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푸틴에 기대 제국을 내부에서 무너뜨린 최후의 내무장관
1917년 2월 26일, 시노드 부총장이 페트로그라드의 소요를 묻자 프로토포포프는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난다 해도 50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프로토포포프는 섬유 재벌이자 10월당 두마 의원으로, 알렉산드라 황후와 라스푸틴의 후원으로 관료 경력 없이 제국 최후의 내무장관(1916–1917)에 임명되었다. 진행성 매독으로 인한 환각 속에서도 혁명의 위협을 부정하고 페트로그라드 식량 위기에 무능했으며, 각료와 총리의 거듭된 사임 요구를 무시했다. 2월혁명 중 타브리다 궁전에 자진 출두해 임시정부에 체포되었고, 1918년 10월 체카에 의해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0710월당 소속으로 제3대 국가두마 의원 당선
- 1912제4대 국가두마 의원 재선
- 1914–1916제4대 국가두마 부의장
- 1916.4–6두마 대표단장으로 연합국 방문, 스톡홀름에서 독일 측과 비밀 접촉
- 1916.9–1917.2러시아 제국 내무장관
- 1917.2.28타브리다 궁전에 자진 출두하여 체포됨
- 1917–1918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타간카 교도소 수감
- 1918.10.27체카에 의해 모스크바에서 처형됨
관련 역사 사건
광증과 '미친 장관'
프로토포포프의 내무장관 재임 실패는 진행성 질환이 제국 행정을 잠식한 결과였다. 1917년 임시정부 특별수사위원회에서 스스로 진술했듯, 그는 1900년대 초부터 '티베트 의사' 표트르 바드마예프에게 치료를 받아 왔으며, 의학계가 말기 매독으로 추정한 상태였다. 바드마예프는 신비한 '각성 분말'(코카인으로 추정)을 처방했고, 바로 그 집에서 프로토포포프는 라스푸틴을 처음 만났다. 1915~1916년에는 네 발로 기고 바닥을 구르며 자살을 시도하는 정신병적 삽화가 반복되었다. 바드마예프의 치료에 실망한 그는 러시아 최고의 정신과 의사 블라디미르 베흐테레프를 찾았다.
장관 재임 중 그의 행동은 널리 목격되었다: 이유 없는 울음과 고함, 통제 불능의 경련, 광적인 활동과 거의 긴장증적 무기력 사이의 진동. 두마 의장 로잔코는 "정상이 아닌 인상을 준다"고 기록했고, 프로토포포프 스스로는 "나는 러시아를 구할 것이다, 나 혼자만이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황후와 라스푸틴의 비호 아래 니콜라이 2세는 총리와 각료들의 거듭된 해임 요구를 묵살하고 그를 정식 장관으로 승격시켰다.
1917년 9월 니콜라옙스크 군병원에서 실시된 정신감정에서 의사들은 순환정신병(현대의 양극성 장애)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한 달 뒤 페트로그라드 지방법원은 그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판결했다: 의학적 진단과 법적 판단 사이의 이 괴리는 이미 붕괴한 체제의 마지막 모순 가운데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