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즈민, 『1934년 일기』
인물세르게이 키로프, 막심 고리키,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아돌프 히틀러, 니콜라이 구밀료프, 미하일 쿠즈민
11월
11월 21일 (수요일)
내 이름날이다. 어제 막 병원에서 나왔다. 꽤 무의미하게 누워 있었지만, 아마 여느 때보다 더 쉬었을 것이다. 변소에 간 것 말고는 거의 걷지 않았다. 투신스키도 왔었고, 그가 나를 엑스레이에 데려가기도 했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또 말했다. 정말로, 발작과 병원과 휴양소를 겪으면서라도, 내게 아직 봄과 여름과 겨울과 극장 같은 것들이 가능할까? 안. 드미.가 들렀다. 레비틴도 “식구”로서 잠깐 들렀고, 가엾은 유로치카가 드나들었다. 가엾은 것은 우리 돈 사정이 나쁘기 때문이다. 아무 피로도 없이 나왔고 낮을 잘 보냈다. 밤은 더 나빴다. 빈대가 물었기 때문이다. 작고 굶주린, 완전히 흰 빈대였고, 나는 자꾸 베개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감기가 든 것 같다.
환자들. 환자에는 낙천가와 몽상가가 있다. 그들은 기운차고 내내 퇴원하면 어떻게 행동할지 계획을 세우는데, 그 계획은 분명 과장되어 있어서 실행하지도 않을 것이고 실행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신경 면에서, 그리고 신체 면에서도 그들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들은 훌륭한 영향을 준다. 다른 이들은 환자의 처지에는 특별한 행동이 요구된다고 천편일률적으로 생각한다. 짓눌린 두꺼비처럼 말하고, 끙끙대고, 신음하고, 건강한 사람에게 하듯 대할 때마다 깊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나아갈 때에도 마치 직급을 강등당한 것처럼 모욕감을 느끼며, 계속 개굴개굴 울고 끙끙댄다. 그런가 하면 아예 반대파도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에 불만을 품으며, 약을 먹으려 하지 않고, 지시를 따르지 않고, 진단에 동의하지 않고, 규칙을 괴로워하며, 특별한 관심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가장 의심스럽고 암울한 것은 첫 번째 부류의 환자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어리석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식욕을 잃고, 입을 다무는 경우다. 이것은 감동적이고도 음울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일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사람이 씻고 면도하기를 그만두는 것과 같다 — 그렇다면 이미 자기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11월 22일 (목요일)
몸 상태는 그럭저럭. 어제 레부시카, 코지민 부부, 안. 드미.가 왔는데, 그녀는 알고 보니 오늘에야 떠난다고 한다. 옐신이 전화해서 세료자가 극장을 그만두었다기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 그랬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불안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파사주는 그에게 넘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면 「많은 소동」은 어디서 하지? 또 걱정이다. 유르.는 헤신을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네크라소프 부부가 케이크를 보냈다. 유르.는 밤새 이가 아팠다.
11월 22일 (목요일)
유르.가 헤신에게 갔다. 그가 없는 동안 지르문스키와 스미르노프에게 전화했다. 다 일이다. 에른스트가 소모프에 관해 쓴 책을 읽었다. 그 책은 어느 시절의 어떤 황홀하고 고요하면서도 사교적인 삶을 전한다. 그것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헤신이 일부를 주었지만 종이와 차는 유르.가 샀다. 코마롭스카야가 왔는데, 그녀는 첼리베예프를 닮았다. 다 일에 관한 것. 저녁에 유르.와 전화로 이야기했다 — 내 목소리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녘에는 좀 힘들었지만 잘 넘겼다. 그의 이는 아프지 않았다. 바흐루신이 「검은 도미노」의 새 대본을 써 달라는 제안을 했다. 나는 거절한 셈이다.
투신스키의 처방. 리테이니 거리에 니콜라예프라는 재봉사가 있었는데, 당신의 욕망을 앞질러 짚어서 무장해제시키는 사람이었다. 내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그는 내게 “프로이센식 스타일, 군복식 허리선”이 필요하다고 정했고, 유르.에게는 fantaisie가 필요하다고 정했다. 투신스키도 그렇다. 면도를 하라고 처방하고, 「바흐치사라이의 분수」를 보러 가려면 두딘스카야가 아니라 울라노바가 나오는 공연으로 가라 하고, 방에는 노란 벽지나 분홍 벽지를 바르라고 한다. 대체로 괴짜이면서도 사교적이고, 기운차고, 독창적인 사람의 그런 태도가 내게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는 병원으로 나에게 『샤흐나메』와, 그가 취향의 극치라고 여기는 끔찍한 영국식 면지가 붙은 롱펠로를 가져다주곤 했다. 그는 단순한 사람들에게, 혹은 상상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영향을 준다. 그런데 지식인들, 특히 유대인들은 그의 조언이 기이하고 때로는 점진적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여기서 무언가에 대한, 무엇보다도 물론 그들 자신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11월 23일 (금요일)
밤마다 가벼운 발작이 와서 피 섞인 거품과 기침이 나왔다. 낮에도 좀 힘들었다. 병원에서보다 잘 먹지도 못하고 양도 적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위안이 있었다. 집에 가면 먹으리라. “집에서 내가 이런 음식을 먹었을까.” 나는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지만, 그곳에서는 나으면 산책하리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나아졌는데, 여기서는 거의 나빠지고 있었다. 유르.의 이는 다행히 나았다. 돈 문제는 좋지 않았다. 전반적으로도 온갖 위협과 불안뿐이었다. 네크라소바가 왔다. 그럭저럭 재잘거렸다. 트레디야콥스키를 보내왔다. 유르.는 O. N.에게 갔고, 그곳에는 빅토르, 나타샤, 돔브롭스키 부부가 있었지만 늦지 않게 돌아왔다.
밤에 또 발작이 있었다. 아침에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극장은 어디 있고, 조용한 손님들과 장보기와 산책은 어디 있는가? 돈도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 창밖의 풍경은 눈과 하늘의 틈새, 달려가는 구름의 환하게 비친 안감, 회청색 눈구름이 어우러져 있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고, 나 자신이 배은망덕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유로치카의 존재는, 비록 그리 오래가 아니고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니라 해도, 그것이 행복이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그곳에는 꿈이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완전히 가능한데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11월 24일 (토요일)
반나절은 밝고 좋았다. 많이 잤다. 일은 조금 했지만 기분은 괜찮았고, 밤조차 무사히 넘어갔다. 유르.도 이가 아프지 않았다. N. 우스펜스키를 읽었다. 차 마시러 젠야, 레비틴, 페트로프가 왔다. 사야노프가 초대한다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유르.가 그들에게 올 수 없다는 쪽지를 갖다 주었다. 나는 목소리만 듣고 그를 옐신으로 착각했는데, 행동으로도 그렇게 여길 만했다. 유르.는 음식 때문에 무언가를 다투었고 아주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로, 그리고 유르.의 생각 속에서도 결국 나을 것인가. 지르문스키 쪽에서 「돈 후안」의 입장권을 보내왔다.
병원의 비둘기들. 창문은 막다른 골목을 향해 있었는데, 그곳에 비둘기들이 뭉치듯 앉아 투덜거리며 구구거렸고, 때로는 날개를 거의 펴지 않은 채 검은 점토 덩어리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에 나는 비둘기와 참새가 몹시 검고, 털이 헝클어졌고, 어딘가 여위고 사나워서 마치 까마귀 같고, 그래서 멍청하고 늙어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11월 25일 (일요일)
기분은 괜찮았고, 다만 갖가지 일이 걱정스러웠다. 멋진 날씨가 펼쳐졌다. 낮에는 죽은 듯이 잤다. 그러나 수염이 덥수룩해졌고 왠지 불안했다. 어머니는 저녁에 성당에 가셨고, 유르.가 O. N.와 함께 나갔을 때 나는 어딘가 의지할 데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리하초프나 페트로프를 부를까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오셨고, 나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기는 했어도 초대는 미루었다. 코스탸, 리하초프, 스미르노프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에게는 스토리친과 치체린이 전화를 걸어왔다.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좀 심심했다. 허상에 불과한 반영된 삶이라는 느낌조차 없다. 시피탈니코프네 라디오를 들을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웠다.
겨울과 밤. 뮈세에게 무슨 병을 앓느냐고 물으면 그는 — “겨울을”이라고 말했다. 그는 겨울을 병처럼 느꼈고, “아마도” 그런 느낌에 맞추어 행동했다. 그와 비슷한 것이 나에게도 닥칠 것 같다. 그러면서도 겨울(겨울의 후반부 — “해는 여름으로, 겨울은 서리로”)과 이른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이것이 해에 달려 있지 않을까? — 1월 — 6월 중순 — 상승, 6월 중순부터 12월까지 — 하강. 지금은 병자처럼 밤이 오는 것을 생각한다. 그저 버텨 내기만 하면, 아침까지, 봄까지 살아 있기만 하면. 해가 뜨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정리될 것이다. 그리고 해의 속성 가운데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여전히 밤과 반대되는 빛이지, 겨울과 반대되는 따뜻함이 아니다. 나의 발작은 밤이나 (지금은 더 자주) 새벽녘에 온다. 계절로 보면 주로 겨울의 후반부 — 1월—2월—3월에 오지만, 나는 한 해의 어두운 시기가 시작되는 것을 불안과 우울 속에서 기다린다. 그저 버텨 내기만 하면.
11월 26~27일 (월요일·화요일)
어딘가 병적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게다가 “Academia”가 돈 문제로 발목을 잡는다. 할 수 있었다 해도 내가 뭘 하겠는가. 밤마다, 저녁마다 숨이 막힌다. 그것은 심리적인 성격과, 어쩌면 파국적인 성격을 잃었지만, 매우 견디기 힘들고, 어쩌면 위험하기도 하다. 불려 온 리하초프가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도 어쩐지 날아다니며 눈에 거슬리던 것을 그만두었지만, 27일에는 코스탸가 왔다, 연극클럽과 프레이드코프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치체린과 코르순이 전화했다. “Academia”는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데르자빈네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하고, 봄에 공연할 생각이라고 한다. 다만 어디서? 「시인의 심장」은 여기서 포스터에서 사라졌다. 내 불운이 스트렐니코프에게까지 불운으로 옮겨 붙었다. 아침에 난로를 피웠고, 유르.는 어머니에게 빌노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 얼마나 많은 걱정이 쏟아졌는지: 나도, 내 병도, O. N.도, 게다가 어머니는 그를 무언가에 끌어들이려고 벼르고 있다. 나는 이 책마저 완전히 내팽개쳤고, 그 책은 즐겁고 산뜻하고 넓게 시작했으면서 평범한 일기가 되어 버렸다.
11월 28일 (수요일)
생활의 질서가 거꾸로 흘러간다. 모두를 보고 모두를 부러워하더니 어머니도 앓아누웠다. 곳곳에서 의사를 부른다. 시피탈니코프네도, 주코바네도, 카플룬도. 태양은 훌륭한데, 차 마실 때쯤에는 날씨가 나쁘고 비가 온다고들 했다. “Academia”에서 송금해 왔다. 레퍼토리는 좋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추콥스키가 「셰익스피어와의 결투」라는 강연을 한다. 내가 모스크바에 살며 일하고 곧 완전히 그리로 이사할 거라는 듯한 이유로 나에게 특별 카드를 주려 하지 않았다. 코르순이 왔다. 아주 잘생겼다. 모스크바에서 온 어떤 친구와 함께 극장들을 다니는데, 마치 알. 알.이 한 시즌 예구노프와 다녔던 것과 같다. 기분이 아주 좋았는데, 밤에 더 알 수 없고 더 심한 작은 발작이 있었다.
라디오와 축음기. 거의 정반대다. 축음기— 영원히 고정된 순간, 원할 때 언제든 재생 가능한, 마치 회상과도 같은 것. 라디오— 온 세계의 순간적인 삶에 대한 감각, 공간과 거리와 시간에 대한 승리. 언제나 뜻밖이고, 흥미롭고, 되풀이되지 않는다. 우리 라디오에 꼴사나운 편집물이 있는 것은 우리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지만, 런던, 파리, 스톡홀름을 잡을 수도 있다. 축음기에는 원하는 대로 연주되는 것에 대한 주문과 앎이 있다. 전혀 다르다. 둘 다 똑같이 경이롭지만, 내게는 라디오가 더 좋다.
11월 30일 (토요일 [금요일])
벌써 이틀째 기분이 좋고 잘 잔다. 아마도 디우레틴 덕분일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많이 왔다: 리하초프, 샤드린, 스미르노프, 모솔로프, 사비노프. 시시마레프의 기념일— 논의의 화젯거리다. 코스탸는 모르핀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12월
12월 1일 (토요일)
잘 잤음에도 끝내 나가지 않았고, 면도를 하지 않은 채 악마처럼 지냈다. 그런데 코스탸가 왔고, 저녁에는 페트로프가 왔다. 그에게 읽어 주었다. 일기는 그래도 어기적어기적 나름대로 나아가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저녁에 키로프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것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겨울. 겨울은 태양의 부주의, 태양 쪽의 실수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맑은 겨울날의 태양은 어떤 여름도 물론 주지 못하는 색채와 조명과 약속과 유희의 호화로움을 선사한다. 어느 겨울 마르스 광장을 가로질러 학자회관으로인지, 니콜라이 에르네스토비치에게 초상화 모델을 서러인지 걸어 다니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들 집에 자주 갔다. 왠지 매우 자주 환희에 찬 날씨였다. 아무튼 나는 아직도 이 길을 좋아한다. 이 길과 연결된 무언가가 또 있다. 나데즈다 콘스탄티노브나. 이상한 일이다. 그녀는 어떤 페테르부르크 사교계를 대표하는데, A. 드미.는 사교계도 아니고 페테르부르크도 아니며, 어떤 인물, 케르치인지 타간로크인지다. 어린 시절도, 친척도, 친구도 없다. 반면 시베데에게는 온통 사촌들과 사진들과 무슨 어린 시절 친구들과 제독들이다. 그녀에게는 사교계가 있고, 심지어 사교계들(여러 개)이 있다. 이것은 또 그녀의 “사회적” 비열함에 따른 것이다. 안. 드미.의 집에서는 1년에 몇 번 “사람들”을 모을 뿐이고, 그다음에는 마치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초대한 듯한 우연한 사람들을 모은다. 그녀의 친구들이란: 스미르노프와 추돕스키, 그러나 그들이 그녀의 삶의 연대기에서 무슨 역할이라도 하는가? 또 하나의 매우 페테르부르크적인 사교계가 있다 — 포크롭스키 집안이다. 그리고 또 어쩐지 라들로프 집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심지어 세료자에게까지 퍼졌다. 그는 테니스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런데도 사회적 지위로서의 테니스 선수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나[데즈다] 콘[스탄티노브나]는 아마 테니스를 전혀 치지 않는데도 게르켄처럼 공인된 테니스 선수처럼 보인다. 지금 내 생각에 나[데즈다] 콘[스탄티노브나]는 다소 흐트러졌지만, 프루트코프 집안, 펠텐부르크 집안, 니키틴 집안이 있던 그 겨울에 그녀에게는 견고한 사교계가 있었다. 옐신 집안은 얼마나 모든 것을 잃어버렸는가!
12월 2일 (일요일)
아침에 숨이 찼는데, 그 뒤 다 나았다. 처음으로 면도하러 나갔다. 그럭저럭 괜찮았다. 세료자가 왔지만 그는 타이로프를 보지도 못했고, 「돈 주안」에 관해서는 아무 소식도 없다. 그리고 잠도 다시 그럭저럭 잤다. 유르.에게 푸칠로가 왔었다. 키로프의 죽음은 그래도 겉보기에 전혀 무관한 집단들에까지 어떤 당혹감을 불어넣었다.
12월 3~7일 (월요일~금요일)
시간은 그럭저럭 흘러간다. 몸 상태는 괜찮고 잠도 그럭저럭 잔다. 전화로 이야기한다. 조금 일한다. 돈은 보내오지 않는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한가한 젊은이들 몇을 내 집으로 간신히 끌어들인다. 그런데 리프시츠는 자진해서 왔다. 오늘 유르.는 전화와 카드 관계 일로 다녔다. 내 집에서 처음에는 넬디헨이 웅얼거렸고, 그다음 스테파노프가 잠깐 들렀다. 그들에게 소식은 언제나 마치 크리스마스인 양이다. 유르.는 O. N.과 함께 고골리친 집안의 이름 축일에 갔다. 곧 오겠다고 전화를 했지만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어쩐지 야수처럼 술을 마신다, 쿠블라노프 집에서처럼. 물론 술에 취해서 왔다. 아침에 나가려 했지만 안개가 너무 짙어서 건강한 사람도 그다지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의 길이. 시간은 이제 어떤 지루한 삶의 시절에서처럼 눈앞에서 늘어질 뿐만 아니라, 마치 어린 시절처럼 각각의 개별적인 시간 구간이 더 견실하고 더 중대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온갖 사소한 것들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먼 지점들을 더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불화. 살아 있는 자들은 왜 죽은 자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에게 혐오를 품는가? 산 자들과 완전히 닮았고 거의 동일한데도 그들에게는 근본적이고 신비로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생명의 부재. 바로 그 닮음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본질은 그것이 아니면서 어찌 감히 닮았는가. 찬탈자, 첩자, 원숭이.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증오(성적 소유란 사냥감이며 승리이고 조롱이지, 이해도 융합도 아니며, 양쪽 모두에게서 우롱이다), 인종·민족·짐승·새 사이의 불화가 생긴다. 닮음에 대한 복수와 원한. 그래서, 생각건대, 죽은 자들도 산 자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12월 8~9일 (토요일·일요일)
모든 것이 여전하다. 오늘은 면도하러 나갔고, 간을 먹었고, 잠은 더 나빴다. 이것을 연관 지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다. 아무도 오지 않았고 어디에도 전화하지 않았다. “국제 서적”에 갔지만 어쩐지 좋은 것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레퍼토리도 어딘가 초라하다. 「스페이드의 여왕」, 「유쾌한 과부」에 관한 자잘한 것들, 어딘가 학생 수준의 모차르트와 드뷔시. 어제는 페트로프가 왔고, 그다음 리하초프가 왔다. 고용된 사람처럼 저녁 내내 앉아 있었고, 내가 쫓아내지 않았다면 더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플라톤적 연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조금 연주했다.
윈저. 우리 소년들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위한 스케치를 만들었다. 괜찮다, 솜씨 있고 밝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온통 어두운 색(갈색, 남색, 체리빛)이고, 도시는 완전히 헐벗은 바위들 위에, […] 위에 쌓인 돌무더기처럼 비좁게 몰려 있다. 이것이 — 윈저인가? 온통 잔디밭이 펼쳐진 공원, 버드나무, 달빛, 엘프와 홉은 어디에 있는가? 무대가 그런 식이라 초록을 어떻게 그려도 견디지 못한다고들 한다. 정원이나 숲 같은 가장 단순한 요구에서조차 제약을 받는 기이한 무대다. 하기야 호다세비치는 극장 쪽에서 아무런 요구도 없었는데 「텔」 2막의 낭만적이고, 더없이 숲다우며, 호른 소리 같은, 푸른 수풀을 위해 유다나무들이 있는, 올빼미가 앉을 데도 없는 어떤 숲속 굴을 용케도 그려냈다. 음악, 상황, 무대 장치 사이에 이보다 더 큰 불일치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12월 9일 (일요일)
저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이에 대해서는 이미 썼다.
12월 10일 (월요일)
무섭게 어둡다. 하루 종일은 괜찮았는데 잠은 별로였다. 바스마노프가 우리 집에 왔다. 유르.는 코지민에게 가려 했지만 O. N.과 수다를 떨었다. 일찍 달려왔다가 다시 달려 나갔다. 밤에도 아침에도 자꾸 무언가로 옥신각신했다. 전화 건은 해결되었지만, 대체로 돈이 없고, 책을 팔고 있고, 크게 시들해졌다.
크리스마스의 집들. 저녁 무렵 전화를 걸기에 아주 기분 좋은 아파트들이 있다. 그곳은 따뜻하고,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하인이 있고, 아이들이 극장, 특히 발레에 갈 채비를 하는 것 같다. 나가는 것도 기분 좋고 집에 남는 것도 기분 좋다. 누군가는 서재에서 역사나 문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충만한(호화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러나 잘 정돈되고 아늑한 삶의 복합체.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어딘가 기운을 북돋워 주고, 차분하고 확신에 차 있다. 그런가 하면 쥐가 나오는 먼지투성이 수도원이나 통로 마당에 전화를 걸게 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혁명적인, 어떤 때는 보헤미안적인, 어떤 때는 첩살림하는 곳. 아니면 그저 아무런 주변도 없이 공기 없는 공간 속에 있는 한 개인이거나.
사라토프의 다차 (계속). 우리는 신부 댁에서 어쩐지 이웃과 교류하지 않고 지냈는데, 교류할 상대도 없었다. 신부님 본인이 살았고, 어느 한 해에는 도브로호토프 가족이 살았다. 다차들은 벚나무 숲이 어찌나 빽빽한 곳에 있었는지 다섯 걸음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 다차와 관련된 기억으로는 이모가 왔던 일과 차렙스키 가족을 알게 된 일이 있다. 이모는 어머니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자매들 중 가장 경솔하고 가장 얼빠졌으며 가장 못생겼다. 어릴 때부터 몹시 병약해서 늘 무언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타고난 혀 짧은 발음에 말까지 어찌나 어눌해졌는지 알아듣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도, 그녀는 낭송하는 것을, 신문을 감정을 실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그리고 음감이라곤 조금도 없이 노래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또 시 나부랭이며 할머니의 행적을 다룬 서사시, 풍자시 따위를 썼다. 지독한 멋쟁이이자 유행을 좇는 여자였다. 성격도 좋고 붙임성도 있어서, 그러니까 쉽게 토라지지 않고 명랑하며 화도 금방 풀리고 사교적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괜히 트집을 잡는 편이었다. 그녀는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까닭 없이 소리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녀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꾸지람을 좋아했는데, 꾸지람 직후에 그녀가 두 배로 양보하며 그 인상을 무마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남의 집에서 살았고, 친구, 지인, 친척 집에 머물렀으며, 특히 마르티노프 가족 집에 자주 머물렀다(소모프의 「파란 옷을 입은 여인」과 레르몬토프를 죽인 사람의 친척이 아닌지는 모르겠다). 마침내 그녀는 네페디예프와 결혼했는데, 그는 좋은 집안 출신의 무슨 건달 같은 자였고 한동안 홀리츠 시에서 군 경찰서장을 지냈으며, 그 뒤에는 칼린킨 구역의 구역 경찰서장이 되었다. 승진인지 강등인지는 모르겠다. 이모와 헤어진 뒤 그는 모스크바 경찰에서 일했고, 그가 죽자 이모는 자신을 대령 부인이라 칭했는데, 일리야 레온티예비치가 계속 근무했더라면 대령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무슨 수상쩍은 사업이든 벌이는 것과, 겉으로는 지휘하는 듯하면서 실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보통은 아이들에게 예속되어 있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카들인 미탸와 코스탸 라리오노프에게, 니힐리스트 학생이자 사기꾼인 N. P. 프리빌스키에게 예속되어 있었고, 나에게 예속되려 애썼으며, 세료자 아우슬렌데르에게도, 핀란드 노인 룬드만에게도, 함께 담배 가게를 열었던 카라임인 시시만에게도, 쿠드랴프체프 가족에게도 예속되어 있었는데, 그 가족의 품 안에서 그녀는 경솔하고 얼빠지고 사랑 많은 자기 삶을 마쳤다. 리자 이모의 생각에 군 경찰서장 자리는 도지사 자리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남들이 자기에게 구운 것 삶은 것을 날라다 바치고, 자기는 까닭 없이 모두에게 호통이나 치는 데 익숙해 있었다. 라리오노프 형제는 그녀 집에 살았고, 겨울이면 칼린킨 다리 옆의 관사로 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던 내 누이들도 왔으며, 어느 겨울에는 내 형 알렉세이도 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럭저럭 얹혀 지냈는데,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꽤 비싼 값을 매겼다. 가장 불분명한 항목은 교회, 오락, 목욕탕이었다. 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는데, 누이가 3층의 한 창문에서 다른 창문으로 바깥 처마를 타고 건너가기 시작했을 때에야 이모부가 나섰으니, 그것이 구역 경찰서장의 관사로서 자기 집의 체통을 떨어뜨린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곳에는 젊은이들에게 온갖 혁명가들이 드나들었고, 이모도 그들에게 무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이모는 신부 댁 다차, 곧 벨랴예프 댁에 있었으며, 우리 집에는 오지 않았는데, 아마 이모부가 이미 그녀를 버린 뒤였던 것 같다. 적어도 사라토프의 부인들은 그녀를 수상하게 여겼고 자기 집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멋을 부렸고, 아빠에게 살갑게 굴어서 아빠가 그녀의 아나키스트에게 얼마간 돈을 주고 그가 오는 것을 허락하게 했다. 그의 편지들이 낭독되었다. “더없이 귀하신 리자 이모, 만약 당신이 당신의 우둔한 니콜라시카의 청을 들어주신다면, 성 베드로가 당신에게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사두마차를 통째로 타고 들어가실 수 있게 해드릴 것입니다.” 아빠는 그 편지를 보고 웃지 않았지만 돈은 주었다. 프리빌스키는 다락방에 묵게 되었다.
12월 12일 (화요일)
기막힌 날씨. 면도를 하러 갔는데 숨이 막혔다. 유르.는 내가 어떻게 견디는지 보러 다시 돌아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다 괜찮았다. 바보가 왔다. 우리 식구들은 베르니사주에 갔고, 그다음 표도로프 댁에 있었다. 저녁에는 리프시츠 부부 댁에 있었다. 알. 알. 스미르노프가 들렀다. 별로 좋은 말은 하지 않았다. 리프시츠 부부 댁은 그럭저럭이었고, [검열 3: 문구 1개] 유르.가 나를 배웅했다. O. N.는 남아서 이미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아주 잘 잤다.
12월 13일 (수요일)
기분이 훌륭하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날씨가 멋지다. 레비틴이 왔다. 저녁에 갑자기 레노치카 먀소예도바가 나타났다. 아, 참 늙은이구나, 그녀는 심지어 이 집 저 집 마당을 돌며 노래까지 불렀다. 참으로 무슨 발명가 같은 사람이다. 률랴와 알. 알. 스테파노프가 전화했다. 어제보다 기분이 다소 나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다.
사라토프의 다차들. 프리빌스키는 다락방에 묵게 했다. 그는 블. 아드. 나그로드스키를 닮았는데, 다만 극도로 쇠락한 모습이었다. 매독으로 물러진 얼굴, 혀 짧은 소리에 열띤 말투, 작은 키, 삼 껍질 같은 듬성한 턱수염, 보풀투성이의 헐렁한 프록코트, 아버지와 이야기할 때의 지독한 무람없음, 쉽게 토라지는 성미, 주로 하인들 앞에서 쏟아 내는, 생활 방식에 대한 신랄한 냉소, — 그리고 스물네 살. 여자들은 그를 무심하게 볼 수 없었다. 무더기로 쓰러졌기에, 그로서는 금 간 배를 줍듯 그들을 주워 모으는 수고만 남을 정도였다. 그는 우리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모스크바의 니힐리스트들처럼 무슨 비밀스러운 일 때문에 어디론가 서둘러 떠났다. 나는 이모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이모는 내 마음속에서 내 가정교사 발렌틴 자이체프를 거의 대신할 뻔했다. 발렌틴은 키 크고 말수 적은 김나지움 학생이었는데, 나는 식사 때와 산책 때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이모가 옷을 차려입을 때 종종 이모와 함께 방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받침이며 풀 먹인 버팀대, 쥐꼬리 같은 땋은 머리, 덧머리 따위가 얼마나 많았던지. 내 관심을 끈 것은 온갖 색깔의 수많은 자수 넥타이, 자수정과 호박 두 벌의 장신구, 그리고 여러 낱개 브로치였다. 향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라토프에서 왔을 무렵 이모는 이미 안드르. 이브. 룬드만과 함께 오제르키 근처 우델나야에 다차를 사 둔 상태였다. 그때(1885년) 사람들은 오제르키가 유행하는 곳이 되리라고 생각했고, 그곳에 땅을 사는 것은 어느 정도 투기였다. 알려진 대로 그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이모의 존재와 늙은 핀란드 촌놈과의 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기에, 무척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우리는 대체로 대다수 러시아 지방 사람들처럼 파국적으로 길을 떠났다. 게다가 이모는 모든 일을 거꾸로 해 놓았다. 나를 김나지움에 넣지도 않았고, 도시에 우리가 살 집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우리를 자기네 우델나야로 끌어들였는데, 그곳은 춥고 축축하고 아직 정비도 되지 않았고, 안드레이 이바노비치는 어디서나 파이프를 피우며 돌아다니고, 문을 쾅쾅 닫고, 악담을 해 댔다. 곧 우리는 떠났다. 그 뒤 룬드만도 죽었는데, 이모는 용케도 집 전체를 그의 명의로 넘겨 둔 터라 그의 유산을 두고 소송을 시작했다. 이모는 그 일을 직접 맡아서 돈이며 집 전체를 다 소송에 날렸고, 그 집 때문에 기뻐 날뛰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으며, 끊임없이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가 직접 지은 고소장들을 베껴 쓰고 그것을 내게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아버지가 병을 앓을 때 이모는 어쩐지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무언가를 절이고 있었다, 오이나 그 비슷한 것을), 아버지는 화가 나서, 이모가 마침내 왔을 때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이모가 어찌나 통곡하며 관과 문설주를 붙잡았던지, 사정을 모르는 수다쟁이 아낙들은 무슨 농락당한 희생자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일흔다섯 살이었고 이모는 쉰 가까이 되었는데도. 이모는 노예 겸 지휘관 노릇으로 내게 들러붙으려 했지만 어쩐지 잘되지 않았고, 그러던 차에 곧 아우슬렌데르가 태어나자 이모는 누나네로 옮겨 가 세료자의 양육에 멍에를 메었다. 이모는 그를 더없이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길렀지만, 정말로 그 일에 자기의 갈피 없는 감정과 기력을 모두 쏟았다. 누나가 모시코프와 결혼하자 이모의 왕국은 어쩐지 흔들렸고, 곧 그들도 떠나 버렸다. 빈둥거리며 쏘다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다 떠는 성향에서 세료자와 리자 이모는 더 바랄 나위 없이 한 몸 같은 짝이었다. 이모는 남의 소송 일까지 맡아 세료자를 법정마다 끌고 다녔다. 이모는 점차 동네 미친 여자의 모습을 띠어 갔다. 그때 이모는 쿠드랴프체프네로 옮겨 갔고, 우리를 자기 집에 살게 하고, 자기 다차들을 쓸모없는 조그만 칸막이 방들로 쪼개 놓고는 새 삶을 시작했다. 쿠드랴프체바는 한때 이모네 하녀였고, 바로 이모가 여권계원에게 시집보낸 여자였다. 은인 대하듯 했다. 처음에는 아들 바샤를 길렀고, 그를 장가보낸 뒤에는 폴랴를 길렀으며, 그러는 김에 별 관심도 없던 딸들을 누구는 부제에게, 누구는 선원에게, 누구는 경찰에게 시집보냈다. 처음에는 이모가 그들 모두를 부양했고, 나중에는 그들이 이모를 부양하며 참으로 이모의 욕심 없는 노년을 편안히 보살폈다. 이모는 그들 집에서 이미 혁명 초기에 죽었다.
12월 14~15일 (금요일·토요일)
극장에 관한 소식을 모았다. 모두 매우 좋지 않다. 세료자는 깨끗이 쫓겨났다. 드라니시니코프는 복직되었다. 피오트롭스키도 그대로다. 세료자가 다스리던 흔적을 거의 뿌리 뽑다시피 하고 있다. 이런 형편이라면 내 자잘한 텍스트들도 다 날아가 버릴 것 같다, 더구나 웬 합창단원들과 독창자들이 「카르멘」을 다시 익히기를 거부하고 있으니. 스몰리치가 웬일인지 벌써 나타났다. 레비크는 의기양양하다, 하긴 그는 늘 목소리가 우렁차서,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침묵하지 않”는데, 다만 mit Posaunen und Trompeten이다. 「돈 후안」은 연기되었고, 게다가 나는 「동백꽃 여인」 이후로 메이예르홀트에게 가장 기대를 하지 않는다. 「헛소동」은 모스크바에서 연기되었다.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서도 「말괄량이」에 대해서도 — 아무 소식도 없고 —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내 극장 사정이다. 아사피예프는 물론 곧바로 붙잡을 수 없게 되었다. 코스탸가 돌아왔는데, 다녀온 일은 그리 잘 풀리지 않았다. 타이로프는 수정에 만족한다. “아카데미아”는 무덤처럼 감감하니 돈을 보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내 기분을 북돋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키카처럼, 우리 집은 “착한 아이”가 되기에는 어딘가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한다. 내 옥스퍼드주의에서는 어쩐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데, 그것 없이는 무엇을 하기가 어렵다. 여러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르문스키, 스미르노프, 시페트에 관한 소식 등등.
12월 16일 (일요일)
돈이 들어올 꿈이었는데, 전화는 라디오센터의 60루블 건으로 […]한테서 온 것뿐이었다. 시피탈니코프네와 클라브디야가 전화 요금을 내지 않아서 끊길 수도 있는데, 그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주로 나다. 코스탸가 와서 모스크바 이야기를 많이, 우스꽝스럽게 했다. 알. 알. 스미르노프와 전화로 세료자 라들로프의 처지를 두고 아이고 어이고 탄식했다. 매일 숨이 차지만 발작은 없고, 그럭저럭 괜찮다. 걷고 외출할 수만 있다면 다 괜찮을 텐데.
12월 17~19일 (월요일~수요일)
돈을 보내지 않는다. 몸은 그럭저럭 괜찮다. 몇몇이 들른다. 「말괄량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스토리친과 스미르노프가 무언가 험담을 한다. 그들 말은 들을 필요 없다. 세료자 라들로프가 왔지만 안. 드미.는 없다. 하긴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방문도 있었다. 리프시츠 부부, 벨리카노프. 내 가사에 곡을 쓰고 있다. 매일 밤 기침과 숨가쁨이 있다. 아니, 매일 아침이다. 유르.는 가끔 내 병과 내 치료에 관한 늘 똑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이발사가 가끔 집으로 와 주겠다고 했지만, 돈 문제는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표준적인 소년들. 키카 리프시츠는 부모의 꾸지람에 “그런 집”에서는 착한 아이가 있을 수 없고, 어떤 아이라도 나빠지게 마련이라고 대꾸했다. “그런 집”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어린애 같은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내내 고기와 버터만 먹인다느니,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았다느니, 비좁아서 아무도 초대할 수 없다느니 등등. 한마디로, 그가 보기에 그 집은 거기 사는 이들에게 복종, 어른에 대한 존경, 예의 같은 잘 정돈된 미덕을 요구할 만큼 충분히 잘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무례하고 잔인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옳다. 정돈되지 않은 가정은 오직 개인적이고 예외적인 인격의 미덕만을 요구할 수 있을 뿐, 교육과 환경이 길러 주는 미덕은 요구할 수 없다. 그리고 “착한” 아이들(어쩌면 본질적으로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고 이기주의자들일 수도 있다)은 부르주아와 쿨라크 가정에 있을 수 있지만, 보헤미안이나 프롤레타리아 가정에서는 무례한 놈, 짐승, 신경쇠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비록 본질적으로는 성인이나 영웅일 수도 있지만). 게다가 모든 것이 그렇듯 미덕도 시간을 요구하는데, 때로는 그 말의 표준적인 의미에서 좋은 사람이 될 틈이 그저 없다. 그리고 자기를 드러낼 때는 언제나 그렇게 되는 법이다.
12월 20일 (금요일)
돈을 보내오지 않는다. 안. 드미.는 어째서인지 일찍 돌아왔고, 내 편지는 받지 못했으며, 로자노프는 계속 기다리고 있고, 아카데미아에서는 게르셴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어째서 아무 대답도 없는지. 점점 추문이 되어 간다. 저녁에 리하초프가 와서 솔레르틴스키에게 들은 극장들에 관한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사피예바가 전화해서 오늘 「분수」에 오라고 했다. 어떻게 될지, 어떻게 모든 것을 회복할지 모르겠다: 일, 돈, 건강, 사생활, 창작을?
사라토프의 다차들. 예상치 못한 폭우와 어둠, 그리고 다가오는 밤이었다. 갑자기 낯선 신사와 소년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묵게 해 달라고 청했다. 내가 그때 이미 영국 낭만주의 소설을 읽었더라면, 그들이 망토나 격자무늬 숄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돼지 새끼처럼 젖고 초라했다. 게다가 신사는 눈썹 위 어딘가에서 시작되는 곱슬곱슬한 검은 수염이 어찌나 무성한지, 그가 몇 살인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말랐는지 뚱뚱한지, 쾌활한지 침울한지 알 수 없었고, 거의 성별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수염 달린 존재. 그는 놀랍도록 말이 없었지만, 수염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소년은 수염이 없었지만 역시 말이 없었고 눈을 치켜뜨고 쳐다보았다. 그는 신사가 하는 것을 모두 따라 했다. 저쪽이 장화를 벗으면 소년도 장화를 벗고, 저쪽이 식탁에 앉으면 이쪽도 식탁에 앉았다. 모든 것이 작은 크기로, 그러나 똑같이 진지하게. 나는 그들을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잠자리는 이미 다 깔려 있었고 다차는 그러지 않아도 꽉 차 있었지만, 이제 다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담요를 나누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처럼 즐거워졌다. 비는 검은 통에서 쏟아붓듯 내렸다. 아침 아주 일찍 신사와 소년은 떠났다. 아침은 멋졌다. 씻긴 듯했고, 온통 새들과 들장미와 물방울이었다. 신사와 소년이 어딘가 길을 걸어가고 있을 모습이 몹시 부러웠다. 그들이 바로 차렙스키 가족, 바실. 니크.와 바냐였다. 그러나 핵심은 옐리자베타 이바노브나에게 있다.
12월 26일 (수요일)
일기를 큰 덩어리로 건너뛰고 있다. 몸은 나아졌지만 매일 아침 숨이 가쁘다. 아카데미아에서 조금 보내왔다. 로자노프는 전보로 송금하겠다고 쓴다. 안. 드미.는 우리와 호다세비치, 라코프 부부를 크리스마스트리에 불러 모았지만, 쓸 만한 소식은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고, 온통 셰익스피어와 중요 인사들 주변만 맴돈다. 새해에 오라고 한다. 리프시츠 부부는 작가동맹에 가 있는데, 거기서 클럽 개관식이 열려 술이 강처럼 넘친다. 모두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다. 고골리친 부부 집에서 집시들과 기타 연주자들을 불러 아디를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다. 라들로프의 사임과 아카데미아의 와해는 나에게 두 번의 강한 타격이다. O. N.은 뭔가 울적해한다. 모두를 더욱 심란하게 하는 것은 재선거다. 맑은 날씨에 면도하러 걸어 나갔지만, 조금씩 뭔가 시들해졌다. 나도 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내가 굳이 기운을 낼 이유가 뭐란 말인가?
12월 27일 (목요일)
내 작업에 관해 피오트롭스키와, 새해에 관해 안. 드미.와 이야기했고, 면도를 했으니, 마치 일이라도 한 것 같다. 날씨는 페테르부르크식으로 어둡고 포근하다. 유르.가 푸칠로에게서 결국 진짜 휘슬러를 가져왔다. 뭔가 속임수가 있긴 하지만, 그림은 진품이다. 집에 두니 아주 기분이 좋다. 아드리안이 타이로프, 메이예르홀트, 심지어 새 작업들에 관해서도 나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다독여 주었다. 저녁에 알. 알.과 레부시카가 왔다. 아주 아늑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나는 잘 잤다.
출처. 우리에게 온전한 세계를 열어 주는 자극적인 것들, 그러한 계기가 되는 것들은 때로 지극히 사소하기도 하다. 나에게 내 자의식과 창작에서 그처럼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고대가 열린 것도 에베르스의 소설들을 통해서였고, 아이스킬로스나 테오크리토스의 진정한 보물들은 나에게 훨씬 약하게 작용했다. 바로 『황제』와 『세라피스』였다. 그 영향은 「알렉산드리아의 노래」에서뿐 아니라 최근 몇 해에 이르기까지 추적할 수 있다. 물론 차원이 더 높지만 역시 꽤나 “부끄러운” 현상들인 d’Annunzio와 Massenet도 나에게 같은 영향을 끼쳤다. 때로는 사소한 사실들, 일종의 날씨 변화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커다란 심리적 전환, 커다란 발견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또 실제로도 그런 것이다. 나는 열여섯 살쯤이었다. 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김나지움 동창의 집에 손님으로 가 있었다. 그는 너무나 지루하고 격식을 따지고 쉽게 토라지고 거드름을 피워서, 그때조차 그것이 미식 취향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의 어머니와 두 자매는 꿈쩍도 않는 소시민성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다. 그래도 두 가지 특징이 우리를 어떻게든 이어 주고 있었다. 고전들에 대한 사랑과 신심이다. 그들도 물론 우리처럼 바실리옙스키섬에 살았다. 그들 집에는 손님이 오지 않았고, 오더라도 역시 어딘가 막힌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 집에 갑자기 손님이 생겼다. 아가씨 둘인데, 그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말하고 웃을 줄 알았고 사람들을 겪어 보았으며, 조용히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아가씨들이었지만 그 집에서는 숨통처럼 보였고, 나는 주인 대신 그들을 바래다주겠다고 나섰다. 니콜라옙스키 다리를 건너 잉글랜드 제방까지 가야 했다. 팔월 말이었다. 어둡고 무섭게 바람이 불었는데, 바람이 마치 난로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과 작별하기도 전에 열대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잉크처럼 검고 갓 짜낸 우유처럼 미지근한 비였다. 어머니는 걱정했고, 나는 쥐처럼 흠뻑 젖었지만, 갑자기 내가 소년이 아니라 아주 젊은 남자라는 것을 느꼈다. 그 저녁은 나에게 일종의 모험처럼, 어쩐지 역시 에베르스의 소설들과도 이어진 모험처럼 보였고, 나는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지만 그 아가씨들은 기억나지 않고, 다시 본 적도 없으며,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들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한 달에 한 번 마린스키 극장에 평범한 공연을 보러 가거나 사촌인 실과 학교 학생들과 배를 타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것은 얼마나 대단한 자유와 충만인지 모를 것처럼 보였다.
12월 29일 (토요일)
돈을 보내지 않는 것도, 유르.가 어느 통행증을 받지 않은 것도, 리하초프가 내게서 바이런을 가져간 것도, 어쩐지 청결을 유지할 수 없는 것도, 우리가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이런 안타까움들이 이 나날들을 표시하고 있지만,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뎀스카야도 와서 내가 의사의 관찰 아래 있는지 알아보고 갔고, 이발사는 영문도 없이 내일 오겠다고 알렸다. 아직은 맑았고, 호다세비치의 전시회 초대장이 왔다. 우리 식구들은 갔지만 나는 남았고 몹시 아쉬웠다. 알. 알. 스미르노프가 왔다. 새해에는 그도 작가 동맹에 꾸역꾸역 갈 참인데, 톨스토이가 병이 나서 그의 친구들 상당수는 거기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오스메르킨이 게다가 아내까지 데리고 우리 집에 올 것이다. 시피탈니코프네가 「호반시나」를 한순간 틀었다가 곧바로 껐다, 참 별난 사람들. 글라프. 빅토로프나가 도착했다. 유르.는 잠들기 전에 욕조에 몸을 담갔다.
12월 30일 (일요일)
뭔가 신경이 곤두서고 울적하다. 차가 갑자기 속층에서는 코포르스키 차로 드러났다. 오스메르킨 부부가 와서 단번에 분위기를 흐트러놓았다. 돈은 역시 보내지 않았다. 이발사는 별일 없이 다녀갔다. 왜인지 내가 치기 시작한 마이어베어가 지겹다. 돔브롭스카야도 와서 이뇨제를 갖다 주었다. 전화로 이야기한 상대들은 신통치 않았다. 옐신 부부는 아예 없었고, 스미르노프는 어디 프란콥스키네 집에 있었고, 안. 드미.는 어쩐지 부루퉁해서 베타와 나타샤 카잔스카야에게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오직 코지민만이 귀염둥이처럼 앉아 다정하게 말했고, 언젠가 낮에 호다세비치 전시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오스메르킨은 펠텐부르크네 집의 축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알료샤는 이제 벌써 열일곱 살인데, 아주 예쁜 소년이었지만 이제는 O. N.의 말에 따르면 페트로프를 닮았다고 한다. 하긴 그녀는 젊은이들(특히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12월 31일 (월요일)
돈은 끝내 보내지 않았다. 로자노프도 볼셰보에서 쉬고 있다 — 이건 고약한 실패다. 왠지 우울하게 스트렐니코프를 생각했다가 라들로프 부부를 생각했다가 한다. 유르.는 가엾게도 요정처럼 뭔가를 마법처럼 마련해 냈다. O. N.은 집에서 맞이하는 데 동의해 줄 만큼 친절했다. 유르.는 뭔가를 팔아서 간과 술을 사 왔고, 우리는 제대로 차려입고 조용히 맞이했다. 스테파노프 부부와 옐신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보다 앞서 나는 코스탸에게도 걸었는데, 다 적당한 사람들이었고, 레비틴은 집에 없었다. 왠지 에드거 포를 읽고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 여행 생각이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35년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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