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성」을 함께 세운 아나키스트 의사이자 평화주의자
1936년 「자유여성」을 함께 세웠고, 몬세니의 보건부 사회부조 국장으로서 전쟁고아를 위한 「아동의 집」을 만들었다.
사라고사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반대 속에 교사 과정을 마친 뒤 1929년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의사·작가. 노동계급 여성의 보건 교육과 아동 보건에 힘썼고, 1931년 『어머니를 위한 조언』을 냈다. 1934년 마드리드로 옮겨 여성·아동 진료소를 열었고, 1936년 전쟁 저항자 인터내셔널 스페인 지부 의장이 되었다. 같은 해 「자유여성」을 함께 세웠고, 1936~1937년 몬세니의 보건부 사회부조 국장을 지냈다. 1939년 프랑스로 망명해 툴루즈에서 망명자들을 진료하다 1968년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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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968
독립 활동대표
과학·기술 -
1936–1937
스페인 공화파 국가기관보건부 사회부조 국장
정부·행정 -
1936–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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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관련 역사 사건
노동계급 여성의 의사에서 「자유여성」으로
사라고사에서 공병 장교 호세 포치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반대로 먼저 1917~1922년 사라고사 사범학교를 다녔고, 1922년 의학부에 들어가 1929년 스물여덟 과목 모두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동기 97명의 남성 사이에 여성은 둘뿐이었고, 그는 사라고사 의학부를 졸업한 두 번째 여성이었다. 그는 여러 글에서 학식 있는 여성이 남성들에게 받는 조롱과 멸시를 고발했다. 1923년 노동운동과 아나키즘 사상이 학생들에게 준 충격을 그린 자전적 소설 『사랑』을 냈다.
자기 집에 진료소를 열어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힘썼고, 노동계급 여성을 위한 보건 교육과 높은 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아동 보건 사업을 벌였다. 1931년 12월 임신·수유기 여성을 위한 『어머니를 위한 조언』을 냈다. 1932년 민사혼으로 결혼했으나 곧 헤어졌고, 1934년 마드리드로 옮겨 1935년 10월 여성과 아이를 위한 진료소를 열었다. 남녀공학을 지지했고, 1936년 2월 인민전선이 이긴 뒤에는 전쟁 저항자 인터내셔널 스페인 지부인 「전쟁 반대 이스파니아 연맹」 의장이 되었다.
1936년 루시아 산체스 사오르닐, 메르세데스 코마포사다와 함께 잡지이자 조직인 「자유여성」을 세웠다. 1936~1937년 페데리카 몬세니의 보건부에서 사회부조 국장으로 일하며 낡은 고아원을 대신해 공화국의 고아들에게 집을 마련해 준 「아동의 집」 사업을 이끌었고, 피난 아동 500명을 멕시코로 보냈다. 1939년 프랑스로 망명해 툴루즈에서 일반 진료와 부인과 진료를 맡았고, 망명 전국노동연맹의 통신 강좌와 국제 반파시즘 연대(SIA)의 의료 지원에 참여했다. 1965년 뇌암 진단을 받고 1968년 4월 15일 툴루즈에서 숨졌으며, 망명자 200여 명이 장례에 모였다. 내전 뒤 아버지는 그의 학적 기록을 지우려 했다.