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 게제비치 아간베갼

Абел Гезевич Аганбегян
소련 아르메니아 1932– ○ 생존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 고문이자 페레스트로이카의 시장개혁 설계사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비에트 사회 전체의 혁명적 쇄신이다. 성장의 가속은 민주화와 글라스노스트에서 분리될 수 없다. (1988)

트빌리시 태생의 아르메니아계 수리경제학자. 노보시비르스크 IEiOPP 소장(1966–1984)으로 시베리아 개발과 BAM의 경제 토대를 설계하고 『EKO』를 창간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 고문이 되어 기업 자율성 확대, 시장 요소 도입, 대외경제 개방이라는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학아카데미 경제분과 서기(1986–1989)로 활동하며 소비에트 계획경제 안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모색했고, 소련 해체 후 국민경제아카데미 총장(1989–2002)을 지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페레스트로이카 경제개혁 청사진

아간베갼이 구상한 페레스트로이카 경제개혁은 단순한 제도 손질이 아니라 '혁명적 쇄신'이었다. 그는 소련 경제의 근본 문제를 '행정적 관리방식'과 새로운 사회적 현실 간의 불일치로 진단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 수석 경제 고문이 된 후, 그는 세 가지 축으로 개혁안을 제시했다. 첫째, 중공업 우선에서 사회적 필요(주택·식량·보건·교육)로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전환할 것. 둘째, 국영기업에 실질적 자율권을 부여하고 원가계산(khozraschyot)과 채산제를 도입해 기업이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도록 할 것. 셋째,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대외무역 독점을 완화할 것. 이는 신경제정책(NEP)과 1965년 코시긴 개혁의 연장선 위에 있으면서도, 글라스노스트와 민주화를 경제 개혁의 불가분한 조건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이었다. 아간베갼은 1988년 『The Challenge: Economics of Perestroika』를 통해 이 구상을 서방에 직접 설명했으며, 노보시비르스크 학파의 수리경제학 방법론을 정책 설계에 접목시킨 첫 사례였다. 개혁은 결과적으로 소련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지 못했지만, 아간베갼의 청사진은 계획과 시장의 접합을 추구한 소비에트 개혁 사상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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