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스틴테른을 이끈 농민의 아들, 네프 농정에서 당 서기국까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소 치는 목동에서 시작해 스스로 공부한 이 올드 볼셰비키는, RSFSR 농업인민위원과 크레스틴테른 사무총장을 동시에 맡으며 집단화 직전까지 볼셰비키 농민정책의 얼굴이었다.
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 해방투쟁동맹'에 가입한 올드 볼셰비키로, 차르 치하에서 5년간 투옥과 유형을 겪었다. 1917년 보고로츠크 소비에트 의장과 제헌의회 의원을 거쳐 내전기에는 식량인민위원부 차관으로 곡물 조달을 담당했고, 1923년부터 RSFSR 농업인민위원과 크레스틴테른 사무총장을 겸임하며 네프 시기 농업정책과 코민테른의 국제 농민운동을 주도했다. 1928년 중앙위 서기와 오르그뷰로 위원으로 승진해 당 지도부 핵심에 올랐으나, '스미르노프-에이스몬트-톨마초프' 반대파 그룹에 연루되어 1934년 당에서 제명되었고 대숙청 속에서 처형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6–1917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 해방투쟁동맹 가입, 트베리·모스크바에서 당 활동, 반복 체포·유형 (5년간 복역)
- 1907, 1912RSDLP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당선
- 1917보고로츠크 소비에트 의장, 모스크바현 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위원, 제헌의회 의원
- 1917–1919RSFSR 내무인민위원부 콜레기야 위원 · 내무부인민위원
- 1919–1923RSFSR 식량인민위원부 차관
- 1923–1928RSFSR 농업인민위원 겸 크레스틴테른 사무총장
- 1925–1929RSFSR 인민위원회의 부의장 (1928–1929 제1부의장)
- 1928–1930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서기, 오르그뷰로 위원 (1924–1930)
- 1930–1933소련 최고경제회의 상임간부회 위원 → 전연방 공동주택위원회 의장 → 오르그뷰로 후보위원으로 강등
- 1933–1937소련 경공업인민위원부 삼 가공 공장 부서장 — 1933년 중앙위 제명, 1934년 당 제명
관련 역사 사건
크레스틴테른 사무총장과 '농민 편향' 논란, 1923~1928
1923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소련, 폴란드, 독일,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미국, 멕시코 등 여러 나라 농민단체 대표들이 모인 대회를 계기로 농민 인터내셔널(크레스틴테른)이 창설되었다. 코민테른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 국제 농민운동 조직은 소련 국내 농정과 국제 농민운동을 잇는 통로였고, 최고 기관인 평의회가 상설 집행부를 선출하며 그 수장이 사무총장이었다. 스미르노프는 창설과 함께 사무총장에 올라 RSFSR 농업인민위원직과 겸임했고, 그 사이 국내 농업정책과 국제 농민사업을 동시에 지휘했다. 1925년에는 RSFSR 인민위원회의 부의장이 더해져 지도부 내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이 겸임은 그가 세운 성취이자 이해관계의 충돌 지점이기도 했다. 크레스틴테른은 소비에트 농민정책의 대외적 얼굴로서 각국 농민단체에 혁명적 농민운동의 노선을 전파하는 한편, 스미르노프 자신은 국내에서 네프의 농업 노선, 즉 농민경제의 진흥을 통한 자금 축적이라는 방향을 대표했다. 대외 사업과 국내 정책이 같은 사람의 손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임기는 소련 농민정책이 다수 농민과의 동맹 위에 서 있던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1927~1928년의 곡물 수급 위기는 이 노선을 뒤집었다. 도시의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해 스탈린이 농촌에 징발대를 파견해 곡물을 강제로 거두는 결정을 내리자, 스미르노프는 이를 적용하기를 주저했다. 그 결과 그는 1928년 2월 농업인민위원직에서 해임되었고, 그 직후 측근이던 테오도로비치도 농업인민위원부 차관직에서 물러나 크레스틴테른 사무총장을 이어받았다. 소련 지도부가 이 해임 사유를 '농민 편향'으로 규정했다는 점은, 그를 농민과의 동맹 노선의 대표자로 각인시켰다.
같은 해 스미르노프는 중앙위 서기와 오르그뷰로 위원으로 승진해 명목상으로는 지도부 핵심에 올랐으나, 농민 문제에서의 이런 이력은 이후 '스미르노프-에이스몬트-톨마초프' 반대파 그룹과의 연루, 1934년 당 제명, 그리고 대숙청기 처형으로 이어지는 경로의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