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사 최초로 현직 서기장에게 선거 대안을 제시한 엔지니어
1989년 5월 인민대표대회에서 그가 마이크 앞에 섰다.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고르바초프의 유일 후보에 맞섰고, 대의원 1,415 대 689로 그의 이름은 투표용지에서 제외되었다.
1943년 오룔 출생의 지구물리학 엔지니어로, 콜라반도 극지연구소에서 20년간 근무하며 1987년 최초의 비공식 개혁단체인 페레스트로이카 자발적 지원회를 아파티티에 결성했다. 1989년 소련 인민대표대회 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제1차 대회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맞서 최고회의 의장 후보로 자진 출마, 소련사 최초의 현직 서기장 대안 입후보라는 정치적 파열을 일으켰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후 의회 조사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진상 규명을 주도했으며, 벨로베시 협정을 헌법 위반으로 간주해 끝까지 소련 해체에 반대했다.
경력 연표
- 1960–1965오룔 공장 선반공, 동독 주둔 소련군 복무
- 1971레닌그라드 광산대학 지구물리학 전공 졸업
- 1971–1992콜라 과학센터 극지지구물리연구소 기술자·설계기사
- 1987–1989페레스트로이카 자발적 지원회(DOSP) 아파티티 결성·의장
- 1989–1992소련 인민대표대회 의원 (레닌그라드 농촌 제20선거구)
- 1990–1994러시아 사회민주당(SDPR) 공동의장·의장
- 19918월 쿠데타 진상조사 의회위원회 위원장
- 1993–1996TV·라디오 공사 '보스토크' 사장 겸 편집장, 오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