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강연자에게 던지는 열 가지 질문」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프리드리히 엥겔스, 에른스트 마흐, 데이비드 흄, 이마누엘 칸트, 카를 마르크스, 막심 고리키 용어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변증법적 유물론, 반뒤링론, 건신주의

1. 강연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왜 그는 이에 관한 엥겔스의 수많은 언명을 한 번도 검토하지 않았는가?

인정한다면, 왜 마흐주의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자신들의 “수정”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라고 부르는가?

2. 강연자는 엥겔스가 철학 체계들을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나눈 근본적 구분을 인정하는가? 엥겔스는 근대 철학에서 흄의 노선을 그 둘의 중간, 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으로 보고, 이 노선을 “불가지론”이라 부르며 칸트주의를 불가지론의 한 변종이라고 선언했다.[1]

3. 강연자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이 외부 세계와 그것이 인간의 머릿속에 반영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기초하고 있음을 인정하는가?

4. 강연자는 “물자체”가 “우리에 대한 사물”로 전화한다는 엥겔스의 논의를 옳다고 인정하는가?[2]

5. 강연자는 “세계의 현실적 통일성은 그 물질성에 있다”는 엥겔스의 주장을 옳다고 인정하는가? (Anti-Dühring, 제2판, 1886, 28쪽, 제1편 세계 도식론에 관한 제4절)

6. 강연자는 “운동 없는 물질은 물질 없는 운동과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없다”는 엥겔스의 주장을 옳다고 인정하는가? (Anti-Dühring, 1886, 제2판, 45쪽, 자연철학·우주 생성론·물리학·화학에 관한 제6절)

7. 강연자는 인과성, 필연성, 법칙성 등의 관념이 자연법칙, 곧 현실 세계가 인간의 머릿속에 반영된 것임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이렇게 주장한 엥겔스가 틀렸는가? (Anti-Dühring, S. 20~21, 선험주의에 관한 제3절, 그리고 S. 103~104, 자유와 필연에 관한 제11절)

8. 강연자는 마흐가 내재학파의 우두머리 슈페에게 동의를 표하고, 심지어 자신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철학 저작을 그에게 헌정했다는 것을 아는가?[3] 성직자주의의 옹호자이자 철학에서 노골적인 반동인 슈페의 명백한 관념론 철학에 마흐가 이렇게 가담한 것을 강연자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9. 강연자는 왜 (『개요』에서) 어제의 동지였던 멘셰비키 유시케비치가 오늘 (라흐메토프를 따라) 보그다노프를 관념론자라고 선언한 “모험”에 대해 침묵했는가?[4] 페촐트가 최근 저서[5]에서 마흐의 제자 여럿을 관념론자로 분류했다는 것을 강연자는 아는가?

10. 강연자는 마흐주의가 볼셰비즘과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가? 레닌이 마흐주의에 여러 차례 반대했다는 사실을?[6] 멘셰비키 유시케비치와 발렌티노프가 “순수한” 경험비판론자라는 사실을?

주석

  1.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6) 제2장. 엥겔스는 사유와 존재 가운데 무엇이 먼저냐는 물음에 답하는 방식에 따라 철학자들을 관념론과 유물론의 두 진영으로 나누고, 세계를 인식할 수 있음을 부정하는 흄과 칸트를 따로 꼽았다. ↩
  2. 엥겔스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영어판 서문(1892)에서, 알리자린처럼 화학이 식물 속 물질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내게 되면 칸트의 파악할 수 없는 “물자체”는 “우리에 대한 사물”이 된다고 논했다. ↩
  3. 에른스트 마흐, 『인식과 오류(Erkenntnis und Irrtum)』(라이프치히, 1905). 「진심 어린 존경의 표시로 빌헬름 슈페에게」 바친 책이다. ↩
  4. 파벨 유시케비치, 『유물론과 비판적 실재론』(1908)의 장 「A. 보그다노프의 경험일원론」. 유시케비치도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개요』(1908)의 필자였다. 「라흐메토프」는 보그다노프를 관념론자라고 비판한 필자의 필명이다. “모험”은 보그다노프의 강연 제목 「어느 철학 학파의 모험」을 비튼 말이다. ↩
  5. 요제프 페촐트, 『실증주의 관점에서 본 세계 문제(Das Weltproblem vom positivistischen Standpunkte aus)』(1906). ↩
  6. 레닌은 1908년 2월 12일(25일) 고리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요』를 읽을 때마다 분노했다며 볼셰비키 분파로서는 철학 논쟁에 중립을 지키되 자신은 마흐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