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나 피엔코프스카

Alina Pienkowska

정권이 파업 종료를 선언한 순간 노동자들을 붙잡아 연대 파업으로 전환시킨 조선소 간호사

"당신은 그들을 배신했어요. 이제 당국이 우리를 빈대처럼 짓밟을 겁니다." 바웬사가 파업 종료를 선언한 순간 그에게 한 말.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간호사로 일하며 1978년 자유해안노조(WZZ) 창립에 참여하고 지하신문 『해안의 노동자』에 노동안전과 직업병에 관한 글을 기고한 폴란드의 반체제 노동운동가이다. 1980년 8월 16일, 경영진이 임금인상을 약속하자 바웬사가 파업 종료를 선언했지만, 피엔코프스카는 안나 발렌티노비치와 함께 조선소 정문을 막아서서 동조 파업에 들어간 다른 공장 노동자들을 버릴 수 없다고 호소하며 파업을 연대로 전환시켰다. 이 개입으로 공장간파업위원회(MKS)가 결성되었고, 그녀는 21개 요구 중 의료개혁을 담은 16번 요구의 초안을 썼으며 8월 31일 그단스크 협정의 서명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보건의료 노조 지도자, 1980~1982

1980년 8월 투쟁이 연대 파업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피엔코프스카는 조선소 부속 산업보건소의 파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8월 31일 그단스크 협정으로 공장간파업위원회가 해체된 뒤에도 보건의료 부문 조직화를 이어갔다. 1980년 9월 1일 공장간파업위원회는 독립자치노조 창립위원회로 바뀌었고(9월 17일 '연대' 명칭 채택), 피엔코프스카는 이 위원회의 보건의료 부문 책임자가 되어 그단스크 창립위원회 집행부에 들어갔다. 그해 가을부터는 조선소 보건소를 근거지로 삼아 '연대' 전국 보건의료 부문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같은 해 11월 7일 그단스크 주청사에서 열린 협상에서 '연대' 보건의료 부문 대표 120명은 정부 측과 주로 임금 문제를 놓고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 측은 회담을 결렬시키고 접견실인 헤럴드홀을 점거해 농성 파업을 선포했다. 피엔코프스카는 이 보건의료 파업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고 이후 '연대' 보건의료 부문을 이끌었다. 파업은 열흘간 이어졌으며 '연대' 출범 초기의 다른 노조 활동과 마찬가지로 해안 지역 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여러 기관과 기업이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요구에 연대를 표했다. 사회적 압력은 효과를 냈고, 보건의료 부문은 "요구를 추가로 협상할 수 있는 권리와 상당한 정액 임금 인상"을 얻어냈다.

1981년 11월 그단스크 지역 대의원총회 두 번째 회의에서 그녀는 노조 지도부의 운영 방식을 점점 비판적으로 보다가 지역 지부 집행부에서 사임했다. 1981년 12월 13일 계엄령과 함께 그녀는 구금되었고, 1982년 7월 23일 구금이 해제되었다. 석방 후에도 그녀는 지하 '연대' 조직 활동을 계속하면서 보건의료 문제를 자신의 실천 축으로 삼았다.

피엔코프스카의 이 시기 활동은 8월의 상징적 순간과 구별된다. 그녀는 간호사라는 직업 정체성과 노동조합 조직가의 역할을 겹쳐 놓았고, 의료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의료 서비스의 기능·접근성 개선을 동일한 요구의 두 측면으로 다루었다. 1980년 11월 농성 파업에서 얻어낸 성과는 그녀가 8월 21개 요구 가운데 16번 요구를 직접 작성했던 문제의식이 조직적 실천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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