그러나 사라토프 반대편 다른 협곡에는 누나들의 지인들, 기마 행렬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곳에는 자유분방한 삶이 있었다. 남자들만 드나들었고, 아내들은 그곳에 가기를 꺼렸으며, 또 그들을 그리 부르지도 않았다. 늘 포도주, 카드, 돈, 음악, 자유롭고 극단적인 견해와 자유로운 풍속, 볼가강 뱃놀이와 승마가 있었다. 최신 문학과 최신 이론들. 작은누나 아냐도 그곳에 가서 손님으로 머물렀다. 그녀를 그곳에 데려간 것은 차렙스키 가족이었다. 그들에 관해서는 나중에, 그리고 많이. 모두가 누나를 마치 사창가에라도 다녀온 듯 타락한 여자로 보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은 뗏목에서 연못으로 떨어졌고, 또 한 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느 신사와 함께 그의 다차로 가서 포도주를 곁들여 식사한 것 말고는. 시내로 가는 길에 부지사의 집 앞을 지나야 했는데, 그 집 마당에는 흔히 승마용 말 대여섯 필이 서 있었다. 부지사의 딸이 장교들, 구레나룻을 기른 민간인들과 함께 말을 타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곳에도 자유사상이 있었다. 심지어 우리 집에 오던 리자 이모, 멋쟁이에 이혼녀이고 얼빠지고 경솔한 인간조차도 바지가 흘러내리는 어떤 니힐리스트들에게 먹을 것을 대주고 그들을 위해 신부에게 돈을 빌렸다. 그런데 우리 협곡은 조용하고 소시민적이었다. 물론 내 누나들, 카탸 도브로호토바, 벨랴프스키 가의 아가씨들, 콜랴 벨랴프스키와 그의 친구들, 여드름투성이에 불그죽죽한 장화를 신은 김나지움 학생들은 요즘의 콤소몰원들처럼 행동했다. 하기야, 아니다. 뭐랄까, 더 큰 격정, 혈기, 도전이 있었다. 둔하고 자기만족적인 콤소몰 패거리는 없었다. 그때 아가씨들은 그야말로 아가씨들이었고, 니힐리즘은 그들을 매혹하면서도 두렵게 했다. 그것은 (우습긴 하지만) 위업이자 희생이었다. 소년들은, 말하자면, 무식하고 무례했지만, 어떤 위험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승인된 […]가 아닌. 이 무리가 모두 14—19살이었다는 점을 말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수염 난 25살 대학생 하나만 있어도 거의 징역살이라도 다녀온 모히칸처럼 보였다.
10월 13일 (토요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넬디헨이 나를 찾아왔고, 그다음 그리샤가 왔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 다정한 마음을 품고 있다. 안. 드미.에게 가기로 했다. 그렇다, 미하일로프도 왔었다. 무사히 도착했고, 계단도 무사했다. 아무도 없었다. 세료자에게 예냐 겔판트가 왔을 뿐이다. 좋은 포도주와 대접이 있었지만, 대체로 어쩐지 좀 심심했다. 그리고 세료자는 확실히 나에게 삐쳐 있다. 「돈 후안」은 세바스티안에게 넘겼다(그런데 그는 모스크바에 있지 않은가). 연출가도 없고, 미술가도 정해지지 않았다.
10월 14일 (일요일)
멋진 날씨. 집에 있다. 심지어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다. 스미르노프에게 전화했다.
소모프의 편지. 누이에게 보내는 또 한 통의 편지. 별다른 내용은 없지만, 이게 무슨 삶인가. 모든 것이 시간별로 적혀 있어 마치 교회 서기의 일기 같다. 그가 일기를 쓰고 있다면 이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느 비방꾼이 니진스키에 관한 수치스러운 책을 썼다. 발리치카는 소책자 형태로 반박문을 쓰고 있고 이미 출판업자도 구했다. 소모프에게 읽어 줄 것이다. 무대에서 물러난 친구들도 변호해 준다. 런던에 팔린 물건 값으로 돈의 일부를 보내왔다. 토르그신으로 보냈다. 종이를 보내 주겠단다, 새로 나온 바시키르체바(전 4권)는 보낼 가치가 없다고 한다. 그에게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Le Temps retrouve'』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에게서 프루스트의 숭배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기즈 가문, 게르슈니에 관한 무슨 회고록과 『사닌』을 읽고, 톰스카야에게 노래를 배운다(누구를 위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그녀에게 꿈속에서 어느 빌나의 성인이 새로운 창법을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수업료는 받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에게 쟁반 위의 세례자 머리를 그려 주고 싶어 한다. 톰스카야는 해마다 리투아니아로 순례를 간다. 송금 소식을 알려 준 유대인 여자는 조카가 태어난 일을 열을 올려 이야기했다. 할례를 하고, 그다음에 종교를 선택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할례받은 아이가 대체 어디로 가겠는가? 정물화를 그리려고 꽃을 준비했지만 게으름을 피운다. 자기 작품들을 복도에 걸고 있다. 권투 선수 카르팡티에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고, 어디론가 가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구워 먹을 소시지를 샀다. 날씨는 여름 같고, 실패한 리에티 오페라의 무대 장치를 만든 어느 화가. 그에게는 민망한 불상사들이 일어나는데, 특히 베네치아에서는 벨벳 바지가 터져 전부 쏟아져 나왔고, 더위 때문에 모든 것이 커져 있었다. 다프니스의 모델도 아직 있다. 그리고 이것이 평범한 사흘이다.
10월 15일 (월요일)
낮에는 기분 좋은 햇살. 면도하러 나갔다가 이발소에서 유르.를 만났으나 그는 나더러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조금 걸었다. 유르.는 물건을 다 샀으나 몹시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페트로프가 리하초프와 함께 왜 왔느냐며,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내쫓으려 하고 나중에는 내가 자기를 사슬에 묶인 개로 만든다며 내게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내가 내 손님들을 쫓아내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옐신이 잠깐 왔다, 처녀는 이가 아프단다, 한 시간도 장난질 없이는 못 지낸다. 률랴에게도 전화했고, 코스탸와 이야기했다. 그다음에 O. N., 레베, 미트로힌이 왔다. 그는 내 생일인 줄 알고 엷게 채색한 판화—꽃—를 선물했다. 미티카 라들로프는 『베로나 사람들』을 받으러 왔다. 분명 우리 집에서 난교 파티가 벌어진다고 떠들고 다닐 것이다. 모든 것이 아주 일찍 끝났고, 유르.는 O. N.을 바래다주고 그 집에 들러 앉아 차를 마셨다. 그가 술김에 파헤쳐 놓은 우리 마당에서 우물에 빠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체로 나는 유르.에게도, O. N.에게도 몹시 초조해지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죄 없는 사람들, 내게 그토록 큰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을 내쫓고, 내가 바깥 맑은 공기 속에서 오 분이라도 더 있지 못하게 감시하면서, 정작 자기는 그토록 걱정을 끼쳐서 나는 베켄스키네에 전화해 소란을 피울 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토라지더니 무례하게 구는 듯했다. 아가씨가 몇 번 전화를 걸었고 하녀 편에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라는 글귀를 적은 자기 사진을 보내왔다.
가슴 놀이. 우리 건물에 세 살쯤 된 여자아이가 있는데, 젖을 뗀 지 오래되었는데도 어머니에게 젖가슴을 꺼내 가지고 놀게 해 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조른다. 아이는 그것을 잡아당기고, 주무르고, 토닥이고, 꼬집고, 입 맞추고, 깨물고, 거기에 몸을 바싹 붙인다. 특히 잠들기 전에 그렇다. 그런 절차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레스토랑 “드네프르”에서 갑자기 몹시 흥분한, 마름모 세 개를 단 군인이 모두의 주의를 끌고 좌중을 조용히 시키더니 말했다. “동지들,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여기 내 아내가 화장실에 갔다가 잠시 있다가 돌아오는데, 이 시민이 숨어 기다렸다가 젖통을 움켜쥐었습니다. 퇴장을 요구합니다.” 취객들이 낄낄대기 시작했고, 화장실에 그렇게 운 나쁘게 다녀온 아내는 주인공처럼 서서 듣고 있었다.
니힐리스트의 아내. 체르니솁스키의 아내 올가 소크라토브나에 관해 피피나가 쓴 꽤 재능 없는 책을 읽었다. 그래도 어떤 미식가적 취향과 호사가 있고, 도스토옙스키도 있고, 사라토프도 있고, 진짜 매력도 있다. 그리고 물론 바보짓도 했는데, 자허마조흐 기미마저 없지 않았다, — 그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식가다, 그녀가 알코브에서 연인과 함께 있는데 남편은 바로 거기 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니. 부모와의 다툼, 끊임없는 돈 요구, 그리고 나중의 노년, 구빈원, 불타는 눈빛, 머리에 꽂은 장미, 다시 마차 행렬, 배와 트로이카, 파블롭스크. 도스토옙스키의 여주인공인 폴리나 수슬로바가 떠오른다. 로자노프가 경외심에서 그 여자와 결혼했다. 『노름꾼』의 폴리나다. 유로치카가 자기 니힐리스트들을 내게 옮겨서, 내 어린 시절의 80년대가 내게는 60년대로 보인다.
10월 16일 (화요일)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어둡고 비가 온다. 많이 잤다. 아무 데도 전화하지 않았고, 일에 관해서는 아예 아무 손도 쓰지 않았다. 스토리친이 왔다. 기분은 그럭저럭. 유르.는 조금 토라져 있다. O. N.은 오지 않았다.
10월 17일 (수요일)
우리가 나갈 때는 따뜻했고 심지어 어딘지 나른한 해도 있었다. 나는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 다녀왔다. 거기서 뭔가를 공제하고 뭔가를 줄여서 내 빚이 크다. 헤신이 준 것은 다행이다. 거기에는 조셴코, 야샤, 베타 드미트리예바 — 그리고 플리트가 있었다. 찻집에 들렀다가 옐리세예프네에도 갔다. 옐리세예프네에도 베타와 슈바르츠가 있었다. “아카데미아”에서는 19년의 서신을 폭로하고 있고, 스미르노프가 거기서 기어 다닌다. 레비틴과 라브롭스키가 왔다. 라디오가 끔찍하게 고함을 지르는데, 특히 무슨 무의미한 몽타주가 나올 때 그렇다. 잠도 좀 설쳤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기분은 그럭저럭이다.
새것의 새로움. 옛 오페레타를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새것으로 기억하는 것들, 레하르나 팔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에게서 예리하고 설레게 하고 동시대적이게 만들던 것이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좋거나 나쁜 음악만 남았다(대부분은 “그럭저럭”, 귀엽고, 그것도 드물게). 그래서 “옛” 오페레타는 음악가들에게도, 정부에도(정부가 이 일에 간섭할 때는), 도덕적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다. 그러니까 그것들이 “무해해지고”, 자기들의 핵심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그렇다. 그런데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흥미로운 음악으로 등록되지는 도저히 못 한다. 그것들에게서는 사람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 성질, “주여, 그다음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가 날아가 버린다. 「발퀴레」가 「위그노」처럼 명료해졌을 때, 그것들은 절대적 가치에서는 마이어베어를 능가하면서도 마법에서는 능가하지 못한 채 그와 같은 선상에 섰다. 때로는 연주자들이 이 원초적인 매력과 전율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클렘페러가 모차르트에게 온 낭만주의를 되돌려주고 카르멘에게 셈족의 성적 울부짖음을 되돌려준 것처럼. 그러나 대중에게는 그것이 필요 없다. 대중은 작가의 무재능이나 시간에 의해 살균된 것들을 좋아한다. 인정된, 아카데믹한, 고전적인 예술은 언제나 예리함, 그러니까 의미를 잃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움은 물론 흔히 그저 시류일 뿐이고, 그 순간의 질감일 뿐이며, 진정으로(정말로 그런가?) 설레게 하는 것들에서도 몇 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닐까. 그렇다, 절대적인 것, 우리 관점에서 목적에 맞게 취해진 절대적인 것, 거기에 더해 정서적 상상력으로 복원된 원초적 마법, 최초의 새로움, 대담함과 허튼소리가.
플루트. 플루트에는 그래도 어딘지 콧구멍 같은 소리가 있다. 특히 플루티스트가 거기에 입김을 불어 넣는 것이 또렷하게 들릴 때 그렇다. 이것은 소리의 질료 자체에 관한 것이지, 광범하고 순수하며 지극히 시적인 그 시적 활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여성적 원리도 마찬가지다.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지 않으면 온갖 남성성과 남성 문화가 좆같은 물[건]이 될 것이다.
10월 18일 (목요일)
집에 있었다. 아침에는 무슨 난장판이 벌어졌다. 욕조를 고치고, 주둥이를 우리 집 문 쪽으로 향해 놓은 라디오에서 웬 콜호스의 술 취한 사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고, 아이들은 울고, 어머니는 돈을 달라고 하고, 안누시카는 병원에 넣으려 하고, 아무튼 믿기지 않는 난장판이었다. 나는 심지어 속이 상해서 시피탈니코프네에게 라디오를 돌려 놓으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예 꺼 버렸다. 쉬는 날인데 우리 집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내일은 크슈샤가 오겠다고 했는데, 유르.가 바이젠베르크를 불렀다. 몰리에르를 끝냈다. 모든 작업이 끝나 가고 있다.
바이런과 쿠르듀코바. 바이런에게는 우아함의 기법이 있다. 텍스트에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인용이며 그냥 낱낱의 단어들이 풍부하다. 내 러시아어 번역에서는 마담 쿠르듀코바 같은 꼴이 되어 버린다. 죄다 “des dames comme il ne faut pas, 하마터면 생코프가 날 뻔했다” 식이다. 나쁜 취향과 희극성의 법칙은 분명 언어마다 다른 모양이다.
10월 19일 (금요일)
또 왠지 초조했다. 아카데미아에 전화했는데, 21일에야 된단다. 지르문스키는 없다. 스미르노프가 아카데미아에 편지를 쓴다. 좋다. 그다음 희극극장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것도 반갑지만 그쪽에 들락거려야 한다. 데르자빈에게도. 전화 요금도 내야 하고, 21일에는 마루닦이도 온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초조하게 한다. 내지 못한 집세도. 오늘은 면도하러 잠깐 나갔다. 그리고 나는 가야 할 곳에 좀처럼 나설 엄두를 못 낸다. 우리 집에 파이가 있었다, 제대로 격식을 갖춰서. 그다음 바스마노프가 와서 그에게 파이를 대접했고, 그다음 늦게 크슈샤, 바이젠베르크, O. N.이 왔다. 조금 피곤했다. 그다음 셋이서 앉아 있었다. L. 리보비치가 전화했다.
사라토프의 다차. 우리는 수슬로프 집에 한 번도 살지 않았다. 그곳에는 코스만 목사 가족과 웬 단일신앙파 신자들이 살았다. 독일인들은 따로 무리를 지어 지냈고, 젊은 세대들은 서로 적대하며 싸우기까지 했다. 특히 우리는 “원숭이 아버지의 아이들”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들 생각에 우리 아버지가 다윈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가 아주 많았다. 아이들 일부는 독일에서 공부했지만 여름이면 모두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 머리에 혈색이 좋고, 바이에른 여자들처럼 다부지고 땅딸막했다. 베르타, 리자, 트루다, 헤르만, 오토, 끝이 없었다. 게다가 사촌들에, 이모들에, 삼촌들까지. 나는 그곳에 라프타를 하러 갔다. 그러기에 좋은 빈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집 안에도 들렀다. 그곳은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았지만 점잖았다. 늘 파이와 과자, 빵이 있었으나 모든 것을 어딘가 알뜰하게 내주었고, 냅킨이며 헝겊 조각 같은 것들이 있었다. 슈만을 연주했다. 리자가 연주했는데, 그녀는 해방된 아가씨였다. 다만 자기 나름대로여서, 허무주의적인 쪽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예술적이며 조금은 지루한 쪽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안경을 썼지만, 개구리가 아니라 슈만과 하이네를 끼고 있었다. 『라인 강변의 다차』나 슈필하겐 같은 식이었다. 그때 나는 슈만이란 아주 가정적이고 고상하며 품위 있는 것이고, 거기에는 정열도 편향도 미혹도 잘못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품위 있는, 대문자로 쓰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정해야 하는 한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슈만은 정열과 이어진다 해도 목사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다. 코스만 집에는 심지어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이제 다정하고 유쾌한 가정 안에서 정화되어 “자기를 되찾고” 있는 웬 이모도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 앞에 좀처럼 나오지 않았지만 악수로 인사했고 선장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주인 식구들과 달리 키가 크고 창백한 금발에 눈이 검었으며, 사라토프의 40도 더위 속에서도 늘 회색과 하늘색 체크 숄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름은 에르미니아 비슷한 무엇이었다. 구교도들 쪽에서는 물론 더더구나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 집 아이들은 늘 커다란 파이 조각을 들고 돌아다녔고, 아낙들은 그 때문에 아이들을 꾸짖었다. 앓는, 아직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안락의자가 들어가지 않을 발코니가 아니라 발코니 문가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사라토프를 바라보며 매일 할멈과 똑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저게 대성당이야? — 대성당이지. — 그리고 저건 일리야 예언자 성당, 저건 포크로바 성당, 그런데 우리 성당은 어디 있지? — 저기 오른쪽에 있잖아. — 무슨 소리야, 할멈, 저게 어떻게 우리 성당이야?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저건 대성당이지? — 대성당이지. — 저건 일리야 예언자 성당, 저건 포크로프 성당. 그런데 우리 성당은 어디 있지? 등등. 그녀는 특히 토요일 저녁 철야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올 때 몹시 안절부절못했는데, 자꾸 자기네 단일신앙파 교회를 향해 성호를 긋고 싶어 했다.
10월 20일 (토요일)
웬일인지 몸이 좋지 않다. 앞으로 닥칠 자잘한 일거리들이 나를 짓누른다. 잠도 잘 못 잤다. O. S.가 자기 집에 오라고 부르러 왔고, 그리샤가 전화했다. 저녁에는 그래도 야놉스키네에 갔는데, 그곳에는 정말 아무 특별한 일도 없었다. 밤에도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무사히 지나갔다.
영혼과 삶. 지금 창밖으로 노란 노을과 마른 땅, 놀고 있는 아이들을 내다보고 울타리에 붙은 극장과 음악회 포스터를 읽으면서, 나는 정열적인 사람들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노름꾼, 연인, 정도를 넘긴 부모들의 영혼 말이다. 그 영혼은 늘 자신의 옛 정열이 있던 투기장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뛰어들 수는 없고, 두꺼운 유리 너머로 모든 것을 바라볼 뿐이다. 예컨대 친구가 위험의 언저리에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를 붙잡을 수도, 돕거나 위로하거나 어루만져 줄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마치 악몽 속에서 깨어나려 할 때처럼 힘겹다.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삶의 모든 발현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그러하다. 이것은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무엇이든 금지하기만 하면 그 물건은 당장 온갖, 어쩌면 실재하지도 않는 빛깔로 반짝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내 생각에 욕망의 절반은 실현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세간의 통념과 바람과는 반대로, 나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욕망의 풍요가 아니라 욕망의 감소와 소멸이다. 마치 누군가가 이렇게 되뇌는 것과 같다. “삶의 징후를 줄여라!” 징후가 없는 삶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10월 22일 (월요일)
어제 유르.는 무사히 데르자빈에게 다녀왔고,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 내 몫으로 250루블이 있는 것을 알아냈다. 오늘 그 돈을 받으러 그를 보냈다. 나는 구트만에게 갔다. 걷기가 꽤 힘들었지만 이내 숨이 돌아왔다. 그러나 코추로프 부부의 방문과 오스메르킨을 기다린 것이 다시 나를 지치게 했고, 손에서 피까지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내 다시 괜찮아졌고 잠도 그럭저럭 잤다. 스토리친이 솔개처럼 기다리고 있다. 유르.는 내 피로에 안절부절못하며 일찍 왔다. 아카데미아 출판사에서 『소음』에 관한 편지가 왔다. 누군가 다녀갔다. 레비틴, 페트로프.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파충류와 아첨꾼. “우주의 잔해 속 파충류들”이라고 시페트가 바이런의 미스터리극에서 어떤 구절들을 번역했다. 그네디치의 『일리아스』에서는 아첨꾼들이 거듭 등장한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두 유형이며, 거의 반대되거나 사례로써 이해 가능한 것이다. 파충류에게는 늘 유라이아 힙 같은 무엇인가가 있다. 들큼한 달콤함, 송장 같은 창백함, 입술 없는 입. 특히 그들은 수보린과 《신시대》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부레닌, 멘시코프, 슬라드코페프체프, 그리고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아아, 로자노프, 거대한 규모의 파충류 포베도노스체프, 어쩌면 레오 13세 교황까지도, 그 밖에 사돕스코이, 라브롭스키, 리하초프, 보제랴노프, 카잔스키, 어쩌면 폴랴코프까지도, [시페트] 본인, 셰르빈스키, 레만, 스테니치, 마콥스키. 아첨꾼은 아첨 없이 헌신하고, 우둔하고, 거짓말을 하며, 코에 담배 가루가 묻어 있다. 플라우투스적인 솔. 늘 악취가 풍긴다. 천민, 메이예르홀트의 스테파노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메이예르홀트 본인도, 물론 패거리들, 즈브루예프, 푸칠로, 안나 이바노브나의 파블루시카, 아마도 착한 샤드린, 어쨌든 드미트리예프, 골레르바흐는 물론, 모프셴손, 전형적인 밀라셰프스키. 차이는 분명하지만 두 낱말 모두 내게 어쩐지 유난히 우스워서 기분을 좋게 만든다. 사야노프는 물론 아첨꾼이고, 리베딘스키는 파충류다.
10월 23~26일 (화요일~금요일)
아무래도 제대로 회복을 못 하겠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끔찍할 것이다. 아주 사소한 힘을 쓰는 것, 전화 통화, 움직임, 목소리를 높이는 대화, 불편한 머리 자세, 그 모든 것이 쉰 목소리와 숨가쁨과 피로를 불러온다. 갖가지 것들에 대한 식욕이 돌아왔고, 일에 대한 의욕도. 어쩌다 멋진 날씨를 놓쳐버렸고 몹시 아까웠다. 오늘은 유르.를 복잡한 일들 때문에 보냈고, 나는 면도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어쩐지 몸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안누시카를 병원에서 데려왔다. 희극극장에서 전화가 와서 계약을 제때 체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일 11시에. 코스챠가 전화했다. 그곳에 브로데르센 부부가 있다. 유르.가 내게 작은 파테를 사왔다. 식욕이 떨어지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드뷔시. 나는 드뷔시에 흠뻑 취한다. 훌륭한 예술로서뿐 아니라 조절하고 자극하는 수단으로서도. 그의 곡을 연주하면 스스로가 마음에 들 수 있고, 삶이 아름답고 현대적이고 우아하게 보일 수 있다. 그의 곡은 익혀야 한다. 여기서는 음 하나하나가, 반음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소리는 음악적으로, 우아한 묵직함과 아크로폴리스의 아침 같은 어떤 그리스적인 안개를 띠고 생겨난다. 잎, 물기, 종, 달, 눈, 바다, 여름과 시, 프랑스 시, 그것이 켈트적이고 연약한 만큼,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그린과 말로의 서정시처럼, 원칙적으로는 라파엘 전파와 단눈치오처럼, 고대와 이탈리아의 회상을 지닌. 그리고 그는 내게 시를, 특히 프랑스 시를 되돌려주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단어들, 이미지들, 울림들인가: 롱사르, 비용, 샤를 도를레앙, 트리스탕 데르미트, 그리고 나란히 놓인 베를렌과 말라르메 — 합당한 손자들처럼. 그는 내게 시를 되돌려준 것이 아니라, 어쩐지 시를 향해 귀와 마음을 틔워주었다. 그리하여 전례 없는 비범함으로, 그가 음악을 붙인 이들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도, 단테도, 푸시킨도 열렸다.
10월 27~28일 (토요일·일요일)
면도하러 나갔으나 나데주딘스카야 거리 모퉁이에서 돌아와야 했다. 유르.가 함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완전히 병자 신세다. 그런데 로자노프가 계약 서신을 보냈으니 돈도 생긴다는 뜻이고, “Academia”가 1권 계약서를 보냈으니 이것도 돈이다. 소다로 치료를 받았다. 저녁과 아침에는 몸이 아주 좋았으나 낮에는 아주 나빴다. 특히 자고 난 뒤에. 오늘 안나 드미트.가 불렀지만 나는 코끝도 내밀지 않았고 그 전에도 몸이 좋지 않았다. 리하초프가 찾아왔다. 러시아 발레에 관한 런던 기사들, 댜길레프, 니진스키, 다닐로바, 먀신에 관해 이야기했다. 유르.는 차 마실 때 몹시 늦게 왔다. O. N.과 식사라도 한 모양이다. 나는 아직 감기가 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