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 국제사회주의자대회의 식민지 문제 토론과 결의 (1907)
인물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카를 카우츠키, 아우구스트 베벨, 율리안 마르흘레프스키, 램지 맥도널드, 페르디난트 라살레, 카를 마르크스 용어제2인터내셔널, 수정주의, 독일 사회민주당 (SPD), 개량주의 사건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학습사회주의의 분기 · 11장 사회주의자에게도 식민 정책이 있을 수 있을까?
결의안
이어서 의사일정에 들어가 먼저 식민지 문제를 다룬다. 이에 대해 다음 결의안들이 제출되어 있다.
위원회 다수의 결의안
위원회 다수의 결의안은 다음과 같다.
“대회는 식민지의 효용이나 필요성이 일반적으로, 특히 노동계급에게 크게 과장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대회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는 문명화 작용을 할 수 있을 식민 정책을 모두 원칙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배척하지는 않는다.
대회는 식민지 문제에 관한 파리 대회(1900)와 암스테르담 대회(1904)의 결의를 다시 확인하고, 현재의 식민 방식을 거듭 배격한다. 이 방식은 본질상 자본주의적이어서,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다른 민족을 굴복시켜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 목적이 없으며, 그동안 자기 나라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부담이 늘어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착취의 적으로서, 그리고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옹호자로서, 대회는 강자의 권리를 파렴치하게 휘두를 뿐이며 정복된 민족들의 권리를 짓밟는 이 약탈과 정복의 정책을 규탄한다.
식민 정책은 식민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얽혀 들 위험을 키우고, 육군과 해군으로 인한 그 국가들의 부담을 늘린다.
재정 면에서 보면, 식민지를 위한 지출, 제국주의가 초래한 지출, 그리고 식민지의 경제 발전을 위해 쓰이는 지출은 다른 나라의 약탈에서 홀로 이익을 얻고 그 부를 거기서 끌어오는 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끝으로 대회는, 사회주의 의원들이 모든 의회에서 기존의 모든 식민지를 지배하는 이 무자비한 착취와 예속의 방식에 비타협적으로 맞서 싸울 의무가 있음을 선언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주민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을 지지해야 하고,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모든 침해와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노예화를 막아야 하며,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해 원주민을 독립으로 이끄는 교육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 정당의 의원들은 자국 정부에 국제 조약을 맺어, 원주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조약 당사국들이 서로 보장하는 식민지법을 만들 것을 제안해야 한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사회민주당이 결의안의 마지막 문단, 곧 “이를 위해”부터 “서로 보장하는”까지를 삭제하자는 수정안을 냈다.
위원회 소수의 수정안
위원회 소수는 레데부어, 부름, 드라포르트, 브라크, 카르스키[1] 동지가 서명한 다음 수정안을 냈다.
1. 첫 문단을 삭제한다.
2. 첫 문단으로 다음을 넣는다.
“대회는 자본주의 식민 정책이 그 가장 깊은 본질상 식민 지역 원주민의 예속, 강제노동, 또는 절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가 내세우는 문명화의 사명은 그 사회에게 정복욕과 착취욕을 가리는 외투일 뿐이다. 사회주의 사회만이 모든 민족에게 온전한 문화로 피어날 가능성을 줄 것이다.
자본주의 식민 정책은 집단적 힘[2]을 늘리기는커녕,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고 궁핍하게 하며 살육과 황폐의 전쟁을 벌임으로써, 그 방식을 옮겨 심는 나라들의 자연적 부를 파괴한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문명국들의 상업과 공업 생산물 판로의 발전마저 늦추거나 가로막는다.
대회는 자본주의 식민의 야만적 방식을 규탄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 평화로운 문화적 발전을 보장하고 지구의 자원을 인류 전체의 더 높은 발전에 쓰이게 하는 정책을 요구한다.”
3. 마지막 문단을 삭제한다.
[…]
본회의 토론
판콜의 보고 (8월 21일 오전)
보고자 판콜: 저는 보고자의 임무에 엄격히 머물겠습니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멋진 연설을 듣고 힘차고 화려한 웅변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민주주의의 전술을 규정할 결정을 내리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는 점, 곧 원주민 학대에 대한 규탄과 식민지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위원회에서 그토록 격렬한 논쟁을 불렀고 여러분 앞에 놓인 다수와 소수의 두 결의안에 담긴 쟁점만 말하겠습니다. 위원회에서는 두 경향이 맞섰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이고 하나는 긍정적이며, 하나는 이론적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능동적인 정치, 행동의 정치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1870년 이전, 우리가 아직 작은 무리였고 파국론을 믿던 때에는, 자본주의에 그저 항의하고 지지자들에게 그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여 주며 그와 날카롭게 대비되는 미래의 낙원을 그려 보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행동할 의무도 깨달았습니다. 식민 정책에서도 우리는 개혁 강령을 가져야 합니다. 위원회의 큰 다수는 순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버리고 사회주의 식민 정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소수의 결의안에서는 막막한 절망이 들립니다. 그것은 표현이 막연할 뿐 아니라 사실과 진실에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생각할 줄 알고 이론 교육을 받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어떻게 그 결의안에 서명할 수 있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레데부어도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필연이며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발전 단계라고 확신할 것입니다. 식민지의 자본주의에도 같은 말이 맞지 않겠습니까? 레데부어는 식민지의 잔학 행위를 자본주의 식민 정책의 불가분한 구성 요소라고 선언하고 식민지의 야만에 항의하자고 촉구합니다. 이 국제 대회를 진지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항의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항의라면 이전의 국제 대회들과 각국 당대회에서 이미 가장 힘차게 했습니다. 물론 식민지의 잔학 행위는 끔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억누르고 식민 정책을 개선할 능력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네덜란드인은 가장 오래된 식민 민족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날마다 살인하고 고문하고 불태우고 약탈하는 일은 없게 만들었습니다.
레데부어의 미래 구상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입니다. 인도적 원칙에 따른 미래의 식민 정책이 언제나 완전히 평화로울지 그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독일처럼 큰 국민이 그런 유토피아적 구상을 믿고 구석에 틀어박혀 지금 당장은 그저 부정만 한다면 저는 매우 유감스럽겠습니다. 소수의 결의안은 더 나아가 자본주의 식민 정책으로 식민지의 생산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북아메리카 합중국의 식민을 잠깐이라도 떠올려 보십시오. 아메리카의 식민이 없었다면 그곳 원주민은 오늘날에도 가장 빈약한 문화 상태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레데부어는 식민지가 제공할 수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원료를 지금의 사회 질서에서 빼앗으려는 것입니까? 그는 지금 당장만이라도 식민지의 헤아릴 수 없는 부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까? 소수 결의안에 서명한 독일, 프랑스, 폴란드 대의원들은 지금의 식민 체제를 그냥 폐지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까? 인류가 존재한 이래 식민지는 늘 있었고, 저는 그것이 앞으로도 꽤 오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사회 질서에 식민지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사회주의자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오늘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레데부어에게 이것만 묻겠습니다. 지금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식민지를 내놓을 용기가 그에게 있습니까?
어쩌면 그는 그다음에 유럽의 과잉 인구를 어떻게 하려는지, 이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식민지가 아니면 어느 땅에서 살 곳을 찾아야 하는지도 말해 줄지 모릅니다. 유럽 공업의 늘어나는 생산물에 식민지에서 새 판로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레데부어는 그것을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뒤처진 민족들의 더 높은 교육과 향상에 끊임없이 힘써야 할 의무를 피하려는 것입니까? 물론 다수 결의안의 원주민 보호와 국제 조약에 관한 대목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 영향력도 갖지 못하는 이런 외교적 약정은 늘 반동에 봉사했습니다. 지난 몇 년의 경험이 이를 아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원주민 보호를 국제적 규율이 나올 때까지 미루는 것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국제적 규율에는 또 다른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 결의안의 마지막 문단을 삭제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부르주아 식민 정책을 인정하는 데서, 지난해 12월 1일 독일 제국의회에서 이렇게 말한 베벨만큼 나아가지는 않습니다.[3] “식민 정책을 어떻게 하느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식민 국가의 대표자들이 다른 나라에 해방자이자 교육자로 가서 문명과 문화의 성취를 전하고 그들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기르려 한다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런 식민 정책을 가장 폭넓게 지지할 첫째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벨은 부르주아 국가에서도 자본가들이 이미 문화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의안에 더 신중한, 레데부어와 그의 친구들에게 더 호의적인 형식을 골랐습니다. 그런데도 소수는 우리 결의안을 거부했습니다. 결의안이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식민지가 존재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지구 전체가 식민 열강에게 나뉘어 있습니다. 레데부어도 이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정당은 식민지 문제에서도 행동할 의무가 있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자신이 가진 큰 힘을 식민지 문제에서도 발휘할 의무가 있습니다. 1900년 파리 국제 대회는 모든 나라 사회주의자들에게 식민지 문제를 연구하고 식민지 강령을 기초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저는 독일 사회민주당에 묻습니다. 여러분의 식민지 강령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은 늘 가슴으로만 식민 정책의 잔혹과 부정에 항의했습니다. 저도 레데부어의 따뜻한 연설을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 슬픈 일이지만, 여러분은 독일 식민지의 발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식민지 문제에서 지적으로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식민지 문제에 관해 글을 쓴 여러분의 저작, 여러분의 저술가는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식민지에 가서 그곳 사정을 연구했습니까?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지 않았고,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네덜란드만이 의무를 다해, 식민지를 위한 최소 강령, 일종의 사회주의 식민 정책을 기초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독일의 최소 강령, 사회주의 식민 정책으로 가는 첫걸음도 내딛는 것입니다. 저는 특히 독일을 위해서, 그곳 사회민주당이 식민지의 필요성과 효용을 부정하는 데 그쳐 온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선거전에서 식민지가 쓸모 있다는 생각에 대중이, 소시민과 심지어 공업 노동자까지 어떻게 최면에 걸렸는지 보았습니다. 데른부르크의 소책자가 수십만 부씩 나라 안에 뿌려졌습니다.[4] (통역자가 “데른부르크 동지의”라고 말하자 폭소가 터지고, 레데부어가 다시 웃음 속에서 “그렇게 될 수도 있지요!” 하고 끼어든다.) 데른부르크의 수치가 틀렸다는 것도, 독일의 상업도 공업도 식민지 소유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식민지가 세계의 상업과 공업에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공업이 식민지를 가졌기 때문에 뒤처져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옳소! 옳소!) 네덜란드 자본가들은 국내 공업 대신 식민지에 돈을 투자합니다. […] 자본주의 식민 정책은 원주민 부족의 착취만 염두에 둡니다. 우리는 거기에 사회주의 원주민 정책을 맞세워야 할 것입니다. 자본가들은 강자의 권리만 압니다.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원주민의 권리도 관철하려 합니다. 최근의 두 전쟁은 식민 정책에서 나왔습니다. 일본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난다면 그것은 태평양의 지배를 둘러싼 것일 테고,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도 식민지 원인밖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국 노동자들이 체임벌린의 제국주의와 싸웠듯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첫째 의무일 것입니다. 식민지 문제를 더 자세히 검토하고 식민 정책의 강령을 세우는 것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식민지 원주민에 대한 착취를 제한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문화 수준을 높여 그들을 동등한 권리를 지닌 사람으로 만들 길을 그려야 합니다. 사회민주주의의 실천적 활동으로 수백만의 불행한 원주민에게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열리도록 하는 것이 대회의 과제입니다. (영국인과 네덜란드인 쪽에서 박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8월 21일 오후)
징어가 3시 조금 넘어 오후 회의를 열고 식민지 문제 결의안에 관한 토론을 시작한다.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저는 다수의 결의안을 지지하여 말합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자본주의 식민 정책을 옹호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반대자이고, 문제는 오직 그 반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입니다. 각국에서 사회민주당의 힘이 커지면 그 책임도 커집니다. 그러므로 식민 정책에서도 순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식민 정책을 펴야 합니다. (브라보!) 식민지를 그냥 떠나 버리자는 유토피아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견해의 마지막 귀결은 합중국을 인디언에게 돌려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술렁임.) 식민지는 거기 있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화 민족이 비문화 민족에 대해 어느 정도 후견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도 인정해야 할 필연입니다. 라살레와 마르크스도 이를 알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3권에서 이렇게 씁니다. “지구는 어느 한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것이며, 모든 민족은 인류에게 가장 좋도록 지구를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라살레는 언젠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민족이 스스로 발전할 권리는, 도대체 그런 것이 없듯이,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발전이 있다는 조건에 묶여 있다. 그러나 발전하지 않는 민족은 문화적 발전을 이룬 민족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정당하게 정복될 수 있다.” 이전의 국제 대회들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현실의 사실이라는 토대 위에 서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자본주의 식민 정책에 사회주의 식민 정책을 맞세워야 한다는 데 이르게 됩니다.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은 원주민이 아무 쓸모도 몰랐던 식민지 산물을 얻는 데 기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유로 우리는 다수의 결의안을 채택해야 합니다.
마지막 문단을 저 개인은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정부들에게 국제 식민지법을 만들라고 촉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나중에 그들이 결정하는 모든 것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국제 조약이 꽤 많이 있고, 아무리 불완전하더라도 그것들은 어쨌든 진보를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생각이 결의안에 표현된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벨기에 사회민주당이 콩고 병합을 거부한 것은 흑인의 복지에 대한 벨기에 의원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제적 분규를 염려해서였습니다. 어쨌든 콩고가 순전히 자본주의적인 사기업에 착취당하기보다는 노동계급이 대표를 보내는 의회의 지배 아래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다수 결의안을 채택해 주십시오. (박수와 야유.)
게오르크 레데부어
레데부어(박수 속에 등단)가 소수의 결의안을 대변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동지들, 그리고 몬테피오레 동지도 이 결의안을 지지한다는 것을 저를 통해 밝혀 달라고 했습니다. 판콜은 우리 독일인이 의회에서 트집 잡고 반대만 했을 뿐 적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나무랐습니다. 당 동지 베른슈타인의 말에서도 그 비난의 메아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판콜이 우리에게 후견인처럼 권한 바로 그 뜻대로 적극적으로 일했습니다. 우리가 대회에 낸 문서의 맺음말을 보십시오. 거기에는, 사회민주당이 독일에서 소수당으로서 자본주의 식민 정책에 대한 원칙적 거부를 아직 관철할 수 없으므로, 의회와 언론에서 비판하고 감시하는 활동으로 식민지 모험에서 국민 다수와 특히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생기는 해악을 끊임없이 될 수 있는 한 줄이려고 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식민지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원주민을 될 수 있는 한 보호할 의무도 그 못지않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독일 식민 정책의 여러 문제에 끊임없이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옳소! 옳소!) 우리가 정말로 적극적으로 함께 일했다는 증거로, 원주민의 토지 강탈에 맞서 효과적으로 나섰고 특히 토고에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도 상기시키겠습니다. 판콜 동지, 그것이 우리의 적극적 활동입니다. (판콜: 나는 당신들의 강령을 물었소!) 원주민 보호를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을 사실 하나하나 늘어놓아 보여 준다면, 따로 이론적 강령이 있느냐는 아마 부차적일 것입니다. 그런 강령은 소매에서 털어 낼 수도 없습니다. 먼저 당대회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철저히 그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그러면 강령도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수 결의안의 첫 문장에 반대합니다. 거기에는 식민지가 노동자에게도 쓸모 있다는 원칙적 인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 결의안의 아버지인 바로 그 판콜이, 네덜란드의 식민 정책이 첫째로 원주민에게 불행이었고 둘째로 노동자에게 불행이었다고 확인했습니다. (옳소! 옳소!) 판콜은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그것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결의안을 내놓고 나서 우리더러 일관성이 없다고 합니다. 판콜이 우리 결의안의 셋째 문단에 반대하는 것은 아마 생산력을 생산물과 혼동한 탓일 것입니다. 생산물은 늘어나는데 그 때문에 생산력은 줄어드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생산력에는 땅의 생산 능력과 원주민의 노동력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제 베른슈타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의 식민 정책 방법을 따른다면 우리는 곧 자본주의의 늪에 빠질 것입니다. 베른슈타인이 보어 전쟁 때 몇몇 페이비언과 영국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영국 징고이스트 편에 섰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옳소! 옳소!) 그는 영국 자유당원들보다도 더 제국주의적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트란스발 정복을 지지했습니다. 보어 전쟁 동안 저녁마다 딸에게 피아노로 「룰 브리타니아」를 치게 하겠다던 저 블래치퍼드 동지처럼 말입니다. (웃음.) 전쟁 내내 그렇게 했다면 블래치퍼드 집안에는 몹시 해로웠을 것입니다. (폭소.) 독일이 자오저우를 강제로 조차했을 때, 그것이 독일 외교의 가장 나쁜 수는 아니었다고 서슴없이 말한 것도 베른슈타인이었습니다. 지금은 온 세상이 그 조차가 독일이 한 가장 어리석은 짓의 하나였다는 데 의견이 같은데도 말입니다. 수정주의자의 어리석은 말이라면 무엇이든 즐겨 이용하는 뷜로 공작은 물론 그 말 때문에 베른슈타인을 큰 빛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베른슈타인과 달리 저는 다른 민족에 대한 후견을 절대적으로 배격하며, 대회가 그런 후견을 승인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열렬한 박수.)
에두아르트 다비트
에두아르트 다비트: 다수의 결의안을 채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독일 대표단의 다수가 이 결의안을 지지한다는 것을 밝혀 둡니다. 이 결의안 첫 문단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자본주의 식민 방식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억측을 저는 단호히 물리칩니다. (박수.) 바로 다음 문장에서 우리가 현재의, 곧 자본주의적 식민 방식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에라도 첫 문단의 뜻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옳소!) 문제는 오로지 우리가 식민 정책 그 자체에 원칙적으로 모두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 식민지 개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완전히 무의미해집니다. 레데부어는 식민 정책은 아예 개혁될 수 없다고 하면서, 같은 레데부어 동지가 결의안의 끝에서 둘째 문단에서 대회가 원주민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식민지 개혁을 지지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데는 동의합니다. (옳소, 옳소!) 그런 논리로는 남에게 비논리를 탓할 자격이 없습니다. 소수가, 오늘의 식민 정책에는 고칠 것이 전혀 없고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원주민과 그것을 하는 나라에 해롭다고 말한다면, 그 소수는 일관되려면 식민지를 폐지하자고 주장해야 합니다. (옳소!) 레데부어가 제게, 우리도 그걸 원한다고 외칩니다! (활발한 “옳소, 옳소!”) 그렇다면 레데부어 결의안을 지지하는 영국 동지들은 자기 의회에서 식민지 폐지를 제안하고, 프랑스 동지들도 그렇게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로 식민지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처지에 있다면, 그것은 식민지를 원주민에게 돌려준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식민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곳에는 인도주의가 아니라, 식민지가 야만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옳소!) 또 레데부어 동지는, 한 민족이 식민지에서 문화적 사명을 수행할 권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사회주의자의 입에서 나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듯한 인상을 주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1906년 12월 1일 베벨이 식민 정책에 대한 사회민주당의 입장을 밝힌 선언을 상기시키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민 정책을 한다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닙니다. (옳소, 옳소!) 식민 정책을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문화적 위업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로지 식민 정책을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옳소, 옳소!) 교양 있는 민족의 대표자들이 다른 민족에게 친구로서, 은인으로서, 인류의 교육자로서 가서 그들의 땅에 있는 보화를 원주민과 문화 인류 전체를 위해 캐내도록 돕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찬성합니다.” (옳소, 옳소!) 교육한다는 것은 곧 후견한다는 것입니다! 레데부어는 우리에게 문화적으로 낮은 민족을 후견할 권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베벨이 이 선언에서 취한 것과 같은 입장을, 사회민주당 제국의회 의원단도 식민 정책이 쟁점이었던 선거에 즈음한 호소문에서 취했습니다. 그리고 레데부어 동지는 그 의원단 호소문에 함께 서명했습니다. (옳소, 옳소!) 그러니 그는 베른슈타인에게 논리적 사고가 모자란다고 그렇게 볼썽사납게 나무라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보어 전쟁 때 베른슈타인의 글에 대해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글들이 독일 언론의 반영(反英) 선동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점만 말해 두겠습니다. 레데부어는 이 개인적인 일을 토론에서 빼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옳소!) 질문만 던질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결의안의 첫 문단을 채택해야 합니다. 식민지도 자본주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곳에서도 야만에서 곧장 사회주의로 뛰어오르지는 못합니다. (좋소!) 자본주의를 거치는 고난의 길은 어디서도 인류에게 면제되지 않으며, 바로 카를 마르크스의 과학적 견해에 따르면 이 길은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된 경제의 전제입니다. 사회주의는 결코 비판만이 아닙니다. 사회주의에는 어디서나 적극적 이상, 단계적 개혁으로만 이를 수 있는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적극적인 식민 정책 이상에서 이 분야 전체에서의 우리의 개혁 활동이 정당화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활동에 압도적인 위대함, 승리의 확신을 줍니다. 그러므로 식민지에 사는 이웃 인간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문화의 진보를 위해 이 적극적 이상에 찬성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열렬한 박수.)
이어서 토론의 속개를 목요일로 미룬다.
독일 대표단의 수정안 (8월 22일)
[…] 징어: 스웨덴 대표단은, 스웨덴 대표단이 소수 결의안에 투표하리라고 레데부어가 말한 것은 착오였다고 알려 왔습니다. 오히려 스웨덴인들과 위원회의 스웨덴 대표는 다수 결의안에 투표했고 대표단 전체가 그 태도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또 프랑스 대표단에서 다수 결의안의 첫 문단을 삭제하자는 동의가, 그리고 독일 대표단에서 다수 결의안의 첫 문단 대신 다음 문안을 넣자는 동의가 들어왔습니다.
“사회주의는 지구 전체의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모든 민족을 최고의 문화로 이끌어 올리려 하므로, 대회는 모든 식민 정책을 원칙적으로 배척하지는 않는다. 식민 정책은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문명화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자 판콜은 다수의 대표로서 이 문안을 받아들인다.
카를 카우츠키
카를 카우츠키(우레 같은 박수 속에 맞이됨): 저는 첫 문단의 이 새 문안을 결정한 독일 대표단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방금에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첫 문안에 반대해 말하려 했듯이, 유감스럽게도 이 새 동의에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브라보!) 사회주의 식민 정책이라는 생각이 제게는 완전한 논리적 모순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이 생각이 여기 우리 사이에서 그토록 많은 지지자를 얻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이 생각이 너무 새롭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주의 식민 정책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그것이 아주 옳고 필요하지만 식민 정책과는 겉으로만 이어져 있고 실제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생각들과 엮여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 가운데 특히 물리칠 수 없는 생각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식민지를 그냥 무시할 수 없고, 식민지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될 수 있는 한 식민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한 그것을 부정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식민지에서 해야 할 일은 원칙적으로 본국에서 해야 할 일과 똑같습니다. 자본주의의 착취와 관료제와 군국주의의 압박에서 민중을 보호하는 것, 곧 사회 정책과 민주주의 정책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 정책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식민 정책이란 바다 건너 땅을 정복하고 폭력으로 붙잡아 두는 것을 뜻합니다. 민주주의와 사회 정책이 정복이나 외세 지배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을 저는 부정합니다. (브라보!) 또 사람들은, 우리가 문명화 정책을 펴야 하고 미개한 종족에게 가서 교사이자 조언자로서 자연 민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해야 합니다. 베벨이 제국의회에서 그에 대해 한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 자연 민족이 더 높은 단계에 이르는 데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식민 정책이, 다른 나라의 정복과 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부정합니다. 아니, 식민 정책은 근본적으로 문명화 정책에 해롭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옳소!) 낮은 단계의 민족이 더 높은 민족이 가져오는 문명에 적대적이라는 것은 널리 퍼진 오류입니다. 모든 경험은 반대로, 미개인을 우호적으로 대하는 곳에서는 그들이 더 높은 문명의 도구와 수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들을 억누르고 굴복시키러 오면, 그들을 비록 선의라 하더라도 전제정의 후견 아래 두려 하면, 그들은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외세의 지배와 함께 외래의 문화도 거부하고, 싸움과 황폐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민 정책이 있는 곳 어디서나 민족들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다는 것을 봅니다. 사회주의 체제라도 이것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체제도 식민지를 이물질로 여겨야 하고 그곳에 외세 지배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자연 민족에게 문명화 작용을 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그들에게 자유를 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브라보!) 베른슈타인은 이 정복 정책이 자연의 필연이라고 우리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저는 그가 여기서, 민족에는 두 부류가 있어 한쪽은 지배하도록, 다른 쪽은 지배받도록 정해져 있다는 이론, 어린아이여서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는 민족이 있다는 이론을 옹호한 데 무척 놀랐습니다. 그것은 모든 전제정의 토대가 된 옛 명제, 곧 어떤 사람은 발에 박차를 달고 세상에 나오고 다른 사람은 앞사람을 태우려고 등에 안장을 얹고 나온다는 명제의 변주일 뿐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모든 귀족제의 논법이었고, 문화는 노예의 강제노동 위에 서 있으며 노예제가 없어지면 나라가 야만으로 되돌아가리라고 말한 미국 남부 노예주의 논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논법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를 끌어댄 것은 부당합니다. 물론 마르크스는 지구가 인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식민 정책을 하는 것은 인류가 아닙니다. (좋소!) 마르크스는 지구가 자본주의 국민들의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좋소! 발언 시간이 끝났다.) 끝으로, 이토록 새롭고, 우리의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고 전체와 이토록 어긋나며(옳소!), 아직 충분히 숙고되지도 않은 이 머리 문장을 채택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이 문장을 먼저 철저히 토론하고 제대로 숙고할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당 언론과 학술지와 집회에서 충분히 토론되어야 합니다. 그 전에는 사회주의 식민 정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에 우리를 묶어 둘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일인들의 동의를 부결하고 프랑스 대표단의 동의에 찬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래 이어진 열렬한 박수.)
귀스타브 루아네
[…] 루아네(파리): 시간이 짧아 카우츠키와 레데부어와 브라크가 다수 결의안에 퍼부은 공격을 모두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반대자 여러분께 부디 입장을 밝혀 주시기를 청합니다. 여러분은 사회주의 식민 정책이란 없고 사회민주당은 이론과 실천에서 그것에 항의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식민 정책의 야만적 방식을 충분히 낙인찍은 다음, 여러분은 다음 문단에서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 평화로운 문화적 발전을 요구합니다. 묻건대 누구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부르주아 사회에게겠지요? 그리고 오늘의 사회가 지금까지의 자본주의적이고 잔혹한 식민 정책 대신 평화로운 식민 정책을 하라고 요구한다면, 방금 물리치고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사회주의 식민 정책을 요구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이 나라들을 점령하지 않고서 그 나라들의 생산성을, 지구의 자원을 인류 전체의 더 높은 발전에 쓰이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소수 결의안에서 식민 정책의 원칙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수 결의안을 채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가 제안했으나 논란이 된 마지막 문장, 곧 국제 식민지법 문제를 다룬 문장은 철회하고, 이 문제는 나중에 국제의회연맹 회의에 가져가겠습니다. (박수.)
이로써 토론을 마친다.
판콜의 맺음말
맺음말은 판콜이 한다. 저는 발언을 포기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카우츠키가 자신의 학식과 국제적 명성의 무게를 모두 저울에 올려놓았으니 그의 논거를 반박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쪽에서 식민지 경제에는 사실 고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틀렸고 식민 정책의 역사와도 어긋납니다. 우리는 의회에서의 사회주의 활동으로 네덜란드 식민지를 위해 상당한 이익을 얻어 냈습니다. 우리가 왜 유럽 노동자에게만 도움을 주고 다른 대륙의 노동자에게는 주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 앞에는 유럽 자본주의의 거대한 힘이 서 있습니다. 왜 유럽 밖의 자본주의와도 싸우지 말아야 합니까? 자본주의에 맞서 그곳보다 더 쉽고 더 큰 정복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레데부어는 다수의 노력을 반동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과학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주의를 생각하기 전에 식민지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하지 못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식민지의 혁명적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은, 봉건 국가에서 근대 국가로,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을 쉽게 하려는 것입니다. 야만에서 사회주의로 뛰어오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옳소!) 그 반대의 견해는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어리석고 편협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군국주의나 조세 입법에 대해서처럼 이 발전에 대해서도 적극적 요구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미국 동지들은 사회주의 운동에서 아직 젊습니다. 그들이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식민 정책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 그것을 루스벨트 같은 사람에게만 맡긴다면 저는 몹시 안타까울 것입니다. 미국 동지들께 궁핍하고 무방비한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식민 정책에 적극 개입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브라보!)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식민지 잔학 행위에 관한 옛이야기를 들었는데, 사회주의자들의 의회 앞에서는 이제 지루해질 지경입니다. 저는 카우츠키를 한 인간이자 투사로서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비과학적인 이론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식민 정책은 정복이다, 제국주의다”라는 테제를 내세웁니다. 그것은 완전히 틀린 공식입니다. 문법을 더 잘 아셔야 하겠습니다! 식민 정책은 지금은 물론 제국주의적이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며, 민주주의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식민 정책을 개념상 제국주의와 같다고 보는 것은 카우츠키의 심한 잘못입니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으려 애쓰기를 바랍니다. 카우츠키는 우리가 원주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피부색이 다른 수백만 사람의 신뢰를 어떻게 얻겠다는 것입니까? (좋소!) 우리 네덜란드인은 우리 경험을 다른 나라 동지들에게 전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네덜란드 사회주의자들은 수백만 자와인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사회민주당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에서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주민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여러분은 식민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박식한 카우츠키는 식민지의 공업 발전에 관해 조언할 때 더 심했습니다. 우리가 기계와 도구를 아프리카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상물림의 이론입니다! 그것으로 그 땅을 문명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앙아프리카의 미개인에게 기계를 가져가면 그들은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쩌면 그 둘레에서 원무를 출지도 모르고(폭소) 수많은 우상에 하나를 더할지도 모릅니다. (웃음.) 어쩌면 기계를 돌릴 유럽인도 함께 보내야 할지 모릅니다. 원주민이 그들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카우츠키와 제가 시험해 볼 수도 있겠지요. 이론과 실천이 도구와 기계를 들고 팔짱을 끼고 그 미개한 땅으로 가는 겁니다. 어쩌면 원주민이 우리 기계를 부술지도, 우리를 때려죽이거나 아예 잡아먹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배를 쓰다듬으며) 제가 카우츠키보다 먼저 차례가 올까 걱정입니다. (웃음.) 우리 유럽인이 도구와 기계를 들고 그곳에 가면 우리는 원주민의 무방비한 희생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우츠키가 그것을 제국주의라고 부르더라도 우리는 손에 무기를 들고 그곳에 가야 합니다. (옳소!) […] 한 학자가 사회 현실 앞에서 어떻게 문제를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지 우리는 오늘 카우츠키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는 식민지 문제에서 유토피아주의자에서 수정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박수.) 이제 빈말의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우리는 식민지의 가난하고 굶주린 대중을 위해 실천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수 결의안을 큰 다수로 채택하기를 바랍니다. (박수.)
이어서 점심 휴회에 들어갔다.
표결 (8월 22일 오후)
[…] 식민지 문제 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어진다.
소수 수정안에 대한 표결
먼저 소수의 수정안을 표결에 부친다.[5] 반대: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대표단의 12표, 영국 대표단의 14표,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4표, 스웨덴, 남아프리카. 찬성: 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인, 루테니아인,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에스파냐, 북아메리카, 핀란드, 프랑스의 10표, 영국의 6표, 헝가리, 이탈리아의 11표, 일본, 폴란드, 러시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노르웨이. 스위스는 기권한다. 룩셈부르크의 표는 대표가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수정안은 찬성 127, 반대 108, 기권 10으로 채택되었다.
결과가 발표되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진다.
다수 결의안의 머리 문단을 삭제하자던 프랑스 대표단의 동의는 이제 철회된다.
판콜이 이 동의를 다시 내려 하지만, 대회는 큰 다수로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결정한다.
에두아르트 다비트는 이렇게 고쳐진 다수 결의안의 머리말과 마지막 문장들을 따로 표결하자고 제안한다.
힐퀴트는 일괄 표결을 제안한다.
대회는 힐퀴트의 제안을 택한다. 그리하여 소수의 문안으로 된 첫 문단과 그 뒤를 잇는 다수 결의안의 문단들을 일괄 표결하는데, 결의는 이제 전체로 다음 문안이 되었다.
채택된 결의
“대회는 자본주의 식민 정책이 그 가장 깊은 본질상 식민 지역 원주민의 예속, 강제노동, 또는 절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가 내세우는 문명화의 사명은 그 사회에게 정복욕과 착취욕을 가리는 외투일 뿐이다. 사회주의 사회만이 모든 민족에게 온전한 문화로 피어날 가능성을 줄 것이다. 자본주의 식민 정책은 집단적 힘을 늘리기는커녕,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고 궁핍하게 하며 살육과 황폐의 전쟁을 벌임으로써, 그 방식을 옮겨 심는 나라들의 자연적 부를 파괴한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문명국들의 상업과 공업 생산물 판로의 발전마저 늦추거나 가로막는다. 대회는 자본주의 식민의 야만적 방식을 규탄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 평화로운 문화적 발전을 보장하고 지구의 자원을 인류 전체의 더 높은 발전에 쓰이게 하는 정책을 요구한다.
대회는 식민지 문제에 관한 파리 대회(1900)와 암스테르담 대회(1904)의 결의를 다시 확인하고, 현재의 식민 방식을 거듭 배격한다. 이 방식은 본질상 자본주의적이어서,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다른 민족을 굴복시켜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 목적이 없으며, 그동안 자기 나라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부담이 늘어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착취의 적으로서, 그리고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옹호자로서, 대회는 강자의 권리를 파렴치하게 휘두를 뿐이며 정복된 민족들의 권리를 짓밟는 이 약탈과 정복의 정책을 규탄한다.
식민 정책은 식민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얽혀 들 위험을 키우고, 육군과 해군으로 인한 그 국가들의 부담을 늘린다.
재정 면에서 보면, 식민지를 위한 지출, 제국주의가 초래한 지출, 그리고 식민지의 경제 발전을 위해 쓰이는 지출은 다른 나라의 약탈에서 홀로 이익을 얻고 그 부를 거기서 끌어오는 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끝으로 대회는, 사회주의 의원들이 모든 의회에서 기존의 모든 식민지를 지배하는 이 무자비한 착취와 예속의 방식에 비타협적으로 맞서 싸울 의무가 있음을 선언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주민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을 지지해야 하고,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모든 침해와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노예화를 막아야 하며,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해 원주민을 독립으로 이끄는 교육에 힘써야 한다.”
찬성: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벨기에, 불가리아, 덴마크, 에스파냐, 북아메리카, 핀란드, 프랑스, 영국, 일본, 폴란드, 러시아, 세르비아, 스웨덴, 스위스, 노르웨이, 남아프리카. 네덜란드는 기권한다.
독일 대표단에서 소란이 인다. 다비트가 대표단을 대신해 먼저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에 거센 항의가 일고, 징어는 독일 대표단 안에서 표결하게 한다. 대표단은 큰 다수로 “찬성”을 택한다.
그러므로 결의는 네덜란드의 기권을 빼고 모든 표로 채택되었다. (열렬한 박수.)
위원회 의사록에서
첫 회의, 8월 19일 월요일. 독일 대의원은 보크, 다비트 박사, 레데부어, 부름이다. 위원회는 판콜을 의장으로, 안트베르펜의 테르바뉴를 서기로 뽑았다. […]
일반 토론에서 다비트 박사(마인츠)는, 이전 대회들도 이미 식민지 문제를 다루고 결의를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 결의를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천적 지침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회민주당은 부르주아 세계가 오늘 식민하는 방식을 규탄하지만, 식민지 주민과 식민지의 천연자원을 모두 자본주의적 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 영향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민주당이 문화 국가에서 노동자 보호법을 만들어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한다. […]
레데부어: 유감스럽지만 저는 다비트에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베벨에게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비트 동지는 핵심을 놓쳤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있는 한, 식민 정책은 언제나 우리 모두가 규탄하는 끔찍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다비트는 이 끔찍함을 피할 수 있는 것, 오늘날 식민의 부수 현상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그것은 원칙적인 오류입니다. […] 지금의 식민 정책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이며, 그 잔인함은 착취당하는 사람들 자신의 저항력으로만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식민지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식민지 주민에게는 저항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결의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식민 정책에서 문화적 사명에 대한 어떤 배려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맨 앞에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나라에서 모든 착취와 억압의 원칙적 반대자이므로,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훨씬 더 나쁜 착취와도 원칙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이 원칙적 선언을 맨 앞에 내세운 다음에, 우리가 소수로서 식민지법을 만들어 원주민을 될 수 있는 한 보호하는 일을 지지하겠다고 덧붙일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아마 우리 모두 의견이 같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결의를 보고 누구도, 우리가 잔혹과 끔찍함을 동반하지 않는 식민 정책이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 다비트는 결의안의 머리말로 다음을 제안한다.
“사회주의는 지구 전체의 생산력을 인류에게 봉사하게 하고 모든 피부색과 언어의 민족을 최고의 문화로 이끌어 올리려 하므로, 대회는 식민의 이념 그 자체를 사회주의 운동의 보편적 문화 목표를 이루는 불가분의 구성 요소로 본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적 식민 방식은 다른 민족을 착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 목적이 없으며 운운….”
[…] 마침내 다비트가 제안한 머리말은 부결되고 판콜의 결의안이 원래 문안대로 채택된다.
“대회는 식민 정책의 효용이 일반적으로, 특히 노동계급에게 크게 과장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대회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는 문명화 작용을 할 수 있을 식민 정책을 모두 원칙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배척하지는 않는다.”
이 밖에 전쟁 위험의 증대와 육해군 지출의 부담을 강조하는 부름의 추가 동의와, 식민지법에 관한 협약을 요구하는 루아네의 추가 동의가 채택된다. 레데부어는 소수를 위해 본회의에서 부보고자를 세우겠다고 알린다.
주석
- 옮긴이: 카르스키(J. Karski)는 폴란드 왕국·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의 율리안 마르흘레프스키가 쓰던 필명이다. ↩
- 옮긴이: 인쇄본에는 “Kollektivkräfte”(집단적 힘)로 되어 있다. 같은 문단 끝과 레데부어의 발언으로 보아 뜻하는 것은 생산력이다. ↩
- 옮긴이: 1906년 12월 1일 제국의회의 식민지 예산 토론에서 아우구스트 베벨이 한 발언이다. 판콜과 다비트가 인용하는 문구가 서로 조금 다른 것은 의사록에 실린 그대로다. ↩
- 옮긴이: 베른하르트 데른부르크는 1906년 외무부 식민국장이 되고 1907년 5월 새로 생긴 제국식민청의 장관이 된 은행가로, 남서아프리카 전쟁 예산을 둘러싸고 의회가 해산된 1907년 1월 제국의회 선거에서 식민지의 경제적 효용을 선전해 사회민주당의 의석이 크게 줄어드는 데 한몫했다. ↩
- 옮긴이: 대회의 표결은 나라별 대표단 단위로 이루어졌고, 대표단마다 정해진 수의 표를 가졌다. 그래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처럼 대표단 안에서 표가 갈린 나라는 표 수가 따로 적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