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트리포노비치 트바르돕스키

Александр Трифонович Твардовский
소련 러시아 1910–1971 ○ 자연사

해빙기 문학의 문을 연 『신세계』 편집장이자 『바실리 죠르킨』의 국민 시인

솔제니친의 부고: 「시인을 죽이는 방법은 많다. 트바르돕스키에게 선택된 방법은 그의 자식이자 열정이던 잡지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여섯 달 뒤, 그는 임종의 자리로 들어갔다.」

『바실리 죠르킨』으로 전시 국민 시인이 된 작가. 『신세계』 편집장으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출판해 해빙기 문학의 상징이 되었으나, 브레즈네프 체제 아래 축출된 후 사망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신세계』와 해빙기 문학의 투쟁

트바르돕스키는 두 차례(1950~1954, 1958~1970) 『신세계』 편집장을 맡으며 이 잡지를 해빙기 소련 문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54년 첫 해임은 표도르 아브라모프, 블라디미르 포메란체프 등의 개혁적 비평을 실은 것이 원인이었으며, 특히 그가 추진했던 풍자시 『저승의 죠르킨』(Тёркин на том свете)의 출판 시도가 결정타였다. 흐루쇼프의 후원으로 1958년 복귀한 후, 『신세계』는 반(反)스탈린주의 문학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1962년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출판은 트바르돕스키가 흐루쇼프에게서 직접 승인을 받아내며 이뤄낸 해빙기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잡지는 바실 비코프, 유리 트리포노프, 보리스 모자예프, 유리 돔브롭스키 등 1960년대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실었고, 문학을 이데올로기보다 '삶의 진실'로 평가한다는 편집 방침을 고수했다. 이는 당 기관지라기보다 합법적 반대파의 기관지에 가까웠다. 이에 맞서 보수 진영의 『옥탸브리』(편집장 프세볼로드 코체토프)와 극심한 논쟁을 벌였고, 검열 기관 글라블리트는 주요 원고를 상시 삭제했다.

흐루쇼프 실각 후 압박은 가중되었다. 1966년 트바르돕스키는 작가 율리 다니엘과 안드레이 시냡스키의 유죄 판결을 지지하기를 거부했고,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지지하는 공개 서한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1969년 『오고뇨크』에 11명의 작가가 『신세계』를 공격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며 편집진 교체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1970년 2월, 당은 부편집장들을 적대적 인사로 교체하자 트바르돕스키는 사임했고 편집부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솔제니친은 훗날 "그의 자식이자 열정이던 잡지를 빼앗는 것"이 트바르돕스키를 죽이는 방법이었다고 썼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