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미트로파노비치 오볼렌스키

Александр Митрофанович Оболенский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43–

소련사 최초로 현직 서기장에게 선거 대안을 제시한 엔지니어

1989년 5월 인민대표대회에서 그가 마이크 앞에 섰다.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고르바초프의 유일 후보에 맞섰고, 대의원 1,415 대 689로 그의 이름은 투표용지에서 제외되었다.

1943년 오룔 출생의 지구물리학 엔지니어로, 콜라반도 극지연구소에서 20년간 근무하며 1987년 최초의 비공식 개혁단체인 페레스트로이카 자발적 지원회를 아파티티에 결성했다. 1989년 소련 인민대표대회 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제1차 대회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맞서 최고회의 의장 후보로 자진 출마, 소련사 최초의 현직 서기장 대안 입후보라는 정치적 파열을 일으켰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후 의회 조사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진상 규명을 주도했으며, 벨로베시 협정을 헌법 위반으로 간주해 끝까지 소련 해체에 반대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8월 쿠데타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8월 쿠데타가 진압된 직후인 1991년 8월 29일, 오볼렌스키는 국가반역 시도의 원인과 경위를 규명할 의회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위원회 첫 회의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위원장으로서 그는 쿠데타의 준비 경로와 국가기관의 대응을 조사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조사는 끝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1992년 1월 20일, 위원회는 오볼렌스키의 발의로 러시아 당국의 방해 때문에 조사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결정을 채택하고, 수집한 모든 자료를 국가문서보관소에 임시 보관하도록 넘겼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진상규명을 요구한 쪽에서 움직였던 인물이었고, 그 요구가 좌절되는 과정까지도 위원회의 공식 기록으로 남겼다.

같은 시기 오볼렌스키는 소련의 해체 자체를 또 하나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1991년 9월 제5차 인민대표대회 연설에서 그는 연방 공화국 지도자들이 대회에 제시한 최후통첩을 쿠데타 시도의 제2단계로 규정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즉시 해임할 것과 대회가 전권을 인수해 새 대통령 선거일을 정할 것을 제안했다. 1991년 12월 10일에는 인민대표 5분의 1의 요구에 서명해 인민대표대회 임시소집을 청구했고, 이 요구서는 12월 21일 고르바초프에게 직접 전달되었다. 그는 1992년 3월 17일 러시아 당국이 불법으로 선언하고 정족수도 갖추지 못한 보로노보 대회를 포함해 인민대표대회 6차례 회의에 모두 참석했다. 임기 중 그는 50건이 넘는 법률안과 제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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